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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재판 - 사람이 아닌 자의 이야기 ㅣ 다카기 아키미쓰 걸작선 2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 / 검은숲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법정 미스터리는 반전이 주는 통쾌함 때문에 무척 좋아합니다.
당장 법정 미스터리라고 하니까, 책보다는 영화들이 떠오르는데요. <의뢰인>,<필라델피아>,<어 퓨 굿맨>,<프라이멀 피어>,<일급살인>... 같은 영화들이 떠오릅니다 <변호인>이나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같은 영화는 안 봐서 잘 모르겠고요. <프라이멀 피어>에서 마지막 에드워드 노튼의 표정은 아직까지 기억나네요.
다카기 아키미쓰의 <파계 재판>은 처음부터 끝까지 법정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습니다. 그러니 읽는 동안 도요 신문 법정 기자 요네다 도모이치가 되어 재판을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재판 개요
시 간 :1960년 6월 15일~7월 15일
장 소 :도쿄 지방법원 형사 제30호 법정(쓰키지 임시청사)
죄 명 :살인, 사체유기
피고인 : 무라타 가즈히코
판 사 :요시오카 에이스케, 나카가와 히데오, 고시미즈 슌이치
검 사 :야마노 히데유키
변호사 :햐쿠타니 센이치로
증 인 : 고지마 주조, 곤노 아라키, 오쿠노 도쿠조, 이토 요시로, 이누마 교코, 호시 아키코, 나이토 요리코, 쓰가와 히로모토, 이토 교지 외
감정인 : 후나바시 겐이치
예전에 연극배우 생활을 했던 무라타 가즈히코는 내연녀, 내연녀의 남편을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그러나 피고인은 내연녀의 남편의 사체를 철로에 유기 한 사실만을 인정할 뿐, 두건의 살해 및 내연녀 시신의 유기는 부인하고 있습니다. 검사는 피고인의 과거 행적과 사건 당시의 정황들과 더불어 증인 신문을 통해 피고인에게 사형을 구형하고자 하지만, 변호사인 햐쿠타니 센이치로는 피고인의 무죄를 입증하려 합니다.
모두가 무라타 가즈히코를 믿지 않는 상황에서도 변호사는 그를 믿고, 기자인 나 역시 변호사 햐쿠타니를 믿습니다. 그는 분명 무라타의 무죄를 입증할 것이라고.
이 소설은 다카키 아키미쓰의 1961년 작품으로 일본에서는 보기 드문 법정 드라마라고 합니다. 짜임새가 견고하고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이번엔 변호사가 어떤 활약을 할 것인가 궁금해집니다. 게다가 어째서 제목은 <파계 재판>이며, 부제 '사람이 아닌 자의 이야기'는 어떤 의미로 붙어있는 것인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중반에 이르러 알게 되었습니다. 신평민(新平民)이라는 계급이 있다는 것을요.에도시대 때부터 천민이었으며 특별지역에 거주하던 사람들을 근대화 이후로 평민으로 바꿔 불러줬지만, 평민 앞에 새신(新) 자를 붙임으로써 결국 호적상에는 끝까지 꼬리표를 달고 다닐 수밖에 없게 만들었고, 그들을 차별하는 사람들 때문에 가슴 깊은 곳부터 주눅이 들어있는 슬픈 심장을 가지고 있었죠. 피고인인 무라타 가즈히코 역시 신평민이었던 것입니다. 그가 신평민이라는 것을 알았던 사람들의 태도도 문제였고, 몰랐던 사람에게도 무라타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족쇄 때문에 자유롭지 못 했습니다. 두건의 살인과 두건의 사체 유기는 이런 배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파계 재판>이라는 제목의 <파계>는 본디 일본 자연주의 문학의 선구자인 시마자키 도손의 작품명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백정 출신 교사 우시마쓰가 등장, 신평민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내용입니다. 절대로 출신을 밝히지 말라는, 편견이 두려웠던 아버지의 말과 자신을 속시원히 드러내고 싶었던 우시마쓰가 내면의 갈등을 하는 소설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신분의 태그 때문에 어쩔수 없었던 무라타 가즈히코와 교사 우시마쓰의 입장이 오버 랩 되어 이 재판은 <파계 재판>이라는 닉네임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설령 어떤 꼴을 당하더라도,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결코 출신을 밝혀서는 안된다, 한때의 비분에 이 금제를 잊는다면, 그때가 바로 사회에서 버림받는 순간이라 생각해라.`
이 소설에서 도손은 이렇게 말합니다. 광야의 이리처럼 죽으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참고 견뎌라. 참고 견뎌라. 비록 마소처럼 도륙 당하더라도 그 최후의 날까지 묵묵히 참고 견디라고 합니다. 이 주인공 우시마쓰의 심리는 그대로 이 사건의 피고인, 무라타 가즈히코의 심경과 상통할 것입니다.
p.354
혈액이 굳을 힘이 부족한 혈우병 환자는 보통 사람이라면 아무렇지도 않은 생채기에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습니다. 과도하게 상처받기 쉬운 마음의 소유자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한 마디가 치명상과도 같은 충격이 되는 법입니다.
p.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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