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 맥주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모리사와 아키오의 작품을 많이 읽어 본 것은 아니지만, 작품의 제목들 만으로도 서정적이며 잔잔하고 깊은 여운과 감성을 자아내는 시인과 같은 작가라고 생각해 왔었습니다. 그렇기에 <푸른하는 맥주>라는 작가의 여행 에세이 집을 발견했을 때 한편의 시와 같은 아름다운 풍경과 감성이 가득 들어있겠지.. 하며, 가끔은 잔잔한 것도 읽어야 한다고, 이 책을 비타민으로 삼기로 하여 읽었습니다. 대단한 착각이었죠.

빵! 터졌습니다. 진짜야? 만화에서만 나오는 그런거 아니야?

황당한 에피소드들이 잔뜩.

이런 비교해서 미안하지만 오쿠다 히데오의 여행 에세이보다 웃겼습니다. 무계획, 무대책의 장난꾸러기 젊은이들이 겪는 사건들. 소설이 아니라서 더 웃겼습니다. 뭐 이런일들이 다.

노천탕에서 수백마리의 등에 떼에게 습격받고 난투를 벌이기도하고, 비박을 하다가 죽을 뻔 하기도하고, 직접 노천탕을 만들어 보겠다고 용스다 낭패를 겪기도하고, 막무가내 여행중에 만난 특이한 사람들까지. 코끝을 찡하게 울리는 감동 같은 건 없습니다. 지금은 40대인 작가가 10대 후반에서 20대까지 신나게 돌아다니며 겪었던 여행이야기들이 책을 읽다가 데굴데굴 구르게했습니다. 답답하고 우울한 마음을 서정적인 글로 날려버리려고 했던 처음의 작전은 대 실패 했지만, 음하하하하하고 웃으면서 날려버렸으니 또 다른 성공이네요. 자세히 이야기 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시원한 맥주를 준비하시고 이 책에 빠져보세요. 유쾌합니다.

*단, 후유증 주의.

** 제가 겪고 있는 후유증.

라바를 보면, 모리사와가 생각난다.

오토바이를 보면, 모리사와가 생각난다.

목욕탕 표시를 보면, 모리사와가 생각난다.

심지어 길에서 응가를 발견해도 모리사와가 생각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냉면열전 - 담백하고 시원한 한국인의 소울 푸드
백헌석.최혜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냉면성애자라면 크게 반길 책입니다. 냉면에 대한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으니까요. 레시피만 빼고요. 레시피가 있다한들 진짜 맛을 내기도 힘들거니와 사먹든지 인스턴트를 쓰면되지 뭔 고생을 사서하냐고 생각이 들 터인즉, 일단은 책을 펴고 읽기부터합니다.

 

그러고보니 대학생때였던 것 같은데, 친구들이 냉면을 해달라며 집에 놀러오곤 했었습니다. 제가 내건 조건은 단 두가지, 재료는 너희들이 사오고 설겆이도 할것. 난, 요리만 한다!!! 친구들이 재료를 사가지고 오는 동안 나는 고춧가루, 마늘, 깨, 꿀등으로 다대기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고기를 삶고 육수를 식히고 갖은 준비를 하는 동안 친구들은 만화책을 보거나 책을 읽었습니다. 다섯명이 모여도 다들 조용. 완성된 냉면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습니다. 과연 우리 모임은 식도락이었을까요 아니면 독서회엿을까요. 정답은 그냥 오타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친구들 생각도 나고 냉면 생각도 납니다. 여름 다 지나서 무슨 냉면이냐구요. 모르시는 말씀 냉면은 원래 겨울이 제철이에요. 메밀은 10월이 제철인데, 지금 수확해 겨울이 되면 구수하며 은은한 제향을 뿜어냅니다. 그러니 겨울이 최고 일 수 밖에. 뿐인가요. 동치미는 겨울 무로 담근 청량한 김치가 아닌가요. 메밀, 그리고 동치미는 냉면의 기본중의 기본. 우리 조상님들은 그렇게 냉면을 즐겼었죠.

그럼 언제부터 먹었던 걸까요? '냉면'이라는 단어가 처음 문헌에 등장한 것은 조선 중기인 17세기 초라고 합니다. 그러니 오래전 부터 조상님들과 함께 한 모양인데, 19세기말 김군근의 그림 <국수 누르는 모양>이라는 그림을 보면 국수 뽑는 일이 아주 보통 힘든 일이 아닌 모양입니다.

 

힘센 장정 두명이 온 힘을 다해 눌러도 얼마 뽑지 못합니다. 그러던 것이 1932년 철공업자 김규홍이 무쇠 제면 기계를 발명함으로써 냉면은 한발짝 더 서민에게 가까이 다가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1875년 독일에서 냉동기 개발로 1920년 부산에 생긴 제빙 공장을 시작으로 석빙고의 시대는 막을 내렸고 겨울 별미 냉면을 여름에도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가지 조금 아쉬운 것은 1908년 MSG의 출현으로 이듬해 아지노모토가 판매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서도 대대적인 홍보가 이루어져 1930년대 이후 우리나라 거의 모든 냉면 육수에 아지노모토가 사용되어 맛이 바뀌고 평준화 되고 맙니다. 그러니 슬플 수 밖에요.

 

허영만의 <식객>에서도 냉면 이야기가 나옵니다. 무척 깊이있게 다루면서 실향민의 추억과 아픔도 함께하는데, 냉면이란 그 면발의 질김처럼 각자의 추억도 질기게 간직하는 것 같습니다. 애인과 맛있게 먹었던 냉면도 있었을 것이고, 엄마가 만들어 준 냉면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저처럼 친구를 추억할 수도 있겠지요.

올 겨울에는 동치미를 좀 담궈볼까요? 여의치 않다면 무를 얇게 썰어 냉면 무라도 만들어 두어야겠습니다. 형식을 다 갖추지 않아도 뭐 어떻습니까. 내 손맛의 냉면은 딸에게 엄마의 냉면으로 질기게 남을텐데....

 

이 책은 냉면의 역사, 문헌, 유명 냉면집 이야기까지 냉면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셜리 잭슨 지음, 성문영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신의 부모와 형제를 살해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콘스턴스 블랙우드의 동생 메리 캐서린 블랙우드가 이 책의 주인공이자 화자입니다. 그녀는 처음부터 자신의 소개를 하지요.

 

내 이름은 메리 캐서린 블랙우드. 열여덟살이고 언니 콘스턴스와 같이 산다. (중략) 언니와 나를 제외한 우리 가족은 전부 죽고 없다.

 

자신을 18세라고 소개했음에도 몇장 넘어가기도 전에 그녀의 모습을 10대 초반, 혹은 그보다 더 어리게 상상하고 맙니다. 아이처럼 구는 것은 아니만 어딘가 모르게 현실성이 부족하며 공상으로 가득찬 그녀의 말과 행동 때문일 것입니다. 육년전 일가족이 모두 한 식탁에서 식사를 하다 설탕에 섰인 비소 중독으로 죽어버린 사건에서 - 삼촌은 기적적으로 살아남고, 언니는 설탕을 먹지 않았고, 메리는 자기방에서 근신중이었습니다. 요리를 한 것도 언니, 설탕을 먹지 않는 것도 언니, 게다가 사건 직후 설탕통을 말끔히 씻어버린 언니는 법정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범인으로 여기며 따돌립니다. 그 사건으로 사람들에게 시달리던 언니는 광장 공포증으로 저택 밖으로는 절대 나가지 않았으며, 삼촌은 정신병자(라고 하는데 증산은 치매와 유사합니다.)에 반신불수가 되었고, 당시 어렸던 메리는 그 사건 당시의 정신연령에서 성장이 멈춘 듯 합니다. 그러나 한없이 상냥한 언니를 자신이 반드시 지켜야한다는 사명감과 삼촌을 돌보는 착한 아이의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그냥 착하다고하기엔 부족한 것이 어린아이가 엄마를 지킨다는 나약한 자긍심 같은 것이라고 하면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화자가 이런식이니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 중 어떤 것이 진실이고 허구인지 경계가 모호하기도 하고 주관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많이 듭니다. 왜곡 되어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어쨌든 그런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스스로 판단해가야합니다.

 

폐쇄적이지만 단란하게 살아오던 자매 앞에 찰스라는 사촌이 나타납니다. 메리에게 찰스는 자신의영역을 침범한 침입자였던 것입니다. 마녀, 즉대인간 같은 동경하는 10대 소녀는 고양이와 같은 습성으로 자신의 공간을 침범한 찰스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언니가 그에게 친근하게 구는 것도 싫습니다. 찰스는 역시 좋은 사람이 아니니까요.

이야기는 점점 몰락과 붕괴를 향해나갑니다. 그러나 메리는 점점 행복해지지요.

 

뚜렷한 무엇이라는 것은 부족합니다. 왜 가족들이 죽었는지, 어째서 각 캐릭터들은 그런 행동을 하는지 설명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세상 모든 일이 논리적으로 설명되고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가 눈여겨 보았던 단어는 '빵','빵집','시골빵집'이었습니다. 식생활과 섭생환경에 관심이 있는지라 먹거리에 관한 책인가 싶으면 자연스레 눈이 갑니다. 하지만, '자본론'이라니. 경제의 '경'자도 모르고 돈의 순환도 모르고 예금과 적금의 차이만 겨우 아는 저로서는 '자본론'이라는 단어는 무시무시하게 들릴 수 밖에요. 그런데, 이 무서운 단어를 학교에서 들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아, 마르크스. 예전엔 칼 막스 혹은 맑스였던가. 아무튼 뭔가 깊이 알려고 했다간 어디론가 잡혀가고 말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책이었어요. 예전에는. 그러니 무슨 이야기가 써 있는지 알지도 못한 체 마르크스는 파파스머프 같은 사람일거야...라고 생각해버렸습니다.

 

오카야마현에서(거기가 어딘지도 모릅니다)전철로 두시간 넘게 걸리는 산속의 빵집 '다루마리'를 운영하고 있는 와타나베 이타루가 이 책의 저자입니다. 전날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새벽거리에서>의 주인공이 와타나베인 것은 우연중의 우연입니다. 읽기 시작한 건 이쪽이 먼저거든요. 시골 고택에서 빵을 굽는다니, 멋드러진 종가집 고택 같은 분위기는 아니고 옛날 옛적 방앗간을 하던 자리랍니다. 어쩐지 음침할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었지만 87페이지, 그들의 가족이 빵집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니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문앞에서 살짝 바람에 나부끼는 포렴의 빛깔도 매혹적인데다가 칠판에 パン屋(パンや) タルマーリー 라는 이름과 OPEN  木金土日. 아니? 잘못 본 걸까요

365일 쉬는 날이 없는 우리네 일반 빵집과는 달리 4일만 일합니다. 주인이 게을러서인가요? 이 빵집의 좌우면 비슷한 철학이 있는데, 그것은 이윤을 내지 않기라고 합니다. 4일만 일한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이윤이야기를 하다니, 이야기가 샛길로 새버린건가...라고 생각하신다면 끝까지 들어주세요. 이윤을 내지 않는 다는 것은 장사하는 사람이 맨땅에 헤딩하기라고 생각이 되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장사라는 것은 이윤을 남기기 위함이라는건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지만, 빵집 주인의 철학은 달라요.

이윤을 남기지 않겠다는 말은 망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부를 축적하지 않겠다는 것이랍니다. 수입과 지출을 엇비슷하게 맞추고 손익분기점을 넘는 것이 중요하다고하네요. 이윤 제로. 월급도 투자의 일부로 생각하고 손익분기점만 넘기면 무리없이 빵을 구울수 있다고 합니다.

이 가게에서 이윤을 남기는 건 쉽다고 합니다. 영업 일수를 늘려 빵을 더 팔면 되고, 천연균 같은 어려운 걸 버리고 이스트를 쓰면 됩니다. 그러나, 재료비 절​감 같은 쉬운 길을 버리고 노동시간 절감으로 종업원 스스로도 노동력 착취가 아닌 기술 연마, 스스로의 기쁨으로 일할 수 있는 장인이 되어가는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기저기 태그를 붙여가며 읽었지만, 아직도 모르는 것 투성입니다. 빵집 아저씨의 경영 철학쯤으로 생각하고 쉽게 덤벼들었으나 그보다 더한 가르침들이 이 책에 한가득 있었습니다. 한 번 읽어 알 수 없는 것들이 말입니다. 이 책이 어째서 추천도서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이 빵집을 차리는데 기본 정신이 되었지만, 사실 아직도 자본론을 읽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이유는, 그냥 어려울 것 같아서. 하지만, 미하일 엔데의 <엔데의 유언>은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렵겠지만.



`다음번 투자를 위해 이윤은 꼭 필요하다.`라고들 하는데 그것은 결국 생산 규모를 키워서 자본을 늘리려는 목적 때문에 나온 말이다. 동일한 규모로 경영을 지속하는데에는 이윤이 필요치 않다.

p.19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벽 거리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륜이란 말 그대로 윤리에 어긋나는 것. 그러므로 불륜 결사반대.

남이 해도 불륜. 내가 해도 불륜.

운명같은 사랑, 어쩔 수 없는 끌림 같은거 한순간의 호르몬 작용일 뿐.

불륜을 몸서리치제 싫어하는데엔 무슨 트라우마 같은게 있나 곰곰히 생각해봐도 뭐 딱히 기억에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동반자를 두고 한눈을 파는건 의리가 아니죠. 그런데 요샌 왜 그런 인간들이 많은걸까요? 결혼생활 몇 년차 이상이면 애인은 필수라며 합리화 하는 사람들. 가볍게 즐기는 관계인데 뭐 어떻냐는 사람들은 일단 사람으로 안보고 있으니 제껴두기로 하고, 자신들은 진정으로 사랑하니깐 다르다며 항변하는 사람들. 그럼, 예의 바르게 서로의 가정을 정리하고 새출발하시라구요.

 

<새벽거리에서>의 주인공 와타나베와 아키하는 불륜커플입니다.

같은 회사의 주임과 1년 계약직 사원으로 가끔 밥먹고 이야기 나누던 사이에서 어느 샌가 그런 관계가 되어버렸습니다. 와타나베의 절친 신타니는 불륜의 허무함에 대해 이야기하며 말려보고 이혼만은 안된다고 강조하지만, 와타나베는 점점 쓰디쓴 맛에 중독되어갑니다. 두근두근. 그런 심장 떨리는 긴장이나 스릴을 좋아하지 않는 저로서는 왜 저렇게 괴로워하면서 만남을 지속해가는지 의문이지만, 본인은 진짜로 진지합니다. 언제까지 아내인 유미코를 속일 수 있을까. 게다가 알고보니 아키하는 15년전 벌어진 살인 사건의 제 1용의자 였던겁니다. 공소시효는 만료되어가는데, 그녀는 과연 무죄인 것일까요. 게다가 그들의 연애 시효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중반까지는 불륜임에도 참 귀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랫도리 사랑이 아닌 가슴으로 하는 사랑이라 불륜을 싫어하는 저마저 둘의 사귐을 로맨스로 볼 뻔했으나 와타나베의 가족들이 중간중간 등장해주는 바람에 불륜이라는 것을 확실히 인식하며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소설은 스릴러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슬픈 불륜의 끝이야기라고하면 좋을 것 같아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