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영미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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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좋아합니다. 고등학생 때 영화관에서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단체 관람했었는데요. 라임라이트였는지, 독재자였는지, 모던타임즈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영화를 보다가 눈물을 흘리는 저를 보고 친구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었습니다. 코미디 보면서 울다니, 괴짜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슬펐던걸요. 보이는 슬랩스틱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어른이니 모두 다 알 거예요.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은 채플린의 영화를 닮았습니다. 웃긴데, 그 안에 들어있는 게 너무나 많습니다. 페이지마다 의미가 있습니다. 긴 소설도 아닌데 읽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멈칫 멈칫 문구를 다시 살피게 됩니다. 채플린의 경쾌한 스텝처럼 죽음을 눈앞에 둔 '나'도 경쾌합니다. 그러나 '나'의 눈빛도 채플린의 그것과 같아서 가벼이 넘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의 주인공 '나'는 잦은 두통으로 병원을 찾았습니다. 뇌종양 4기. 남은 생명은 길어야 반년, 하지만 일주일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더 황당한 건 악마가 찾아와서 죽는 날이 내일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딱히 크게 미련은 없지만, 죽고 싶지도 않습니다. 겨우 서른인데. 악마는 한가지 제안을 합니다. 세상에서 뭐든 한 가지만 없앤다. 그 대신 하루치 생명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없앨 것은 악마가 정하고, 없앨지 말지는 '내'가 선택합니다. 그렇게 해서 첫날 전화를 없애는 것으로 하루치 생을 얻습니다. 저 역시 휴대전화의 필요성을 그다지 못 느끼는 데다가 휴대폰이 인간들을 폰 피플(셀- 스티븐 킹)로 만드는 것 같아서 휴대전화가 사라지는 것쯤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휴대폰이 사라진다는 상상만으로 패닉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겠지만요.

 

 

둘째 날은 영화가 사라졌고, 셋째 날엔 시계가 사라졌습니다. 내 목숨과 바꿀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것들도 아니고, 없다고 해서 크게 불편하지 않을 텐데, 뜻밖에 그 상실감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전화를 없앰으로써 휴대전화가 보급되기 전의 두근거림이나, 소중한 것들을 떠오르게 했지만, 반대로 전화가 있어서 전해졌던 것들이 사라졌습니다. 그녀와의 대화도, 여행도, 사랑도 추억도. 아니, 애초에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는지조차 의문입니다. 전화를 달가워하지 않았던 그녀는 그와의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있는 듯했으니까요. 그렇게 하루가 지났습니다.

 

 영화가 없어진 날. 영화와 함께 했던 추억들도 함께 날아가 버렸습니다. 첫사랑의 그녀가 무척이나 사랑하던 영화를 없애버리고 목숨을 연장할 만큼 그에게는 영화보다 생명이 중했지만, 사실은 텅 빈 스크린 위로 자신의 기억들이 지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희로애락뿐만 아니라 어릴 적 부모님과 보았던 E.T의 자전거 신도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와 사이좋게 행복하게 지냈던 적도 있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몇 년 동안이나 아버지와 연락하고 지내지 않았다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이제는 전화를 드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첫날. 전화를 없애버렸으니까요.

 

세 번째 날, 그는 시계를 없앱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인간에게나 존재하는 것이므로 없어진다고 해도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시계 수리공이지만, 그런 건 자신과는 상관없으니까요. 하지만, 시계가 사라진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을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우리는 인간이니까요. 과거의 추억도 현재의 삶도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희망도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소설에는 크게 셋의 죽음이 드러나있습니다. 오래전 죽은 고양이 양상추. 사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 그리고 겨우 목숨을 이어갈 뿐인 '나'. 그 셋의 죽음은 다른 듯 닮아있습니다. '시간'의 개념이 없으므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을 수 있었던 고양이 양상추.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잃어야 한다며 생의 섭리를 지키며 다정했던 어머니, 죽음이 두려워 세상의 것을 하나씩 없애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려는 '나'. 세상의 것들 중 겨우 세 가지를 없앴을 뿐인데, 그것들이 주는 의미들과 삶과 죽음의 섭리를 깨달아갑니다. 이제 악마는 세상에서 고양이를 없애자고 합니다. 어머니가 키우다가 이젠 내가 키우고 있는 고양이 양배추가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뭔가를 얻으려면, 뭔가를 잃어야겠지."

어머니의 말을 떠올렸다.

나는 내 생명과 맞바꾸는 조건으로 이 세상에서 전화와 영화와 시계를 없앴다.

그러나 고양이는 없앨 수 없었다.

고양이 대신 자기 생명을 포기하다니, 바보 같은 남자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 말이 맞다. 어리석기 짝이 없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에게서 뭔가를 가로채 생명을 연장하는 걸 행복이라고 여길 수는 없었다. 그것이 태양이든 바다든 공기든 고양이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에서 뭔가를 없애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내 나름으로 타인보다 조금 짧게 주어진 나의 수명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때문에 나는 머지않아 죽는다.

 

p.193-194

 

 

 

'나'는 고양이를 없애는 대신 '내'가 사라지기로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편지를 씁니다. 긴 유서를.

책의 서두에 이 글은 '내가 당신에게 보내는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 나의 유서'라고 밝힙니다. 저는 그것이 독자인 저에게 하는 말인 줄 알았었는데, 아버지에게 보내는 긴 글이었던 것입니다. 독자로서 책을 덮은 후, 아버지로서 (아니 부모로서)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무뚝뚝해 자기감정을 표현할 줄 모르는 아버지이지만,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내가 그리고 아들이 맡기고 간 고양이 양배추의 머리를 하염없이 쓰다듬는 모습이 어른거립니다.

 

죽기 전에 살아서 못다 한 것들을 해치우고 미련 없이 죽는다는 버킷 리스트 작성보다 살아있는 지금, 소중히 생각해야 할 것들이 내 주위엔 참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쓸모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누가 정하는 것인가요. 길가의 돌멩이 하나도 그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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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 속의 세계사 창비청소년문고 10
이영숙 지음 / 창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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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식탁 위의 세계사 후속작입니다.

역시 엄마가 옷장을 열면서 아이에게 말을 건네듯이 다정한 말투로 세계사를 이야기해줍니다.

중학생때였나, 영어교과서에 나왔던 골드러시와 청바지 이야기를 시작으로 트렌치코트와 세계 1차대전의 비참함을, 비단으로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넥타이와 양복으로는 킹스 스피치 조지 6세, 윈저공 이야기를 합니다.

읽는데 한시간도 안 걸렸어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고, 쉽게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지요.

읽는데 걸린 시간만큼 리뷰도 짧네요. 길게 이야기 할 것도 없어요. 재미있고, 다정한 세계사책입니다.

청소년들에게 추천할래요. 재미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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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의 전설
데이비드 밴 지음, 조영학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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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은 경쟁관계 일 것입니다. 오디푸스 컴플렉스는 젖혀두더라도 한 무리안에서 서열 짓기를 필요로하는 수컷의 본능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사랑하지만 경계하는 사이. 아들이 자라서 가정을 꾸리게 되면 그제야 아버지와 친구가 됩니다. 전우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관계이기 때문에 어린시절 갑작스런 아버지의 부재를 겪게되면 아들의 가슴엔 큰 생채기가 남습니다. 자신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자책도 합니다. 입으로 내어 말하진 않더라도.

 

<자살의 전설>의 저자 데이비드 밴도 그랬나봅니다. 어린시절 아버지의 외도로 부모가 이혼하고 어머니쪽에서 생활하였으나 열세살 한창 사춘기때 아버지가 알래스카에서 함께 지내자고 했습니다. 방학마다 놀러가는 것도 때로는 즐겁지 않았는데, 함께 지내자니! 데이비드 밴은 거절했고, 그 직후 아버지는 자살했습니다. 두번째 결혼 중에도 간통을 저질러 결혼 생활을 깨뜨린 주제에 두번째 부인에게 사랑한다고 애원하며 통화하다 자살했습니다. 그녀가 살인과 자살로 인해 양친을 잃은지 11개월만에.

아무리 생각해도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아버지인데도 작가는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만일 자신이 알래스카에 가서 함께 사는 것에 동의했더라면 아버지는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며 괴로워했습니다. 만일 함께 지냈다면 - 이란 가정에서 나온 소설이 '수콴섬'이었습니다. <자살의 전설>에는 실제의 사건을 바탕으로 한 허구의 소설 여섯편이 들어있는데, 그 중간의 중편이 '수콴섬'입니다.

주인공 로이는 아버지의 청을 거절 할 수 없어서 함꼐 수콴섬에서 거주하게 됩니다. 그 곳은 알래스카 남동쪽, 틀레바크 해협의 한 작은 섬으로 웨일즈윌더니스의 사우스프린스 북서쪽이고, 케치칸에서는 약80 킬로미터 거리였습니다. 실제로 어디쯤인지 궁금해서 구글 지도에서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케치칸은 찾았으니 대략 저기 많은 섬들 중 하나겠구나 싶었지요. 아무튼, 이웃마을은 커녕 이웃집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도로도, 숲길도 아무것도 없는 좋게말하면 자연 그대로에 가까운 섬이었지만, 로이의 눈을 빌려 대신 본다면 온통 Gray인 세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어째서 아들과 함께 생활하려 했을까요. 제가 본 아버지, 짐은 함께 생활하려 했던 것 같지 않습니다. 함께라는 것은 공생이지만 짐은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줄 상대로 아들을 택했던 것 같습니다. 아들은 자신의 뜻과는 달리 이 곳에서 생존을 위해 싸워야했고, 밤이면 아버지의 우울과 싸워야했습니다. 섬을 떠나고 싶었지만, 떠나기 싫다고 말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대책도 없고, 계획도 없는 즉흥적이고, 제 멋대로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결과, 아들은 아버지가 해내지 못한 것을 해냅니다. 아버지가 우울증 중에서도 하지 못했던 한가지. 자살을 아들은 해냅니다. 아버지가 손에 쥐어준 피스톨로요. 아버지는 아들의 시신을 보고서도 제대로 된 행동을 하지 못합니다. 변명거리만 찾고, 아이의 시신을 제대로 건사하지도, 매장해주지도 못합니다. 그의 방황과 찌질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행동을 보며 가슴아픔을 느낍니다. 저 인간, 끝까지 그럴꺼야?

하지만, 애초에 이 소설이 아버지의 자살에서 비롯된 소설이라는 것을 생각해볼 때, 시신을 감추고, 어찌 할바 몰라 허둥대고, 사람들에게 변명을 해대는 아버지 짐의 모습은 아들이자 저자인 밴의 모습을 비춘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자살을 자신의 탓으로 여기며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생각하려 애쓰는 그의 모습과,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자살을 병사라고 말하며, 불면에 시달리고 고통에 시달리던 자신의 모습 그대로 였던 것입니다.

 

<자살의 전설>은 '어류학', '로다', '선인의 전설', '수콴섬', '케치칸', '높고 푸르게'의 여섯편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각각의 이야기는 별개의 이야기이자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사전에 각각의 이야기라는 정보가 없으면 어류학에서 로다, 선인의 전설로 넘어갈때 혼란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도대체 무슨 소리야.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는거지.하고 구시렁대며 책 읽기를 포기 할 뻔했어요. 뒤쪽의 추천사와 역자 후기를 읽고 다시 용기를 내어 읽기 시작했지요. 그제서야 이야기들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섯편의 이야기 속에는 저자의 진실 10퍼센트와 허구 90퍼센트가 들어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읽고 나니 저자를 이해하게 되었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읽었더니 처음 느낌과 다른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읽기를 두려워하며 미루어두었던 소설인데, 읽고나니 미국 문학의 한 부분을 엿본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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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레이드 호텔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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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호텔리어 (2001년작 :MBC)>라는 드라마가 있었지만, 드라마엔 별로 관심이 없어서 안 봤습니다. 오히려 <호텔 퀸시>라는 만화에서 호텔리어, 특히 컨시어지들을 보며 대단하다, 멋지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자질구레한 요구를 하는 손님들뿐만 아니라 스키퍼도 있고 블랙 컨슈머도 있으니 호텔리어들은 무척 힘들겠습니다. 저 역시 대학 졸업 후 모 호텔에 근무할 뻔했었습니다. 당시 건설 중이던 호텔이었는데요 사전에 채용이 결정되어 있었죠. 졸업 후 임시로 다른 곳에서 일하다가 호텔 오픈 즈음에 합류한다는 계획이었는데, 모회사가 부도났고, 그 건물은 아직까지도 방치되어 흉물스럽습니다. 그러니 호텔리어가 될 뻔했던 사람으로서 - 의미 없나요? - <매스커레이드 호텔>을 읽었습니다. - 아, 역시 의미 없네요.

 

히가시노 게이고가 늘 추리소설을 쓰는 건 아니므로 어떤 소설일까 궁금해하며 읽기 시작했는데요. 역시, 추리소설이었습니다. 3건의 연쇄 살인 현장에서 각기 숫자로 된 암호가 등장하고, 암호는 다음 번 사건의 장소를 예고하는 바, 다음번의 장소는 코르테시아도쿄 호텔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호텔에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닛타 고스케 경위를 비롯한 형사들이 호텔리어로 위장 잠복합니다. 어느 모로 보나 날카로운 닛타이지만 완벽한 잠복을 위해 우수한 호텔리어 나오미에게 훈련을 받고 프런트에 섭니다.

재미있습니다. 코르테시아도쿄 호텔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없으나 저는 중문 관광단지의 제주 하얏트 호텔을 떠올렸습니다. 파놉티콘 같은 구조로 되어있는 (비유가 적절하지 못함을 알지만) 아름답고 편안한 분위기의 호텔. 제주엔 이런저런 호텔들이 있지만, 로비에 앉아서 쉬고 있을 때 편안함을 주는 호텔이 있는가 하면 공연히 주눅 들게 하는 곳이 있습니다. 책 속의 코르테시아 도쿄 호텔은 전자인 듯했습니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친절과 손님이 룰북이라는 태도로 손님에게서 불편함을 제거해주는 호텔이었습니다.

 

세상에, 별의별 손님들이 다 있었습니다. 괜히 방을 업그레이드 받고 싶어서 트집 잡는 손님, 영감을 느끼는 손님, 시각장애인인척하는 손님, 불륜 손님 등... 뿐만 아니라 호텔의 특성상 연회, 결혼식 등도 있기에 신경 쓰이는 부분들이 한 두 군데가 아닙니다. 혼자 잠입한 것도 아니면서 닛타는 이것저것 신경 쓰며 범인을 추리해 나가는데, 시간이 갈수록 닛타에게선 호텔리어의 분위기가 풍깁니다. 반면 완벽한 호텔리어 나오미는 형사 같아지네요. 역시 가까이 있으니 닮게 되나 봅니다. 형사는 대상을 관찰합니다. 의심하고, 의문을 갖고, 범죄를 캐내려 합니다. 호텔리어도 대상을 관찰합니다. 여기서의 대상은 손님이겠죠. 고객의 숨을 뜻을 찾기 위해, 편안함을 제공하려 합니다. 누구나 가면을 쓰기 마련이지만 호텔의 손님들은 각자의 사연으로 더욱 두터운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손님이라는 가면을요. 흥겨운 파티 도중  슬그머니 나타나 사람들 틈에 숨어들었던 적사병 가면처럼, 범인 역시 가면을 쓰고 그들에게 깊숙이 다가섭니다. 그 가면은 언제 벗어던질까요?

 

추리소설이지만, 호텔리어로서의 에피소드들이 와닫는 소설이었습니다. 게다가 여러 가지의 에피소드들이 마지막엔 모두 복선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묘한 기쁨을 느끼게 합니다. 커다란 호텔 로비의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대고 앉아 눈을 감고 <매스커레이드 호텔>의 스토리를 창조하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모습이 그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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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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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했던 데다가 부모님도 용돈으로 만화나 책을 사는 것에 대해 간섭하지 않으셨기에 상대적으로 용돈이 넉넉한 편이었던 대학시절은 책 구매의 황금기였습니다. 한 달에 두 번씩 나오는 만화잡지(지금보다 더 다양했었죠), 단행본, 로빈 쿡, 스티븐 킹, 그 외 이런저런 소설들, 읽지도 않을 원서, 계간 추리 문학지(이름도 기억 안 나는) 등등. 책을 별로 사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책이 공간을 잠식해 들어가더라고요. 장식장, 책장, 책꽂이, 이불장, 캐비닛(아버지 사무실 것을 들고 왔어요)이 있었습니다만, 잠 잘 곳만 빼고선 책에 둘러싸이고 말았어요. 그러다 보니 정리는커녕 처박기 바빴군요. 언제나 제 방은 어수선했습니다. 20대 아가씨 방이 아니었어요. 그래도 3,4학년 때는 도서관에서 문헌자료들을 찾기도 했고, 남자친구도 사귀고 하느라 바빠서 책 구매가 덜 했지만, 숨통을 틔우기 위해 차에다가 책을 싣고 헌책방에 가져다 팔곤 했습니다.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저희 집엔 책이 별로 없습니다.

 

예전에 한기호 님이 알라딘 중고 서적을 적대시하면서 이용자까지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해서, 그렇다면 책 욕심은 많지만 경제력이 좋지 않아 읽고 싶은 책을 모두 사 볼 수 없기에 도서관을 이용하는 나는 중고서적을 이용하는 사람들보다 더 나쁘고 출판시장을 좀먹는 쓰레기인가 하는 생각에 괴로워했습니다.  이웃 끊고 새 글 안 보니 괴로움에서 해방되었지만 말이에요. 출판사 입장에서는 저 같은 사람이 싫겠죠.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능력은 안되는데 책은 읽고 싶은걸요. 일부는 구입하고 대부분은 도서관을 이용합니다. 현재 세 군데의 도서관을 이용하는데 특히 집 근처 제주시 북 카페는 농담 삼아 '내 서재'라고 부릅니다. 만약 제가 읽은 책 모두를 구입했더라면 저 역시 장서의 괴로움을 겪고 있을 거예요. 

 

오카자키 다케시의 <장서의 괴로움>은 읽고 있는 저의 입을 쩍 벌리게 만들었습니다. 책이 엄청나게 쌓여 목조건물의 바닥이 꺼질 정도라니, 이 정도면 재앙이네요. 책을 연간 400권 읽는다 치고 (저는 250여권이지만 만화까지 하면 그리될 것 같네요) 10년이면 4천 권 100년이면 4만 권인데. 보유한 책이 3만 권을 넘는 사람들은 그 책을 다 읽을 수는 있는 건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흥. 어차피 다 읽지도 못하면서 쌓아두기는.'이라고 구시렁대지만 사실은 부러워요. <장서의 괴로움>에는 책이 사는 집을 지은 사람이 등장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신경숙 작가님의 집이 그러하다던데요. 아무튼 그는 모든 벽에 책장을 설치하는 것도 모자라 주택 개축시 복층 구조의 높다란 벽을 모두 책으로 채운 꿈같은 집을 짓습니다. 책의 보유를 적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런 집을 동경하는 걸 보니 저는 장서의 보유와 욕심 버리기 속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자책이 등장해서 머지않아 나무의 무덤인 책이 사라지는 건 아닌가, 그럴 땐 책장에 외장하드나 USB를 쌓아두게 되는 건가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전자책은 크레마나 아이패드 같은 것으로 읽은 적은 없지만 PC로 도서대출하여 읽어보았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무리였습니다. 하나의 콘텐츠 정도로만 인식이 되어서 책 읽는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언제까지나 책이 사는 집을 동경하게 될 것 같습니다.

 

책은 내용물 만으로 구성되는 건 아니다. 종이질부터 판형, 제본, 장정 그리고 손에 들었을 때 느껴지는 촉감까지 제각각 다른 모양과 감각을 종합해 '책'이라 불리는 게 아닐까.

p.181

 

책이란 본디 읽히기 위해 태어난 바. 읽히지 못하고 꽂혀있기만 하면 죽은 거랑 다를 바 없어서 불쌍합니다. 그러니 한 번 읽고 둘 것이 아니라 가끔씩 꺼내어 다시 읽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 해서 미안한 책이 여러 권입니다. 심지어 사놓기만 하고, 혹은 선물 받은 채로 일 년도 넘게 읽지 않은 책들도 있어요. 책들에게 미안합니다. 새로운 것만 눈에 들어오니 저는 바람둥이인가 봐요. <장서의 괴로움>을 읽는 내내 책 더미에 깔릴 것만 같은 그들이 위태로워 보이면서도 나 역시 저렇게 불편하고 싶다는 이중의 심리가 오락가락했습니다. 문득 고개를 드니 '그런 쓸데없는 생각 말고 나 좀 읽어줘.'라고 하는 책들이 눈에 들어오네요. 미안하다 책들아.

책은 내용물 만으로 구성되는 건 아니다. 종이질부터 판형, 제본, 장정 그리고 손에 들었을 때 느껴지는 촉감까지 제각각 다른 모양과 감각을 종합해 `책`이라 불리는 게 아닐까.

p.181

책을 필요 이상으로 끊임없이 쌓아두는 사람은, 개인차가 있긴 하겠으나 멀쩡한 인생을 내팽개친 사람이 아닌가 싶다. 생활공간 대부분을 거의 책이 점령하는 주거란, 일반 상식에서 보면 아무리 잘 봐주려 해도 멀쩡한 정신은 아니다. 쌓고 무너뜨리기를 반복하는 일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있는 것은 그저 한도 끝도 없이 갖고 싶은 책이 눈앞에 아른거려 계속 살 수밖에 없는 비틀어진 욕망뿐이다. 게다가 그에 대한 반성마저 별반 없다.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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