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 - 평범하지만 특별한, 작지만 위대한,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임희정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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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다 침묵을, 요구보다 인내를 먼저 배웠다. 어린 나이에 어리광조차 제대로 피우지 못하고 힘겨운 부모의 삶을 일찍이 이해해버린 일은 참 슬프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나는 스스로 활기찼고 때때로 우울했다. 자라는 동안 아빠를 부정했고 다 자라고 나서야 인정했다. 서러운 만큼 부정하고 나니 어른이 됐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p.37

광주 MBC 아나운서 시절과 제주 MBC 아나운서 시절을 거쳐 지금은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활동하며 후배 양성도 하고 있는 임희정 아나운서의 고백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를 읽었습니다. 자라는 동안 막노동하는 아버지의 직업이 부끄러워 이야기하지 못하고 누군가 물어오면 쭈뼛대며 건축 쪽 일을 하고 있다고 둘러대왔지만 이제는 그 노동이 있었기에 자신의 현재가 있음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느끼고 이제는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아빠의 거칠고 뭉뚝해진 손끝과 잘 들리지 않는 귀가 자식을, 가족을 사랑한 증거입니다.

철없던 시절, 가난이 부끄럽고 아빠가 부끄러워 독립하길 꿈꾸었던 아이였지만 막상 스물여덟 살에 처음으로 부모를 떠나 광주로 급히 이사를 가게 되었을 때의 먹먹함이라니. 비로소 허전함을 느꼈습니다.

"잘 가라."

엄마의 혼잣말과 아빠의 한마디, 그 말들을 뒤로하고 차에 올랐다. 차 문을 닫고 나니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나에게 독립은 이제 더 이상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나에게 독립은 부모로부터 내가 나가는 것이 아닌 내 속에 있던 부모를 떼어놓는 일이었다.

-p.109

함께 있으면 부딪히기도 했지만 멀리 있으면 염려스럽고 보고픈 가족이었습니다.

공장에서 자질구레한 일을 하기도 하고, 집안에서 부업을 하기도 했던 엄마는 큰돈을 벌어오지 않더라도 집에서 아끼는 것으로 돈을 번다 생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알뜰하고 억척스럽지만 자식에게는 할 수 있는 한 베풀고 싶었던 엄마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허공을 바라보며 딸이 남긴 식은 밥을 찬물에 말아 김치 하나에 허기를 채웠습니다. 딸은 그런 엄마를 보며 속이 상합니다. 이제는 좀 편하게 지내도 좋으시련만.

저자는 글을 써가면서 부모를 알아갑니다. 현재의 부모님을 보며 과거를 떠올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적어나갑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내 부모가 왜 그랬었는지 알아갑니다. 그렇게 겨우 자식이 되어갑니다.

내가 나의 부모의 이야기를 더 열심히 써야 할 이유가 분명해졌다. 글이 가진 힘을, 연대를, 희망을 보았다. 가장 큰 공감과 위로는 그저 뻔한 대답이 아닌 자전적 담론임을, ‘나는 그랬다’고 꺼낸 한마디가 ‘나도 그랬는데’로 돌아오는 선순환임을 잘 안다. 너무 깊어 꺼내기 힘들었지만 팔을 뻗어 어딘가에 내놓았을 때, 박수 쳐주고 독려해주는 독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오늘도 열심히 부모님의 이야기를 쓴다.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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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잔혹한 어머니의 날 1~2 - 전2권 타우누스 시리즈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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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받은 모든 아이가 자라서 살인마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연쇄 살인마 사이코패스의 과거를 추적해 보면 학대 가정에서 자란 일이 많았다는걸. 이제는 많은 이들이 알 거예요.

'그래서 뭐 어쩌라고. 감히 내 자식이 자라서 살인자가 될 거라고 말하는 거야? 그리고 내 자식 내가 마음대로 하겠다는 데 네가 무슨 상관이야? 흥. 그리고 사실 이 아이는 내 친 자식도 아니거든. 내 소유물일 뿐.'라고 말할 것 같은 사람들을 뉴스에서 볼 때마다 화가 나고 슬픕니다. 어떻게 그런 행동들이 가능한 건지. 내 눈앞의 상대가 상처받고 울고 다치는데도 오히려 분노를 키워대며 자신이 이렇게 화내는 건 정당한 일이며 모든 것은 너 자신의 책임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거침없는 어른들을 보며 자랐기에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작은 학대만으로도 몸서리칩니다.

타우누스에는 어린아이를 상대로 한 나쁜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실제로는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마을 일 테지만 유독 넬레 노이하우스의 소설 속에서만은 그렇습니다. 보덴슈타인과 피아의 활약으로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경찰이니까요. 경찰은 사건이 발생해야 움직입니다. 만일 테오 노인의 고독사, 그리고 그의 개 벡스의 견사에서 발견된 뼈가 아니었더라면 이번의 사건은 조용히 묻혀 매년 한 명의 희생자를 내며 몇 십 년을 이어갔을지도 모릅니다. 범인이 무척 지능적인 사이코패스였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테오가 몇 명의 여성을 살해해 견사 아래에 묻고 양아들들과 친손자를 시켜 아무렇지도 않게 콘크리트 작업을 시켰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 명의 여성을 살해하고도 뻔뻔하게 제 죗값을 치르지도 않고 죽어버렸다고 생각했어요. 아니 어쩌면 누군가와 말다툼이나 몸싸움을 하다가 살해당해 방치되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사건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우리가 찾는 남자는 위험천만한 가학적 사이코패스입니다. 동정심도 없고, 겁도 없고, 양심도 없습니다. 아마 사춘기 전에 트라우마를 겪었을 겁니다. 가학적 사이코패스들은 어릴 때 감정적 방임과 폭력, 학대를 경험한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이, 청소년기에 또래로부터 받은 성적 공격이 원인이 되어 유발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꼭 기억해둬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연쇄살인범은 어떤 방법으로도 치유되지 않는 병든 사람들입니다. 정신의학자든 누구든 치료할 수 없습니다. 사이코패스를 막을 수 있는 건 더 심한 사이코패스뿐입니다.

-2권 p.141

범인은 매년 어머니의 날 테오의 집에서 발견된 시신들뿐만 아니라 몇 건의 범행을 더 저질렀습니다. 어머니의 날에 범행했던 것은 그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였습니다. 자신을 버린 어머니. 그래서 이렇게 지옥 같은 곳에서 살게 했던 어머니. 그래도 어머니의 날 만은 나를 만나주러 왔던 어머니. 그래서 사랑한다 믿었던 어머니가 어느 날부터 갑자기 자신을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직접 찾아가기로 했죠. 그리고 어머니와 같은 사람에게 벌을 주기로 했습니다.

한편, 최근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얼굴도 모르고 지냈던 아버지를 찾았던 피오나는 그에게서 뜻밖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들 모두 그녀의 생물학적 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는데요. 친엄마를 찾기로 한 피오나는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었던 남자에게서 얻은 단서를 토대로 엄마를 찾아 나섭니다. 저는, 피오나의 이야기가 이 연쇄 살인극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접접이 드러났을 때, 기쁘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으며 두렵기도 했습니다.

역시 넬레 노이하우스였습니다. 초기 작품의 산만함은 이미 지난 작품에서 걷어버려 지금은 마치 장편 영화를 보는 것처럼,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명확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긴장감과 몰입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는데요. 두 권이지만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아 금방 읽을 수 있을 거라는 처음의 예상과는 달리 제법 시간이 걸렸습니다. 머릿속에서 돌아다니는 스릴과 서스펜스가 저를 지치게 했기 때문입니다.

읽으실 예정인 분께는 부디 등장인물 메모를 하며 보시라 권합니다.

권두에 이미 이름과 간략한 소개는 나와있지만 북유럽 이름이 친숙하지 않아 누가 누구였는지 헷갈릴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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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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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명화를 보는 눈이 없기에 다른 이의 눈과 지식을 통해 그림을 만날 수 있는 이런 책을 아주 좋아합니다. 전문인으로는 <무서운 그림> 시리즈로 유명한 나카노 교코의 스토리텔링도 좋아하고 <법의학, 예술작품을 해부하다> 같은 문국진 교수의 법의학 접근 스토리텔링도 좋아합니다. 기자 출신 변호사 양지열의 <그림 읽는 변호사>도 좋아했죠.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인 영국의 유명한 작가 줄리언 반스는 어떤 이야기를 이 책에서 풀어낼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첫 번째 세네갈 탐험대 이야기부터 이 책은 보통이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줄리언 반스의 필력은 무엇인가요. 이제껏 제가 그의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니. 좌우가 크게 달라져 초점이 맞지 않는 시력에 제 체온도 못 지키는 비루한 체력임에도 그는 씩씩하게 이야기 속으로 저를 끌고 갔습니다.

그림이 나오기도 전 배경 스토리를 이야기하고 있었을 뿐인데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지는 참혹함이 저를 점점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오히려 그림이 등장하자 상상보다 뗏목의 규모가 작아 놀랐지 뭔가요. 아니 겨우 저런 배를 타고 탈출하려고 했단 말이야? 그들의 비극은 예정되었던 것이로군 하며 혼자만의 생각을 늘어놓았습니다.

스토리를 가득 안고 감상하는 그림은 그 느낌이 달랐습니다. 괴리가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고 잘 표현했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괴리는 줄리언 반스의 설명을 따라가다 느낀 것이 아니라 반스도 이야기한 부분이지만 화가의 표현, 그러니까 굶어죽거나 죽어가는 사람인데 너무 근육질이라는 그런 부분이었습니다.

확실히 스토리를 담고 그림을 보니 느낌이 달랐습니다. 이것은 나가노 교쿄의 책에서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지만, 반스의 이야기는 남달랐달까요. 평소와는 다른 맛이 있었습니다.

계속 그런 패턴으로 이어지는가 하며 기대했는데,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각 챕터마다 조금씩 다르게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사적인 산책'이었죠.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할 때도 있고, 때로는 작가의 이야기를 많이 할 때도 있었으며 시대적인 배경이나 사회 분위기, 미술 평론가의 흐름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미술에 관해 박학다식한 이야기 잘 하는 삼촌이 여기저기를 데리고 다니며 작품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림에 관해 이렇게 많은 설명을 들은 적이 있었던가..... 홀린 듯 그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영국 작가 알랭 드 보통은 반스를 가리켜 “소설 형식의 혁신가”라고 했다. 반스의 소설들이 거의 대부분 혼성적인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말이 무색하지 않게 이 책의 에세이들도 형식 면에서 그런 특징을 갖추고 있다. 재미와 함께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지식. 여기에는 전통적인 비평적 이해에 따른 부분도 있고 사적인 것도 있다. 서양 문화의 정점에 올라 있는 저자의 ‘아주 사적인’ 감수성과 시각으로 펼쳐지는 미술 이야기와 화가의 인생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누구든 그의 지식과 감수성에서 예상외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미술사가나 미술비평가가 아닌, 또는 그런 척하는 사람의 글이 아닌, 순수한 미술 애호가인 소설가의 사색. 미술관을 산책하며 작품과 화가에 대한 수준급 미술 에세이를 한자리에서 재미있게 두루 읽기 원한다면 이만한 책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p.404~p.405 (옮긴이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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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송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윤해서 / arte(아르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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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플때면 꿈결처럼 들리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나 자신의 목소리일지도 모르고 또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이 시간의 것이 아닌 목소리일지도 모르죠.


윤해서 소설 <암송>의 등장인물들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듣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게 하나로 모이는 공간의 소리인지도 모릅니다.

보통 이 책의 주인공은.... 하고 말문을 트고 싶은데 이 책에서의 주인공은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공간속에 흩어져있습니다. 각기 다른 공간에 몸을 늘어뜨리고 부유하듯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두 발 바닥에 굳건히 딛고 서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만일 다른 장르의 소설이었다면 애길 정도가 신발끈 질끈 매고 강하게 박차고 일어났었을 것 같은데, 슬픔과 한이 가슴에 맺혀있으니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 책에는 멀리 떨어진 두 나라 독일과 한국의 여덟 남녀의 목소리가 들어있습니다. 이들은 생존자이기도 하고 생존하지 못한자이기도 합니다. 슬픈 사연들 속에서 선주와 미소는 삶과 죽음을 경계로 나눌 수 없는 공간에 떠있습니다. 그리고 목소리를 듣습니다. 떠도는 목소리가 끝없이 밀려와 편안히 휴식할 수도 없는 공간입니다.


제목이 왜 <암송>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에게는 어려운 책이기도 했고요.

길지도 않은 포스팅에 모르겠다는 말을 참 많이도 썼습니다. 읽고나서 곰곰히 생각해보는데, 어딘가 마음이 아리고 슬픈건 맞는데 제 마음이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재독 피아니스트 애길이 결국 만나지 못한 한국의 쌍동이 딸들 때문인지, 독일에서 낳은 아들 모로가 미소를 찾아 갔던 그 마음때문인지, 미소를 지키는 현웅때문인지. 무엇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은 그렇습니다.




무서워요. 내가 모른 척하고 있는 걸까 봐.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는데

모르고 있는 걸까 봐.

나한테 이 목소리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는데 내가 그걸 계속 못 알아차리고 있는 거면 어떡하죠?



아르테의 작은 책 시리즈는 신기한 매력이있습니다.

평소에 제가 읽는 책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어서 읽고 이해하기가 힘든데, 그래도 자꾸 읽고 싶어집니다. 

지난번의 책들도 그랬고 이번의 책도 그렇습니다.

<암송>은 세 번 읽었습니다.

아, 그래서 암송일까요.

이러다 이 책을 외워버릴 지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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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징비록 - 역사가 던지는 뼈아픈 경고장
박종인 지음 / 와이즈맵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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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민족 유산, 훌륭한 위인이 많았던 조선은 왜 망했을까요. 처음엔 잘 나갔었지만 흥선대원군이 역사에 등장할 때쯤부터 갑자기 흔들흔들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버렸던 걸까요?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이 그 모든 것은 과거의 잘못이 반복되었기 때문입니다. 소 잃은 후에라도 외양간은 고쳤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조선이 망했다. 일본은 흥했다. 흥한 일본이 조선을 망가뜨렸다. 500년을 이어가던 조선이 갑자기 망했다. 총 한 번 쏘지 않고, 전쟁 한 번 치르지 않고 도장 몇 번 찍어주고 망해버렸다. 도대체 왜.

-p.6

저도 내내 그게 의문이었습니다. 다른 나라가 식민지가 되는 과정과는 뭔가 다르다고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임진왜란 때처럼 총칼 앞세우고 들어와 모든 걸 파괴하며 이 땅 내놓아라!! 한 것도 아닌데 어째서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그런 일들을 겪었어야 했는지 말입니다.

교과서에 적혀 있는 대로라면 조선왕국은 지금도 찬란하게 역사를 선도하며 생존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왜 조선이 망했는지, 알지를 못한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착한 조선이 어느 날 악한 일본에 억울하게 망하고 말았다고 알고, 그리 살고 있다. 그래서 좋은가.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또 망할 것인가. 18세기 외교관 조명채처럼 통분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일본을 쪽발이라 비하하며 통쾌한 정신 승리를 구가하며 살 것인가.

- p.6

<대한민국 징비록>을 읽으려면 반드시 프롤로그를 읽어야 합니다. 정독해야 해요. 간혹 작가의 말이나 프롤로그를 빼놓고 읽는 분이 계시던데 이 책은 절대 그러지 마시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자의 집필 의도를 마음에 새기지 않고 읽는다면 화를 내며 독서를 중단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정독하고 읽던 저조차 책의 중반쯤 되니 저자의 의도를 잊고 짜증을 내기 시작했거든요. 화를 내기 전까지는 문장이 매끄럽고 진행이 흥미로워 저도 모르게 술술 읽고 있었어요. 심지어 공부 중인 아이에게 읽어주기까지 했죠. 역사를 말하며 정치 비판도 나올 듯해서 잔뜩 긴장했지만 이내 잊어버리고 집중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안 좋았던 과거, 답답했던 것들을 신랄하게 늘어놓은 탓에 뭐야 이 사람. 까도 이렇게 깔 수 있나. 그래도 우리가 그 정도는 아니었던 거 아니야? 하는 마음에 기분이 나빠지고 말았습니다.

조선인들은 꽉 막히고 답답해서 서양인과 신문물에 대해 쇄국하였고 중원에 사대하였으나 공학이나 과학에 대해 무지하였다고. 그리고 일본은 오픈 마인드라서 모든 걸 잘 받아들이고 연구하고 개혁하였기에 발달이 빨랐다고 찬양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읽다가 기분이 나빴어요. 하지만, 요지는 그게 아니잖아요.

국뽕을 눈에 차고 읽으면 당시 성리학을 근거로 이것만이 세상의 근본이요 최고라고 외치던 조선의 선비, 학자, 왕과 다를 게 무언가요.

500년 동안 조선 지배집단, 권력집단이 어떤 방식으로 잘못된 선택과 판단으로 나라를 망가뜨려갔는지, 그 경로를 짚어봤다. 스스로를 정의의 화신으로 규정해 힘과 도덕과 돈을 독점했던, 그리하여 감시할 주체 없이 완벽하게 권력을 구가하며 공동체를 허물어뜨린 지식동재의 화장을 지워보았다. 그 경로에서 이웃나라 일본과 마주쳤던 방식도 샅샅이 구경해보았다.

그래서 독자를 불쾌하게 만드는 기분 나쁜 책을 썼다. 대한국인이 읽었으면 하는 '21세기 징비록'이다. 따라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기분이 더러울 것이다. 우리는 찬란한 역사에 대하여 배웠다. 훈민정음과 고려청자와 금속활자와 성리 철학과 애민정신으로 무장한 정치와 슬기로운 성왕들에 대해 배웠다. 실패사는 배우지 않았다. 조선 망국사를 분석하지 않으면, 또 우리는 패배한다. 똑같은 패턴으로 또 패망한다.

-p.7

책을 끝까지 읽은 후 처음으로 돌아가 프롤로그를 읽다가 '당신도 기분이 더러울 것이다'라는 구절을 보고 제가 기분이 더러운 건 작가의 경고를 잊었기 때문이라는 걸 떠올렸습니다. 경고를 했음에도 연속된 비판을 읽으니 어쩐지 우리 편, 내 가족에게 누가 자꾸만 뭐라고 한 거 같은 기분에 마음이 까칠해졌었나 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뿐만 아니라 청의 경우(아편 전쟁)에도 당한 놈이 잘못되었다는 식의(자만, 무방비) 이야기를 하니 마음에 안 들었었습니다. 혹시 이 사람 방비하지 않은 쪽만 뭐라고 하는 건 아닌가 하였습니다.

물론 방범을 전혀 하지 않아서 도둑이 들었다면 집주인의 안전 불감증도 문제이지만 가장 큰 잘못은 도둑이 저지른 게 아닌가요. 그래서 화가 났습니다. 그래도 다시 생각해본다면, 만일 제가 여행을 간 사이, 아이가 현관문이고 창문이고 모두 열어놓고 친구 집에 파자마 파티를 하고 다음날 왔는데 집이 털렸다거나 홈리스가 들어와서 자리 잡고 살림을 차렸다면 저는 도둑이나 침입자에게 화를 낼 뿐만 아니라 문 열고 나간 아이에게도 불같이 화를 내겠죠.

이 책은 그런 책입니다. 저자는 도둑과 방비를 하지 않았던 양쪽에 다 화를 내고 있는 겁니다.

방비라고 하니 쇄국으로 오해하실지도 모르겠는데요. 그 반대입니다. 세상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고 발전시키기는커녕 백성과 가난한 선비를 우민화하고 일부 지식층의 것이었던 성리학만을 숭배했던 그들을 탓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현재의 세계정세, 일본과의 관계에서 어쩐지 과거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는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류성룡이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에서 뼈아픈 과거의 기록 <징비록>을 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300년도 지나지 않아 조선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여 결국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 대한민국은 또 과거를 반복하려고 합니다. 어떤 방향으로 키를 돌리느냐, 그것이 옳은 선택이었느냐 하는 건 지금 당장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금은 광산을 폐쇄하고 해시계와 과학 기술을 파묻어버린다거나 서점을 없애는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원래 용맹했고, 우리네 훌륭한 예술가와 장인들은 좋은 물건을 만들었다. 우리는 원래 바람과 추위와 눈보라를 굴복시킨 끈기와 불굴의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멈춰 있는 고대 일본 역사에 숨결을 불어넣어 준 찬란한 문명국이었다. 이제 다시 한 번 '각성'을 통해 그 상실했던 모든 것들을 부활시킬 일만 남았다. 무능한 권력자들이 초래한 식민과 전쟁의 역사를 딛고, 각성한 호민이 만든 대한민국을 이어가자.

-p.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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