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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날 아프게 한다 - 가장 가깝지만 가장 이해하기 힘든 우리 시대 가족 해부서
시모주 아키코 지음, 강수연 옮김 / 경향BP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최근에 네이트 판을 들락거리고 있습니다. 기자들이 기삿거리가 없을 때 드나들면서 글쓴이의 동의 없이 글을 퍼나르기에 도대체 어떤 글이 올라오나 궁금해서 보기 시작했는데요. 실제의 이야기도 있고 사람을 낚기 위해 뿌린 주작(자작) 글들도 있더군요. 주작이건 실제 건 간에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 가지 분야가 있지만 가족이라는 테마에서의 이야기가 가장 많았는데요. 가장 활성화된 게시판이 결시친(결혼/시집/친정) 이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10대의 이야기까지 해서, 가족 때문에, 예비 가족 때문에, 시댁이나 처가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고통을 주는 사람의 개념도 21세기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저야 지금은 세상과 조금 동떨어져있는 생활을 하고 있기에 그런 일들을 직접적으로 겪고 있지 않지만,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아보면, 아아 트라우마 투성이입니다. 그것에게서 여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으나 적응하여 살고 있습니다. 약간의 히키코모리스러운 생활 방식으로요. 사람들과 접촉을 꺼리면서 어떻게 사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런 형태로 사는 것이 저에겐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한 상태이니 남의 눈을 의식해서 일부러 불편하게 살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시모주 아키코의 <가족이 날 아프게 한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아마존 베스트셀러로 60만 부 판매고를 올린 <가족이라는 병>을 쓴 저자입니다. <가족이라는 병>은 제목은 익히 듣고 봐왔으나 읽지 않았습니다. 가족이라는 것이 병일 수도 있다는 건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이 날 아프게 한다>는 도서관에서, '혐오' 키워드의 책을 읽어보려고 찾던 중에 옆에 있길래 함께 빌려 온 책입니다. 삽화가 참 예쁜 책이더군요.
일본인과 한국인은 정서가 참 비슷한 것 같아요. 세계에서 '동반 자살'이라는 개념의 자녀 살해 후 자살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건 이 두 나라뿐이라고 하잖아요. 여성의 내조를 강요하고, 결혼 적령기라는 것이 존재하고, 아이를 낳아라 마라 참견하고, 비혼이나 미혼인 사람을 문제가 있는 것처럼 여기고...
이제 곧 명절이 되면 친척들이 이런저런 참견을 하겠죠. 공부는 하니? 취업은 했니? 결혼은 언제 할 거니? 애는 언제 낳니? 둘째는 아직이니? 하나 더 낳지 그러니?.... 이런 참견은 가족뿐만이 아니라 전혀 상관없는 사람에게도 받습니다. 저 역시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까지만 해도 처음 보는 할머니나 아주머니에게서 왜 둘째를 안 낳느냐는 참견을 받았습니다. 아들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느냐며.
<가족이 날 아프게 한다>를 읽다 보면 개인을 하나로 뭉뚱그리려는 여러 가지 노력과 시도를 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식으로 해석이 되어 뭔가 조금 기쁩니다만, 조금 극단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불륜에 관한 저자의 의견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거든요. 진정한 사랑의 불륜도 있을 수 있지만, 육체의 즐거움만을 따르는 불륜도 있기 때문인데다가 이것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애초에 불륜이라는 이름이 아닐 테지요.
<가족이 날 아프게 한다>라기보다는 가족을 구성하고 그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상적'인, 혹은 '이상적이라고 여겨지는'가족의 모습을 전부 갖춘 가정은 오히려 드물 겁니다. 불편하고 불쾌한 점을 상호 보완해가며 서로 애쓰는 형태로 살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걸 의식하고 있던지 그렇지 않던지 말이에요.
저희 집도 구조적으로 이상적인 가족의 형태는 갖추지 못했으나 지금껏 겪어왔던 몇 가지 형태의 가정 중에선 가장 행복한 상태입니다.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미래의, 이를테면 독거노인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우울을 지금부터 안을 필요는 없으니 지금의 행복을 누리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의 표지에 '가족 회복 프로젝트'라고 되어 있는데요. 그런 테마로 읽는다면 회복이 되기보다는 불만이 더 쌓일지도 모릅니다. 시모주 아키코라는 저자의 사상이 담긴 에세이로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자는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나는 이런 생각엔 찬성이고 이런 생각엔 반대야.라는 마음으로 읽는다면 편안한 마음으로 읽고, 여러 가지 형태로 살아가는 모습들을 조금 더 관대한 시선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