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일기Z 밀리언셀러 클럽 132
마넬 로우레이로 지음, 김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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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적 대 재앙, 바이오 하자드.

어떤 생물학적인, 혹은 병리학적인 문제로 인해서 이른바 좀비 바이러스가 나타나 세상에 퍼지고 그 바이러스는 사람들에 의해 상상 이상의 빠른 속도로 번져나갑니다. 언데드가 되고 마는 그 위험한 바이러스는 맥스 브룩스의 <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를 읽은 사람이라도 실제 상황에 제대로 적용할 수 있을지 모를 공포와 함께 인간들을 공격해 들어옵니다. 공격받은 인간은 금세 감염이 되어 다시 좀비가 되고, 결국 이런 일들을 반복해가다 산자보다는 죽은 자의 수가 더 많아져 살아남은 사람들을 절망과 좌절 속으로 떨어뜨립니다.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에 실린 실제 좀비 바이러스 사례들이 진짜일까.. 아니면 허구일까... 고민하는 새에 어느 새 좀비가 실제로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마넬 로우레이로의 <종말일기Z>를 읽으며 자꾸만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가 떠올랐습니다.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는 기존의 흡혈귀나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는 좀비 대신 지금의 바이오하자드 개념인, 감염자에 의한 감염으로 전파되는 좀비물의 시초가 되는 소설입니다. 그런 설정이 무척 매력적이었고,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애매모호 하더라도 누군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그 주인공은 영문도 모른 채 좀비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만 하더라도 우리에겐 훌륭한 스릴을 선사합니다. 때로는 감동도 주고 때로는 절망감도 줍니다. 그가 좀비들을 모두 퇴치하길 기대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어떻게든 무사히 살아남아 다른 생존자들과 합류하고 그래도 어디엔가 존재하는 안전지대에 도착해주었으면 합니다. 그런 기대에 부응해주는 주인공도 있었고, 그렇지 않아서 안타까움을 전해준 주인공들도 있었습니다.

<나는 전설이다> 소설의 주인공 네빌은 그냥 아저씨에다가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었고, <나는 전설이다> 영화의 주인공 네빌은 군의관 출신에 마음을 의지할 반려견 샘이 있었습니다. 영화와 소설을 비교해보면 영화 속의 네빌이 조금 상황이 나아보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의지할 상대가 있다는 점이 말이지요.

 

 

<종말일기Z>의 주인공 는 고양이 루쿨루스와 함께 사는 변호사입니다. 아내와 사별한 후 그에게는 루쿨루스가 전부였습니다. 러시아로부터 시작된 묘한 사태가 전 세계의 뉴스를 통해 전해지지만 어떤 일인지 정확하게 발표되지는 않은 상태로 모두들 불안해합니다. 이른바 언론 통제이죠. 그럼에도 점점 일이 더 커져 도저히 언론도 군부도 정부도 어찌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자 감염자에 의한 공격이라는 이야기가 퍼지고 피난민, 혹은 구명활동이 생겨나지만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는 부지런한 블로거라 블록에 일기를 적으며 현재의 상황을 기록합니다. 하지만, 결국 인터넷 서비스는 종료되고 그는 일기장에 일기를 기록합니다. 피난민을 이송할 때 몰래 숨어 그들을 따라가지 않은 는 루쿨루스를 데리고 살길을 찾아 떠납니다. 이런, 그는 그냥 변호사입니다. 공격력 제로의 고양이를 데리고 있는 변호사일 뿐입니다. 영화 속 네빌처럼 기본적인 훈련을 받았던 그런 사람도 아니고, 말이 통하는 상대라면 협상을 해본다거나 조정을 해 볼 텐데, 괴이한 신음소리를 내지르며 떼거지로 몰려드는 언데드의 육탄공격을 피하는 건 운칠기삼. 이런 비상사태 때는 어떻게든 좀비를 피해야한다는 생각 뿐인데요,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 인간의 모든 사건 사고 질병 플러스 좀비 바이러스인데도 자꾸만 잊어버리고 맙니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도 인간의 이기심도 존재합니다. 어쩌다가 만나게 되는 인간이 우리 편이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가 만난 생존자 중에도 그런 부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틈에서 진짜 우리편 하나도 만났는데,그는 우크라이나 출신 헬리콥터 조종사 였습니다. ‘는 그와 함께 하며 친구이자 전우로써 우정을 다지며 좀비로 가득 찬 도시를 헤쳐나갑니다. 잠시 긴장을 풀었다가 다시 조여드는 느낌에 심장이 가려워졌습니다.

 

이 소설은 3부작입니다.

부디 마지막 권의 끝까지 가 살아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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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시간의 한국사 여행 1 - 도전과 응전, 새 길을 열다, 선사 시대에서 고려까지 36시간의 한국사 여행 1
김정남 지음 / 노느매기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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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역사 책을 만났습니다. 첫 느낌이 무척 소프트하더군요.

책이 손에 감기는 맛도 그렇고, 첫장을 넘길때의 부드러움은 크리미한 맥주를 한 모금 맛 보는 것과 같았습니다.

다른 때와 사뭇 다른 리뷰의 시작. 그 원인은... 제가 한국사를 어려워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사라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아야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함부로 손댈 수 없는 미지의 영역같은 느낌이라 도저히 전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선사시대에서 고려까지 이야기 이므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근현대사는 정말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가타부타 말도 많고, 국가의 원수가 누구냐에 따라서 말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고대사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는데요. 글을 쓰는 당시의 사관에 따라서 이렇게 해석되기도 하고, 저렇게 해석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내가 알고 있는 역사가 과연 올바른 역사인가하는 의문이 듭니다만,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라도 가지 않는이상 알 수 없는 노릇이지요.

이런저런 핑계를 대보았습니다.

사실은 그냥 제가 어려워합니다.


학교 다닐때 국사라는 과목은 단순 암기 과목이었습니다. 이해하려고 시도할 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었거니와 선생님들도 무조건 외우라고 하셨습니다. 무조건 외우는 재주는 없어서 이해하고 음미하지 않으면 금새 잊어버립니다. 그러니 국사는 배움과 동시에 머릿속에서 질질 새어나갔지요. 대학입시를 볼때도 국사는 포기했었습니다. 배점이 작았거든요. 반타작만 하자. 그런데 왠걸. 그 해 시험이 어렵게 나왔습니다. 단순 암기를 해서는 풀기 어려운, 이해력을 요구하는 시험으로 출제된거 있죠.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요? 네. 대 성공을 했습니다. 두개 틀렸어요. 만세.

그때 깨달았죠. - 좀 늦은 감이 있지만, 국사역시 이해과목이고 차분이 상상하며 공부했더라면 그렇게 힘들지 않았을텐데. 다행히 요즘은 만화나 재미있는 이야기, 혹은 팩션등으로 한국사를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게 도와주는 어린이 책들이 많이 나오더라구요.

한편, 그건 그것대로 염려가 되는게 아이들 머릿속에는 허구부분이 더 잘들어 간다는 사실. 자극적이고 인상적인 것을 머릿속에 넣다보면 실제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 모르고 지나가기도 할 수 있어요. 그러니 그런 교재들은 역사와 친해지는 데 사용하는 수단으로 사용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요번에 읽은 <36 시간의 한국사 여행>이라는 책은 허구는 가미하지 않았지만, 교과서보다는 부드러운 책이었습니다. 편집도 깔끔하게 되어있고, 문체도 전혀 딱딱하거나 지나치게 부드럽지 않아서 미남 국사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있는 기분이었어요. - 저자님이 어떻게 생기셨는지는 모르지만요 - 선생님의 수업을 듣기만 했는데도 좀 더 알고 싶어!! 라는 기분이 들게하는 책이었지요. 알고보니 정말 여고 선생님이셨어요. 교과서에 있는 내용들을 부드럽게 술술 풀어서 설명하되 늘어지지 않는 텐션이 있었는데요. 그 텐션이 정말 딱 적절했다고 생각됩니다.


역사에 약한 제가 읽어도 무리가 없었던 책입니다. 부드러우니까요. 이 책의 제목이 <36시간의 한국사 여행>인 이유가, 총 세권으로 출판 될 책인데, 한권당 12시간씩 총 36시간이면 모두 돌아볼 수 있는 한국사이기 때문이라네요. 아, 이부분은 반대에요. 저 같은 사람은 12시간으로 부족했습니다. 심지어 한 번으로는 안돼요. 처음에 읽을 때는 역사의 흐름대로 내 몸을 맡기고 둥실둥실 여행을 , 올레길 걸을 때마냥 놀멍쉬멍 읽었구요. 두번째 읽을 때는 무언가 다른 책을 가져다가 함께 공부하고 싶어졌어요. 혹시 몰라서 초등학교 사회과부도를 챙겨두었거든요.


이 책은 어른이 읽어도 좋지만, 청소년이 읽으면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메인으로 읽어서 흐름과 용어를 이해하는 데 이용해도 좋겠구요. 부교재로 사용해도 될 것 같았습니다.

제가 몇 번 더 읽고 아이에게 물려줘야겠네요. 아마 내년에는 국사를 공부하게 될 것 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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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교전 세트 - 전2권 악의 교전
기시 유스케 지음, 한성례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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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겠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아니 읽고 있지 않을 때에도, 다 읽고 난 지금도. 모리타트의 선율이 머릿속에서 맴돕니다. 아니, 아예 콧소리로 흥얼거리고 있습니다. 하스미의 마력에, 저주에 빠져버린 걸까요.

 


사이코패스란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의미합니다. <악의 교전>에 나오는 하스미는 눈에 띄는 괴상한 얼굴, 온몸에 기름과 피를 뒤집어쓴 형상의 살인마가 아니라 잘생긴 외모와 품위 있는 행동으로, 누구에게나 사랑 받을만한 그런 인물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없는 차가운 인물이지요. 그의 지적인 모습은 연기입니다. 현대는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많아져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하지만 <악의 교전>에서 하스미를 겪고 나면 웬만한 사람들은 천사로 보일 지경입니다. 하스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취하거나 자신이 생각한 바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걸림돌이 되는 것이라면 가까운 사람, 친구(애초에 그런게 존재하긴 하는 건지), 심지어 부모까지도 살해할 수 있는 자였습니다. 죄책감이라는 게 뭔지도 모를 그는 완벽하게 살인 사실을 감추며 살아왔지만 유달리 감이 좋은 사람이 있게 마련이지요. 누군가가 자신의 올바르고 멋진 모습에서 죽음의 냄새를 맡는다면 그 사람 역시 사신의 곁으로 보내버립니다.

 

 


한 학교의 영어 선생으로 근무하면서 선생님들의 신뢰를 받고 학생들의 사랑을 받던 하스미에게 신뢰와 사랑은 자신이 세상에 존재하는 동안 당연히 가져야 할 것들이었기에, 어느샌가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 자신의 가면을 땜질하기 위해 주변의 방해되는 인물들을 하나씩 처치합니다. 그러나 완벽한 계획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모순이 드러나기 시작했기에 그는 결국 폭주합니다. 자신이 담임으로 있는 반 아이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기로 결심하지요.


실제로 긴박하고 침이 마르는 장면들은 교내에서 벌어지는 처참한 살육장면들이었는데, 아이들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살인마를 피하려하지만, 결국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이 학교에서의 살육장면은 전체 분량의 1/4도 되지 않는데 동시각대에 벌어지는 일들이 묘사되어 긴장을 고조시킵니다. 단연 최고의 부분이지요. 하지만 이 소설에서의 실제 공포감은 하스미의 어린시절까지 포함하여 그가 존재하고 있다는 그 자체로 만들어집니다.


사실 책보다 영화로 먼저 <악의 교전>을 접했는데요. 영화는 음울하고 기괴한데 ..... 졸렸습니다. 푸욱 가라앉아 사건의 당일까지 이어지는 필름.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며 가위눌림에서 풀려나려고 애쓰는 정도의 긴장과 공포감. 그렇다고 지루해서 잠이 들것 같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어쩐지 몽롱하면서 꿈과 생시를 오가는 것 같은 연출이었습니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기분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영화가 느린 재즈 속에 악마가 도사리고 있다가 활개를 치는 것 같았다면, 소설에서는 밝은 세상속에 세상의 어둠을 모조리 뭉쳐 안에다 담고 겉으로는 잘생긴 선생님을 연기하는 악마가 존재했습니다. 자신이 악하다는 것 조차 인식하지 않는 그는, 선생님이라는 겉옷을 벗으면 연쇄 살인마로 돌변할 수 있는 자였습니다.


소설에는 참 매력적인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가타기리라는 여학생인데요. 머리가 좋다기보다는 감이 좋습니다. 어쩐지 기분나쁜 4인방 선생님을 꼽았는데, 감이 딱 들어맞았습니다. 소설의 진행상 그녀의 역할은 뛰어나게 두드러지지 않으면서도 극을 끌어가는 중요한 인물이로구나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 곳에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매력까지 갖추고 있던 소녀였는데, 어째서 영화에서는 그녀를 빼버렸을까요.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영화를 본 누리꾼들 중 몇명이 원작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아쉬운 영화라고 평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정말일까하는 의심이 들었지요. 영화를 보았을 때 엄청난 충격과 공포를 느꼈었으니까요. 악몽 가운데 들어 앉은 기분이었습니다. 전반의 지루함은 견딜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대단하다고 여겼지요. 하지만 원작을 읽고나니 영화가 원작을 살리지 못했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역시 시간의 제약이란 지면의 제약보다 큰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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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이야기꾼들
전건우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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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전의 일입니다.

인천에 살고 있던 저는 다음 날 아침 일찍 대구로 이사를 가야해서 한밤중까지 짐을 꾸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희집은 반지층이었는데요. 신축 건물의 반지층이라 그다지 불편하게 살고 있진 않았습니다. 한참 짐을 꾸리던 중, 현관문 밖이 어수선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누가 빌라 출입문 앞에서 놀고 있나.. 신경이 쓰여 현관문 외시경으로 밖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한 젊은 남녀가 출입문 안쪽에 있는 우편함에서 우편물을 뒤지고 있더군요. 남의 것도 살피는 건가... 왜 저러는 건지 의아했지만, 이러다가 밤을 꼬박 새울 것 같아서 다시 하던일을 마저 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흘렀는데도 여전히 밖은 어수선했고, 도대체 뭘 하길래 안가고 저기서 저러고 있나하는 생각에 다시 외시경을 내다보았습니다. 남자는 여전히 우편함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지만, 여자는 세개 뿐인 계단을 내려와서 저희집 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하얀 옷을 입은 머리 긴 여자.

함께 짐을 싸주던 후배에게 궁시렁 거렸습니다. 쟤들은 왜 안가고 한 사람은 우편함 뒤지고, 한 사람은 우리집 보고 있는거야? 그러자 후배는 어디어디, 하면서 현관문으로 다가갔습니다. 그 순간 저는 갑자기 소름이 끼쳤고 후배의 옷자락을 잡고 불러 세웠습니다. 언니 왜요? 후배가 현관으로 걸어 가자 현관 조명이 그녀를 감지하고 켜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있지. 출입문 조명도 감지식 아니었나? 사람이 움직이면 불이 켜지는거 맞지? 그런데, 쟤들이 우편함 뒤적일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왜 불이 안켜지는 거야? 언니, .....내가 다시 내다볼까요? 아니, 내다보지마.. 아깐 우리집에서 세발자국 정도 떨어져있었어. 그여자가. 내다봤다가는..... 더욱 가까워진 그 여자를 보게 될까봐 무서워. 왜 그런 이야기도 있잖아. 외시경을 내다보는데 문 밖의 사람도 함께 들여다보더라는. 후배는 진저리를 쳤습니다. 하지마요. 언니. 무섭단말이에요. 어떡하죠?

저는 잠시 생각하다가 현관으로 걸어갔습니다. 뭐하려고요 언니.

 .... 쉿.


저는, 조용히 잠금장치를 풀고 문을 힘차게 열었습니다. 콰당탕. 동시에 출입문 쪽의 센서가 작동했는지 불이 켜졌습니다. 언니!! 왜 그런거에요! 후배가 놀래서 묻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인데 그렇게 눈대고 보고 있는거면, 코 깨지라고."


출입문 근처와 밖을 내다보아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뭐였지. 혹시 우편함 뒤지는 작은 동작에는 센서가 인식 못해서 불이 안켜지는 건가 싶어서 확인해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우편함 앞에서 서서 불이 꺼지길 기다린 후 조심스레 우편함으로 손을 뻗었습니다. 확 켜지는 센서등.

"불 켜지네."


집으로 들어와서 짐을 후다닥 싸고 잠을 청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었느냐고요? .... 아침에 이사했죠. 뭐.

그게 다냐고.. 끝이냐고요? ...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잖아요. 결말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요. 그때 일은 저에게 미스터리로 남았지만, 뭐 어쩔 수 있나요. 할 수 없지.



 

 

 

참 비현실 적이지만 실화입니다. 기승전결 따위는 없어요. 인생 살이에서 언제가 클라이맥스인지 어떻게 알겠어요. 내가 죽은 후에나 알게 되려나.

전건우의 <밤의 이야기꾼들>도 그렇습니다. 이야기들 마다 기승전결은 있지만, 아구가 딱딱 맞아떨어지지는 않습니다. 주인공인 김정우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 계곡으로 놀러갔다가 폭우로 부모님을 잃고 일년간 마치 실어증에 걸리듯, 시력을 잃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살아가다가 월간 풍문이라는 잡지사에 취직하고 그 곳에서 대호 선배와 함께 일년에 한 번 열리는 '밤의 이야기꾼들'이라는 모임에 취재를 나갑니다. 그곳의 기괴한 분위기. 참자가들의 기묘한 이야기는 정우를 불안하게도 만들고 의심하게도 만듭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난장이가 집안의 물건을 가지고 가는 대신 원치 않는 것도 가지고 가고, 댓가로 좋은 것을 놓고 간다는 이야기에다가 도플갱어를 본다는 성형중독자 이야기에, 이사 가고서도 전에 살던 집에 집착하는 남자의 이야기에, 학교폭력으로 이상한 얼굴이 되어버린 여자의 이야기...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저주에 뺏긴 이야기 같은 것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비현실적인 것이 도리어 현실적이다라는 이야기에 자신의 과거 사건도 떠올리게 됩니다.


이야기의 공포 정도라고 한다면 중, 혹은 중상정도 될겁니다. 기묘한 모임, 기괴한 이야기들은 마치 더링님의 '잠밤기'에 투고하는 투고자들의 이야기 같이 들리기도 했습니다. 그 곳에는 도시전설도 있고, 실화들도 있었으니까요. 한 번은 위에서 이야기한 이야기가 아닌 예전의 이야기가 인터넷 라디오에서 소개 된 적이 있었습니다. 읽은 후 착각 한거다...라는 결론을 내고 비웃고, 낄낄 거리더군요.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일은 모두 착각이고 비웃음거리가 되는 걸까요? 어디선가 그런 괴이쩍은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흥미로워하며 듣는 것이 아닐까요? 밤의 이야기꾼들의 이야기들도 그렇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있을 것 같은 이야기들. 이야기꾼들의 이야기를 들은 김정우도 마침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그리고 안식을 찾습니다. 그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같은 것이 그를 누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책을 덮으며 약간 임팩트가 부족하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의 이야기꾼들의 이야기 하나하나는 괴이하고, 영화화 계약을 했다는 '홈, 스위트홈'은 무척 두렵게 드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을 하나의 맥락으로 본다면, 어쩐지 무언가가 조금 부족한 것 같은 기분. 한국 영화나 소설의 필수 요건인 억지 감동이나 눈물 같은 것도 조금 들어있었습니다. - 그래서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한 번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지독하게 무섭지는 않지만, 문득 길에서,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 같은 사람과 마주친다면,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오소소 돋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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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수염의 다섯 번째 아내 블랙 로맨스 클럽
제인 니커선 지음, 이윤진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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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겪어 본 사람은 상상 할 수 없는 숨막힐 듯한 공기가 있습니다. 분명히 공기는 흐르고 있는데, 내 주위에만 산소가 부족한 공기가 느리게 흘러갑니다. 그 공기는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으며 나를 지켜보고 있는 자에 의해서만 움직입니다. 내가 긍정적이고, 창의적이고 발랄할 수록 그 옥죄는 분위기는 더욱 무거워집니다. 1토르의 기압이 남들을 누르고 있을 때 나에게만 더욱 큰 힘을 가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듭니다.

가령,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보고 나도 모르게 웃으려는 순간, 저게 웃기냐. 저게 웃겨?라는 말을 들으면 갑자기 세상 모든 것이 재미없어집니다. 아니, 재미없어야합니다. 하나도 슬프지 않은데, 그가 눈물을 흘리면, 나도 슬퍼야합니다. 그가 화가 났을 때는 특히 조심해야합니다.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는 뇌를 흔들어 놓습니다. 마음에서 불안감이 꿈틀거립니다. 기분이 좋을때도 조심해야합니다. 방심했다가는 갑자기 돌변해서 빈정거리거나 화를 낼지도 모릅니다. 전, 그런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남들에게는 한 없이 좋은 사람이고, 사업도 번창하여 통크게 한 턱 쏘기도 합니다. 동안에 귀여운 눈웃음. 매력적인 목소리. 뛰어난 화술. 노래도 연기력도 뛰어납니다. 타인에게서 저런 사람이 아버지라니 넌 참 좋겠다라는 말을 들을 때면 당신이 함께 사시던가요...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튀어나올 것 만 같았습니다.


<푸른수염의 다섯 번째 아내>라는 소설의 푸른 수염, 버나드 드 크레삭은 저희 아버지를 연상하게 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크레삭의 대저택으로 초대받아 그 곳에 살러 간 17세 소녀 소피아는 처음엔 그의 부유함과 자신이 아버지에게 못 받았던 물질적인 사랑과 우아한 생활에 조금은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점점 크레삭의 성격을 깨닫고 불안해합니다. 처음엔 크레삭을 이성이라기 보다는 아버지 비슷한 사람이라 여겼기 때문에 저는 소피아가 되어 크레삭의 성격을 그대로 받아야만 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버리고 말았습니다. 크레삭이 욱하는 성질을 부릴때면 제 심장도 쿵덕쿵덕. 트라우마가 들춰지고 말았습니다. 소피아가 그 곳에서 떠나고 싶어하는 심정과 얼마나 불안했을까하는 마음을 이 소설에서 표현 한 것 보다 더 진하게 느끼고 말았습니다. 저는 소피아였고, 소피아는 저였습니다.

하지만, 크레삭은 소피아의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크레삭은 소피아가 아기였을 때부터 그녀를 점찍어 두었던 모양입니다. 자신의 신부로요.

이미 그에겐 행방불명 되었거나, 죽어버린 네명의 빨간 머리의 신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빨간머리의 아름다운 소피아와 결혼하기를 원합니다. 소피아는 그와 결혼하기 싫습니다. 아무리 모든 부를 함께 누릴 수 있다하더라도 그의 허락 없이는 1센트도 그녀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흑인 노예들에 대한 그의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아직 19세기 중반, 노예들은 주인의 소유물이며 짐승과 같아서 생사여탈이 그의 손에 있었지만, 소피아는 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이해하기를 원했습니다. 에스더 왕비와 같은 용기도 크레삭에게는 듣지 않았습니다.


부를 가지고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과 자유를 누리며 가난한 것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 그나마 나을 테지만, 만일 후자를 선택한다면 크레삭에게 반드시 복수를 당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녀의 선택은 더욱 힘겹습니다. 그리고, 이미 죽은 빨간 머리의 네 유령도 그녀의 결혼을 막고 싶어하는듯, 언젠가부터 그녀 주위를 맴돕니다.


아멜리 노통브의 푸른 수염, 페로의 푸른 수염, 앤젤라 카터의 피로 물든 방... 이야기와는 다른 결말을 보여주는 <푸른 수염의 다섯번째 아내>. 어떤 결말을 내었을까요. 저는 이 이야기의 결말이 마음에 듭니다. 비록 헐리우드식 공포영화의 규칙을 그대로 따르는 바람에 유치함에 코웃음을 쳤지만요. 좋습니다. 이런 결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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