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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 무엇인가 - 진정한 나를 깨우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철학 에세이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왜 이리 일관되지 못하지?'
엄마의 모습인 나, 딸로서, 누나로서의 나, 일 할때의 나, 학부모서 다른 이들에게 보여지는 나, 이웃주민들을 대할때의 나, 블로그 이웃들에게 보여지는 나. 이 모든게 각기 달라서
'나는 혹시 겉다르고 속 다른 인간인 건가, 솔직하지 못한 인간인건가. 이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내 모습으로 살고 싶다. 그렇다면 진정한 나는 어떤 모습인거지?'
......그리고 상상.
'아니, 그건 되고 싶은 모습이고, 진짜 '나'말이야. 에이 모르겠다 귀찮아. '
그러고선 지금까지의 삶을 계속 살아갑니다.
이건 현재에 국한된 이야기이고, 과거로 돌아가면 더 여러가지 모습의 제가 있습니다. 슬픔과 괴로움을 가지고 있지만 잘 잊기도 하고 견디기도 하는 나.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런것들이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느닷없이 튀어나올까봐 두렵기도 합니다. 그러니, 구석지에 웅크린 나도 존재한다는 것이죠. 지금의 모습과는 다른 암울한 나 말이에요.
이런, 이렇게 되면 성격이니 뭐니로 '나'라는 존재를 정의하기가 어려워지고 말았네요.
정말, '나'는 누구일까요?
<결괴>의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는 저의 이런 괴로운 질문에 답을 던져주었습니다. 저서 <나란 무엇인가>에서 그는 '분인(dividual)'이라는 개념을 착안, 대인 관계마다 드러나는 여러 얼굴을 모두 '진정한 나'라고 말합니다. 분인이라는 개념이 처음 이 책에 등장했을때, 말하자면 책을 펴고 바로입니다만,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제가 이 책을 괜히 읽겠다고 덤빈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지요. 그러나 이내 분인의 개념이 내 안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분인'이란 다른 사람들을 대할때 드러나는 다양한 모습의 자신을 의마합니다. 그러니 앞서 고민했던 여러 모습의 내가 모두 다 나 자신이라는 것이죠. 갑자기 모든 '나'가 구원 받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분인은 모두 '진정한 나'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고, 유일무이한 '진정한 나'라는 환상에 사로잡힌 까닭에 숱한 고통과 압력을 감내해왔다. 어디에도 실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고 그것을 찾아내야 한다는 끊임없는 부추김에 시달려왔다.
그것이 바로 '나'란 무엇인가 라는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다.
p.50
한 명의 인간은 '나눌 수 없는 individual'존재가 아니라 복수로 '나눌 수 있는 dividual'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단 하나의 '진정한 나' 수미일관된 '흔들리지 않는'본래의 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p.79
분인은 크게 사회적 분인, 그룹용 분인, 특정 상대용 분인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크기가 전부다르며, 차지하는 비율도 다릅니다. 그럴수 밖에요. 저의 경우 엄마로서의 분인이 가장 커다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분인의 크기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축소될 수도, 소멸될수도, 그리고 창조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거대화 될 수도 있겠지요. 14년전만 하더라도 엄마로서의 제 분인은 없었지만 지금은 무척 커다래진 것 처럼 말이에요. 그러니, 괴로운 과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과거의 분인으로 여기며 다른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분인을 발판으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분인을 만들어 낼 수도 있겠지요. 분인은 대인관계, 커뮤니케이션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렇다고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다고 분인이 적다고 애통해 할 것 없습니다. 어짜피 개인을 1이라고 한다면 분인은 1안에 포함된 분수니까요. 3/3이면 어떻고, 130000/130000 이면 어떻습니까. 결국 1인걸요.
중요한 것은 늘 자기 분인의 전체 균형을 바라보는 태도다. 내 안에는 언제나 여러 분인이 존재하므로 혹시 분인 하나의 상태가 나빠져도 다른 분인을 발판으로 삼으면 된다. '이쪽이 안되면, 저쪽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러는 중에 여유가 조금 생기면, 상태가 나빠진 분인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면 된다.
p.139
이 책은 초반에 다소 어렵습니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역시 쉬운 편은 아니지만 읽다보면 빠져드는 것처럼 이 책 역시 그렇습니다. 에세이치고는 어렵고, 철학서라기엔 편안한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어루만져주었습니다. 흩어져있던, 그리고 갈팡질팡 헤메이던 모든 부분들이 비로소 하나가 되어 온전한 '나'를 찾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