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무엇인가 - 진정한 나를 깨우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철학 에세이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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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왜 이리 일관되지 못하지?'

엄마의 모습인 나, 딸로서, 누나로서의 나, 일 할때의 나, 학부모서 다른 이들에게 보여지는 나, 이웃주민들을 대할때의 나, 블로그 이웃들에게 보여지는 나. 이 모든게 각기 달라서

 '나는 혹시 겉다르고 속 다른 인간인 건가, 솔직하지 못한 인간인건가. 이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내 모습으로 살고 싶다. 그렇다면 진정한 나는 어떤 모습인거지?'

......그리고 상상. 

'아니, 그건 되고 싶은 모습이고, 진짜 '나'말이야. 에이 모르겠다 귀찮아. '

그러고선 지금까지의 삶을 계속 살아갑니다.

이건 현재에 국한된 이야기이고, 과거로 돌아가면 더 여러가지 모습의 제가 있습니다. 슬픔과 괴로움을 가지고 있지만 잘 잊기도 하고 견디기도 하는 나.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런것들이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느닷없이 튀어나올까봐 두렵기도 합니다. 그러니, 구석지에 웅크린 나도 존재한다는 것이죠. 지금의 모습과는 다른 암울한 나 말이에요.

이런, 이렇게 되면 성격이니 뭐니로 '나'라는 존재를 정의하기가 어려워지고 말았네요.

정말, '나'는 누구일까요?


<결괴>의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는 저의 이런 괴로운 질문에 답을 던져주었습니다. 저서 <나란 무엇인가>에서 그는 '분인(dividual)'이라는 개념을 착안, 대인 관계마다 드러나는 여러 얼굴을 모두 '진정한 나'라고 말합니다. 분인이라는 개념이 처음 이 책에 등장했을때, 말하자면 책을 펴고 바로입니다만,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제가 이 책을 괜히 읽겠다고 덤빈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지요. 그러나 이내 분인의 개념이 내 안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분인'이란 다른 사람들을 대할때 드러나는 다양한 모습의 자신을 의마합니다. 그러니 앞서 고민했던 여러 모습의 내가 모두 다 나 자신이라는 것이죠. 갑자기 모든 '나'가 구원 받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분인은 모두 '진정한 나'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고, 유일무이한 '진정한 나'라는 환상에 사로잡힌 까닭에 숱한 고통과 압력을 감내해왔다. 어디에도 실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고 그것을 찾아내야 한다는 끊임없는 부추김에 시달려왔다.

 그것이 바로 '나'란 무엇인가 라는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다.

p.50


한 명의 인간은 '나눌 수 없는 individual'존재가 아니라 복수로 '나눌 수 있는 dividual'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단 하나의 '진정한 나' 수미일관된 '흔들리지 않는'본래의 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p.79

분인은 크게 사회적 분인, 그룹용 분인, 특정 상대용 분인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크기가 전부다르며, 차지하는 비율도 다릅니다. 그럴수 밖에요. 저의 경우 엄마로서의 분인이 가장 커다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분인의 크기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축소될 수도, 소멸될수도, 그리고 창조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거대화 될 수도 있겠지요. 14년전만 하더라도 엄마로서의 제 분인은 없었지만 지금은 무척 커다래진 것 처럼 말이에요. 그러니, 괴로운 과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과거의 분인으로 여기며 다른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분인을 발판으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분인을 만들어 낼 수도 있겠지요. 분인은 대인관계, 커뮤니케이션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렇다고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다고 분인이 적다고 애통해 할 것 없습니다. 어짜피 개인을 1이라고 한다면 분인은 1안에 포함된 분수니까요. 3/3이면 어떻고, 130000/130000 이면 어떻습니까. 결국 1인걸요.


중요한 것은 늘 자기 분인의 전체 균형을 바라보는 태도다. 내 안에는 언제나 여러 분인이 존재하므로 혹시 분인 하나의 상태가 나빠져도 다른 분인을 발판으로 삼으면 된다. '이쪽이 안되면, 저쪽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러는 중에 여유가 조금 생기면, 상태가 나빠진 분인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면 된다.

p.139


이 책은 초반에 다소 어렵습니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역시 쉬운 편은 아니지만 읽다보면 빠져드는 것처럼 이 책 역시 그렇습니다. 에세이치고는 어렵고, 철학서라기엔 편안한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어루만져주었습니다. 흩어져있던, 그리고 갈팡질팡 헤메이던 모든 부분들이 비로소 하나가 되어 온전한 '나'를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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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속의 소녀들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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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살아가면서 부모에대해 의심한 번 해보지 않고 살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만은 막상 그런 순간이 닥쳐온다면 의심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혐오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가 서로 달라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다면 더욱 그렇겠지요. 자신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둘 중 하나일겁니다. 좀더 논리적으로 그럴싸하게 말하는 사람의 말을 믿거나, 아니면 좀더 애정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거나. 결국은 그런겁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어릴 때는 결론을 내릴 수 없었죠. 아니, 좀 더 쉽게 결론을 내렸을 지도 모릅니다. 아이의 잔인하리만큼 솔직한 대답에 한쪽은 섭섭하지만 그냥 웃으면서 이녀석~! 하고 볼을 꼬집을겁니다. 그렇지만, 어른이 된 후의 이런 일은 쉽사리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자신이 어른이기에, 그들이 지나온 생활의 반만큼은 자신도 겪어왔기에 오히려 더 감당키 어려운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우리 부모님을 알기는 아는 걸까?

부모님을 사랑했는데 어느 새 나도 모르게 부모님을 방치하고 있었다. 변명을 하자면 엄마와 아버지는 한 번도 먼저 나서서 힘든 일을 이야기하는 편이 아니었다. 부모님은 과거를 잊고 미래를 향해 나가아 더 행복한 정체성을 만들고 싶어했다. 어쩌면 나는 부모님의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파헤치는 건 자식 된 도리가 아니라고 주장함으로써 내 무관심을 해명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의 아들이자, 유일한 자식이다.

p.158

런던에서 동성인 애인과 동거중인 다니엘은 커밍아웃하지 못해, 스웨덴으로 이주해간 부모님께 찾아가보지 못한지 꽤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버지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지요. 엄마가 아프다는. 그것도 정신적으로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피해망상증으로 주변을 모두 적으로 대하고, 음모가 숨어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뵈러 스웨덴으로 출발하려던 다니엘은 오히려 정신병원에서 나온 엄마가 런던으로 찾아와 자신의 편이 되어주기를 원하는 바람에 엄마와 함께 런던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엄마의 이야기는 런던을 출발해 스웨덴의 한 외진 마을 농장을 구입하는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원래 스웨덴 출신이었으나 어린시절부터 영국에서 생활하다 다시 스웨덴으로 돌아간 엄마는 고향은 아니었지만 이사 해 간 그곳에서 마을의 유지 하칸을 알게되고 그와 자신의 남편 뿐만 아니라 다른 남자들 - 광범위하게는 스웨덴 전역의 남자들 - 이 서로 공모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칸의 양녀인 미아와 친해진것, 그리고 그녀가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어했으며 하칸에게서 벗어나고 싶어했던 것, 그러다가 어느 날 미아가 마을에서 사라져버린 것..... 그런 것들이 엄마를 두렵게 했고 미스터리 속으로 빠지게 했습니다. 심지어 하칸도, 형사도 미아의 실종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척, 찾고 있는 척하고 있다고 느꼈거든요. 엄마는 그들이 공모하여 미아를 살해했으며 유기했고,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 같은 자신을 함정에 빠뜨려 정신이상자로 몰아가려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남편까지 공모해서요. 16세에 가출했지만 그래도 올바른 판단을 내려줄 거라 믿었던 아버지(다니엘의 외할아버지)를 찾아갔지만, 그 아버지 역시 딸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사위에게 넘깁니다. 그러니 유일한 희망은 아들이었죠. 그러나 아들이 아버지와 한패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다니엘은 엄마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었죠. 혼란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들은 어머니를 런던의 정신병원에 입원시킵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배신감을 느꼈죠.


나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이메일에 분명하게 적힌 내 이름을 보았다.


다니엘!


엄마의 그 필사적인 이메일을 보고도 나는 대수롭지 않게 흘려넘겼다. 그때 엄마의 마음속에서 내가 아버지를 대체할 사람, 엄마를 믿어줄 사랑하는 이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건 전혀 몰랐다. 엄마의 음모론은 이미 그때부터 내 안에서 살기 시작했던 것이다.

p.281


엄마는 아버지를 악당이라고 말하고, 아버지는 엄마를 정신이상자라고 말합니다. 이 틈바구니에서 다니엘이 어떻게 괴롭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그러나 작가는 다니엘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단순한 부부싸움 사이에 끼어있는 어린 아들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까요.

몇 달 후 다니엘은 진실을 찾기 위해 스웨덴으로 갑니다. 그 곳에서 다니엘은 엄마와 아버지가 지내던 농장도 살펴보고, 하칸도 만나보고, 형사도, 의사도 만나봅니다. 그리고 평생 처음으로 외할아버지도 만나봅니다. 엄마의 담임선생님까지도요. 그리고 놀라운 결과를 찾아냅니다.


이 소설에서의 피해자는 단 한사람. 그러나 제가 생각하고 있는 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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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솔린 생활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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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카 코타로의 세계는 독특합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신(존재하던가요?)조차 실제로 있는 것처럼 만들어내더니, 이번엔 자동차를 의인화 시켰습니다.

모치즈키 가족의 자동차인 데미오는 때로는 엄마인 이쿠코가 운전하기도 하지만, 초보운전자 장남 요시오가 운전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럴때는 아슬아슬하지만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이름 그대로 요시오(good man)인 형과는 달리 열 살짜리 차남 도루는 어린이답지 않습니다. 냉철한 판단력과 얄미울정도의 절제된 감정으로 이 다음에 좋은 탐정이 될수도 있겠다싶은 그런 꼬마인데요. 일찌기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엄마와 장녀 마도카를 포함한 이 가족들은 정말 사이가 좋습니다.

옆집 교장선생님의 활동적인 선도활동도, 이웃집 아주머니의 까마귀와의 결투도, 명문가 출신 여배우 아라키 미도리의 불륜과 사망, 그의 내연남, 그리고 그들을 추격하던 베테랑 연예부 기자 다마다 겐고 모두 개성적입니다.

그에 비하면 의인화 되었다고 하더라도 자동차들은 밋밋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보편적으로 자동차는 선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주인이 악랄하건, 경찰이건... 거들먹거리는 택시와 많은 바퀴로 존경의 대상인 열차만 빼고서는 자기 주인을 사랑하고 편드는 것은 똑같네요. 데미오의 옆집 자파는 주인이 교장선생님이어서 조금 더 유식한 것 같구요.

소설 전반적인 흐름은 다이애나 비의 사고를 모티브로 하여 명문가 여배우와 내연남(건담 창시자의 손자)의 사고를 중심으로 합니다. 거기에 말려든 모치즈키 집안 사람들. 장녀인 마도카가 말려든 사건에다가 차남 도루의 왕따사건에 이르기까지 관련이 있는듯 없는듯 모두 엮여져 있습니다. 게다가 자동차들의 수다로 자동차와 책을 읽고있는 나는 아는데, 등장인물들은 모르는 일들 때문에 조금 더 재미가 더해지죠.

중간 중간, 코믹한 요소들이 등장합니다. 깨알같은 복선들이 흩어져있구요. 심지어 우연히 핀 민들레까지도 복선입니다. 대단하죠? 무척 매력적인 소설이었습니다. 읽고서 딸에게도 강추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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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0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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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들이 춤을 춘다. 나는 누구일까?


기억을 잃은 한 젊은이가 사설탐정의 도움으로 그의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다가 그의 은퇴를 계기로 자신의 과거를 찾아보기로 결심합니다. 과연 단서가 있기는 한 걸까요? 2차 세계대전 직후. 혼란스러웠던 그 시기에 그는 자신의 기억을 잃어버림으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잃고 살아왔습니다. 자신의 국적이 프랑스가 맞는가.. 그것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이름도 기억 못하는 걸요.

그는 타인의 과거찾기를 수임한 탐정처럼 자신의 과거를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조금씩 단서를 잡아갑니다. 혹시 내가 그 사람은 아닐까. 이내 그 사람이 아님이 밝혀지면, 추적이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허무함보다도 자신이 상상했던 것들이 바스라지는 것에대해 더욱 허무함이 느껴집니다.


나의 이름은 프레디 하워드 드 뤼즈가 아니었다. 나는 풀이 높게 자라 있는 잔디밭을 바라보았다. 오직 그 끝부분에만 아직 석양빛이 깃들고 있었다. 나는 미국 할머니의 팔을 잡고 이 잔디밭을 따라 산책한 일은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에 '미로'에서 놀아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두 개의 그네가 매어진 이 녹슨 문은 나를 위하여 세워진 것이 아니었다.

p.95


실제로 내가 생각하는 나의 과거와 타인이 생각하는 과거는 다릅니다. 기억은 왜곡되기 마련. 그것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의 왜곡이 중첩되며 진실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또다른 어그러짐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이렇게 기록해두지 않은 인간의 기억이란 불확실 한 것이어서, 과거의 동창을 만나는 것이 가끔은 불안하기도합니다. 내가 왕년에 어마어마하지 않았으면 어쩌지? 내가 기억하는 부분이 있을때도 이렇게 불안한데, 전혀 기억이 없는 부분의 과거의 인연을 만나는 일은 더 그렇습니다. 길에서 친구가 알은 체를 하는데, 저는 그 친구의 이름이 전혀 기억나지 않거든요. 주인공인 탐정은 저보다 더 불안했을겁니다. '자신'이라는 사람이 과연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알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찾아가야만 하는 것이었으니까요.

과거 바의 피아니스트, 정원사, 사진사등을 찾아가고, 그 단서로 자신이 예전에 살았다고 하는 집을 찾아가고... 그 가운데에 '페드로'라는 이름이 나타나고. 과연 페드로는 '자신'일까. 불확실하고. 함께했던 것 같은 모델이자 신비스러운 여인 '드니즈'는 자신을 사랑했던 여인일까.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일까.... 추적해가면 갈 수록 궁금증은 늘어만갑니다.


누가 알겠는가? 우리는 어쩌면 마침내 증발해버릴지도 몰랐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창유리를 뒤덮고 있는 저 수증기, 손으로 지울 수도 없을 만큼 끈질긴 저 증기에 불과한 존재가 될지도 몰랐다. 운전사는 도대체 어떻게 방향을 알아보는 것일까? 드니즈는 잠이 들었고 그녀의 머리가 내 어깨위로 기울어졌다.

p.227


소설의 분위기는 건조하면서 축축합니다. 문체는 건조하되 느껴지는 분위기는 눅눅합니다. 주인공은 사건을 자신의 일인듯 아닌듯 파헤치지만, 어쩐지 우울감이 전반에 깔려있습니다. 알아가고 싶지만, 아는 것이 두려운 것 같기도 합니다. 과거의 기억이 자신의 뇌 어느 곳에 깊숙히 숨어있어 드러나지 않는 것처럼, 타인의 기억들은 과자 상자속에, 빛바랜 사진속에, 오래된 전화번호속에 숨어 언젠가 누군가가 꺼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마침내 끄집어 내졌음에도 무언가 확실하게 이렇다 할 것은 없었습니다. 그냥, 그저 그랬구나.. 그땐 그랬었지.. 하는 추억의 단편들이었을 뿐이었죠. 과연 잘 알고 지내지 않았던 동창이 찾아와 나를 기억하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자신없습니다. 내 자신의 일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를 기억할 수 있을까요? 인간의 기억은 공허하고, 허무합니다. 그러니, 과거의 일도 소중하겠지만, 그보다는 현재가,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더 소중하지 않을까요. 지금의 현재도 나중엔 과거가 되어버리겠지만.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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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리언셀러 클럽 한국편 001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
김종일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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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양정모가 어느 날 건네 받은 두툼한 소설 원고 뭉치. 그것을 여는 것으로 이 기괴한 소설이 시작됩니다.

 

겉장은 하얗게 비어 있었다. 겉장을 넘기자. 아래와 같은 부제아래 제목만 덩그러니 중앙에 씌어 있었다.

 

김종일 장편소설

 

'몸......?'

이상하게도 단순하기 짝이 없는 '몸'이라는 커다란 글자 하나가 눈에 들어와 박히며 아찔한 충격을 주었다. 그 충격으로 소름이 돋고 온몸의 신경세포가 잘디잘게 떨었다. 그 다음 장을 펼치니, 월트 휘트먼의 경구가 또 한 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세상에 신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의 몸이다.

-- 월트 휘트먼

 

그리고 그 다음 쪽에 이르러서야 소설은 시작되었다. 그랬다. 그것은 시나리오가 아니라 소설이었다. 영화감독에게 소설을 건네다니. 혹시 그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건 아닐까. 그러나 그는 분명 나에게 '영화감독'이라는 호칭을 붙였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일까. 어쩌면 나에게 자기 소설을 읽고 시나리오로 각색해 영화화 해 달라는 무언의 부탁일지도 몰랐다.

혼란으로 탁해지는 머릿속을 애써 부여잡으며 나는 다음 장을 넘겼다.

깨어날 수 없는, 헤어날 수 없는 악몽의 시작이었다.

 

-p.12~13

본격적으로 시작된 소설은 '눈', '입', '얼굴', '귀', '머리카락', '구토'. '몸', '손'이라는 신체 각부위의 - '구토'는 신체는 아니지만 체액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그냥 연결 지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이야기와 링반데룽이라는 길잃기에 대한 이야기를 옴니버스식으로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동네 불량학생들에게 맞다가 한쪽눈을 잃고 새로 해 넣은 눈이 본체를 조종하고 지배하여 마침내 복수를 하고 본체를 완전히 장악해 버린다는 내용의 '눈'. 남자와 룸메이트의 배신으로 식이조절장애에 걸린 여자가 흉포해지는 과정을 그린 '입'. 미녀와 추녀의 비뚤어진 정신세계가 교차하는 '얼굴'. 들리지 않는 소리에 쫓겨 공포에 사로잡히는 자들의 이야기 '귀'.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가진 그녀의 공포스러운 진실 '머리카락'. 쓰레기 같은 인간에게 퍼부어주고 싶은 욕만큼이나 치밀러 오르는 욕지기로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구토'. 신체에 대한 컴플렉스가 인터넷 중독에까지 이어져 파멸하는 '몸'. 어린아니의 장난과 객기, 그리고 친구의 죽음으로 고통스러운 한 아이의 이야기 '손'. 조난 당한자가 여우에 홀린 듯 같은 자리를 맴돌며 자신의 죄와 마주해야했던 이야기 '링반데룽'.

 

공포, 호러에 논리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괴이한 분위기를 깎아먹는 일이겠지만, 어쩌면 그건 비과학적인 것으로 인한 공포를 과학과 논리로 밀어내려는 일종의 방어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옴니버스 단편들을 읽으며 제가 바로 그런 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편, 한편이 괴이하고, 실제로 그런 일이 있을 수는 없겠지만 있다면 큰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일면 조금 아쉬웠습니다. 옴니버스 사이의 연개성도 떨어지고 차라리 단편집으로 할 것이지 어째서 장편의 형태를 취했는가. 게다가 어쩐지 이토준지의 만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가. 뻑뻑해진 안구 땜누에 한쪽눈을 번갈아 이용해가며 읽는 동안 이 소설 속의 '소설'은 어떻게 끝은 낼 것인가 궁금했습니다. 기억하시겠지만 애초에 이 소설은 영화감독 양정모가 읽고 있던 소설이었으니까요. 

 

양정모는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저와 비슷한 평을 합니다. 이럴수가. 제가 부족하다고, 아쉽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의도 된 것들이었다니. 의도인가 혹은 변명인가 궁금해 할 새도 없이 양정모의 주변에서 괴이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렇다고 소설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제목 그대로 '몸'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기는 했지만. 연작이라고 하기에는 등장인물이나 이야기상에 전혀 연계성이 없었고 에피소드마다 어떤 식으로든 '소외된 등장인물'이 '사회 또는 타인'사이에서 '모종의 갈등'을 겪다 '끔찍한 자멸'을 맞는 식의 구성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었다. 인간의 신체 변형을 다룬다는 면도 일본 공포 만화가 이토 준지의 여러 작품과 유사점이 많아 독창성조차 결여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뭔가 있었다.

 

p.337

 

원고를 덮고 나서도 불쾌한 기시감이 들었던 그는 알 수 없는 공포감에 소설을 쓰레기통에 버리지만, 그것은 그의 공포의 시작이었습니다. 이 옴니버스 소설의 완성은 마지막 '공포'편에 있으며 반드시 '에필로그'까지 읽어야만 합니다. 인간의 혈액이 온몸 구석구석을 순환하듯이 이 공포와 괴이함 역시 순환됩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자 다행스러운 점은 이 소설의 공포감은 이 책 안에서만 존재합니다. 책 밖으로 뛰쳐나와 잠 돗 들게 하거나 화장실을 갈 수 없게 만들지도 않고 제 신체 각부위를 의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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