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어지면 전화해
이용덕 지음, 양윤옥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에 대해서 오해 했습니다. 검은 표지, 자극적인 제목... 게다가 책을 권해 주신 분이 미스터리를 즐기는 카페 몽실의 주인장이시니 이 책은 당연히 미스터리일 것이라고 오해했지요. 그러나 미스터리가 아니었습니다. 분명 띠지에 높은 문학성, 문예상 수상작이라고 쓰여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스터리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으니 잘 못 된 표를 들고 열차를 탄 셈입니다.


저는 재수를 해 본적이 없습니다만...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기 까지- 정확하게는 입학 시험을 볼 때까지 공백기가 있었습니다. 지방대 출신인 제가 서울의 유명대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공부한다는 것은 타인의 눈에는 핑계를 만들어 둔 백수처럼 보였을 겁니다. 저 자신도 과연 이렇게 해서 대학원에 진학 할 수 있는 걸까...하는 의문을 가졌었구요. 공부하는 중에도 불안감이 함께했습니다. 아르바이트하고 공부하고, 그렇게 둘만 열심히 한 것이 아니라 역시 젊을때이니 연애도 하고, 개봉관을 찾아다니며 영화도 열심히 보곤했습니다. 그런 순간 순간의 휴식마저도 불안하고 약간의 죄의식도 생기던 그런 때였지요. 소설 속에서 유명대를 목표로 하는 삼수생 도쿠야마도 아마 그런 기분이었을 겁니다. 공허함과 불안함, 어깨를 누르는 무게감이 느껴지는 현실을 벗어나 가벼운 마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공존하고 있는 그 때, 동료들과 함께 단란주점에 놀러가게 되고, 그곳의 넘버원인 하쓰미와 동석하게 됩니다. 하쓰미는 도쿠야마에게 '힘들거나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주세요. 언제든지.'라는 메시지와 함께 자신의 전화번호를 건넵니다. 처음엔 찜찜해 하던 도쿠야마였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하쓰미에게 빠져들게 되어 그녀의 마력에 갇혀버립니다. 둘은 동거를 시작하는데, 그녀의 취미는 참으로 독특합니다. 살인, 엽기, 고문, 학살 등에 대한 오타쿠적인 지식 뿐만 아니라 잔혹한 세계사에도 심취해 있는 그녀는 피튀기는 이야기를 하면서 섹스하는 것을 즐깁니다. 그런 일들에 거부감을 느끼는 도쿠야마도 어쩐지 점점 익숙해지고, 함께 물들어 갑니다. 마음으로는 거부하지만 육체는 따라간다고나 할까요. 제 입장에서는 그런 장면들이 무척 불쾌했습니다. 잔인함을 곁들인 섹스가 불쾌하다기 보다는, 성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책을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불쾌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 개인적 취향이기 때문에 이 책 자체를 탓할 것은 못되지요. 애초에 오해하고 펴 든 소설인데요. 뭐.


도쿠야마는 아름다우면서도 어두운, 그녀에게 흠뻑 빠져버렸습니다. 마녀와 같은 매력의 소유자. 그녀는 하고픈 말을 거침없이 하는 타입이었는데요. 그것이 막무가내 주점아가씨 같이 우겨대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이면서도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이 어둠의 여왕님 같았습니다. 하지만 사실 성적 취향으로 따지자면 여왕님은 커녕 사디스트 쪽에 가깝지요. 그녀의 그런 변화로운 모습은 도쿠야마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네트워크 마케팅의 사업설명회에 가서도 지지 않고 딱 부러지게 이야기하는 그녀. 무언가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못했던 도쿠야마는 지인들에게 거침없이 이야기 하게 되고, 결국은 무리에서 점점 고립되어 친구라고는 한명도 없이 일마저 그만두고 이른바 기둥서방 같은 꼴이 되어버립니다. 말로는 학업에 전념하기 위해서라고는 했지만요.


방해하는 사람도 없고, 사랑스런 그녀와 함께 있으니 이야기는 점점 행복해져야 하는데, 어째서인지 정신상태는 점점 어두워지는 것 같습니다. 근묵자흑, 근주자적인가요.


사람은 누구나 암흑기라는 걸 거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게 없는 사람이라면 좀 부럽기도 하지만, 밋밋하겠다...참 연약하겠네..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 암흑기라는게 10대때 올 수도 있고, 중년, 혹은 노년에 올 수도 있겠지요. 그 깊이나 무게 같은 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힘듭니다. 지나고나면 잘못된 선택이라는 걸 깨닫지만, 그 시기를 보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참 많습니다.

이 소설에서의 도쿠야마는 그런 암흑기에 들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미 회색빛이었던 그를 검은 색의 하쓰미가 부드럽게 끌어내리고 있었던 것 뿐이지요.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어둠에 삼켜져 사다리도 없는 그 공간에서 헤어나오려 허우적거릴까요. 그렇지 않으면 어둠을 버리고 밝은 곳으로 나와 다시 회색과 하늘색으로 살아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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