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 죽은 자의 일기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9
정해연 지음 / 황금가지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뉴스를 보고 살아야 하는 건지, 눈 감고 귀 닫고 뉴스 같은 건 모른 채 그냥 나만의 세상에 틀어박혀 살아야 하는 건지, 어느 쪽이 과연 나에게 이로운지 잘 몰라 방황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아니, 예전부터 그래왔지만 요새 더 진하게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사는 이 지역에서도, 우리나라 전체를 보아서도, 전 세계적으로 보아서도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서슴없이 저지르는 정치인들의 이야기는 정말로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아도 좋은 것인지 고민하게 만듭니다. 뒤에서는 더러운 짓들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착한 사람, 나라를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사람인 것처럼 멋지게 포장해놓고선 사실은 코웃음치며 나 같은 사람을 비웃는 건 아닌가 하는 마음에 선거 때만 되면 그놈이 그놈이지만 좀 더 나은 놈을 뽑아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를 하게 만듭니다. 이런저런 약속들을 해대지만 정말로 해낼 것인가 의심이 되고,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서 어떤 곳에서 얼마만큼의 희생을 해야만 이루어지는 것인지까지 고민하다 보면 나의 작은 한 표가 진실로 소중한 것인가 하는 허무함을 느낍니다. 


공공의 적 OST를 들으며 이 글을 적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잔잔한 클래식과 커피 한 잔을 소모했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공공의 적 OST가 필요해졌습니다. 아무리 마음을 다스리는 클래식이라고 하더라도 이 책 안에 있는 내용을 다스리는 건 무리였나 봅니다. 오히려 공공의 적 OST의 두근거리는 비트와 욕이 난무하는 가사(일부 곡이지만)가 마음을 시원하게 만듭니다. 


얼마 남지 않음을 느낀다. 이제는 결심할 때가 되었다. 

남편의 배를 가르면 뭐가 나올까.

추악한 욕망, 불결한 어둠, 배신, 교만, 비틀린 욕정. 밭은 숨을 내뱉을 때마다 그것들을 한꺼번에 울컥, 쏟아낼 것이다. 나는 마침내 남편을 죽이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법은, 그를 옭아 맬 수 없다. 


시장 후보로 선거운동 중인 강호성의 아내 주미란과 어머니 장옥란은 한 날 한 시에 자택에서 사망합니다. 평생 아들의 성공을 위해 무엇이든지 하던 장옥란은 치매로 며느리인 주미란을 괴롭힙니다. 주미란은 그런 시어머니로 인해 괴로웠지만 더욱 괴로운 것은 좋은 사람의 탈을 쓰고 있는 파렴치한 남편 강호성과 자신을 먹어들어가는 암세포까지 모든 것이 절망스러웠습니다. 죽기 전에 남편의 모든 것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지만, 준비한 서류를 믿을 수 있는 기자에게 넘기기도 전에 시어머니에게 들키고 맙니다. 며느리를 공격해 기절시킨 장옥란은 아들을 불러 주미란을 신병을 비관한 투신자살로 꾸미자고 했지만, 아들은 어머니마저 교살하고 아내를 베란다에서 추락시킵니다. 치매 시어머니를 죽이고 투신한 며느리의 자살 사건으로 끝날 것 같던 사건이 서동현 형사의 치밀한 추적으로 점점 그 더러운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게다가 조연에 불과했던 그 집의 가정부 서산댁의 증거물 제출로 사건은 더욱 확실하고 끝을 향해갑니다. 법이심판할 수 없는 그 남자는 과연 누구의 심판을 받을까요?



가독성이 엄청 좋습니다. 손에 착 달라붙으면 웬만해서는 떨어지지 않는 책이지요. 챕터의 나뉨도 무척 훌륭합니다. 범인과범행 동기가 애초에 드러나있는 소설임에도 과연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기대하며 읽을 수 있었습니다. 추리를 하며 범인이 누구인가 생각하게 하는 소설도 좋지만, 이런 종류의 책도 무척 좋아합니다. 그러니 이 책은 대만족입니다. 얼마 전 읽었던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5의 <누군가>도 좋았지만 <악의>쪽이 더 마음에 듭니다. 또 하나 저를 만족시키는 부분이 있는데요. <악의>에서 서동현 형사와 콤비 플레이를 보여줬던 지신우 형사가 <누군가>에서 활약합니다. 역시. 인물들이 살아있다는 건 좋은 일이네요. 행복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여름 밤의 비밀 마탈러 형사 시리즈
얀 제거스 지음, 송경은 옮김 / 마시멜로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아름다운 음악을 남긴 쟈크 오펜바흐는 유태인입니다. 그는 살아생전 극장을 운영하며 여러 작품을 남기며 세태를 풍자하고 꼬집기도 했었는데요. 그의 사후 50년도 되지 않아 많은 유태인들이 많은 고통을 당할 것이라는 걸 상상이나 했을까요. 그가 생각하지 못 했던, 생각할 수도 없었던 많은 일들이 그의 후손과 같은 민족들에게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트가 바로 그것입니다. 


<너무 예쁜 소녀>의 저자 얀 제거스의 이번 소설은 <한여름 밤의 비밀>인데요. 전작보다 좀 더 탄탄한 구성으로 다가왔습니다. 사실 전작에서 조금 실망했었기에 제가 다시 얀 제거스의 소설을 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습니다. 신작 소식을 듣고 잠시 망설였지만, 궁금증을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과연 오펜바흐의 친필 악보라는 소재를 어떻게 끌어 나갈 것인가에 대해 궁금했거든요.


오펜바흐의 미완의 유작 '호프만의 이야기'라는 오페라가 있습니다. 독일의 낭만주의 작가인 호프만의 인생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오페라로 그려나가는데요. 제가 클래식에 대해 잘 몰라서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오페라 속의 호프만과는 다른 호프만이 이 소설에 등장합니다. 어린 시절 부모와 떨어져 유태인이 아닌 프랑스 사람으로 살아가며 작은 극장을 운영했던 그는 어느 날 TV 쇼에 출연해서 고향인 독일에 가지 않았던 사연을 이야기합니다. 방송 출연 후 그에게 도착한 한 통의 서류봉투가 그를 놀라게 하는데요. 그 안에는 오펜바흐의 미공개 오페레타 <한여름 밤의 비밀>이라는 제목의 악보가 들어있었습니다. 오펜바흐의 미공개작이라니. 그 값어치는 어마어마할 테지요. 방송기자인 발레리는 그 악보를 가지고 호프만의 대리인으로서 저작권 계약을 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향합니다. 그러나, 계약을 하기로 한 장소에서 느닷없이 벌어진 총격 사건으로 많은 사람이 사망하고 그녀는 납치당합니다. 범인은 어째서 그녀를 죽이지 않고 납치했을까요? 


프랑크푸르트 경찰청 강력계 팀장 로버트 마탈러는 이 사건의 범인과 동기를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사건을 추적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데요. 칙칙하고, 어둡고 광기도 있고, 무언가.. 독일은 이렇게 어두운 곳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밝은 사람보다는 무언가 힘겨워 보이는 사람들이 채칵채칵 돌아가며 그 사회를 돌리고 있는 것인가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 나름대로 어떻게든 살아가더군요. 소설 속에서의 묘사이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 실제로 독일인의 삶이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모르는 것 투성이인 저는 소설을 읽어가면서 결국 정말로 모를 일을 만나고 말았습니다. 아우슈비츠, 매드 사이언티스트. 그들의 광기. 인간의 잔인함.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하는 것들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앞서 이야기 한 호프만의 이야기 중에는 뱃노래라는 유명한 곡이 있습니다. 그 곡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 삽입되었는데요. 귀도가 도라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오페라 관람신에 등장합니다. 아름답고 감미로운 곡이 그들을 감싸지만, 그들은 결국 아우슈비츠로 가게 되죠. 이 소설 역시 아우슈비츠로 연결되어있습니다. 아우슈비츠는 이제 없다고 생각하는 우리지만 사실은 끝나지 않은 게 아닐까요? 그로 인해 아파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남아있으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5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30
도진기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편은 장편대로의 맛이 있고, 단편은 단편대로의 맛이 있는데, 각자의 장단점은 분명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소설을 만났을 때를 생각해보자면, 장편을 만들었으면 좋을 것 같은 소재를 단편화하면 무언가 이야기가 성큼성큼 걸어가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콘티를 흝어 본 것 같은 기분이 드는가 하면, 중단편의 소재를 장편화하면억지로 이야기를 길게 늘인 것 같은 산만함에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책을 읽다 보면 깨닫게 되는 것이 장편을 쓰는 것보다 단편을 쓰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인데요. 길지 않은 지면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적절한 리듬으로 채워나가는 일이 보통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심지어 저는 나이를 먹을수록 초반 집중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데요. 장편의 경우 약 15페이지 정도는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고 있다가 서서히 머릿속에 장면을 그려나가며 화면을 메꾸고 있습니다. 100페이지쯤 되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왕왕 있지요. 그러니 단편소설인 경우 아차 하면 소설이 끝날 때까지 이 소설이 무슨 소설인지 집중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연작 단편도 아니고 각기 다른 작가의 소설들이 모여있는 단편집인 경우에는 더 큰일이지요. 


그러나 이번에 읽은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5>는 대체로 몰입도가 좋았습니다. 초반부터 시선을 잡아끌고 작품에 매어놓는 솜씨가 베테랑의 그것이었습니다. 물론 몰입에 실패한 작품도 있었지만 그건 제 자신의 산만함 때문이니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단편의 장점을 살려 한 편을 읽고 다른 일을 하다가 또 한편을 읽고 또 잠시 휴식하다를 반복하며 10개의 단편을 모두 읽었습니다. 아무래도 익숙한 작가의 소설이 더 기대되게 마련인데, 지나친 기대를 하면 곤란하다고 스스로를 자제시키며 작가의 이름을 확인하지 않고 소설을 읽었습니다. 다 읽고 나서 작가의 이름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지요. 


도진기님의 <시간의 뫼비우스>는 정말 의외였습니다. 육체는 그대로이지만 의식만이 끊임없이 19세의 자신으로 돌아가 같은 생을 반복하는 48세의 판사는 그 끝없는 시간 속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과연 이번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하게 만들었습니다. 과거로 돌아가되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절망감. 그러나 그 속에서도 탈출구를 찾아 나서는 그의 이야기가 비과학적이면서도 과학적인 것 같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우리의 생이 거지 같든 행복하든 단 한 번이기에 소중하며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으니 연초에 읽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제 목표가 '잘, 살아남자.'거든요. 


송시우님의 <잃어버린 아이에 관한 잔혹동화>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호칭이 무척 특이했습니다. 짠 내 나는 홀어머니, 실종된 아이의 엄마, 높은 집에 사는 여자 등으로 부르는데요. 어투 역시 동화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어서 마치 동화를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가 각자의 사정으로, 이기적인 이유로 행동하는 그것이 동화 속의 잔인함과 같아서 더욱 마음이 조여들었습니다. 심장은 두근두근거리는데 나는 불안해하며 사건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바닷가에서의 진한 해무를 느껴 본 사람이라면 더욱 진한 상상을 하며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되었던 전건우님의 <해무>는 영도 바다의 해무를 떠올리며 탄생되었다고 하지만, 저는 제주의 해무를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우울하고 짙은 안갯속에서 차갑고 눅눅하고 짭조롬한 바다 냄새가 입안에 돌았습니다. 안갯속에서 길을 잃은 것과 같은, 오랫동안 느껴보아야만 알 수 있는 바닷가의 뼈가 시큰거릴 만큼의 습기. 주인공은 해무 마을의 박무당이 전해준 순자의 죽음 소식을 듣고 25년 만에 마을로 찾아갑니다. 순자가 왜 이제 와서 죽었을까. 고민하는 사이 소금기 품은 안개는 어느새 다가와 그를 삼켜버립니다. 



다른 7개의 단편들도 모두 좋았습니다. 아주 좋고, 조금 좋고, 그냥 좋은 차이는 있었지만요. 

전체적으로 보면, 재미있습니다. 추천할 만하고요. 

한국 추리 소설들이 점점 더 좋아지는 것 같아 행복합니다. 

올해도 많은 한국 작가들의 소설을 만나길 기대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리하는 조선 남자 - 음식으로 널리 이롭게 했던 조선 시대 맛 사냥꾼 이야기
이한 지음 / 청아출판사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쿡방 먹방이 대세인 요즘. 요리를 잘 하는 남자들이 멋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요리를 잘 못하더라도 먹성 좋게 먹는 - 지저분하게 게걸스럽게가 아니고 - 남자를 보면 참 기분이 좋습니다. 여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오늘의 책은 <요리하는 조선 남자>이니 남자의 경우로만 생각해보았습니다. 후배가 자신의 남자친구를 인사 시켜준다기에 고깃집에서 만났었는데요. 이건 싫어, 이건 안먹어. 깨작깨작. 삐딱하게 앉아서 편식은 물론이고 예의마저 쌈싸먹은 - 아, 그래서 배가 고프지 않았었나 봅니다 - 그 남자를 보며 이 사람하고 다시는 밥을 먹지 않으리라 결심했었는데요. 결국 그와 함께 다시 밥을 먹을 일은 없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돈이 있으면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지만, 옛날에는 돈이 있어도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없는 날들이 참 많았는데요. 한겨울에 참외 같은 것이 먹고 싶다면 꿈에도 참외를 그리며 몸부림을 쳤었겠죠. 우리 조상들의 참외 사랑은 대단했는데, 간식으로도 먹고 식사로도 먹고 하며 한자리에서 스무 개까지도 먹을 수 있었던 참외. 정약용은 그 참외를 먹어보겠다고 과수원을 꾸미다가 귀양을 가는 바람에 우울해했다지요. 귀양지에서 사람들의 도움으로 참외 농사를 재시도 하였지만, 이론은 확실하지만 실습이 잘 안되는 양반인지라 농부가 혀를 찰 정도로 참외 농사를 망치고 시름에 젖었었지만, 결국은 성공한 모양인지 여기저기 선물 할 정도가 되어 뿌듯해합니다. 그리고 그 좋아하는 참외를 한겨울에도 먹을 수 있도록 연구를 했다고 하는데요.. 과연 성공했을까요? 신선한 참외는 무리라도 장아찌는 가능했을 거예요.


북학의의 초정 박제가는 이제부터 제 기억 속에서 식신 박제가로 기억될 것 같은데요. 얼마나 식탐이 대단했던지 유득공이 그를 '냉면 세 그릇에 만두 백 개!'라고 놀려댔다고 합니다. 정약용과 친하게 지내면서 개고기를 맛있게 조리하는 레시피를 그에게 전해주기도 했는데요. 간서치 이덕무는 먹을 것을 좋아하면서도 예의 바르게 먹는 것을 좋아해 잔소리를 했다고 테이블 매너를 전수했다고 합니다. 주변에서도 이덕무를 그렇게 챙겨주곤 했는데, 박제가만은 챙겨주기는커녕 뺏어 먹었다니 이덕무가 기분이 나빠서 이서구에게 그를 혼 내달라고 했답니다.  


연암 박지원의 귀여운 모습도 보았는데요. 아들에게 손수 담근 고추장을 뿌듯해하면서 한 단지 보냈는데, 아들은 마침 태어난 자신의 아들 자랑만 하는 답장을 보냈더니, 박지원이 완전히 삐져버린 거 있죠? 


이전에 보낸 쇠고기 장볶이는 받아서 아침저녁으로 먹고 있니? 왜 한 번도 좋은지 어떤지 말이 없니? 무람없다. 무람없어. 난 그게 포첩이나 장조림보다 더 좋은 거 같더라. 고추장은 내가 직접 담근 거다. 맛이 좋은지 어떤지 자세히 말해주면 앞으로도 계속 보낼지 말지 결정하겠다.


옛사람들도 먹을 것을 가지고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 먹을 것을 밝히기도 했다는 것을 보며 왕도, 신하도, 일반 백성들도 모두 현재의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었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이 책은 구성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옛이야기처럼 즐겁게 읽을 수 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음식디미방>,<산림경제>,<규합총서>등의 출처에 나타나있는 조선시대의 요리법도 알려주고 있어서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할 복잡한 방법으로 맛나게 조리를 했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읽다 보면 웃음이 나오는 재미있는 책. <요리하는 조선 남자>는 올해의 첫 책으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족이라는 병 - 가장 가깝지만 가장 이해하기 힘든… 우리 시대의 가족을 다시 생각하다
시모주 아키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살림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족'이라는 말은 포근한 둥지 같은 것을 연상시킴과 동시에 불안함을 느끼게 합니다. 저에게 그렇다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가족은 어떻게 지내는지, 사실은 큰 관심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겉으로 보기에는 행복해 보이더라도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경우도 상당히 많으니 굳이 그들을 부러워하지도 않고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해주면 좋게 잘 지내고 있구나 하고, 아무 소식이 없다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지내고 있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소식을 잘 물어보지 않습니다. 그런 저에게 냉정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제가 물어보지 않는 이유는 타인들도 저에게 물어보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고정관념처럼 여겨지는 완벽한 형태의 가족을 가져 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물어보며 나를 가십의 도마에 올려놓는 것을 싫어해왔습니다. 어릴 때는 완벽한 형태의 가족,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아껴주며 편안하고 다독이는 그런 가족을 모두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와 제 친구 몇을 빼고선 말이지요.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가족의 형태야말로 정말로 드물다는 것을요. 완벽하다는 기준에 정확히 들어맞는 가족은 거의 없었습니다. - 사실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 자신의 가족이 완벽하다고 느낀다면 그거야말로 행복한 일일 겁니다. 


저로 말씀드리자면, 형태적으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나름 만족스럽습니다. 핵가족의 범위에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광의적인 가족, 친족 혹은 인척까지 범위를 확대한다면, 결코 만족스럽지 못 합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바운더리를 좁게 잡고서 작은 우물 안에서 만족해하고 있습니다. 이 우물이 나중에는 점점 넓어지거나 깊어지겠지요. 앞으로 10년, 20년 후에는 저는 딸로 인해, 또 다른 가족 구성원에 속하게 될 테니까요. 

사실 완벽한 가족도 드물고, 완전한 부모 자식도 드문데 어째서 사람들은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어째서 가족의 나머지 부분을 채우지 않느냐며 오지랖을 떱니다. 이를테면, 한 부모가족이라거나 독신자들에 대해서라거나 아이를 하나만 키우는 사람이라거나 결혼 후 아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형태적인 부분을 강요하고, 심지어 그러면 못쓴다라거나 지금은 잘 몰라서 그런다는 말로 설득하거나 공연히 안쓰러워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오지랖일 뿐입니다. 그들이 그런 인생을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 한 것처럼 후회를 하더라도 스스로 감내할 문제입니다. 게다가 그런 형태가 그들에게 정말로 적합한 형태일 수도 있습니다. 행복하다면 그걸로 족한 것 아닌가요. 


형태적인 면은 어떻게 잘 챙겼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내면적인 것도 모두 챙길 수 있을까요? 가깝기 때문에 오히려 말로 상처를 입히기도 하고, 상대가 인격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권위주의적인 태도로 자식을 다스리려 하거나, 친구 같은 부모가 되고 싶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아이에게 철없이 굴어서 한심한 부모가 되어버리거나 아이를 위해서 무엇이든지 다한다는 태도로 오히려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아이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 자신은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나 괴로움으로 힘들어할 수도 있습니다. 부모 자식 간, 혹은 부부간, 형제자매 간... 불편함과 상처는 곳곳에 숨어있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 상처가 더 크고, 드러냈다가 상대가 속상해할까 봐 마냥 참다가 마침내 진득한 고름이 터져버릴 수도 있습니다. 


시모주 아키코의 <가족이라는 병>은 어떤 방향을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읽고 나면 여러 사람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많은 생각을 뽑아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