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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전이의 살인 ㅣ 스토리콜렉터 42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하윤 옮김 / 북로드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카펜터스의 'This Masquerade'는 제가 좋아하는 올드 팝 중 하나입니다.
Are we really happy with
This lonely game we play
Looking for the right words to say
Searching but not finding
Understanding anyway
We′re lost in this masquerade
원래는 사랑을 가장하고 있는 연인들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노래라고 생각하는데요.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인격 전이의 살인>에도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등장인물들은 매스커레이드에서 길을 잃었으니까요.
사회심리학자 다니엘 아크로이드 박사는 1970년대에 말도 안 되는 걸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인격을 바꿀 수 있는 기계인데요. 앤트맨에 나오는 인체 축소 광선만큼이나 말도 안 되는 이 기계의 이름은 체임버라고 합니다. 체임버 안에 들어가 서로의 인격이 바뀐 인간들은 바뀐 채로 생활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어느 날 갑자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언제 또 뒤바뀔지 모르는 상황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매스커레이드라고 하죠. 둘이서만 바뀌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주인공 에리오의 경우처럼 여섯 명의 인격이 바뀔 때는 일이 복잡해집니다.
반드시 한 명씩만 들어가서 인격이 바뀌는 것을 주의했었지만, 아크로이드 박사와 빨간 머리의 진저의 인격이 서로 바뀌는 바람에 체임버는 폐쇄되고, 20여 년이 흐른 뒤 체임버가 있는 곳은 어쩐지 커다란 쇼핑센터의 햄버거 가게가 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사람이 들어가지 않도록 단단히 봉해져 있었지요.-라고는 하지만 좀 허술했던 건 사실입니다. 평소엔 손님이 거의 없던 그 가게 '치킨 하우스'에 일본인 '나(에리오)'가 들어온 것을 시작으로 여러 명의 손님이 더 들어와 다소 산만해졌는데요.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 대피할 장소가 필요해졌던 그들은 마치 기둥처럼 그곳에 존재하던 체임버의 문을 부수고 암흑 속에서 그 안으로 찾아들어가게 됩니다. 그 공간이 어떤 곳인지 몰랐던 그들은 오랜만의 손님을 반가이 맞이하는 체임버에 의해 인격 전의가 일어납니다. 이렇게 여럿의 인격이 바뀔 때는 그들이 위치한 곳에서 시계방향으로 인격이 이동하게 되는데요. 그다음 인격 전이에서는 처음 인격 전이가 있었던 때의 배치에 따라 다시 시계방향으로 한 칸 이동합니다.
우리 6명이 '1'부터 '6'까지 원을 그리는 순서대로 앉아 있다는 사실. 그렇다. 순서대로다. 그건 대체 무슨 순서인가. 두말할 필요 없이 '인격 전이' 순서다. 아직 명확한 설명을 들은 건 아니지만 이 연출적인 배치에 다른 의미가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불길한 상상은 더욱 끔찍한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1'의 육체에서 옮겨진 인격은 '2'의 육체에, '2'에서 옮겨진 인격은 '3'의 육체, '3'에서 '4', '4'에서 '5', '5'에서 '6', 그리고 '6'에서 '1'로, 각각 '전이'된다는 뜻인 듯했다.
어쩌면 '전이'는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게다가 번호가 하나씩 옮겨 가는 슬라이드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느낀 끔찍한 예감은 그랬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나의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p.115
처음엔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모두들 당시 상황대로 둘러앉아 아크로이드 박사님의 이야기를 차분히 듣습니다. 섹시 글래머 보디를 차지한 엉큼한 아저씨는 오히려 신나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인 여자 아야가 죽었다는 이야기에 - 아니, 목을 졸려 살해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로를 의심합니다. '나(에리오)'역시 머리를 짜내며 추리를 해보지만 일단은 이곳에서의 생존이 더욱 중요했습니다. 인격 전이 장치가 비밀이니만큼 그들은 세상에서 지진으로 죽은 사람이 되어 있었고, 대혼란을 막기 위해 공동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함께 살아야 하는 여섯 명 사이에 살인자가 한 명 숨어있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CIA에서 그녀의 죽음은 사고였다고 했지만 미심쩍습니다. 성격도 뭣도 안 맞는 그들이지만 어떻게든 함께 살아보려고 하는데, 그곳에서 다시 살인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인격 전이, 살인, 인격 전이. 상황이 무척 빠르게 변화합니다. 누가 누굴 죽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육체가 죽으면 그 안에 들어 있던 인격 즉, 영혼마저 소멸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육체도 인격도 소중한 이 마당에 왜 그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째서, 왜?
"우리 인류의 의학이나 과학으로는 방법이 없어. 말하자면 여러분은 앞으로 계속 이 '매스커레이드'라는 감옥의 포로로 살아야 해. 알겠다? 이런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여러분은 모두 죽었어. 적어도 사회적인 존재로서는 소멸하고 말았다는 거야. 원래의 삶으로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어. 그 운명을 부디 잘 받아들이면 좋겠군."
-p.121
수첩까지 함께 따라온 이 책은 많은 메모를 하며 읽어야 하나보다...하는 부담감을 주었지만, 읽어보니 별로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친절하게도 중간에 그림으로 설명해주기도 하고, 본문중에 '나(=나)', '나(=바비)'하는 식으로 누구의 몸에 누가 들어 가 있는지 알려주고 있었으니까요. 다만 빠른 인격전이가 일어날 때엔 누가 죽고 누가 살았는지 헷갈렸습니다. 그치만 그것 역시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 제가 혼란스러운 것 만큼 주인공도 혼란스러웠으니 이 혼돈을 고스란히 안고 읽는 것이 맞는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한바퀴 돌고 다시 돌고, 뱅그르 돌고. 그러다 점핑. 아니, 지금 나는 누구지?

마지막엔 책을 덮고선 배시시 웃었습니다.
아, 니시자와 야스히코 스타일이 이런 것이로구나.
그렇군요. 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