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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방울새 1
도나 타트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6월
평점 :
아마존 베스트셀러
전세계 32개국 출간 후 베스트셀러
작가 도나 타트,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2014년 퓰리처상(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보도, 문학, 음악 분야상) 수상
완독률 98.5%(호킹지수 기준 : 아마존 킨들 완독률 지수)
워너브라더스사의 영화화 예정작
소설 한 편이 이룩한 성과다. 베스트셀러이자 완독률 98.5%의 재미와, 퓰리처상의 작품성과 깊이를 동시에 가진 소설. 그리고 이번 작품을 포함해 단 세편의 소설을 쓴, 과작寡作으로 유명한 작가가 타임지 선정 100인에 이름을 올렸다니. 도나 타트가 10년 간의 집필 끝에 탈고한 소설,『황금방울새』가 궁금했다.
이 새는 왜 자신이 그토록 불행하게 살아야 하는지, ... 더엎이 짧은 사슬에 묶여 날지도 못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아이라도 이 새의 존엄성을, 아주 자그마한 용감함을, 솜털과 연약한 뼈를 볼 수 있다. 두려워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꾸준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새. 세상에서 물러나기를 거부하는 새.
- p. 474 , 2권
『황금방울새』는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카렐 파브리티우스의 명화이자, 그림을 둘러싼 한 청년 시어도어 데커(시오)의 회고록이다. 1권은 테러 사건 이후로 모든 것이 바뀐 소년 시오의 삶을, 2권은 8년 후 성인이 된 시오가 황금방울새와 함께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는 전개를 그린다.
시간을 거슬러, 14년 전 소년 시오는 엄마와 미술관에 들러 잠시 관람하던 중, 폭탄 테러에 휘말려 엄마를 떠나보낸다. 사고 현장에서 당시 시오는 엄마를 찾기 위해 엄마가 좋아하던 황금방울새 전시실을 찾아갔고, 거기서 우연히 죽어가는 한 노인의 간청으로 그림을 몰래 들고 나온다. 그 후, 황금방울새는 시오에게 엄마를 되새기게 하는 유품인 반면, 걱정과 불안의 원천이 된다. 조금 악동같지만 재기발랄했던 한 소년의 평범한 삶은 그림과 함께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엄마가 살아 있었다면 더 나았을 것이다. 사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죽었고 그 이후에 일어난 모든 일은 전부 나의 잘못이지만, 엄마를 잃은 순간부터 나를 더 행복한 곳으로, 사람들이 더 많거나 나와 더 잘 맞는 삶으로 이끌어줄 지표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 p. 14, 1권
소설은 한 소년의 삶이 우연한 사고로 인해 어떻게 바뀌고 꼬이는지를 섬세한 구성과 묘사로 그린다. 편모 가정에서 갑작스레 엄마를 잃고, 고아나 다름없는 삶을 살게 된 시오는 엄마를 그리워하며 자주 회상한다. 애잔하고 안타까워서, 평범한 소설처럼 결국 시오가 삶의 희망과 의미를 찾고 행복해지길 바랐지만 순탄치가 않았다. 우연같은 사건들과 사소하게 넘어갔던 것들이 나중에 운명이 되어 삶의 궤적을 바꾸는 것을, 때로는 마구 웃으면서, 때로는 가슴 아프게 바라봐야 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전개를 예상 하지 못했다. 100%에 가까운 완독률의 이유가 아닐까.
작품의 말미에 시오의 회고는 과연 인간의 운명이란 무엇이고, 그 인간의 손에서 만들어진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했다. 친구 보리스의 말처럼, 선행이 항상 선을 낳지도 않았고, 악행이 항상 악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시오의 삶은 종잡을 수 없었다. 예측할 수 없는 현실은 운명의 사슬처럼 시오를 옭아맸다. 엄마를 잃은 상실감과 비례해서 커지는 명화 황금방울새에 대한 집착에 시오는 불안에 떨어야 했다. 현실은 점점 어긋나가고, 시오는 그러한 상황에서 비상하려 했지만, 때로는 사기, 범죄의 늪에 빠지기도 했고, 약물중독에 걸려서 스스로 납득하기 어려운 처지에 번민하기도 했다. 마치 그림 황금방울새처럼, 날개를 가졌지만 홰에 묶인 채 날지 못하고, 퍼덕일수록 어리석은 상처만 남기는 것이 운명인가.
그러나 시오는 그러한 날갯짓과 비정한 운명 같은 홰의 간극에서 아름다움과 예술이 만들어진다고 역설한다. 그 중간 지대에서 숭고함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중간 지대에 모든 사랑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인간이 삶에 몰두하고, 이상을 꿈꾸고, 영원과 불멸을 추구하지만 운명- 죽음 등- 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몸짓들과 현실의 운명 사이에서 마치 스파크처럼 사랑, 숭고함, 비장미와 같은 아름다움이 만들어진다. 운명에 체념하기보다 삶에 몰두하고 개똥밭같은 현실을 똑바로 해쳐나가야 한다. 아름다움은 거기에 있다. 그리고 예술은 그러한 아름다움을 영구적으로 보존해 가려는 인간 욕망의 한 자락이다.
시오가 황금방울새를 집착하고 사랑한 이유는 이것이 아닐까. 엄마를 잃은 후에 겪은 지독한 상실감, 예측할 수 없고 유한한 삶은 시오를 늘 불안과 번민에 빠뜨렸다. 그러나 17세기에 그려진 황금방울새는 오랜 세월에도 불변인 채로 세상에 남아있다. '카렐 파브리티우스, 1654'라는 글자와 함께. 그 존재 자체가 시오에게 위안이 되었고, "덜 유한하고 덜 평범한 사람"으로 남게 했다. 그리고 예술작품 황금방울새를 사랑했던 자신의 마음 한 조각도 그림이 존재하는 한 불멸할 것이라고 회고는 끝을 맽는다.
시오의 회고를 읽으면서, 마치 100세 노인 같은 스칸디나비아 소설의 위트, 러시아 소설에 담긴 진지한 인간 성찰, 그리스 비극이 주는 운명의 비장함이 한 작품에 녹아있는 듯했다. 소설은 운명, 실존의 불안과 번민, 예술 같은 추상적인 것들을 너무나도 섬세한 구성과 묘사로 풀어내었다. 운명은 어떤 형태이고, 예술은 무엇이며, 인간과 운명, 예술은 어떤 관계인가. 문학 교과서에서 배운 것처럼, 두루뭉술해서 손에 잡힐 듯 하지만 잡히지 않는, 말하고 싶지만 표현하기 어려운 삶의 영역을 허구를 통해 구체적이고 충실하게 드러낸 느낌이다. 소설이 삶의 진실을 추구한다는 명제가 적어도 황금방울새만큼은 옳다.
사실 도나 타트의 황금방울새를 직접 읽고 나니, 처음 완독률 98.5%라는 광고를 접했을 때와는 인상이 달랐다. 문체는 가독성 높고 평이하다기보다 한땀 한땀 바느질하듯 섬세하고 세밀했다. 마치 고전명작소설을 읽는 듯했다. 내용은 기대 이상으로 무겁다. 그러나 어느 순간 섬세한 문장은 작품의 무게감을 살렸고, 무게감은 독자를 몰입하게 했다. 근래 읽었던 동시대 소설 중에 가장 신기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 장을 덮고, 아마 세월이 지나면 세계명작문학전집의 작품으로 꽂혀있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들었다. 적어도 도나 타트와 『황금방울새』 독자들의 사랑은 작품이 보존되는 한 불멸할 것이다.
선한 행동이 항상 선을 낳는 건 아니고, 악한 행동이 항상 악에서 나오는 건 아니야. 안 그래? 현명하고 선한 사람도 모든 행동의결말을 알 수는 없어. 무시무시하지! - p. 442, 2권
왜냐하면, 만약 우리를 정의하는 것이 우리가 세상에 보여주는 얼굴이 아니라 우리의 비밀이라면, 그렇다면 나를 삶의 표면 위로 떠오르게 하고 나 스스로 내가 누구인지 꺠닫게 하는 비밀은 바로 그 그림이었다. - p. 470, 2권
나는 환영 뒤에 진실이 있다고 정말 믿고 싶지만, 결국 환영 너머에 진실은 없다고 믿게 되었다. 왜냐하면, 마음이 현실을 내모는 지점과 현실 사이에는 중간 지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곳은 아름다움이 만들어지는 곳, 두 가지 다른 면이 뒤섞이고 흐릿해져서 살밍 주지 못하는 것을 제공하는 무지개의 가장자리 같은 곳이다. 바로 모든 예술이, 모든 마술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 p. 479, 2권
그리고 나는 모든 사랑이 존재하는 곳이라 주장하고 싶다. - p. 479, 2권
운명은 잔인하지만 제멋대로는 아니라고. 자연(즉, 죽음)이 항상 이기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굽실거려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항상 기쁘지만은 않다고 할지라도, 어쨌든 삶에 몰두하는 것. 눈과 마음을 열고서 세상을, 이 개똥밭을 똑바로 헤쳐나가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p. 480, 2권
죽음이 건드릴 수 없는 것을 사랑하는 것은 영광이고 특권이다. 지금까지 이 그림에 재앙과 망각이 뒤따랐다면 -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사랑이 불멸인 한 (그것은 불멸이다) 나는 그러한 불멸성에서 밝게 빛나는, 변치 않는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 p. 480, 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