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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의 방정식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2월
평점 :
딸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그러니까 최초의 담임 선생님은 정말 이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어린 것들이 뭘 안다고 폭언을 서슴지 않는 사람이었는데요. 반 아이가 잘못된 방법으로 연필을 잡고 글을 쓰는 걸 보고 '병신'이라고 하질 않나, "너희들을 가르치느니 내가 개를 데려다 앉혀놓고 가르치겠다."라고 하지 않나, 심한 감기에 걸린 아이가 욕지기를 느껴 화장실로 뛰어가다 말고 복도에서 구토하자 "왜 치우기 힘들게 여기다가 토하고 그래!" 하고 소리 지르질 않나...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던 저와, 같은 반 친구 엄마들은 혹시나 항의를 했다가 아이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을까, 지금 찍히면 선생님들끼리 이야기를 해서 학교생활 내내 불이익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항의도 하지 못하고 끙끙 앓다가 눈물짓기도 했었습니다. 참, 바보 같죠. 제주로 이사 올 줄 알았다면 용기를 좀 내볼걸. 경북 교육청이나 학교에 이야기를 해 볼걸. 이제 와서 후회하면 뭐 하겠습니까. 많은 피해자를 낳고 선생님은 정년을 맞이하셨는걸요. 아이들에 용기를 주고 바른길로 인도해주는 선생님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아이들에게 폭언이라니. 그런 식의 말들을 뱉는 건 자신의 인격이 거기까지 밖에 안된다는 증거가 아닌가요.
그런 인격 함량 미달의 선생님이 미야베 미유키의 <음의 방정식>에도 등장합니다. 피난소 생활 체험 캠프라는 이름의 자연재해 대비 1박 2일 캠프를 하던 날 밤, 히노 다케시 선생이 아이들에게 찾아옵니다. 이런 느슨한 가상 체험 말고 실제 상황이라고 생각해보라며 너희들 일곱 명 중 살아남을 여섯 명과 죽어야 할 한 명을 정하라고 말하고선 자리를 뜹니다. 아이들은 투표로 선출된 시모야마 요헤이를 죽을 아이로 정하고 낄낄거리는데요. 그 아이가 평소에도 약간 따돌림을 당하던 아이라 충격을 받은 모양입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버리거든요. 히노 선생의 부적절한 언동으로 아이들은 모두 크고 작은 충격을 받은 모양입니다. 그러나 당사자인 히노 선생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극구 부인합니다. 언뜻 보기에 별건 아닌 것 같은 사건이지만 당사자들은 나름 심각했습니다. 히노 선생. 참, 말을 잘 못 가리는 사람입니다. 열혈 선생인지는 모르겠지만 평소의 언동이 문제가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하고도 남을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밖에요.
이 사건 때문에 괴로워하는 아이 아키요시 쇼타의 부모님은 사립탐정을 고용합니다.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했겠죠. 그들이 고용한 사립탐정은 스기무라 사부로! 제가 좋아하는 좋은 사람입니다. <누군가>, <이름 없는 독>,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에 등장하는 행복한 탐정이죠. 드디어 회사를 관두고 본격 탐정이 되었군요. 벌이는 시원치 않을는지 모르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 형사' 만큼이나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들에게 진정한 평안을 찾아 줄 수 있는 탐정으로서 활약할 거라 생각하는데요. 제 예상이 틀리지 않아, 이 책에서도 아이들과 주변인들을 탐문하며 그들의 편에 섭니다.
어쩐지 위치상으로는 반대편이라고 해야 하지만 사실은 같은 편일 수밖에 없는 학교 측 변호사로는 후지노 료코가 등장합니다. <솔로몬의 위증>에서 중학교 3학년생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치 똑 부러지는 여학생으로 당시 모의재판에서는 검사였던 후지노 료코가 정말 법조계에 진출, 변호사가 되어 활약하니 앞으로도 그녀의 활약을 더 지켜보고 싶습니다.
아직 중학생으로만 생각되던 후지노 료코가 벌써(?) 이렇게 자라서 34살이 되었다니. 스기무라와 함께 어른으로서 대등하게 만나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만 보아도 기분이 묘해졌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의 책이었지만 제가 좋아하는 두 사람을 한꺼번에 만난 것도 기뻤고, 무엇보다 이런 짧은 글에도 미야베 미유키는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구나하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