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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개의 쓰잘머리 없는 이야기들
최지운 지음 / 시현사 / 2023년 5월
평점 :
쓰잘머리라는 말은 처음 들어서 혹시 쓰잘데기의 방언이 아닌가
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어요. 쓰잘데기가 경상도나 전라도 등에
서 사용하는 방언이라고 하는군요. 쓰잘머리란 '사람이나 사물의
쓸모 있는 면모나 유용한 구석'이라고 사전에 정의하고 있는데요,
개똥도 약에 쓸데가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농담조로 "냅둬~ 애는 착혀~"라는 충청도 표현이 하나도 쓸모없
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걸 알았을 때 - 심한 욕으로 쓰인다
는 소리에 웃었지만 그래도 '착하다'라는 점 하나라도 보아주는구
나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세상에 정말 쓰잘머리 없는 사람이 있
을까 싶더라고요.
물론 저렇게 파렴치한 사람이 다 있나, 아니 저런 건 사람으로 껴
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싶은 '것들'도 있기는 해요. 그런 놈들은
버려두고 그냥 평범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고요. 자신을 포
함해서 주변을 둘러보면 쓰잘머리 있고 없고는 도대체 누구의 잣
대로 재서 평가하는 걸까요?
무언가를 하고자 하고 이루고자 하는 그 중간 단계 과정에 있는
사람을 평가하는 자체가 곤란하지 않을까 해요. 이 글을 쓰면서
약간의 이중사고랄까, 모순 같은 게 느껴지긴 하네요. 인생을 살
아오면서 제 스스로도 저 인간은 글렀어라고 판단한 사람들이 있
거든요.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저로서도 말이요.
그러므로 결과론에 입각해서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바로 앞의 사
람이 한심해 보이기도 하고 답답할 수도 있어요. 이해해요. 언제
까지 취준생으로 살려는 걸까, 허황된 꿈을 좇는 건 아닐까 하며
조언을 하기도 하죠. 하지만 그게 정말 그들을 위한 건지 아니면
그렇다고 착각하는 자신의 오지랖이며 참견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도 있을 거 같아요.
저는 종종 무기력이 몰려와요. 정말 쓰잘머리 없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우울의 바닥으로 떨어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의 모든 일들이 미래의 나를 만들어가는 거라는 막연한 상상을 하
며 조금씩 힘을 내요. 나이를 조금 먹었다고 꿈까지 낡아버리면
곤란하니까요. 게다가 저희 집, 장수 집안이거든요. 앞으로 적어도
40년은 살 거 같으니 힘내야죠.
<서른 개의 쓰잘머리 없는 이야기들>에는 그와 그녀들이 나와요.
저처럼 삶을 고민하고 생존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죠. 완성형이
라기보다는 그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 등장해요. 편의점에서 우연
히 마주친 슬리퍼에 운동복 남자가 이야기의 주인공일 수도 있어
요. 아니면 분식집 옆 테이블에서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열심히
떡볶이 먹는 여자 일 수도 있고요.
어느 쪽이어도 상관없어요. 이 소설 속에서는 누구나 주인공이고
또 그들을 바라보는 인물이기도 하니까요. 결국 그들은 '나'이고 '
나'였던 사람들이에요. 완벽이라는 건 허상이라는 걸 얼마 전에
책을 읽다 깨달았어요. '완성'을 위해서 달려가는 사람들이지만 실
제로 완성되는 거라는 건 없다는 걸 알고 있죠.
그래도 소설 속의 그와 그녀들은 자신의 꿈을 완성하기 위해 나아
가요. 언뜻 보기에는 멈춰있는 거 같지만 실제로는 꾸준히 전진하
고 우회하면서 성장하죠. 그런 생의 단편들이 이 책에 담겨있어요
. 세상에서 루저라고 불려도 마땅한 그들이지만 누구나 흑역사는
만들어가는 거 아니겠어요?
소설 속의 그와 그녀는 한 사람이 아니에요. 서른 개의 단편마다
주인공이 있어요. 남자는 '그', 여자는 '그녀'라는 이름을 갖죠. 그
들 외의 모든 이들은 이름이 있어요. 현실이라면 '나'와 '내 주변인
'만이 이름을 갖고 그 외에는 지나치는 그와 그들이라는 대명사로
불릴 테지만 책에서는 반대에요.
그래서 오히려 주인공들을 나와 동일시하면서 품을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서른 개의 단편은 시간 순서대로 흘러가지 않아요. 시간
과 공간의 순서가 뒤죽박죽이죠. 저번에 나왔던 그와 그녀가 이번
에는 주변인으로 나오기도 해요. 편의점 캔커피를 사던 취준생이
인사담당자가 되어있기도 해요.
각각의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아, 저번에 그 청년이 지금 이렇게
되어있구나! 하는 걸 알고 나면 무척 반갑고 기뻐요. 그렇지만 여
기가 과연 종착역일까요? 그렇지 않아요. 그들은 또 방황하고 좌
절하고 그리고 성공하게 될지도 몰라요. 아니면 저와 비슷한 연배
가 되어 과연 나는 잘 살아온 걸까, 그때의 선택은 맞았던 걸까 고
민할 수도 있죠.
소설 속의 인물들은 에필로그에서 모두 만나요. 한자리에 모여서
호호 하하하는 게 아니라 '그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스쳐가며
만나죠. 어머니가 쓰잘머리 없는 지인들이라고 했던 사람들에 대
한 평가를 다시 내리게 되는 시점이에요. 마지막 장소가 장례식장
이라는 건 큰 의미가 있는 거 같아요.
저는 이런 소설을 읽을 때면 인생에서 별다른 접점 없이 스쳐 지
나가는 사람들 모두가 하나하나의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진하게 느
껴요. 자주 방문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생도 친절한 NPC가 아니
라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거. 누구나 알았으
면 해요.
솔직히 큰 기대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던 책이지만 읽고 나서는 훈
훈함을 느꼈어요. '제목보다도 더 쓰잘머리 있고 좋은 소설'이라고
평하고 싶어요. 가볍게 읽으며 힘을 얻고 싶다면 만나보셔도 좋겠
어요. 커다란 사건은 일어나지 않지만 잔잔히 풍겨오는 무언가가
있어 좋답니다.
저자 : 최지운
필자는 동국대학교 예술대학과 서울과기대 산업대학원에서 문예
창작을 전공했어요. 동국대 영상대학원에서 문화콘텐츠를 배웠고
요. 2006년 서울 신춘문예에서 동화로 등단하고 2013년에는 한경
청년신춘문예 파트에서 장편 소설로 등단했답니다. 본격적인 작
가의 길은 이때부터 시작이었죠.
장편소설 <옥수동 타이거스(2013)>, <통제사의 부하들(2013)>, <
시간을 마시는 카페(2016)>, <대두인(2018)>, <삼엽충(2019)>, <
트라이아웃(2020)>을 이미 만나본 분들도 있을 거 같아요. 그 외
에도 역사 교양서 <책임지는 용기, 징비록(2015)>을 편찬했어요.
요즘은 장편소설을 집필하면서 영상 콘텐츠 관련 소논문 발표에
힘쓰고 있다고 해요. 협성대 문예창작학과와 강원대 국어국문학
과, 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등 다수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
르치고 있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