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 - 박상 본격 뮤직 에쎄-이 슬로북 Slow Book 2
박상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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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다섯시 오십분에 기상합니다. 알람을 끄고 제일 먼저 유튜브를 열어 제시 제이의 곡을 터치하면 연이어서 아리아나 그란데나 비욘세, 니키 미나즈. 테일러 스위프트, 그리고 느닷없이 모던 토킹이 등장합니다. 여섯시 삼십오분에 아이를 보내고 빨래며 청소를 하다 보면 한 시간 반은 후딱 지나갑니다. 음악 없이 조용히 일을 하면 어쩐지 우울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은 허리며 이상근이 제발 좀 그만하라며 소리를 지릅니다. 하지만 음악을 마련한 순간 미세스 다웃파이어처럼, 라푼젤처럼, 마법에 걸린 사랑의 지젤처럼 신나게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뿐인가요. 한국의 몰디브라 불리는 서우봉 해변에 앉아 책을 읽으면 풍경은 아름답고 공기는 좋지만, 산만하기 그지없는데요. 적당한 음악을 세팅하고 이어폰을 귀에 꽂으면 그곳은 제주의 바다, 카리브해, 몰디브가 됩니다.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 이 책은 참 나쁩니다. 왜냐고요? 이 책 때문에 유튜브 레드를 결재했습니다. 물론 1개월 무료 체험 기간으로 시작하니까 아직 돈이 들어간 건 아니지만 다음 달부터 꼬박꼬박 돈이 들어갈 예정입니다. 써보니 좋더라고요. 온라인 상태에서 다운로드해 두면 오프라인에서 들을 수도 있고, 성가신 광고도 없습니다. 추천해주는 음악이 다 제 취향입니다. 유튜브 빅브라더. 제법이니 오빠라고 부를까 생각 중입니다.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이 유튜브 레드에 가입하라고 시키지는 않았는데요. 그렇다면 제멋대로 가입해놓고 왜 책 핑계를 대느냐... 

이 책은 박상이라는 사람이 노래 한 곡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그러니까 뮤직 에세이입니다. 음악에 대해 심오한 내용을 이야기하는 거라면 정말 심각하게 읽어야 하는데 그런 건 아닙니다. 음악도 있고, 여행도 있고, 시사도 있습니다. 잘 버무려져 있지요. 

제가 책의 목차를 훑어보니 소제목에 음악 한 곡씩이 더불어 적혀 있더군요. 그래서 기특한 생각을 했죠. 유튜브에서 검색해서 들으며 읽자고. 어차피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데, 이 책에선 딱 맞는 음악을 소개해주기까지 하니 좋지 아니한가!! 그리하여 클럽에서 나옴직한 다프트 핑크의 겟 럭키를 시작으로 유튜브를 딱 열어놓고 음악을 플레이하며 읽었는데, 아아아아!!!! 광고!!!! 게시자도 유튜브도 먹고살아야 하니 5~20초 광고는 봐 줄 수 있는데, 문제는 책 읽다가 그 시간 동안 멈춰 있어야 한다는 거였죠. 뭔가 생각하면서 기다리는 게 아니라 스킵 버튼을 누르기 위해 검지를 꼿꼿이 세운 채로 말이에요.

이것이 제가 유튜브 레드에 가입하게 된 동기입니다.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이라는 제목이지만 이 책은 달달하지도 끈적하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웃긴다더니 웃기지도 않아요. 재미있습니다. 웃긴 거랑 재미있는 거랑 조금 다르잖아요?

정말.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이 책의 글을 읽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소제목과 함께 붙어 있는 음악과 함께 했습니다. 책 읽는 시간이 몇 배나 더 걸리긴 했지만 말이에요. 그러나 덕분에 놀라운 경험도 할 수 있었어요. 책에서 가사의 일부를 소개할 때 플레이 되던 곡과 약 70%의 확률로 딱 들어맞아서 소오름이 돋았습니다. 그때의 기분이란!! 책과 갑자기 일체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작가가 의도한 것인가요? 모두가 저 같은 짓을 하는 것도 아닐 테고, 저 같은 속도로 읽는 건 아닐 텐데. 대단히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마지막에 소개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은 너무 길어서 어쩌나 잠시 걱정을 했지만 보너스 트랙의 여행기를 읽으며 계속 들었습니다. 그래서 바이칼 호수나 파리나 비슷한 분위기가 되어버렸지만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좋아요. 아주 좋아.

박상 본격 뮤직 에쎄-이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을 읽으실 거라면 저처럼 음악도 함께 하셔요. 그러면 작가의 감성을 조금이나마 가깝게 체험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아, 이 무슨 우연의 일치인지. 유튜브 음악을 랜덤으로 해 두었는데, 이 책의 첫 곡 겟 럭키가 나오고 있네요. 수미쌍관법인가.


** 참. 작가와 저의 음악 취향은 너무나도 달라서 유튜브에서 좋아요를 누른 건 몇 곡 안됩니다. 그렇지만 아무렴 어때요.

*** 김나훔의 일러스트는 뽀~나스. 글과의 궁합이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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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날 아프게 한다 - 가장 가깝지만 가장 이해하기 힘든 우리 시대 가족 해부서
시모주 아키코 지음, 강수연 옮김 / 경향BP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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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네이트 판을 들락거리고 있습니다. 기자들이 기삿거리가 없을 때 드나들면서 글쓴이의 동의 없이 글을 퍼나르기에 도대체 어떤 글이 올라오나 궁금해서 보기 시작했는데요. 실제의 이야기도 있고 사람을 낚기 위해 뿌린 주작(자작) 글들도 있더군요. 주작이건 실제 건 간에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 가지 분야가 있지만 가족이라는 테마에서의 이야기가 가장 많았는데요. 가장 활성화된 게시판이 결시친(결혼/시집/친정) 이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10대의 이야기까지 해서, 가족 때문에, 예비 가족 때문에, 시댁이나 처가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고통을 주는 사람의 개념도 21세기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저야 지금은 세상과 조금 동떨어져있는 생활을 하고 있기에 그런 일들을 직접적으로 겪고 있지 않지만,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아보면, 아아 트라우마 투성이입니다. 그것에게서 여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으나 적응하여 살고 있습니다. 약간의 히키코모리스러운 생활 방식으로요. 사람들과 접촉을 꺼리면서 어떻게 사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런 형태로 사는 것이 저에겐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한 상태이니 남의 눈을 의식해서 일부러 불편하게 살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시모주 아키코의 <가족이 날 아프게 한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아마존 베스트셀러로 60만 부 판매고를 올린 <가족이라는 병>을 쓴 저자입니다. <가족이라는 병>은 제목은 익히 듣고 봐왔으나 읽지 않았습니다. 가족이라는 것이 병일 수도 있다는 건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이 날 아프게 한다>는 도서관에서, '혐오' 키워드의 책을 읽어보려고 찾던 중에 옆에 있길래 함께 빌려 온 책입니다. 삽화가 참 예쁜 책이더군요.
일본인과 한국인은 정서가 참 비슷한 것 같아요. 세계에서 '동반 자살'이라는 개념의 자녀 살해 후 자살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건 이 두 나라뿐이라고 하잖아요. 여성의 내조를 강요하고, 결혼 적령기라는 것이 존재하고, 아이를 낳아라 마라 참견하고, 비혼이나 미혼인 사람을 문제가 있는 것처럼 여기고... 
이제 곧 명절이 되면 친척들이 이런저런 참견을 하겠죠. 공부는 하니? 취업은 했니? 결혼은 언제 할 거니? 애는 언제 낳니? 둘째는 아직이니? 하나 더 낳지 그러니?.... 이런 참견은 가족뿐만이 아니라 전혀 상관없는 사람에게도 받습니다. 저 역시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까지만 해도 처음 보는 할머니나 아주머니에게서 왜 둘째를 안 낳느냐는 참견을 받았습니다. 아들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느냐며. 

<가족이 날 아프게 한다>를 읽다 보면 개인을 하나로 뭉뚱그리려는 여러 가지 노력과 시도를 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식으로 해석이 되어 뭔가 조금 기쁩니다만, 조금 극단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불륜에 관한 저자의 의견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거든요. 진정한 사랑의 불륜도 있을 수 있지만, 육체의 즐거움만을 따르는 불륜도 있기 때문인데다가 이것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애초에 불륜이라는 이름이 아닐 테지요.

<가족이 날 아프게 한다>라기보다는 가족을 구성하고 그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상적'인, 혹은 '이상적이라고 여겨지는'가족의 모습을 전부 갖춘 가정은 오히려 드물 겁니다. 불편하고 불쾌한 점을 상호 보완해가며 서로 애쓰는 형태로 살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걸 의식하고 있던지 그렇지 않던지 말이에요.
저희 집도 구조적으로 이상적인 가족의 형태는 갖추지 못했으나 지금껏 겪어왔던 몇 가지 형태의 가정 중에선 가장 행복한 상태입니다.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미래의, 이를테면 독거노인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우울을 지금부터 안을 필요는 없으니 지금의 행복을 누리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의 표지에 '가족 회복 프로젝트'라고 되어 있는데요. 그런 테마로 읽는다면 회복이 되기보다는 불만이 더 쌓일지도 모릅니다. 시모주 아키코라는 저자의 사상이 담긴 에세이로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자는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나는 이런 생각엔 찬성이고 이런 생각엔 반대야.라는 마음으로 읽는다면 편안한 마음으로 읽고, 여러 가지 형태로 살아가는 모습들을 조금 더 관대한 시선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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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망명자 - 2017년 제4회 SF어워드 장편소설 부문 대상 수상작
김주영 지음 / 인디페이퍼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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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할 때 남들이 듣도 보도 못한, 아니면 이름만 들어보았을 것 같은 그런 재료를 가지고 훌륭한 풍미의 요리를 만들어 내면, 맛있다는 극찬과 그런 재료만 있으면 나도 만들겠다는 식의 비아냥을 듣습니다. 그러나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흔한 재료나 약간의 사전 준비를 하면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재료를 가지고 누구보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면 비법이 무엇이냐며 칭찬을 듣게 마련이죠. 이 소설 <시간 망명자>가 그렇습니다. 
일제 시대의 밀정 이야기, 시간 여행, 디스토피아, 연쇄 살인, 빙의 같은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를 가져다가 정말 맛있게 버무렸습니다. 

일제 시대의 밀정이었던 지한은 죽음을 맞이하던 날, 마중 나온 제에 의해 미래로 갑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보다 먼 미래인 그곳은 전염병에 의해, 안드로이드에 의해 싹쓸이 되다 남은 인류가 살아남아 세운 미래도시로 갖가지 의학이나 기계적인 부분은 발전했지만 자연적인 종족 번식이 되지 않았기에 세상을 유지시키려면 그것이 가능한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타임 트래블 기술이 발달한 이 나라에서는 과거로 돌아가 사람들을 데리고 왔는데요. 그들을 시간 망명자라 부르고 자신들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인공적인 부분을 삽입, 그 세계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어디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새로운 세상에서 무척 적응을 잘 하는 자도 있고 절대로 적응할 수 없는 자들도 있습니다. 당연하지요. 이를테면 주인공인 강지한의 경우 1937년 상해에서 끌려온 밀정이었기에 일반인에게는 적이고, 독립운동가에게는 친구이죠. 그러나 '고향의 봄' 작전의 실패로 독립운동가들에게도 적이 된 상태이니 이 새로운 세상에서 자신을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곧, 적을 만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어제까지 원수였는데 오늘부터는 새로운 세상에 왔으니 친하게 지내라는 건 금방 다투고 씩씩거리는 유치원생에게도 안 통할 이야기잖아요.

이 세상은 언뜻 유토피아처럼 보입니다. 통제적이긴 하지만 외모도 취향대로 바꿀 수 있고, 원하면 인공 신체로 바꿀 수도 있으니 관절통으로 고생할 일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평화의 옷을 입은 그들의 속은 시커매서 누가 적인지 알 수 없지요.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 모두 그렇습니다. 누가 지한의 편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를 이 세계로 데려오길 간절히 소망한 수향을 만나야 설명을 들을 텐데, 그녀를 만날 길도 없고. 그나마 치엔만이 좀 순수한 사람 같습니다. 이곳에서는 사람도, 안드로이드도 쉽게 믿어서는 안되는 존재입니다. 이곳의 악당은 적의만 숨기는 것이 아니라 영혼마저 숨깁니다. 조던 필레 감독의 <겟 아웃>을 보셨다면 이해가 쉬울 텐데요. 영화 겟 아웃에서는 수술을 통해서 영혼을 새로운 육체에 담았다면, <시간 망명자>에서는 좀 더 간편한 방법으로 새로운 그릇에 영혼을 담을 수 있습니다. 이런 방법은 VIP에게만 열려있는 비밀스러운 행위였지요. 인공 신체 건 진짜 인간 육신이건 원한다면 갈아탈 수 있는 세상이 정말로 행복한 세상일까요? 약간의 부러움과 의구심을 가지며 책을 읽습니다. 

솔직히 소설의 앞부분은 좀 지루합니다. 그러나 지한이 미래로 넘어가는 순간부터 흥미진진해지는데요. 지한은 그곳에서 가장 적응 못한 무망자 임과 동시에 가장 적응을 잘 한 사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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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
전건우 지음 / 엘릭시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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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화창하고 맑을 것만 같은 날이 이어지다가 어제오늘 조금씩 비가 흩뿌리듯 내려와 수분을 가득 머금은 공기가 내 집 안을 장악했습니다. 습한 날씨엔 왼쪽 정강이와 발목뼈가 시큰거리는데, 허리 쪽의 심한 근육통과는 다른, 설마하니 이 나이에 신경통은 아니겠지 하는 불안감이 손가락 관절까지 욱신거리게 만듭니다. 이런 몸 상태인 걸 알면서도 한 달 전 바다 근처로 이사를 하다니 무척 미련한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만, 넓은 하늘과 맑고 푸른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것과 맞바꾸었다고 생각하면 그리 손해나는 장사는 아니겠지요. 아직은 젊으니까 말이에요.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잖아요. 이런 것은 부족하지만 이런 것은 풍요롭다고 생각하면 그래도 긍정적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 텐데 <소용돌이>의 독수리 오형제에겐 그런 긍정의 힘을 앗아갈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 유년기에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저도 트라우마라면 누구 못지않지만, 이 친구들 같은 것은 없기에 그래도 나름 밝게 살고 있나 봅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 공포는 그래요 말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혹시 자다가 익사할 것 같은 기분에 잠에서 깨어 쿨럭거려 보신 적이 있나요? 저는 자주 그렇습니다. 언제부터였던가.... 자다가 갑자기 기도가 막혀 숨을 쉴 수 없어 깨어 나는 겁니다. 죽을뻔했다는 공포와 함께요. 코골이 때문에 무호흡이 온 것은 아니고요.- 물론 코를 골긴 하지만 -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콧물이 생기는데 그게 호흡기를 막아버리는 겁니다. 원인을 알면 무섭지 않아요. 아, 아데노이드 때문이구나. 다시 자자. 하면서요. 그렇지만 이유를 모를 때는 무척 무서웠습니다. 도대체 나를 괴롭히는 '그것'의 정체가 뭘까. 어린 시절 내가 보았던, 유민의 아버지를 죽인 그것이 정말로 마을 솥뚜껑에 있는 물귀신이 맞는 걸까. 이 두려움과 의혹은 한 방울의 물방울이 되어 가슴속을 적시고 마음을 음습하게 만들었습니다. 

이혼 후 죽음을 찍는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생계를 꾸리던 민호는 유민이 죽었다는 길태의 전화를 받고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광선리로 향합니다. 유민은 국민학교 때 함께 놀던 독수리 오형제의 하나였으니까요. 독수리 오형제 민호, 창현, 유민, 명자, 길태에겐 비밀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소문의 물귀신을 소환하는 바람에 유민의 아버지가 죽었거든요. 폭력에 시달리던 친구를 구해주고 싶었던 어린이들이 할 수 있던 최선의 방법이었지만 이 주술이 제대로 발동해 사람들을 죽일 줄은 몰랐을 겁니다. 마음의 위로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 어린 나이엔 내가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더 깊은 법이지 괴롭히는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어쨌든 이 물귀신은 수상한 박수무당 남 법사와 꼬마들의 힘으로 어찌어찌 봉인 당합니다. 그게 혹시 풀려나 유민을 죽인 것은 아닌가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 그렇습니다. 다시 만난 독수리 오형제는 최규석의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에서의 그들처럼 세상에 찌들고 혼탁해진 모습이었습니다. 물귀신을 만났던 일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되고 말았다고, 그렇게만 볼 수는 없습니다. 세상이라는 것은 참 희한 한 것이어서 사람을 이리로 저리로 흔들기 마련이니까요.  
오랜만에 돌아간 광선리는 도로를 새로 놓는 일 때문에 주민 간의 갈등이 심했습니다. 고향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과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자 하는 사람이 싸우고 있어, 이 마을 자체도 하나의 소용돌이 같았지요. 유민의 죽음은 시작일 뿐, 이 마을 속의 소용돌이 안에 물귀신이 숨어들어 사람을 해치기 시작합니다. 물귀신은 어째서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이며 누가 왜 결계를 부수고 물귀신을 소환해냈는지 그 미스터리를 찾아가는 것이 이 소설의 묘미입니다. 

제가 읽어 본 전건우의 소설은 두 가지의 각기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주로 안개가 낀, 습기 가득한, 눅진눅진한 공기가 흐르며 살의와 공포가 그 안갯속에 콜로이드 상태로 퍼져 있는 아주 무거운 공기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우울함과 아련한 슬픔 같은 것 말이죠.
그리고 또 하나는 의외로 위트가 있다는 점인데요. 앞서 말한 것과는 무척 상반되는 것으로 밝은 템포로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이런 소설은 좀 드물게 쓰시지만요. 
이번 장편 소설 <소용돌이>는 이 두 가지의 매력이 롤리팝처럼 휘돌아 나타납니다. 물귀신이 나오는 호러 미스터리이므로 일단 무겁고, 습하고, 우울하다는 것은 책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도 짐작할 수 있겠는데요. 이를테면 양계장에 갇힌 길태가 똘마니들에게 연장을 챙겨오라고 했더니 문을 부술 연장이 아니라 평소 습관처럼 사시미, 야구방망이 같은 걸 챙겨오는 그런 부분이 공포와 긴장으로 책을 읽던 독자를 웃게 합니다. 게다가 독수리 오형제 (갓챠만)의 메카닉 부분을 남 박사가 담당하고 있는 것처럼, 광선리의 독수리 오형제는 남 법사가 주술이니 부적 같은 것을 맡고 있습니다. 게다가 어린 시절 투투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친구는 이 습한 마을에서 이장을 맡고 있는데, 어찌 아니 적절하겠습니까. 하하.

독수리 오형제는 일본에서 1972년에 제작되기 시작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에 방영했습니다. 그런데 91년에 국민학교 6학년 아이들이 독수리 오형제를 알고 역할놀이를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방영했던 마징가 제트 놀이를 하는 아이들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지금에야 유튜브 같은 것으로 과학닌자대 갓챠만을 검색하면 볼 수 있고, 영화로도 제작된 적이 있으니(대실망했지만) 오히려 요새 아이들은 알 수도 있겠다 싶고, 혹시 아이들이 비디오를 본 걸까요? 창현이 빼고는 집안 형편이 그리 좋지 않던데.... 그래서 여러 가지 상상을 해봤습니다. 바이오맨, 닌자 거북이(명자가 낄 데가 없나요), 수라왕 슈라토... 아, 아무래도 그냥 독수리 오형제가 낫겠습니다. 

아무튼 독수리 오형제 문제만 제거하고 생각한다면 과거에서 현재까지 참 잘 맞물린 호러 미스터리입니다. 미쓰다 신조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데요. 내면의 공포심을 끌어내는 건 미쓰다 신조가 더 낫지만, 스토리 전개와 구성은 전건우가 훨씬 나은 것 같습니다. 대부분 단편이었기에 보여 주지 못했던 - 밤의 이야기꾼들도 단편이 모인 옴니버스처럼 느껴졌기에 - 그의 작품 세계를 이번 <소용돌이>를 통해 제대로 보여 준 것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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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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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소설가 반디가 쓴 <고발>이라는 단편집에는 답답한 이야기가 잔뜩 들어있습니다. 부조리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에 따를 수밖에 없는데요. 독자 역시 소설 속의 상황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도와주거나 조언할 방법이 없어 발을 동동 구릅니다. 소설 속의 이야기가 온전히 다 허구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힘든 것일 테지요. 
이사카 고타로의 신작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에서도 그런 답답함을 느낍니다. 센다이 시에서 벌어지는 이 일들은 모두 허구이므로 마치 저 먼 곳에서 내려다보듯이, 이를테면 화성 같은 데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흐응 그래? 하며 읽을 수 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평화 경찰이라는 이름으로 공포를 조성하는 그들의 치안 유지 방식은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도 있었던 일이기에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고 현실감이 있었습니다. 제 어린 시절에 이웃집 아저씨가 한밤중 재미로 북한 방송을 듣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일이 있으니 센다이 시내의 평화 경찰처럼 안기부에서 잡아갔던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처럼 컴퓨터로 보다가 아이피 추적 당하던 시절도 아니고, 누군가의 고발로 그리되었을 텐데. 누군지 알 수는 없습니다. 안기부에서 심어 둔 사람이었거나 자발적인 정의감으로 신고한 누군가의 탓이겠지요.

아무리 친하게 지냈던 이웃이라도 국가기관에서나 경찰이 "이 사람은 범죄자요."라고 말하면 대부분 "어머, 그렇게 안 봤는데, 세상에 그럴 수가." 하며 수긍합니다. 사실 우리의 정보력으로는 그의 잘잘못을 가려내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련히 알아서 잘 조사했을까 하는, 일종의 신뢰 때문이지요. 그런 신뢰를 먹고서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잊고서요. 일본 전국적으로 활동하던 평화 경찰이 이번엔 센다이에서 활동을 합니다. 정말로 불온한 사상을 가진 사람도 있었겠지만, 별것 아닌 이유로, 혹은 허위 사실로 체포되어 취조라는 이름의 고문을 당하며, 결국엔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스테인리스 강으로 된 현대식 기요틴에서 공개 처형됩니다. 평화 경찰은 이들을 공개 처형함으로써 시민들에게 경각심과 공포심을 주입합니다. 마치 중세 세대의 마녀사냥 같지 않습니까? 마녀로 고발되거나 마녀라고 의심되는 사람을 체포하여 고문하고 마녀임을 인정하면 사형, 부정하면 고문 끝에 사망하였으며, 마녀인지 아닌지 테스트를 한답시고 말도 안 되는 시험을 치뤄 - 이를테면 돌을 매달고 물에 집어던져 떠오르면 마녀, 가라앉으면 결백 - 결국은 죽을 수밖에 없는 길을 가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건 마녀로 지목 당하지 않는 것인데, 그건 본인도 어떻게 해야 지목을 당하지 않고 잘 살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센다이 시내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냥 친구랑 주점에서 소소한 대화를 나눴을 뿐인데, 이발소에서 수다를 떨었을 뿐인데, 내가 저번에 잠깐 일상 대화를 나눴던 사람이 불온 분자였을 뿐인데... 체포당하고 고통을 당하다니. 

이렇게 두려운 세상에 어디선가 갑자기 히어로가 나타납니다. 검은색 작업복 같은 라이더 슈트에 고글을 쓴 남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아니 정확하게는 스쿠터를 타고 처음 보는 구슬 같은 무기와 목도를 가지고 평화 경찰을 물리칩니다. 검은 장갑에 검은 스키 마스크까지 착용하다니 누가 봐도 코난의 범인 코스프레이지만 실은 정의의 편이라는 거죠. 전혀 평화를 책임지지 않는 '평화 경찰'은 그를 '정의의 편'이라고 호칭하며 추적합니다. 그를 정의의 편이라고 하다니, 자신들이 정의의 편이 아니라는 걸 자각하는 걸까요? 

이 소설은 챕터마다, 혹은 소단원마다 시점이 이리저리 바뀝니다. 전지적일 때도 있고, 수사관일 때도 있고, 그리고 히어로 일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전혀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이사카 코타로의 필력 때문일 겁니다. 그렇지만 평소 제가 상상했던 문체의 다정함이 없어서 좀 의아했습니다. 이것이 아르테의 이사카 코타로 인가.... 하는 메모를 하고서 읽기를 계속했습니다. 딱 꼬집어서 아르테의 이사카라고 하기도 뭣 한 것이 골든 슬럼버나 마왕 같은 책에선 지금 같은 분위기였던 것 같기도 하거든요. 읽은 지 오래되어서 좀 가물가물하지만요. 첫 챕터를 읽다가는 어쩐지 호시 신이치를 떠올렸습니다. 그의 쇼트쇼트를 읽을 때 느끼는 기묘한 감각 같은 게 있는데, 뭔가 명치 조금 위쪽의 깊은 부분이 몸 바깥쪽으로 들어 올려지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인데요.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의 초반에서 그런 느낌이 있었습니다. 미래가 아닌 것 같은데 미래이고, 미래인 것 같으면서 현재인 것 같은 그런 묘한 시간적 배치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호시 신이치의 그런 시간 배치는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그의 SF를 읽더라도 위화감이 일지 않게 하거든요. 그렇다면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역시 50년, 100년 후 읽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마하니 그때는 이 소설의 내용이 현실화하지는 않았겠죠? 언제고 독재자가 지배하는 세상이 온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에 조금은 긴장됩니다. 




그러고 보니 역시, 복선을 흩뿌리고 회수하는 스킬은 아주 대단합니다.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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