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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는 조선 남자 - 음식으로 널리 이롭게 했던 조선 시대 맛 사냥꾼 이야기
이한 지음 / 청아출판사 / 2015년 11월
평점 :
쿡방 먹방이 대세인 요즘. 요리를 잘 하는 남자들이 멋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요리를 잘 못하더라도 먹성 좋게 먹는 - 지저분하게 게걸스럽게가 아니고 - 남자를 보면 참 기분이 좋습니다. 여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오늘의 책은 <요리하는 조선 남자>이니 남자의 경우로만 생각해보았습니다. 후배가 자신의 남자친구를 인사 시켜준다기에 고깃집에서 만났었는데요. 이건 싫어, 이건 안먹어. 깨작깨작. 삐딱하게 앉아서 편식은 물론이고 예의마저 쌈싸먹은 - 아, 그래서 배가 고프지 않았었나 봅니다 - 그 남자를 보며 이 사람하고 다시는 밥을 먹지 않으리라 결심했었는데요. 결국 그와 함께 다시 밥을 먹을 일은 없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돈이 있으면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지만, 옛날에는 돈이 있어도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없는 날들이 참 많았는데요. 한겨울에 참외 같은 것이 먹고 싶다면 꿈에도 참외를 그리며 몸부림을 쳤었겠죠. 우리 조상들의 참외 사랑은 대단했는데, 간식으로도 먹고 식사로도 먹고 하며 한자리에서 스무 개까지도 먹을 수 있었던 참외. 정약용은 그 참외를 먹어보겠다고 과수원을 꾸미다가 귀양을 가는 바람에 우울해했다지요. 귀양지에서 사람들의 도움으로 참외 농사를 재시도 하였지만, 이론은 확실하지만 실습이 잘 안되는 양반인지라 농부가 혀를 찰 정도로 참외 농사를 망치고 시름에 젖었었지만, 결국은 성공한 모양인지 여기저기 선물 할 정도가 되어 뿌듯해합니다. 그리고 그 좋아하는 참외를 한겨울에도 먹을 수 있도록 연구를 했다고 하는데요.. 과연 성공했을까요? 신선한 참외는 무리라도 장아찌는 가능했을 거예요.
북학의의 초정 박제가는 이제부터 제 기억 속에서 식신 박제가로 기억될 것 같은데요. 얼마나 식탐이 대단했던지 유득공이 그를 '냉면 세 그릇에 만두 백 개!'라고 놀려댔다고 합니다. 정약용과 친하게 지내면서 개고기를 맛있게 조리하는 레시피를 그에게 전해주기도 했는데요. 간서치 이덕무는 먹을 것을 좋아하면서도 예의 바르게 먹는 것을 좋아해 잔소리를 했다고 테이블 매너를 전수했다고 합니다. 주변에서도 이덕무를 그렇게 챙겨주곤 했는데, 박제가만은 챙겨주기는커녕 뺏어 먹었다니 이덕무가 기분이 나빠서 이서구에게 그를 혼 내달라고 했답니다.
연암 박지원의 귀여운 모습도 보았는데요. 아들에게 손수 담근 고추장을 뿌듯해하면서 한 단지 보냈는데, 아들은 마침 태어난 자신의 아들 자랑만 하는 답장을 보냈더니, 박지원이 완전히 삐져버린 거 있죠?
이전에 보낸 쇠고기 장볶이는 받아서 아침저녁으로 먹고 있니? 왜 한 번도 좋은지 어떤지 말이 없니? 무람없다. 무람없어. 난 그게 포첩이나 장조림보다 더 좋은 거 같더라. 고추장은 내가 직접 담근 거다. 맛이 좋은지 어떤지 자세히 말해주면 앞으로도 계속 보낼지 말지 결정하겠다.
옛사람들도 먹을 것을 가지고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 먹을 것을 밝히기도 했다는 것을 보며 왕도, 신하도, 일반 백성들도 모두 현재의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었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이 책은 구성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옛이야기처럼 즐겁게 읽을 수 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음식디미방>,<산림경제>,<규합총서>등의 출처에 나타나있는 조선시대의 요리법도 알려주고 있어서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할 복잡한 방법으로 맛나게 조리를 했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읽다 보면 웃음이 나오는 재미있는 책. <요리하는 조선 남자>는 올해의 첫 책으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