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메론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1
조반니 보카치오 지음, 박상진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에 흥미진진한 단편소설이라고 해두었지만, 말을 찾지 못해 그렇게 적어두었을 뿐, 그저 단편소설이라고 말하기엔 미안한 소설입니다. 대학생 때 동생의 추천으로 데카메론을 처음 읽었었는데요. 시간이 많이 흘렀기 때문에 그때와 다른 느낌으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이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엔 제가 역사적 배경이나 인문적인 것들에 대해 상당히 무지하므로 그저 독자로서 느낀 것들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래서 이번 리뷰는 다른 때보다 훨씬 비루한 리뷰가 될 것 같아 스스로 한심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데카메론은 1992년 판으로 청목사라는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던 책이었습니다. 동생이 재미있다며 읽어보라고 추천해주었는데, 고등학생 때부터 프로이트 같은 책을 읽던 녀석이라 아니, 난 이런 ~~론. 이런 건 못 읽는다. 군주론도, 자본론도. 그런데 데카메론이라니. 무슨 논리가 한 열 개쯤 있는 것 아니냐며 고개를 저었지만, 녀석의 한마디에 씨익 웃으며 책을 받아들었습니다.

"누나, 이 책. 야해."

 

시간이 흘러 다시 같은 책을 펴들었는데, 그때 이 책을 어떻게 읽었지...? 페이지 구성이 마음에 들지 않고, 자간과 활자가 마음에 안 들어서 읽지 못하겠어요. 그래서 포기. 민음사 판 3권짜리는 좀 읽기 쉽게 나왔으려나.. 하고 펼쳐보았더니. 회화와 함께 책이 읽기 좋게 각주도 달려있고 읽음직하더라고요. 그래서. 3권짜리이지만, 도전. 읽기 시작했더니. 손에서 책이 안 떨어지는 겁니다. 아, 재미있다.

 

새삼 읽으면서 느낀 건, 예전에 데카메론을 읽을 적의 나는 참 순진했구나. 다시 읽으니까 안 야한걸요. 아, 데카메론은 야한 책이 아니었구나. 어쩐지 표지가 빨간색이 아니더라니. 이 책의 배경은 1300년대. Deca-라는 게 붙어있으니까 10과 관련되어있겠죠?

열 명의 남녀가 10일 동안 하루에 10개의 이야기를 나누는 소설인데요. 도합 100개의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정숙하고 품위 있는 부인 일곱 명과 건강한 청년 세명이 매일매일 돌아가며 왕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데요. 그들은 당시 유럽에 유행하던  페스트를 피해 피렌체 교외의 별장에 모여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기로 합니다. 매일 각기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하지만, 디오네오만은 주제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해도 괜찮다는 규칙도 있습니다.

매일의 주제가 다르니 이야기도 상당히 다를 법한데, 묘하게 비슷한 구도의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방탕한 수도사를 조롱하기도 하고, 고난을 겪은 후에 사랑이 더욱 돈독해지는 연인의 이야기도 있고, 불륜 들통 일보 직전에 재치 있는 행동이나 말로 위기를 모면하고 더욱 불륜에 정진하는 이야기도 있고요. 이루지 못한 슬픈 사랑 이야기도 있습니다. 중세 시대 이야기니까 종교적 관습에 얽매어 온몸을 꽁꽁 싸매고 있을 법도 한데, 지금과 다를 바 없고, 어쩌면 더 당당한 것 같습니다.

 

 읽다가 깨달은 점 하나가 있는데요. 제가 아라비안나이트의 에피소드라고 알고 있던 것 중 몇 가지는 데카메론의 이야기였더군요. 심지어 세리 로즈라는 옛날 비디오에서 본 것 같은 내용도 있던걸요. 세리 로즈는 비디오판 데카메론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던 만큼. 이 이야기가 세리 로즈였나, 데카메론이었나... 헷갈릴 만도 합니다. 세리 로즈는 17세기 이후의 귀족들의 야한 스토리로 9편의 이야기가 있는데, 모파상이나 체홉 같은 작가들이 원작자이므로 아마도 그 원작이 데카메론에게서 영향을 받았던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데카메론은 셰익스피어에게도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데, 가끔 어디선가 읽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데카메론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작가의 작품이나, 영상물에서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데카메론이지만, 보카치오 자신은 이 책을 쓸 때 단테의 <신곡>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단테의 신곡에 비견되어 인곡이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해설에 나왔더군요.

 

인문학적 지식이 없다 하더라도 이 책은 부담 없이 재미있었습니다. 보카치오는 이 소설을 싫어해서 불태워 버리려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근대의 문학으로서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보카치오 덕분에 어려울 것 같아서 근처에도 못 갔던 단테의 <신곡>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부디 신곡도 매력적이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