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 죽은 자의 일기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9
정해연 지음 / 황금가지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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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고 살아야 하는 건지, 눈 감고 귀 닫고 뉴스 같은 건 모른 채 그냥 나만의 세상에 틀어박혀 살아야 하는 건지, 어느 쪽이 과연 나에게 이로운지 잘 몰라 방황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아니, 예전부터 그래왔지만 요새 더 진하게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사는 이 지역에서도, 우리나라 전체를 보아서도, 전 세계적으로 보아서도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서슴없이 저지르는 정치인들의 이야기는 정말로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아도 좋은 것인지 고민하게 만듭니다. 뒤에서는 더러운 짓들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착한 사람, 나라를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사람인 것처럼 멋지게 포장해놓고선 사실은 코웃음치며 나 같은 사람을 비웃는 건 아닌가 하는 마음에 선거 때만 되면 그놈이 그놈이지만 좀 더 나은 놈을 뽑아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를 하게 만듭니다. 이런저런 약속들을 해대지만 정말로 해낼 것인가 의심이 되고,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서 어떤 곳에서 얼마만큼의 희생을 해야만 이루어지는 것인지까지 고민하다 보면 나의 작은 한 표가 진실로 소중한 것인가 하는 허무함을 느낍니다. 


공공의 적 OST를 들으며 이 글을 적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잔잔한 클래식과 커피 한 잔을 소모했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공공의 적 OST가 필요해졌습니다. 아무리 마음을 다스리는 클래식이라고 하더라도 이 책 안에 있는 내용을 다스리는 건 무리였나 봅니다. 오히려 공공의 적 OST의 두근거리는 비트와 욕이 난무하는 가사(일부 곡이지만)가 마음을 시원하게 만듭니다. 


얼마 남지 않음을 느낀다. 이제는 결심할 때가 되었다. 

남편의 배를 가르면 뭐가 나올까.

추악한 욕망, 불결한 어둠, 배신, 교만, 비틀린 욕정. 밭은 숨을 내뱉을 때마다 그것들을 한꺼번에 울컥, 쏟아낼 것이다. 나는 마침내 남편을 죽이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법은, 그를 옭아 맬 수 없다. 


시장 후보로 선거운동 중인 강호성의 아내 주미란과 어머니 장옥란은 한 날 한 시에 자택에서 사망합니다. 평생 아들의 성공을 위해 무엇이든지 하던 장옥란은 치매로 며느리인 주미란을 괴롭힙니다. 주미란은 그런 시어머니로 인해 괴로웠지만 더욱 괴로운 것은 좋은 사람의 탈을 쓰고 있는 파렴치한 남편 강호성과 자신을 먹어들어가는 암세포까지 모든 것이 절망스러웠습니다. 죽기 전에 남편의 모든 것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지만, 준비한 서류를 믿을 수 있는 기자에게 넘기기도 전에 시어머니에게 들키고 맙니다. 며느리를 공격해 기절시킨 장옥란은 아들을 불러 주미란을 신병을 비관한 투신자살로 꾸미자고 했지만, 아들은 어머니마저 교살하고 아내를 베란다에서 추락시킵니다. 치매 시어머니를 죽이고 투신한 며느리의 자살 사건으로 끝날 것 같던 사건이 서동현 형사의 치밀한 추적으로 점점 그 더러운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게다가 조연에 불과했던 그 집의 가정부 서산댁의 증거물 제출로 사건은 더욱 확실하고 끝을 향해갑니다. 법이심판할 수 없는 그 남자는 과연 누구의 심판을 받을까요?



가독성이 엄청 좋습니다. 손에 착 달라붙으면 웬만해서는 떨어지지 않는 책이지요. 챕터의 나뉨도 무척 훌륭합니다. 범인과범행 동기가 애초에 드러나있는 소설임에도 과연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기대하며 읽을 수 있었습니다. 추리를 하며 범인이 누구인가 생각하게 하는 소설도 좋지만, 이런 종류의 책도 무척 좋아합니다. 그러니 이 책은 대만족입니다. 얼마 전 읽었던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5의 <누군가>도 좋았지만 <악의>쪽이 더 마음에 듭니다. 또 하나 저를 만족시키는 부분이 있는데요. <악의>에서 서동현 형사와 콤비 플레이를 보여줬던 지신우 형사가 <누군가>에서 활약합니다. 역시. 인물들이 살아있다는 건 좋은 일이네요.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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