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의 방정식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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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그러니까 최초의 담임 선생님은 정말 이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어린 것들이 뭘 안다고 폭언을 서슴지 않는 사람이었는데요. 반 아이가 잘못된 방법으로 연필을 잡고 글을 쓰는 걸 보고 '병신'이라고 하질 않나, "너희들을 가르치느니 내가 개를 데려다 앉혀놓고 가르치겠다."라고 하지 않나, 심한 감기에 걸린 아이가 욕지기를 느껴 화장실로 뛰어가다 말고 복도에서 구토하자 "왜 치우기 힘들게 여기다가 토하고 그래!" 하고 소리 지르질 않나...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던 저와, 같은 반 친구 엄마들은 혹시나 항의를 했다가 아이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을까, 지금 찍히면 선생님들끼리 이야기를 해서 학교생활 내내 불이익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항의도 하지 못하고 끙끙 앓다가 눈물짓기도 했었습니다. 참, 바보 같죠. 제주로 이사 올 줄 알았다면 용기를 좀 내볼걸. 경북 교육청이나 학교에 이야기를 해 볼걸. 이제 와서 후회하면 뭐 하겠습니까. 많은 피해자를 낳고 선생님은 정년을 맞이하셨는걸요. 아이들에 용기를 주고 바른길로 인도해주는 선생님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아이들에게 폭언이라니. 그런 식의 말들을 뱉는 건 자신의 인격이 거기까지 밖에 안된다는 증거가 아닌가요.


그런 인격 함량 미달의 선생님이 미야베 미유키의 <음의 방정식>에도 등장합니다. 피난소 생활 체험 캠프라는 이름의 자연재해 대비 1박 2일 캠프를 하던 날 밤, 히노 다케시 선생이 아이들에게 찾아옵니다. 이런 느슨한 가상 체험 말고 실제 상황이라고 생각해보라며 너희들 일곱 명 중 살아남을 여섯 명과 죽어야 할 한 명을 정하라고 말하고선 자리를 뜹니다. 아이들은 투표로 선출된 시모야마 요헤이를 죽을 아이로 정하고 낄낄거리는데요. 그 아이가 평소에도 약간 따돌림을 당하던 아이라 충격을 받은 모양입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버리거든요. 히노 선생의 부적절한 언동으로 아이들은 모두 크고 작은 충격을 받은 모양입니다. 그러나 당사자인 히노 선생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극구 부인합니다. 언뜻 보기에 별건 아닌 것 같은 사건이지만 당사자들은 나름 심각했습니다. 히노 선생. 참, 말을 잘 못 가리는 사람입니다. 열혈 선생인지는 모르겠지만 평소의 언동이 문제가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하고도 남을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밖에요. 

이 사건 때문에 괴로워하는 아이 아키요시 쇼타의 부모님은 사립탐정을 고용합니다.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했겠죠. 그들이 고용한 사립탐정은 스기무라 사부로! 제가 좋아하는 좋은 사람입니다. <누군가>, <이름 없는 독>,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에 등장하는 행복한 탐정이죠. 드디어 회사를 관두고 본격 탐정이 되었군요. 벌이는 시원치 않을는지 모르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 형사' 만큼이나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들에게 진정한 평안을 찾아 줄 수 있는 탐정으로서 활약할 거라 생각하는데요. 제 예상이 틀리지 않아, 이 책에서도 아이들과 주변인들을 탐문하며 그들의 편에 섭니다. 

어쩐지 위치상으로는 반대편이라고 해야 하지만 사실은 같은 편일 수밖에 없는 학교 측 변호사로는 후지노 료코가 등장합니다. <솔로몬의 위증>에서 중학교 3학년생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치 똑 부러지는 여학생으로 당시 모의재판에서는 검사였던 후지노 료코가 정말 법조계에 진출, 변호사가 되어 활약하니 앞으로도 그녀의 활약을 더 지켜보고 싶습니다. 

아직 중학생으로만 생각되던 후지노 료코가 벌써(?) 이렇게 자라서 34살이 되었다니. 스기무라와 함께 어른으로서 대등하게 만나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만 보아도 기분이 묘해졌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의 책이었지만 제가 좋아하는 두 사람을 한꺼번에 만난 것도 기뻤고, 무엇보다 이런 짧은 글에도 미야베 미유키는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구나하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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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이상원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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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무덤이었다. 우리의 두려움이나 고통은 모두 폐허 아래 묻혀버렸다. 

-p.8


아직 학생 티를 벗지 못한 스물한 살의 '나'는 어린 시절 휴가지에서 샀던 2펜스 짜리 그림엽서에 그려져 있던 맨덜리 저택의 안주인이 됩니다. 뚱뚱하고 수다스러운 반 호퍼 부인에게 연봉 90파운드에 고용되어 몬테카를로 코트다쥐르 호텔에서 그녀의 뒤치다꺼리를 하던 수줍었던 어린 처녀가 그 호텔의 또 다른 손님 맥심 드 윈터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혼자만의 사랑의 열병이라고 생각했었지만 놀랍게도 그는 '나'에게 청혼을 하고 결혼식 같은 기타 형식은 생략하고 짧은 신혼여행과 간단한 쇼핑을 마치고 맨덜리 저택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맥심의 갑작스러운 청혼 대목에서 기묘한 불길함을 느꼈습니다. 이상하게 뱃속이 꿀렁거렸습니다. 잘 된 일이잖아. 뭐지? 뭐가 문제지? 맥심이 마흔두 살, '나'는 스물한살이라서? 나이 차이 때문만은 아닌데... 십이지장이 뒤틀리는 이 느낌은 뭘까요? '나'와 맥심을 보며 괜히 불안해졌습니다.


맥심의 전처는 한밤중에 혼자서 보트를 타고 나갔다가 전복되는 바람에 죽었는데, 큰 키에 날씬하며 긴 검은 머리에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자였다고 합니다. 그녀의 이름은 레베카. '나'는 레베카의 흔적이 남아있는 이곳 맨덜리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신데렐라 스토리는 여기까지. 저택에서의 생활은 그리 녹녹치 않았습니다. 특히 레베카가 친정에서부터 데리고 와 여전히 맨덜리에서 일하고 있는 댄버스 부인은 정말이지 어려운 존재입니다. '나'를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증오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 저택에 어울리는 품위를 갖추지 못 해서 얕잡아 보였는가 했더니, 단지 전 부인의 자리를 차지했다는 이유로 미워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한시름 놓습니다. 그렇다면 궂이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었다고 하더라도 댄버스 부인은 '드 윈터 부인'을 미워했겠구나 싶었기 때문입니다. 첫날부터 댄버스 부인 때문에 주눅이 들어서였는지, 모든 이가 자신을 탐탁잖아 하는 것 같습니다. 고용인들도, 영지의 주민들도, 심지어 맥심까지도.


  오늘 오후처럼 답방을 할 때마다 사람들은 저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제대로 해낼까 의심스럽다는 눈길을 보내죠. '대체 맥심은 뭘 보고 저 여자랑 결혼한 걸까?'라고 말하는 듯 말이에요. 그러면 저 스스로도 자신이 없어져요. 해서는 안 될 결혼을 했다는 생각, 우리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저와 처음 만나는 사람은 누구나 '저 여자는 레베카와 정말 다르군'이라고 생각한다는 걸 저도 안다고요.

-p.198


맨덜리 저택의 안주인은 바로 '나'입니다. 하지만 저택에는 여전히 레베카가 존재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죽은 레베카는 이곳에서 살아 움직이고, 살아있는 '내'가 허깨비처럼 떠도는 것만 같았습니다. 모두가 레베카의 이야기를 하고 '나'와 비교하는 것 같습니다.


하찮은 작은 일들, 하나씩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지만 내게 있어 레베카는 보고 듣고 느낄 수밖에 없는 대상이었다. 난 정말이지 레베카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었다. 맥심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며 함께 살고 싶었을 따름이었다. 내 마음속에는 그것 말고 아무런 바람도 없었다. 그런데도 늘 머릿속에, 꿈속에 레베카가 찾아오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나 스스로가 맨덜리의 손님이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 했다. 레베카가 다니던 곳을 걷고 쉬던 곳에 몸을 누이는 손님. 안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손님. 말 한 마디 한 마디, 물건 하나하나가 끊임없이 내게 그 사실을 상기시켰다.

-p.206


'내'가 레베카의 허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나' 스스로의 자격지심이나 소심함 때문이기도 했지만 실제로 댄버스 부인은 '나'를 괴롭히기로 작정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 저택에서의 가장 큰 괴로움은 맥심이 숨기고 있던 비밀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과연 모든 괴로움을 떨쳐버리고 평화롭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그들의 뒷이야기를 알 고 싶어서 저는 소설이 끝나자  처음으로 돌아와 19페이지까지 다시 읽었습니다. 그곳에 그들의 마지막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에서 드 윈터 부인으로서의 전처 '레베카'는 몇 번이고 그 이름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나' 일 뿐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아무도 불러주지 않습니다. 아니, 아마도 불렀겠죠. 적어도 맥심은. 하지만 그녀의 이름은 그들만이 소유할 뿐, 저에게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어째서일까요. 그녀는 '드 윈터 부인' 이름으로만 불리다니. 레베카와 이름을 공유하는 셈이 아닌가요. 저는 그녀의 이름을 알고 싶습니다. 맥심이 아주 독특하고 사랑스럽다고 말한 그 이름을요.


멘덜리는 평화로웠다.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그 영역 안에 누가 살든 어떤 문제가 생기고 투쟁이 벌어지든, 아무리 큰 고통과 불편이 있다 해도, 어떤 눈물이 흐르고 슬픔이 차올라도 맨덜리의 평화로움과 아름다움은 끄떡없다. 죽은 꽃은 이듬해면 다시 피고 같은 새들이 둥지를 지으며 같은 나무들이 무성하다. 오래된 이끼 냄새는 계속 대기 중에 머물 것이고 벌은 어김없이 찾아오며 찌르레기와 왜가리는 깊고 어두운 숲 속에 둥지를 마련할 것이다. 나비들이 잔디밭에서 즐거운 춤을 추고 거미들은 거미줄을 자아내며 작은 토끼들이 무성한 덤불 사이로 슬쩍 머리를 내밀겠지. 라일락과 인동덩굴이 자리를 지키고 백목련은 식당 창 아래에서 천천히 봉오리를 열리라. 이곳 맨덜리를 망가뜨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언제까지나 이곳은 숲에 안전하게 둘러싸여 매력을 발산하고 바다는 작은 조약돌 해변을 들락거릴 것이다.

-p.543


어째서 대프니 듀 모리에를 서스펜스의 여왕이라고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1940년에 쓰인 이 <레베카>는 영화와 뮤지컬로 공연되면서 단 한 번도 절판이 된 적이 없는 명작인데요. 초반의 신데렐라 스토리를 보며 풋풋한 옛날식 사랑에 미소를 지었지만 아름답고 향기로운 대저택에 들어선 순간 제 얼굴은 점점 굳어갔습니다. 이젠 어떻게 되려나 조마조마 해졌고요. 탁월한 심리묘사와 서술이 저를 이 소설에 붙잡아 두었습니다. 쉬지 않고 책을 읽는 바람에 눈이 아파지는데도 책을 내려놓기가 어려웠습니다. 저는 어느새 레베카가 아닌 '나'의 '드 윈터 부인'을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맥심과 '내'가 행복과 평안을 찾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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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전이의 살인 스토리콜렉터 42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하윤 옮김 / 북로드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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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펜터스의 'This Masquerade'는 제가 좋아하는 올드 팝 중 하나입니다.

 

Are we really happy with

This lonely game we play

Looking for the right words to say

Searching but not finding

Understanding anyway

We′re lost in this masquerade


원래는 사랑을 가장하고 있는 연인들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노래라고 생각하는데요.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인격 전이의 살인>에도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등장인물들은 매스커레이드에서 길을 잃었으니까요.


사회심리학자 다니엘 아크로이드 박사는 1970년대에 말도 안 되는 걸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인격을 바꿀 수 있는 기계인데요. 앤트맨에 나오는 인체 축소 광선만큼이나 말도 안 되는 이 기계의 이름은 체임버라고 합니다. 체임버 안에 들어가 서로의 인격이 바뀐 인간들은 바뀐 채로 생활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어느 날 갑자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언제 또 뒤바뀔지 모르는 상황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매스커레이드라고 하죠. 둘이서만 바뀌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주인공 에리오의 경우처럼 여섯 명의 인격이 바뀔 때는 일이 복잡해집니다. 

반드시 한 명씩만 들어가서 인격이 바뀌는 것을 주의했었지만, 아크로이드 박사와 빨간 머리의 진저의 인격이 서로 바뀌는 바람에 체임버는 폐쇄되고, 20여 년이 흐른 뒤 체임버가 있는 곳은 어쩐지 커다란 쇼핑센터의 햄버거 가게가 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사람이 들어가지 않도록 단단히 봉해져 있었지요.-라고는 하지만 좀 허술했던 건 사실입니다. 평소엔 손님이 거의 없던 그 가게 '치킨 하우스'에 일본인 '나(에리오)'가 들어온 것을 시작으로 여러 명의 손님이 더 들어와 다소 산만해졌는데요.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 대피할 장소가 필요해졌던 그들은 마치 기둥처럼 그곳에 존재하던 체임버의 문을 부수고 암흑 속에서 그 안으로 찾아들어가게 됩니다. 그 공간이 어떤 곳인지 몰랐던 그들은 오랜만의 손님을 반가이 맞이하는 체임버에 의해 인격 전의가 일어납니다. 이렇게 여럿의 인격이 바뀔 때는 그들이 위치한 곳에서 시계방향으로 인격이 이동하게 되는데요. 그다음 인격 전이에서는 처음 인격 전이가 있었던 때의 배치에 따라 다시 시계방향으로 한 칸 이동합니다.


  우리 6명이 '1'부터 '6'까지 원을 그리는 순서대로 앉아 있다는 사실. 그렇다. 순서대로다. 그건 대체 무슨 순서인가. 두말할 필요 없이 '인격 전이' 순서다. 아직 명확한 설명을 들은 건 아니지만 이 연출적인 배치에 다른 의미가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불길한 상상은 더욱 끔찍한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1'의 육체에서 옮겨진 인격은 '2'의 육체에, '2'에서 옮겨진 인격은 '3'의 육체, '3'에서 '4', '4'에서 '5', '5'에서 '6', 그리고 '6'에서 '1'로, 각각 '전이'된다는 뜻인 듯했다.

  어쩌면 '전이'는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게다가 번호가 하나씩 옮겨 가는 슬라이드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느낀 끔찍한 예감은 그랬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나의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p.115


처음엔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모두들 당시 상황대로 둘러앉아 아크로이드 박사님의 이야기를 차분히 듣습니다. 섹시 글래머 보디를 차지한 엉큼한 아저씨는 오히려 신나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인 여자 아야가 죽었다는 이야기에 - 아니, 목을 졸려 살해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로를 의심합니다. '나(에리오)'역시 머리를 짜내며 추리를 해보지만 일단은 이곳에서의 생존이 더욱 중요했습니다. 인격 전이 장치가 비밀이니만큼 그들은 세상에서 지진으로 죽은 사람이 되어 있었고, 대혼란을 막기 위해 공동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함께 살아야 하는 여섯 명 사이에 살인자가 한 명 숨어있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CIA에서 그녀의 죽음은 사고였다고 했지만 미심쩍습니다. 성격도 뭣도 안 맞는 그들이지만 어떻게든 함께 살아보려고 하는데, 그곳에서 다시 살인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인격 전이, 살인, 인격 전이. 상황이 무척 빠르게 변화합니다. 누가 누굴 죽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육체가 죽으면 그 안에 들어 있던 인격 즉, 영혼마저 소멸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육체도 인격도 소중한 이 마당에 왜 그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째서, 왜?


  "우리 인류의 의학이나 과학으로는 방법이 없어. 말하자면 여러분은 앞으로 계속 이 '매스커레이드'라는 감옥의 포로로 살아야 해. 알겠다? 이런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여러분은 모두 죽었어. 적어도 사회적인 존재로서는 소멸하고 말았다는 거야. 원래의 삶으로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어. 그 운명을 부디 잘 받아들이면 좋겠군."

-p.121

수첩까지 함께 따라온 이 책은 많은 메모를 하며 읽어야 하나보다...하는 부담감을 주었지만, 읽어보니 별로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친절하게도 중간에 그림으로 설명해주기도 하고, 본문중에 '나(=나)', '나(=바비)'하는 식으로 누구의 몸에 누가 들어 가 있는지 알려주고 있었으니까요. 다만 빠른 인격전이가 일어날 때엔 누가 죽고 누가 살았는지 헷갈렸습니다. 그치만 그것 역시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 제가 혼란스러운 것 만큼 주인공도 혼란스러웠으니 이 혼돈을 고스란히 안고 읽는 것이 맞는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한바퀴 돌고 다시 돌고, 뱅그르 돌고. 그러다 점핑. 아니, 지금 나는 누구지?




마지막엔 책을 덮고선 배시시 웃었습니다. 

아, 니시자와 야스히코 스타일이 이런 것이로구나. 

그렇군요.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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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버넌트 버티고 시리즈
마이클 푼케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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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프리오의 영화로 무척 유명해진 <레버넌트>의 원작 소설을 읽었습니다. 

영화를 볼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영화와는 상당히 다른 전개라고 하기에 책을 먼저 읽어보았지요. 

휴 글래스는 애슐리가 사장으로 있는 로키마운틴 모피회사 소속 사냥꾼으로 헨리 대위가 이끄는 무리에서 정찰 중 회색 곰에게 습격을 받아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큰 부상을 입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너덜너덜해진 그를 데리고 이동하다가더 이상은 무리라고 판단한 헨리는 그를 돌보거나 혹은 죽었을 때 무덤을 만들어 줄 사람들을 남깁니다. 피츠제럴드와 브리저는 자진해서 무리 뒤에 남는데요. 인정머리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돈을 좀 더 받을 생각에 그리 행동합니다. 그런데 생각보다글래스가 안 죽는 겁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인디언의 습격을 받아 자신들도 위태로워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피츠제럴드가글래스를 버리고 가자고 합니다. 브리저는 안된다고 주장했지만 뼈가 굵은 피츠제럴드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는 겨우 스무 살, 갓 소년티를 벗은 청년이었거든요. 송진과 알고 있는 지식을 동원해 그의 상처에 도움이 될 일을 했지만 결국은 피츠제럴드를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설에서의 글래스는 그들이 떠난 사실 자체는 이해할 수 있었나 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소지품을 가지고 가버린 것에 대해 분노하거든요. 총과 나이프.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물건들을 가지고 떠나버린 그들이 정말 미웠습니다. 그는 필사적으로 기어서 살아남습니다. 다리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고서는 절룩이며 이동하죠. 믿을 수 없을 만큼의 거리를 이동해 겨우 브라조 진지에 도착한 그는 타오르는 복수심에 쉴 틈도 없이 피츠제럴드를 찾아 나섭니다. 몸이 낫고서 이동하면 그놈을 놓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여정은 정신없습니다. 평화로운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였죠. 요약하자면, 동료가 죽고, 다치고, 굶고, 먹고, 죽고, 다치고... 뭐 그렇습니다. 결국 그는 브리저도 만나고 피츠제럴드도 만납니다. 그래서 복수를 완성했느냐고요? .... 팩션이니. 사실대로 말해도 좋을까요?... 안 가르쳐줄래요.


한 남자의 복수극으로 보자면 그냥 좀 그렇습니다. 두 남자는 글래스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리를 떠났으리만큼 소지품을 놔두고 갈 이유가 없지 않은가 싶었거든요. 물자가 아주 귀하던 시대에, 물물교환도 통하던 시대에, 게다가 여차하면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물건이기에 훔친다는 개념보다는 필요한 사람이 사용한다는 생각이었을겁니다.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어도 픽픽 죽어나가던 세상인데. 아무튼. 그래서 영화에서는 '아들이 죽었다.'라는 단서가 붙나 봅니다. 그래야 좀 더 복수심을 불태울 여지가 있으니까요. - 영화도 안 보고 이런 소릴 해대다니.


어쨌든, 이 소설을 읽다보면 눈앞에 200년 전 미국이 그려집니다. 얼마나 혹독하고 척박한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호랑이가 나온다는 산을 넘으려고 팀을 꾸렸던 게 생각나는 여러 장면들. 다수 혹은 소수의 사람들이 팀을 꾸려서 여정을 떠나도 그들은 인디언 -정확히는 아메리카 선주민-을 피하거나 이겨낼 수 없었습니다. 어느 쪽의 시선으로 봐야 하는지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그들이 조용히 이동하고 있는데 야만적인 인디언들이 습격을 했다고 본다면 인디언들이 나쁜 사람들이겠지만, 실은 인디언들이 살고 있는 땅을 그들이 침범해서 물소나 비버 같은 동물들을 마구잡이로 죽이고 있으니 그들을 쫓아내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무언가 책을 읽는 시점이 잘 못 된 건 알겠는데, 뭐 그다지 바로잡을 생각이 없습니다. 

어쨌거나 주인공은 슈퍼히어로가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죽음을 잘도 피해다닙니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죽었어도 몇 번이나 죽었을 그런 상황에서도 말이죠. 처음부터 안 죽고 살아난 게 참 대단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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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 쇼쇼쇼 - 가식의 식탁에서 허영을 먹는 음식문화 파헤치기
스티븐 풀 지음, 정서진 옮김 / 따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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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준비하거나 식사를 할때 즐겨보는 방송이 있습니다. '냉장고를 부탁해', '집밥 백선생', '백종원의 삼대 천왕', '오늘 뭐 먹지', '쿡가대표'. 며칠 전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겁니다. 나는 지겹지도 않은가. 식재료를 장만하고 음식을 하고, 음식 게임을하고, 음식 관련된 방송을 보고... 하루 종일 먹을 것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이건 마치 먹기 위해 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먹기 위해 사는 것은 개인주의적 소비지상주의의 극치이자 막다른 상태이다. 먹기 위해 사는 이들은 그들이 진정 진지하다 해도 삶의 의미를 엉뚱한 곳에서 찾아 헤매는 셈이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접시를 내려다보며 말이다. (혹은 책을 보면서도, 그 자리에 없거나 세상을 떠난 이들과도 유쾌하게 어울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전반적인 상황이 좀 슬프지 않은가? 우리 시대의 광적인 푸디즘을 가장 지혜롭게 바로잡으려면 멀리 갈 것도 없이 한 세기전 W.S. 길버트가 남긴 격언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식탁 위에 무엇이 올라오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의자 위에 누가 앉는지가 중요하다."

-p.226


크리스마스트리 컬러의 이 책 <미식 쇼쇼쇼>는 음식의 준비와 소비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경향의 푸디즘을 따르는 이들을 푸디스트라고 부릅니다. 저는 푸디스트일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스타 프들의 요리를 눈으로 즐기기만 하고 따라 하지는 않으니 이 범주에 들어있지 않다고 생각하려 애써보지만, 결국 푸티스트의 가장자리에서 10미터 정도 안쪽으로 들어와 있는 준푸디스트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방송으로는 저런 것들을 보고 있지만, 인터넷을 통해 각 식재료의 영양분석 표도 살피고 어디에 좋은가도 관심 있게 보고 있거든요. 스타 셰프들이 지향하는 바와는 조금 다를지라도 무언가 먹을거리에 대해 관심을 쏟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어차피 내 입에 들어가는 거니까, 가족의 입에 들어갈 거니까 좋은 걸 찾아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 말이 있잖아요. "당신이 먹는 음식이 바로 당신이다."


19세기 초 프랑스 법관이자 정치가로 활동했으며 <미각의 생리학(요리법, 자신이 먹은 저녁들에 관한 일화, 탐식에 관한 이론화를 정리한 담론서)의 저자이기도 한 온화한 자기만족적 성향의 장 앙텔름 브리야사바랭은 오늘날 푸디스트가 경외하며 인용하는 옛 미식가이다. 이유인즉슨, 그가 푸디스트의 집착에 문학적 세련됨과 품위라는 그윽한 멋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명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말은 "당신이 먹은 음식을 말해 보라. 당신이 누구인지 알려 주겠다."일 게다. 나 참, 그렇다고 아무렴 내가 통닭의 한 부분이거나 감자칩은 아니지 않은가. 브리야사바랭의 약속은 마치 비트겐슈타인의 아침 식사를 면밀히 분석해 그의 철학을 추론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다. 하지만 이는 부유한 이들이 계급을 구분하고 미학적 감수성을 확인하는 일종의 표지로 음식을 사용한다는 걸 용인하는 것이다. 브리야사바랭은 "지성인만이 먹는 방법을 안다."라고 한다.

-p.32


그, 그렇죠. 제가 돼지고기 뒷다리살을 즐긴다고 해서 제가 돼지이거나 뒷다리는 아닐 테죠. 그리고 상추와 두부, 토마토, 사과로 이루어진 것도요. 이 책은 처음부터 제가 알고 있던 상식이나 개념을 파고들어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거의 모든 가치관에 대한 부정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가치관의 혼란이 오기 시작하면서 이젠 내가 좋아하는 '이연복'이나 '백종원'을 떠나야 하는 건가... 하는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요리사는 어떠한가? 음식이 영적이라면, 현대의 '유명 셰프'들은 성직자이거나 구루, 혹은 형언할 수 없는 것의 드루이드교 전달자가 되었다. 요리사는 '테루아르'와 조화를 이루는, 구미를 당기는 즐거움과 영적 향상을 위한 가이아의 통역자이다. 우리는 더 이상 정치가나 성직자를 신뢰하지 않는 대신, 요리사들이 우리에게 먹는 방식은 물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말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p.41


하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줄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그들은 자신의 요리와 알고 있는 것들을 우리에게 주장하고 전달하려 할 뿐이지 인생 살이까지 가르치려는 건 아닐 텐데요. 저자가 경계하는 스타 셰프는 제이미 올리버라거나 고든램지 같은 사람을 말하는 겁니다. 알콜 중독으로 자신의 가게를 망쳐버린 한 오너 셰프에게 혹독하게 야단치면서 조리법을 전수하고 일하는 법을 전수해서 가게를 일으키는 것도 좋지만, 사실은 알콜 중독 센터에 보내서 병을 치료하게 하는 게 먼저 가 아닌가 하는 거죠.


이 책은 당연하게 생각했던 푸드 마일리지와 로컬푸드에 관한 것도 반박하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스즈키가 주장한 "로컬푸드를 먹는 것은 그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다(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지구를 구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이다.)"라는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가능하면 국산, 특히 제주산 식자재를 구입했었으며 어쩌다가 수입품을 사게 되면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의기소침해지거나 - 금전적인 고통이었죠 - 자기 합리화를 하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그런 저에게 면죄부를 선사해주었습니다.


지구를 구하는 소명에는 그 위에서 현재 살아가고자 분투하는 수많은 불우한 이들의 희생이 따른다. 문제는 로커보어들이 고객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들, 즉 개발도상국이나 제3세계의 가난한 농민들로부터 먹거리를 구매하길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철학자 피터 싱어와 공동 저자인 짐 메이슨은 셈을 해 보더니 이렇게 주장한다. "콩을 사기 위한 1달러가 있다. 현지에서 재배한 콩을 사는 것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다면(현지 농부는 1달러 전체를 다 가질 수 있고 케냐의 농부는 1달러 중 겨우 2센트만 갖는다 할지라도) 케냐의 콩을 구매함으로써 빈곤을 줄이는 데 더 기여한다." 전 지구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로커보리즘이란 부유층이 먹거리를 물론 돈까지 자신들의 좁은 파벌 안에서만 순환하려고 만든 자기애적 사이비 도덕주의 클럽 같다.

-p.175


위에서 말한 논제들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정말로 다양한 측면에서 저자의 반박이 이어집니다. 유기농이 반드시 좋은 것 만은 아니다, 간편식을 무시하지 마라, 영양학자의 말에 너무 귀 기울이지 마라 등등... 제 상식을 모조리 깨고 부수는데 - 귀가 얇지도 않은 - 저는 어, 듣고 보니 그러네? 하며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반박만 하고 대안은 없는 건가? 말로만하는 건 삐딱한 눈만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만 12장에 이르러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합니다. 그는 스타 요리사, 지나친 요리에 대한 관심, 미슐랭에 대한 전적인 신뢰 등에 대해 일침을 놓고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그의 견해에 100%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요. 알고 있던 사실을 다른 측면에서 다시 보니 이제까지 몰랐던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결정은 결국 저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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