파수꾼
하퍼 리 지음, 공진호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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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의 저자 하퍼 리의 55년만의 출시작, < 파수꾼>은 전세계적으로 상당한 기대를 모았다. 외국 독자들은 서점에서 줄을 서서 책을 구매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특히, 전작에서 주인공 스카웃이 6살 소녀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갔다면, 파수꾼은 스카웃이 20년 후 성인이 된 시점의 이야기인지라 독자들의 궁금증을 일으켰다.


 저자 하퍼 리는 <앵무새 죽이기>의 예상치 못한 성공에 위압감을 느낀 나머지 작품 활동을 중단하고 은둔생활을 했다고 한다. 실제 책은 <앵무새 죽이기> 이전에 집필되었고,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는데, 출판사의 권유로 차기작을 쓴 다음 그것을 먼저 출간했다고 한다. 그 후, <파수꾼>은 그녀의 안전 금고 속에서 원고가 발견되어 최근에 출간되기에 이른다. 내용만큼이나 출간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롭다.


 책은 1950년대 미국 남부의 작은 시골 도시 메이콤을 배경으로 한다. 진 루이즈 스카웃은 뉴욕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26세의 여성으로, 휴가를 얻어 고향 메이콤으로 내려온다. 스카웃의 집안은 남부 중상류층의 모습을 보여준다. 큰고모 엘리자베스는 코르셋을 갖춰입고, 교양을 쌓기 위한 여자대학을 졸업한 전형적인 귀족지향적인 남부 여성이다. 비교적 자유분방한 스카웃과는 자주 부딪힌다. 아버지 에티커스는 변호사로, 앵무새 죽이기의 모티브가 된 강간죄로 기소된 흑인 청년의 사건을 변호하여 무죄를 이끌어낸, 스카웃에게는 정의와 신념의 인물이자 우상이다. 헨리는 스카웃이 결혼 상대로 꼽고 있는 청년으로, 이웃에서 사고로 고아가 된 헨리를 에티커스가 교육시키고 이제는 변호사 사무소를 같이 운영하고 있다.


 책의 초반부는 스카웃의 집안과 메이콤 읍의 분위기를 그리고 있다. 그러던 중, 스카웃은 충격적인 발견을 하게 된다. 바로 아버지가 인종차별 팜플렛을 소지하고 있었던 것. 스카웃은 그것을 읽으며 상당한 충격을 받게 된다. 그리고 교회에서 개최되는 위원회. 그곳은 흑인민권운동을 대항하기 위한 집회였고, 아버지가 정기적으로 참석하고 있었다. 그의 남자친구 헨리는 이미 아버지의 추종자가 되어 행동을 같이 하고 있었다.


 "그녀가 전적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신뢰했던 유일한 사람이 그녀를 실망시켰다. 그녀가 알았던 사람들 중, <그는 신사입니다, 마음속으로부터 신사입니다>라고 전문가로서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대놓고, 흉하게, 파렴치하게 그녀를 배신했다.(p.161) 진 루이즈가 통찰력을 지녔더라면, 그래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고도로 선별적이고 배타적인 세계의 장벽을 꿰뚫어 볼 수 있었더라면,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평생 동안 가장 가까운 사람들도 알아채지 못하고 간과한 시각 장애를 가지고 살아왔다는 것을, 선천적으로 색맹이란 것을.(p.173)"


 앵무새 죽이기를 먼저 접한 독자들에게도, 에티커스의 변모는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온다고 한다. 무엇보다 백인 중상류층 사회에서 NAACP(미국흑인지위향상협회)에 대한 공포감, 저항감이 팽배한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당시 '니그로'가 중립적인 표현으로 쓰이는 시대 상황에서, 그러한 흑인 민권 운동은 남부의 소도시 메이콤 백인들에게 기득권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래서메이콤 시의 백인들만의 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에티커스 또한 참석하고 있었다.


 "NAACP가 남부를 전복하기 위해 전념하는 단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어...."(p.246) 오히려 스카웃에게 색맹이라고 꾸짖는 그들. 책은 이러한 남부의 시대적 분위기와 이제는 뉴욕 외지인인 스카웃과의 대립, 스카웃이 우상이었던 에티커스의 이면을 발견하고 아버지와 대립하는 구도를 그리고 있다. 에티커스는 결국 딸에게 "네가 자랑스럽다고"(p.390)라고 말한다. 스카웃은 에티커스와의 격렬한 설전과삼촌 잭 핀치와의 대화 속에서 자신의 신념과 우상의 파괴만이 아닌,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와 같이 할 수는 없다는 스카웃. 결국 자신의 길을 간다.


 <앵무새 죽이기>가 워낙 대작인 탓일까. <파수꾼>은 그에 비해 이야기의 갈등 구조가 보다 평이하고, 인종차별에 대한 경각심이나 감성을 일깨우는 명문장은 부족한 느낌이다. 실제로 집필 순서가 <파수꾼>이 먼저인지라, 스카웃의 20년 후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연계하여 그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1950년대 보수적인 미국 남부의 모습을 이해하고, 또한 스카웃의 여정에 집중하면서 읽어나가면 작품의 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의 작품을 기대하는 독자들에게는 어찌됐든 선물같은 작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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