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집사 18
야나 토보소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코믹함과 진지함을 고루 갖춘 만화에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계 재판 - 사람이 아닌 자의 이야기 다카기 아키미쓰 걸작선 2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 / 검은숲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법정 미스터리는 반전이 주는 통쾌함 때문에 무척 좋아합니다.

당장 법정 미스터리라고 하니까, 책보다는 영화들이 떠오르는데요. <의뢰인>,<필라델피아>,<어 퓨 굿맨>,<프라이멀 피어>,<일급살인>... 같은 영화들이 떠오릅니다 <변호인>이나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같은 영화는 안 봐서 잘 모르겠고요. <프라이멀 피어>에서 마지막 에드워드 노튼의 표정은 아직까지 기억나네요.

 

다카기 아키미쓰의 <파계 재판>은 처음부터 끝까지 법정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습니다. 그러니 읽는 동안 도요 신문 법정 기자 요네다 도모이치가 되어 재판을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재판 개요

시   간 :1960년 6월 15일~7월 15일

장   소 :도쿄 지방법원 형사 제30호 법정(쓰키지 임시청사)

죄   명 :살인, 사체유기

피고인 : 무라타 가즈히코

판   사 :요시오카 에이스케, 나카가와 히데오, 고시미즈 슌이치

검   사 :야마노 히데유키

변호사 :햐쿠타니 센이치로

 

증   인 : 고지마 주조, 곤노 아라키, 오쿠노 도쿠조, 이토 요시로, 이누마 교코, 호시 아키코, 나이토 요리코, 쓰가와 히로모토, 이토 교지 외

감정인 : 후나바시 겐이치

 

예전에 연극배우 생활을 했던 무라타 가즈히코는 내연녀, 내연녀의 남편을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그러나 피고인은 내연녀의 남편의 사체를 철로에 유기 한 사실만을 인정할 뿐, 두건의 살해 및 내연녀 시신의 유기는 부인하고 있습니다. 검사는 피고인의 과거 행적과 사건 당시의 정황들과 더불어 증인 신문을 통해 피고인에게 사형을 구형하고자 하지만, 변호사인 햐쿠타니 센이치로는 피고인의 무죄를 입증하려 합니다.

모두가 무라타 가즈히코를 믿지 않는 상황에서도 변호사는 그를 믿고, 기자인 나 역시 변호사 햐쿠타니를 믿습니다. 그는 분명 무라타의 무죄를 입증할 것이라고.

 

이 소설은 다카키 아키미쓰의 1961년 작품으로 일본에서는 보기 드문 법정 드라마라고 합니다. 짜임새가 견고하고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이번엔 변호사가 어떤 활약을 할 것인가 궁금해집니다. 게다가 어째서 제목은 <파계 재판>이며, 부제 '사람이 아닌 자의 이야기'는 어떤 의미로 붙어있는 것인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중반에 이르러 알게 되었습니다. 신평민(新平民)이라는 계급이 있다는 것을요.에도시대 때부터 천민이었으며 특별지역에 거주하던 사람들을 근대화 이후로 평민으로 바꿔 불러줬지만, 평민 앞에 새신(新) 자를 붙임으로써 결국 호적상에는 끝까지 꼬리표를 달고 다닐 수밖에 없게 만들었고, 그들을 차별하는 사람들 때문에 가슴 깊은 곳부터 주눅이 들어있는 슬픈 심장을 가지고 있었죠. 피고인인 무라타 가즈히코 역시 신평민이었던 것입니다. 그가 신평민이라는 것을 알았던 사람들의 태도도 문제였고, 몰랐던 사람에게도 무라타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족쇄 때문에 자유롭지 못 했습니다. 두건의 살인과 두건의 사체 유기는 이런 배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파계 재판>이라는 제목의 <파계>는 본디 일본 자연주의 문학의 선구자인 시마자키 도손의 작품명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백정 출신 교사 우시마쓰가 등장, 신평민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내용입니다. 절대로 출신을 밝히지 말라는, 편견이 두려웠던 아버지의 말과 자신을 속시원히 드러내고 싶었던 우시마쓰가 내면의 갈등을 하는 소설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신분의 태그 때문에 어쩔수 없었던 무라타 가즈히코와 교사 우시마쓰의 입장이 오버 랩 되어 이 재판은 <파계 재판>이라는 닉네임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전에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라는 다카기 아키미쓰의 소설을 읽다가 그만둔 적이 있었습니다. 도저히 읽히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파계 재판>을 읽기로 선택할때 살짝 망설였습니다. 비슷한 부류라면 어쩌지. 하지만, 법정 미스터리라는 문구가 저를 사로잡았고, 사람이 아닌 자라니.. 어떤 사람이길래... 하는 궁금증이 이 책을 읽게 만들었습니다. 다 읽은 후에는 읽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직 판사이자 작가인 도진기님의 추천사가 아니더라도 이 책을 선택했겠지만, 일선 판사로서 읽은 작품의 평이 실제 재판 과정에서 동떨어져있지 않고, 리얼리티가 살아있다는 평에 더욱 신뢰가 가서 실감 나게 읽었습니다.

 

`설령 어떤 꼴을 당하더라도,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결코 출신을 밝혀서는 안된다, 한때의 비분에 이 금제를 잊는다면, 그때가 바로 사회에서 버림받는 순간이라 생각해라.`

이 소설에서 도손은 이렇게 말합니다. 광야의 이리처럼 죽으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참고 견뎌라. 참고 견뎌라. 비록 마소처럼 도륙 당하더라도 그 최후의 날까지 묵묵히 참고 견디라고 합니다. 이 주인공 우시마쓰의 심리는 그대로 이 사건의 피고인, 무라타 가즈히코의 심경과 상통할 것입니다.

p.354

혈액이 굳을 힘이 부족한 혈우병 환자는 보통 사람이라면 아무렇지도 않은 생채기에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습니다. 과도하게 상처받기 쉬운 마음의 소유자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한 마디가 치명상과도 같은 충격이 되는 법입니다.

p.35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데카메론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1
조반니 보카치오 지음, 박상진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에 흥미진진한 단편소설이라고 해두었지만, 말을 찾지 못해 그렇게 적어두었을 뿐, 그저 단편소설이라고 말하기엔 미안한 소설입니다. 대학생 때 동생의 추천으로 데카메론을 처음 읽었었는데요. 시간이 많이 흘렀기 때문에 그때와 다른 느낌으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이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엔 제가 역사적 배경이나 인문적인 것들에 대해 상당히 무지하므로 그저 독자로서 느낀 것들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래서 이번 리뷰는 다른 때보다 훨씬 비루한 리뷰가 될 것 같아 스스로 한심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데카메론은 1992년 판으로 청목사라는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던 책이었습니다. 동생이 재미있다며 읽어보라고 추천해주었는데, 고등학생 때부터 프로이트 같은 책을 읽던 녀석이라 아니, 난 이런 ~~론. 이런 건 못 읽는다. 군주론도, 자본론도. 그런데 데카메론이라니. 무슨 논리가 한 열 개쯤 있는 것 아니냐며 고개를 저었지만, 녀석의 한마디에 씨익 웃으며 책을 받아들었습니다.

"누나, 이 책. 야해."

 

시간이 흘러 다시 같은 책을 펴들었는데, 그때 이 책을 어떻게 읽었지...? 페이지 구성이 마음에 들지 않고, 자간과 활자가 마음에 안 들어서 읽지 못하겠어요. 그래서 포기. 민음사 판 3권짜리는 좀 읽기 쉽게 나왔으려나.. 하고 펼쳐보았더니. 회화와 함께 책이 읽기 좋게 각주도 달려있고 읽음직하더라고요. 그래서. 3권짜리이지만, 도전. 읽기 시작했더니. 손에서 책이 안 떨어지는 겁니다. 아, 재미있다.

 

새삼 읽으면서 느낀 건, 예전에 데카메론을 읽을 적의 나는 참 순진했구나. 다시 읽으니까 안 야한걸요. 아, 데카메론은 야한 책이 아니었구나. 어쩐지 표지가 빨간색이 아니더라니. 이 책의 배경은 1300년대. Deca-라는 게 붙어있으니까 10과 관련되어있겠죠?

열 명의 남녀가 10일 동안 하루에 10개의 이야기를 나누는 소설인데요. 도합 100개의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정숙하고 품위 있는 부인 일곱 명과 건강한 청년 세명이 매일매일 돌아가며 왕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데요. 그들은 당시 유럽에 유행하던  페스트를 피해 피렌체 교외의 별장에 모여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기로 합니다. 매일 각기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하지만, 디오네오만은 주제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해도 괜찮다는 규칙도 있습니다.

매일의 주제가 다르니 이야기도 상당히 다를 법한데, 묘하게 비슷한 구도의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방탕한 수도사를 조롱하기도 하고, 고난을 겪은 후에 사랑이 더욱 돈독해지는 연인의 이야기도 있고, 불륜 들통 일보 직전에 재치 있는 행동이나 말로 위기를 모면하고 더욱 불륜에 정진하는 이야기도 있고요. 이루지 못한 슬픈 사랑 이야기도 있습니다. 중세 시대 이야기니까 종교적 관습에 얽매어 온몸을 꽁꽁 싸매고 있을 법도 한데, 지금과 다를 바 없고, 어쩌면 더 당당한 것 같습니다.

 

 읽다가 깨달은 점 하나가 있는데요. 제가 아라비안나이트의 에피소드라고 알고 있던 것 중 몇 가지는 데카메론의 이야기였더군요. 심지어 세리 로즈라는 옛날 비디오에서 본 것 같은 내용도 있던걸요. 세리 로즈는 비디오판 데카메론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던 만큼. 이 이야기가 세리 로즈였나, 데카메론이었나... 헷갈릴 만도 합니다. 세리 로즈는 17세기 이후의 귀족들의 야한 스토리로 9편의 이야기가 있는데, 모파상이나 체홉 같은 작가들이 원작자이므로 아마도 그 원작이 데카메론에게서 영향을 받았던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데카메론은 셰익스피어에게도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데, 가끔 어디선가 읽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데카메론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작가의 작품이나, 영상물에서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데카메론이지만, 보카치오 자신은 이 책을 쓸 때 단테의 <신곡>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단테의 신곡에 비견되어 인곡이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해설에 나왔더군요.

 

인문학적 지식이 없다 하더라도 이 책은 부담 없이 재미있었습니다. 보카치오는 이 소설을 싫어해서 불태워 버리려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근대의 문학으로서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보카치오 덕분에 어려울 것 같아서 근처에도 못 갔던 단테의 <신곡>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부디 신곡도 매력적이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영미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좋아합니다. 고등학생 때 영화관에서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단체 관람했었는데요. 라임라이트였는지, 독재자였는지, 모던타임즈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영화를 보다가 눈물을 흘리는 저를 보고 친구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었습니다. 코미디 보면서 울다니, 괴짜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슬펐던걸요. 보이는 슬랩스틱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어른이니 모두 다 알 거예요.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은 채플린의 영화를 닮았습니다. 웃긴데, 그 안에 들어있는 게 너무나 많습니다. 페이지마다 의미가 있습니다. 긴 소설도 아닌데 읽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멈칫 멈칫 문구를 다시 살피게 됩니다. 채플린의 경쾌한 스텝처럼 죽음을 눈앞에 둔 '나'도 경쾌합니다. 그러나 '나'의 눈빛도 채플린의 그것과 같아서 가벼이 넘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의 주인공 '나'는 잦은 두통으로 병원을 찾았습니다. 뇌종양 4기. 남은 생명은 길어야 반년, 하지만 일주일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더 황당한 건 악마가 찾아와서 죽는 날이 내일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딱히 크게 미련은 없지만, 죽고 싶지도 않습니다. 겨우 서른인데. 악마는 한가지 제안을 합니다. 세상에서 뭐든 한 가지만 없앤다. 그 대신 하루치 생명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없앨 것은 악마가 정하고, 없앨지 말지는 '내'가 선택합니다. 그렇게 해서 첫날 전화를 없애는 것으로 하루치 생을 얻습니다. 저 역시 휴대전화의 필요성을 그다지 못 느끼는 데다가 휴대폰이 인간들을 폰 피플(셀- 스티븐 킹)로 만드는 것 같아서 휴대전화가 사라지는 것쯤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휴대폰이 사라진다는 상상만으로 패닉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겠지만요.

 

 

둘째 날은 영화가 사라졌고, 셋째 날엔 시계가 사라졌습니다. 내 목숨과 바꿀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것들도 아니고, 없다고 해서 크게 불편하지 않을 텐데, 뜻밖에 그 상실감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전화를 없앰으로써 휴대전화가 보급되기 전의 두근거림이나, 소중한 것들을 떠오르게 했지만, 반대로 전화가 있어서 전해졌던 것들이 사라졌습니다. 그녀와의 대화도, 여행도, 사랑도 추억도. 아니, 애초에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는지조차 의문입니다. 전화를 달가워하지 않았던 그녀는 그와의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있는 듯했으니까요. 그렇게 하루가 지났습니다.

 

 영화가 없어진 날. 영화와 함께 했던 추억들도 함께 날아가 버렸습니다. 첫사랑의 그녀가 무척이나 사랑하던 영화를 없애버리고 목숨을 연장할 만큼 그에게는 영화보다 생명이 중했지만, 사실은 텅 빈 스크린 위로 자신의 기억들이 지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희로애락뿐만 아니라 어릴 적 부모님과 보았던 E.T의 자전거 신도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와 사이좋게 행복하게 지냈던 적도 있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몇 년 동안이나 아버지와 연락하고 지내지 않았다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이제는 전화를 드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첫날. 전화를 없애버렸으니까요.

 

세 번째 날, 그는 시계를 없앱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인간에게나 존재하는 것이므로 없어진다고 해도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시계 수리공이지만, 그런 건 자신과는 상관없으니까요. 하지만, 시계가 사라진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을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우리는 인간이니까요. 과거의 추억도 현재의 삶도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희망도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소설에는 크게 셋의 죽음이 드러나있습니다. 오래전 죽은 고양이 양상추. 사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 그리고 겨우 목숨을 이어갈 뿐인 '나'. 그 셋의 죽음은 다른 듯 닮아있습니다. '시간'의 개념이 없으므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을 수 있었던 고양이 양상추.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잃어야 한다며 생의 섭리를 지키며 다정했던 어머니, 죽음이 두려워 세상의 것을 하나씩 없애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려는 '나'. 세상의 것들 중 겨우 세 가지를 없앴을 뿐인데, 그것들이 주는 의미들과 삶과 죽음의 섭리를 깨달아갑니다. 이제 악마는 세상에서 고양이를 없애자고 합니다. 어머니가 키우다가 이젠 내가 키우고 있는 고양이 양배추가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뭔가를 얻으려면, 뭔가를 잃어야겠지."

어머니의 말을 떠올렸다.

나는 내 생명과 맞바꾸는 조건으로 이 세상에서 전화와 영화와 시계를 없앴다.

그러나 고양이는 없앨 수 없었다.

고양이 대신 자기 생명을 포기하다니, 바보 같은 남자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 말이 맞다. 어리석기 짝이 없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에게서 뭔가를 가로채 생명을 연장하는 걸 행복이라고 여길 수는 없었다. 그것이 태양이든 바다든 공기든 고양이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에서 뭔가를 없애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내 나름으로 타인보다 조금 짧게 주어진 나의 수명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때문에 나는 머지않아 죽는다.

 

p.193-194

 

 

 

'나'는 고양이를 없애는 대신 '내'가 사라지기로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편지를 씁니다. 긴 유서를.

책의 서두에 이 글은 '내가 당신에게 보내는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 나의 유서'라고 밝힙니다. 저는 그것이 독자인 저에게 하는 말인 줄 알았었는데, 아버지에게 보내는 긴 글이었던 것입니다. 독자로서 책을 덮은 후, 아버지로서 (아니 부모로서)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무뚝뚝해 자기감정을 표현할 줄 모르는 아버지이지만,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내가 그리고 아들이 맡기고 간 고양이 양배추의 머리를 하염없이 쓰다듬는 모습이 어른거립니다.

 

죽기 전에 살아서 못다 한 것들을 해치우고 미련 없이 죽는다는 버킷 리스트 작성보다 살아있는 지금, 소중히 생각해야 할 것들이 내 주위엔 참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쓸모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누가 정하는 것인가요. 길가의 돌멩이 하나도 그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인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옷장 속의 세계사 창비청소년문고 10
이영숙 지음 / 창비 / 201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식탁 위의 세계사 후속작입니다.

역시 엄마가 옷장을 열면서 아이에게 말을 건네듯이 다정한 말투로 세계사를 이야기해줍니다.

중학생때였나, 영어교과서에 나왔던 골드러시와 청바지 이야기를 시작으로 트렌치코트와 세계 1차대전의 비참함을, 비단으로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넥타이와 양복으로는 킹스 스피치 조지 6세, 윈저공 이야기를 합니다.

읽는데 한시간도 안 걸렸어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고, 쉽게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지요.

읽는데 걸린 시간만큼 리뷰도 짧네요. 길게 이야기 할 것도 없어요. 재미있고, 다정한 세계사책입니다.

청소년들에게 추천할래요. 재미있으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