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전쟁
길승수 지음 / 들녘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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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 교육의 대부분이 조선에 할애되어 있을 정도로 밸런스가 좋지 않은 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왕조에서는 '이 말은 절대로 쓰지 말아라!'라고 왕께서 말씀하셨다-라고 적을 정도로 꼼꼼하게 문서로 기록했기에 역사 자료가 풍부한 편이니 당연한 일이죠. 학창 시절 국사의 반은 조선이요 나머지 반을 다른 시절에 할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요즘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역사 과목은 조선에 집중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표니 업적 같은 걸 달달 외우고 시험을 본 통에 그나마도 남아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하물며 고려와 거란이 싸워온 이야기는 그냥 서희가 소손녕한테 멋지게 말을 해서 물러나게 했다! 나중에 또 쳐들어와서 몽진하다가 다시 수복했다! 그런 식으로 만 알고 있었습니다.


뭔가 역사적 사건은 많았지만 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 탓에 소손녕이랑 소배압이랑 비슷한 시대인지 강감찬 장군은 언제쯤 활약을 했었던 건지. 아니, 강감찬이 있는데 서희는 왜 외교 담판을 지었던 건지 혼동을 일으키고 있었던 겁니다. 국사 몇 시간에 휘리릭 지나가듯 배운 데다가 당시만 해도 입시 배점이 높지도 않았고 하니 반쯤 포기했던 탓에 뭐 아무것도 몰랐던 게 사실입니다.



그래도 나름 어른이 되었다고 역사를 잘 모르는 건 즐겁게 떠들 일이 아니라 부끄러워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깨닫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딱딱한 서적을 읽으면서 파고들기에는 지적 수준이 따라주지를 않습니다. 그러던 차에 <고려거란전쟁>이라는 책을 만났습니다. 역사책이긴 한데 소설처럼 스토리텔링이 좋아서 술술 읽힙니다. 중학생부터 성인까지 누구나 읽을 수 있을 만큼 잘 쓰인 책입니다.


저자는 고려와 거란의 전쟁을 다루면서 서희와 소손녕이 등장하는 1차 침공(993년) 그리고 양규와 김숙홍이 등장하는 2차 침공(1010)을 나누어 풀어나갑니다. 대신들이 극구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강감찬의 느리게 반격하는 항전을 수락한 현종의 이야기도 생생히 전합니다. 거란을 고려를 꾸준히 침략해왔지만 결코 이쪽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기에 자신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고려와 거란이 오랫동안 치러왔던 전쟁을 사실에 입각하여 풀어나가는데, 지금까지 몰랐던 이야기까지 끄집어내어 연결 지었습니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를 보듯 생생하게 느껴지니 책을 놓기 힘들었습니다. 2023년 11월에 KBS에서는 대하사극으로 고려거란전쟁을 제작하고 있는데, 저자는 여기에 원작자로서 그리고 자문으로 참여하여 완성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사료의 부족으로 인해서 고려거란전쟁에 대해 깊이 다루지 못했었다고 합니다. 같은 이유로 고려사에 대한 부분도 상당히 축소되어 전달되는데요, 저자는 이런 한계를 뚫고 나가기 위하여 <고려사>와 <요사>, <송사>와 같은 국내외의 사료들을 바탕으로 당시의 정황을 파악하였습니다. 이를 집대성하여 책을 만들되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 형식을 취했습니다.



실제로 읽어보면 마치 역사 소설의 초반이나 중반에 등장하는 배경 설명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중요한 장면은 소설의 서술 방식을 차용하며 따옴표 안에 대사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더욱 생생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나 상황에서는 삽화를 넣어서 무겁지 않도록 장치하였습니다. 어린이 서적에서나 볼법한 삽화를 통해 가볍고도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지형이나 전투 루트, 몽진 경로 등 필요한 부분에서는 지도를 넣어서 한눈에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읽다 보면 지리에 약하거나 고려에서 사용하던 지명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도 지도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어서 무척 편안했습니다. 독자로서는 이런 장치들 덕분에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지만 작가는 이를 위해서 무려 14년을 바쳤다고 합니다.


고려거란전쟁은 딱 전시만 다루지는 않습니다. 역사는 흐름이기에 전쟁 사이에 흘러가는 왕실의 상황이나 주변국의 이야기도 함께 짚어봅니다. 하지만 너무 그쪽으로 치중하여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하였습니다. 짜임새 있는 진행 덕분에 보다 많은 걸 알고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가 쉽게 서술되어 있으니 역사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일독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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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괴이 사전 : 현대편 세계 괴이 사전
아사자토 이츠키 지음, 현정수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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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과학이나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이 종종 발생하죠. 멀리서 찾을 것 없이 음... 어디 보자, 엄마들이 날카로운 촉 같은 것도 포함될 수 있겠어요. 그런데 세계 괴이 사전에는 그렇게 일상적으로 만나는 일이 아닌 보기 드문 현상들을 담았어요. 언젠가 들어보았던 거 같은 이야기들보다는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며 탄성을 자아내는 짤막한 스토리들이 들어있죠.


신비한 이야기들을 대륙별로 나누어서 설명하는데, 저자가 일본인이라서 일본 편은 따로 모아서 괴이 사전을 만들었나 봐요. 그래서 이 책 <세계 괴이 사전>에는 일본의 이야기는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혹은 나타났었던 스토리들만 담겨있어요. 무척 흥미로운 자료들을 모아서 집대성했다고 보아도 좋아요. 슬랜더맨이나 애나벨 인형의 원래 이야기 같은 게 있으니 호러 마니아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딱이예요.


정말 정리가 깔끔하게 된 책인데요, 저자의 약력만 보아도 세계의 괴이나 역사적인 인물에 대한 괴담 지식과 자료가 탁월하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수집물을 정리했다는 느낌이 아니라 문학부 전공자로서의 단정한 느낌도 있는 거 같아요. 여기에 번역가의 스킬도 한몫하지 않았나 싶어요. 일본 문학을 전문적으로 번역하는 분인데, 미쓰다 신조 시리즈를 옮겼다니 그런 점 만으로도 신뢰감이 가더군요. 잘 번역했으리라는 느낌.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면, 제 생각에는 바다와 인접해있거나 섬 지방에 전설과 같은 미스터리 스토리가 많은 거 같아요. 그래서일까요, 이 책에서도 아시아의 자료가 상당히 많아요. 괴이나 괴물, 신비한 현상과 생물에 대한 내용이 고스란히 적혀있죠. 그냥 카더라 하는 것보다는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기이함을 모았기에 뭐랄까... 약간 공식적인? 그런 내용이 담겨있다고 보면 좋겠어요.


세계 괴이 사전이라는 이름답게 내용은 백과사전처럼 정리되어 있어요. 가나다순을 따랐으며 - 여기에서 편집자가 무척 수고로움이 느껴졌어요. - 페이지 구성도 그렇게 되었어요. 그렇지만 자간과 줄 간격, 여백 등을 적절히 배치해서 답답하지 않도록 잘 구성하였더군요. 조명이 약간 노란빛이기에 종이가 부드러운 크림색처럼 보이겠지만 실은 밝은 톤 갱지 느낌이에요. 살짝 거친 느낌이라서 오히려 책 분위기가 더욱 잘 살아나는 거 같아요.



이 책은 세계 괴이 사전: 현대 편으로 20세기 이후에 등장한 괴상한 현상이나 생명을 다루었어요. 하지만 첫 번째 기록이 19세기 이전이라고 하더라도 20세기 이후에 출몰한 적이 있다면 수록되었어요. 개인 창작이라고 해도 실제로 나타났던 일이거나 혹은 실재한다는 식으로 소개되었다면 또한 여기에 수록하였어요. 그래서인지 혹시 그 나라에 가면 만날 수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전'이라고 되어있는 만큼 스토리텔링을 위해서 지나치게 묘사하거나 소설처럼 풀어나가지 않았어요. 팩트만을 전달한다는 느낌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공포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자료로서 읽을 수 있어요. 여기에 살을 붙이거나 흥을 돋우는 표현을 쓴다면 무서운 이야기 잘 하는 사람으로 특기를 갖출 수도 있을 거 같아요.(살짝 농담이에요.)


사전의 후반부에는 특별기고 편이 있어요. 대학교수나 조교수와 같은 사람들이 저마다 괴이에 관한 이야기를 해요. 괴이의 변천이나 인터넷 문화로 인해서 새로이 등장하고 퍼져나가는 데에 대한 이론을 나누죠. 이런 부분 역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어요. 어딘가에 존재하는 괴물과 우리는 어떻게 만나게 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이런 쪽에 끌린 건 우연이 아니었구나 싶기도 하고요.



괴이 세계사 대조 연표가 있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흥미로웠어요. 각 대륙에서 의미 있는 역사적 사건이 있을 때 - 실제로 그와는 무관한 일이긴 해도 - 등장한 괴이를 연표로 만들어 놓다니 누가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린 걸까요? 연표를 보면서 혹시나 역사적인 사건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어지러운 심경이 괴현상을 낳은 걸지도 모른다는 상상도 하지만, 아인슈타인 특수상대성 이론 발표와 비행소년 수용소에 나타난 악령은 무관할 테니 금세 상상을 털어버렸어요.


세계 괴이 사전은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여겼는데요, 색인이 참 잘 되어 있어요. 사전이라면 응당 갖추어야 할 미덕이기도 하지만 유령, 요괴, 괴인, 미확인 생물 등 장르별로 나누어서 가나다순으로 정리되어 있어요. 카테고리에 들어가지 않은 건 기타로 분류했어요. 그냥 이름을 보고 찾을 수 있도록 가나다순으로 색인 정리도 되어 있어요.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찾으면서 보면 돼요.


세계 괴이 사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읽는 재미도 있지만, 평소 관심 두고 있던 걸 하나씩 찾아서 보는 즐거움도 무시 못 하는 거 같아요. 저는 앞에서부터 차례로 읽어나갔지만 중간중간 재미있는 이야기는 색인으로 찾아본 후 리틀포니에게 이야기해주면서 함께 신기해하고 있어요. 괴현상, 괴이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꼭 읽어보셨으면 좋을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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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 - 나를 수놓은 삶의 작은 장면들
강진이 지음 / 수오서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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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


인생을 돌아보면 전체적인 흐름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닙니다. 유아동기부터 지금까지 내내 결핍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래도 과거를 돌아보면 파편처럼 하나씩 무언가가 존재하기에 지금까지 삶을 이어가는 게 아닌가 합니다. 평범한 삶 속에서 행복을 찾는 것, 이를 느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그 사람은 상당히 단단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13년 전의 저는 지금보다도 형편이 안 좋았었기에 아이의 생일에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습니다. 고기 뷔페에 데리고 가서 밥이나 실컷 먹이는 게 전부였었죠. 그런데 세상에나, 마침 근처에서 루미나리에 행사를 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것도 무료입장이라니 가난한 엄마에게는 보석과 같은 일이었죠.



카메라도 없는 데다가 스마트폰도 없던 때라 어두운 곳에서 사진을 남기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아로새겨진 그 빛들은 여전히 남아서 반짝이고 있답니다. 아이에게 네 생일 파티를 이렇게 성대하게 하네, 온 경산 시민들이 다 축하해 주는 건가 봐하면서 웃었어요. 실은, 잠시 이런 추억을 잊고 있었어요.



강진이의 <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에서 불꽃놀이 그림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죠. 태중의 아기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면서 보았던 풍경들이지만 마치 제가 보았던 루미나리에처럼 느껴졌습니다. 사랑스러운 그림은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을 끄집어내어 다시 한번 좋은 감정에 젖게 하는 것 같습니다.



<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는 작가의 추억을 따라갑니다. 예쁘고 아기자기 한 그림들이 마치 그림책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이런 컬러 감각과 사랑스러움은 할머니로부터,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 같습니다.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사랑이 있었던 어린 시절,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이 책에 고스란히 옮겼습니다.



그 사랑마저 잊어버린 치매 할머니와 함께 하는 순간은, 유난히 엄격했던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호랑이 훈장님 같았던 분이셨지만 그래도 손주들 중에서는 저만 아꼈던 분이셨거든요. 11년 전, 외할머니는 저보고 "아기가 물래기 어떵 키우코..."하며 걱정하셨지만 물래기도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고, 저도 아기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참 희한합니다. 저는 과거를 돌이켜볼 때마다 분노와 회한, 억울함과 같은 게 치솟는 편인데, 이상하게 저조차 잊고 있었던 따뜻함을 끄집어 냅니다. 이렇게 마음이 촉촉해서 어떻게 험한 이 세상을 살아갈까 싶은 생각에 화급히 책장을 닫아버립니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 나에게도 좋은 추억이 많았었구나 하는 생각에 조심스레 다시 한번 펼쳐 듭니다.



힘든 하루를 버텨내다 보면 다음날이 되고, 이렇게 하루가 쌓여 한 달, 일 년이 됩니다. 그렇게 보내다 보니 어느새 저는 화가 잔뜩 난 듯한 표정의 중년이 되었고,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시름하는 사이에 흰머리가 또 하나 늘어납니다. 숱이 적어 외할머니처럼 뽑아달라고 할 수는 없지만, 혹시 몇 년 잘 버티다가 염색하면 탈색 없이 옴브레가 되는 건 아닐까 상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던 거보다 과거와 현재가 어둡지만은 않았구나 하며 마음을 놓습니다. 지금 힘들다 하더라도 몇 년 후에는 또 즐거운 행복의 파편이 존재했었다는 걸 알 게 될 테니까요. 행복은 늘 우리 곁에 있으며 너무나 커다랗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건가 봅니다. 소중한 사람과 따뜻한 밥 한 끼 먹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잊고 삽니다.




<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에는 상당히 많은 그림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쁜 자수 작품들도 있습니다. 그중에서 저는 위의 두 그림이 꽤 마음에 듭니다. 똑같은 마을 풍경이지만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이 퍽 재미있습니다. 지금 제가 살아가는 장소도 그렇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상당히 달라짐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라는 물음은 질문이 아니라는 걸 잘 압니다. 강진이 작가는 에세이를 통해서 누구에게나 사랑과 행복이 가까이 있다는 걸 이야기합니다.



글은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독자는 그 이야기들을 하나로 그러모아서 패치워크 작품을 감상하듯 감동 어린 눈으로 바라봅니다. 누군가에게는 버려지거나 사소하게 여겨질 작은 천 조각을 하나씩 모아서 만들어낸 커다란 작품이 바로 인생이 아닌가 합니다.



잊고 살고 있던 진리를 깨닫게 해준 강진이 작가님이 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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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개의 쓰잘머리 없는 이야기들
최지운 지음 / 시현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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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잘머리라는 말은 처음 들어서 혹시 쓰잘데기의 방언이 아닌가 


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어요. 쓰잘데기가 경상도나 전라도 등에


서 사용하는 방언이라고 하는군요. 쓰잘머리란 '사람이나 사물의 


쓸모 있는 면모나 유용한 구석'이라고 사전에 정의하고 있는데요, 


개똥도 약에 쓸데가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농담조로 "냅둬~ 애는 착혀~"라는 충청도 표현이 하나도 쓸모없


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걸 알았을 때 - 심한 욕으로 쓰인다


는 소리에 웃었지만 그래도 '착하다'라는 점 하나라도 보아주는구


나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세상에 정말 쓰잘머리 없는 사람이 있


을까 싶더라고요.



물론 저렇게 파렴치한 사람이 다 있나, 아니 저런 건 사람으로 껴


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싶은 '것들'도 있기는 해요. 그런 놈들은 


버려두고 그냥 평범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고요. 자신을 포


함해서 주변을 둘러보면 쓰잘머리 있고 없고는 도대체 누구의 잣


대로 재서 평가하는 걸까요?



무언가를 하고자 하고 이루고자 하는 그 중간 단계 과정에 있는 


사람을 평가하는 자체가 곤란하지 않을까 해요. 이 글을 쓰면서 


약간의 이중사고랄까, 모순 같은 게 느껴지긴 하네요. 인생을 살


아오면서 제 스스로도 저 인간은 글렀어라고 판단한 사람들이 있


거든요.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저로서도 말이요.



그러므로 결과론에 입각해서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바로 앞의 사


람이 한심해 보이기도 하고 답답할 수도 있어요. 이해해요. 언제


까지 취준생으로 살려는 걸까, 허황된 꿈을 좇는 건 아닐까 하며 


조언을 하기도 하죠. 하지만 그게 정말 그들을 위한 건지 아니면 


그렇다고 착각하는 자신의 오지랖이며 참견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도 있을 거 같아요.



저는 종종 무기력이 몰려와요. 정말 쓰잘머리 없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우울의 바닥으로 떨어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의 모든 일들이 미래의 나를 만들어가는 거라는 막연한 상상을 하


며 조금씩 힘을 내요. 나이를 조금 먹었다고 꿈까지 낡아버리면 


곤란하니까요. 게다가 저희 집, 장수 집안이거든요. 앞으로 적어도 


40년은 살 거 같으니 힘내야죠.



<서른 개의 쓰잘머리 없는 이야기들>에는 그와 그녀들이 나와요. 


저처럼 삶을 고민하고 생존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죠. 완성형이


라기보다는 그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 등장해요. 편의점에서 우연


히 마주친 슬리퍼에 운동복 남자가 이야기의 주인공일 수도 있어


요. 아니면 분식집 옆 테이블에서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열심히 


떡볶이 먹는 여자 일 수도 있고요.



어느 쪽이어도 상관없어요. 이 소설 속에서는 누구나 주인공이고 


또 그들을 바라보는 인물이기도 하니까요. 결국 그들은 '나'이고 '


나'였던 사람들이에요. 완벽이라는 건 허상이라는 걸 얼마 전에 


책을 읽다 깨달았어요. '완성'을 위해서 달려가는 사람들이지만 실


제로 완성되는 거라는 건 없다는 걸 알고 있죠.



그래도 소설 속의 그와 그녀들은 자신의 꿈을 완성하기 위해 나아


가요. 언뜻 보기에는 멈춰있는 거 같지만 실제로는 꾸준히 전진하


고 우회하면서 성장하죠. 그런 생의 단편들이 이 책에 담겨있어요


. 세상에서 루저라고 불려도 마땅한 그들이지만 누구나 흑역사는 


만들어가는 거 아니겠어요?



소설 속의 그와 그녀는 한 사람이 아니에요. 서른 개의 단편마다 


주인공이 있어요. 남자는 '그', 여자는 '그녀'라는 이름을 갖죠. 그


들 외의 모든 이들은 이름이 있어요. 현실이라면 '나'와 '내 주변인


'만이 이름을 갖고 그 외에는 지나치는 그와 그들이라는 대명사로 


불릴 테지만 책에서는 반대에요.



그래서 오히려 주인공들을 나와 동일시하면서 품을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서른 개의 단편은 시간 순서대로 흘러가지 않아요. 시간


과 공간의 순서가 뒤죽박죽이죠. 저번에 나왔던 그와 그녀가 이번


에는 주변인으로 나오기도 해요. 편의점 캔커피를 사던 취준생이 


인사담당자가 되어있기도 해요.



각각의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아, 저번에 그 청년이 지금 이렇게 


되어있구나! 하는 걸 알고 나면 무척 반갑고 기뻐요. 그렇지만 여


기가 과연 종착역일까요? 그렇지 않아요. 그들은 또 방황하고 좌


절하고 그리고 성공하게 될지도 몰라요. 아니면 저와 비슷한 연배


가 되어 과연 나는 잘 살아온 걸까, 그때의 선택은 맞았던 걸까 고


민할 수도 있죠.



소설 속의 인물들은 에필로그에서 모두 만나요. 한자리에 모여서 


호호 하하하는 게 아니라 '그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스쳐가며 


만나죠. 어머니가 쓰잘머리 없는 지인들이라고 했던 사람들에 대


한 평가를 다시 내리게 되는 시점이에요. 마지막 장소가 장례식장


이라는 건 큰 의미가 있는 거 같아요.



저는 이런 소설을 읽을 때면 인생에서 별다른 접점 없이 스쳐 지


나가는 사람들 모두가 하나하나의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진하게 느


껴요. 자주 방문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생도 친절한 NPC가 아니


라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거. 누구나 알았으


면 해요.



솔직히 큰 기대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던 책이지만 읽고 나서는 훈


훈함을 느꼈어요. '제목보다도 더 쓰잘머리 있고 좋은 소설'이라고 


평하고 싶어요. 가볍게 읽으며 힘을 얻고 싶다면 만나보셔도 좋겠


어요. 커다란 사건은 일어나지 않지만 잔잔히 풍겨오는 무언가가 


있어 좋답니다.



저자 : 최지운


필자는 동국대학교 예술대학과 서울과기대 산업대학원에서 문예 


창작을 전공했어요. 동국대 영상대학원에서 문화콘텐츠를 배웠고


요. 2006년 서울 신춘문예에서 동화로 등단하고 2013년에는 한경 


청년신춘문예 파트에서 장편 소설로 등단했답니다. 본격적인 작


가의 길은 이때부터 시작이었죠.



장편소설 <옥수동 타이거스(2013)>, <통제사의 부하들(2013)>, <


시간을 마시는 카페(2016)>, <대두인(2018)>, <삼엽충(2019)>, <


트라이아웃(2020)>을 이미 만나본 분들도 있을 거 같아요. 그 외


에도 역사 교양서 <책임지는 용기, 징비록(2015)>을 편찬했어요.



요즘은 장편소설을 집필하면서 영상 콘텐츠 관련 소논문 발표에 


힘쓰고 있다고 해요. 협성대 문예창작학과와 강원대 국어국문학


과, 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등 다수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


르치고 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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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책 - 자기증명과 인정욕구로부터 벗어나는 10가지 심리학 기술
마이클 투히그.클라리사 옹 지음, 이진 옮김 / 수오서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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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무척 강압적인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말로 풀어내자면 한참 동안이나 주절거려야 할 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죠. 많은 어른들이 저를 괴롭혔지만 주 양육자였던 아버지를 견디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비난을 피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100점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고 그렇지 못하면 비난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나름의 재주로 학교에서 인정받았을 때에는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하느냐, 세계 1등이냐는 이야기를 들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겸손이 아니라 좌절감을 맛보았습니다. 성인이 된 후에도 무언가를 성취하고 이루어 내더라도 내내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일반적인 삶을 사는 거조차 저에게는 버거운 일이었습니다. 나이를 먹고 나서야 비로소 포기하면 편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삶의 전반에 적응하지 못했기에 여전히 수정하고 다짐해야만 하는 힘듦이 있습니다.



딸에게도 저의 이런 성향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태생적으로 예민한 편인데다가 환경의 불안함, 엄마의 까다로움이 아이 스스로 '만족'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완벽하지 못할 바에는 포기하자는 생각을 가질 정도였습니다. 자기 멸시가 지나친 나머지 중학교에 올라가 첫 번째 수학 시험을 보고 나서는 피가 나도록 팔을 뜯는 자해를 하였습니다.



완벽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멍청하다는 소리까지 하며 괴로워했습니다. 성인이 된 후에는 조금씩 변화를 일으키는 중입니다.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시험을 조지러 갔다가 내가 조저 졌네...'라며 자조적인 농담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여전히 노력하고 성장하고 발전하는 중입니다. 완벽을 추구하다 오히려 엉망진창이 되거나 건강을 해치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딸은 전화하는 걸 두려워하고, 저는 댓글 남기는 걸 무서워합니다. '실수' 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희이기에 <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책>이 끌렸습니다. 이 책이 필요한 사람은 다음과 같습니다.(p.11)



-'있어야 하는' 위치에 도달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안, 스트레스, 걱정의 늪에 빠진 사람

-완벽주의가 삶을 장악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 사람

-대체 왜 집착을 버릴 수 없는지 궁금한 사람

-나는 부족하고, 쓸모없는 존재이며,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마음속 깊이 믿는 사람

-완벽주의가 지긋지긋하지만 딱히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모르는 사람


-1년 전보다 삶에 더 만족하는가?

-삶이 원하는 방식대로 흘러가는가?

-불안, 스트레스, 걱정에 지배되는 삶은 추구할 가치가 있는가?

-만약 이 게임(완벽주의 게임)이 삶을 통제하도록 방치한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위 내용(p.25 인용)에 대한 내용을 생각해 보고 스스로 내린 답변이 애매하다고 느껴지거나 만족스럽지 않다면 일독을 권합니다.



<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책>은 자기 증명과 인정 욕구로부터 벗어나는 열 가지 심리학 기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예를 들면서 편안하게 다루는 게 아니라 리드하듯 강한 문체로 서술하였습니다.



완벽주의는 넓은 의미로는 높은 기준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잉 성취자'를 완벽주의의 전형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완벽주의는 과잉성취보다 다소 복잡한 개념이며 다양한 양상으로 표출된다.

-p.37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완성하는 건 무척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완벽하게 처리하고자 하는 노력이 언제나 좋은 결과를 낳는 건 아닙니다. 그렇기에 실천 가능한 정도를 설정하고 과정도 칭찬하며 하나씩 성취하는 즐거움을 느낄 필요가 있습니다.



책에서는 성취와 높은 생산성으로 보상과 자기만족을 얻는 걸 '적응적 완벽주의'라고 합니다. 그에 반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긴장하고 통제하며 완성되지 않은 건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걸 '부적응적 완벽주의'라고 합니다. 부적응적 완벽주의는 작은 자극에도 '나는 왜 이럴까',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라는 식으로 자기 비하를 합니다.



결국 우울과 불안, 스트레스에 사로잡혀 헤어나기 어려워합니다. 자신을 혐오하고 지나친 자기반성을 한다면 부적응적 완벽주의에 빠져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는 게 좋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자기 친절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가치를 소중하게 다루며 삶의 우선순위가 밖에 있지 않다는 걸 파악하는 게 좋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자신에게 친절함을 베풀어야 합니다.



9장의 '실패를 책임지는 방법'만 알아도 삶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완벽'이라는 미지의 목표가 아닌 실천 가능한 스마트(SMART) 목표를 세움으로써 차곡차곡 나아가는 방법을 깨우치기 때문입니다. 완벽주의자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완벽'하게 실천하고자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어쨌든 시도가 중요하니 그런 결과도 나쁘지는 않겠습니다.



스트레스와 긴장, 자기 비하와 우울로 범벅된 삶이 조금이라도 밝아지길. 모두의 삶을 응원합니다.


완벽주의를 이해하고 그것에서 벗어날 방법을 실천하더라도 가장 완벽한 버전의 자신이 되고 싶은 욕구와, 실패를 피하고 싶은 욕구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늘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고속도로를 잘못 타면 다시 새로운 경로를 찾는 것처럼 두려움 대신 가치를 선택할 기회는 언제나 열려 있다. 스스로를 친절하게 대할 선택, 일과 여가의 균형을 적절히 맞출 선택은 오로지 당신만이 할 수 있다.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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