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적 글쓰기 - 열등감에서 자신감으로, 삶을 바꾼 쓰기의 힘
서민 지음 / 생각정원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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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백스페이스를 몇 번이나 눌렀는지 모릅니다. 한 줄 쓰고 지우고, 또 한 줄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글쓰기 책을 읽고 나서 이 정도 밖에 못 쓰는 건가 하는 생각에 자꾸만 지우게 되네요. 

하지만 마음을 편하게 먹고 글을 써보겠습니다. 서민적 글쓰기란 어렵게 쓰는 게 아니니까요.


.... 저 윗부분까지 쓰고서 또 몇 번을 지웠습니다. 글쓰기 책을 읽고 나서 쓰는 글이라 그런지 너무 어렵네요. 이 책을 통해 배운 게 참 많은데 그것들이 오히려 제 손가락을 옭아맵니다. 편안하게 쓰면 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그렇게 안돼요. 잘 해야 한다, 잘 하고 싶다는 욕심이 저를 머뭇거리게 만드는 모양입니다. 거의 매일 한 편씩 포스팅을 하면서 글쓰기가 조금은 편안해지고 나아졌나 싶었는데,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게다가 지금 건방지게 초고도 하지 않고 바로 글을 쓰고 있으니 더 힘들 수 밖에요. 

생각을 따라 그냥 흘러가듯이 쓰는 글도 참 좋지 않은가 싶었는데, 오늘따라 그런 글이 아니라 기승전결이 있는 제대로 된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책을 재미있게 읽고 나서 막상 글을 쓰려니 이게 뭡니까. 글이 안 풀립니다. 

머릿속에서 대 혼란을 일으킨 것 같습니다. 


이러다간 <서민적 글쓰기>라는 책은 대혼란을 야기하는 책이라는 오해를 하실지 모르겠는데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글을 잘 썼던 것도 아닌, 책을 많이 읽었던 것도 아닌 그가 시행착오를 겪고 자만심 같은 것을 버리고 열심히 꾸준히 읽고 쓰면서 터득해간 글쓰기 비법이 고스란히 적혀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의 비법에 동의합니다. 읽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글을 잘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책입니다. 책을 읽고 느끼고 글을 쓰고. 제가 잘 하고 있다는 걸 알고서 기뻤고, 지금처럼 계속하면 더 잘 쓸 수 있게 될 거라는 희망도 보았습니다. 

...단, 오늘만 빼고요. 



*** 오늘은 정말 최악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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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자전거 1 - 김동화 만화 에세이 빨간 자전거 1
김동화 글 그림 / 열림원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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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김동화라고 하면 저는 요정 핑크가 생각납니다. 애니메이션으로도 나왔던 것 같은데요. 그린우드 나라의 공주 핑크가 이 세상에 내려와서 겪게 되는 좌충우돌 스토리에다가 빈과의 러브스토리가 버무려져서 콩닥콩닥 두근대며 만화를 읽곤 했었죠. 

귀엽고 아름다운 소녀를 그렸던 만화가 김동화가 지금은 감성적인 만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서양인을 떠올리게 했던 그의 그림체가 이젠 무척 동양적으로 변해버려서 갑자기 어색해졌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오히려 무척 친근하고 포근하게 다가오네요. 그 계기가 된 것이 바로 빨간 자전거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저에겐 말이죠.)


어쩌다 한 번씩 볼 수 있었던 빨간 자전거의 이야기는 3분이라는 시간 동안 마음을 훑고 지나갑니다. 스치듯 지나가는 인연처럼요. 

빨간 자전거의 주인공인 우체부는 꽁지머리를 한 것이 김동화를 닮았습니다. 작가보다는 젊은 총각이지만, 마음만큼은 김동화와 똑같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아버지의 빨간 자전거를 타고 임하면 야화리의 우체부로서 일하고 있습니다. 일한다는 말이 틀릴지도 모르겠네요. 그는 이 마을 사람들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거든요. 그가 배달하는 것은 편지가 아니라 낭만과 사랑, 그리고 인생인 것 같습니다. 

임하면 야화리 감나무집, 들꽃 나무 울타리 집, 숲 속의 노란 집, 미루 나무길 하얀 집... 야화리 398번지 같은 숫자 대신 자연으로 말하는 집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그 마을의 우편물을 틀리지도 않고 잘도 찾아다니며 우편물을 전합니다. 

예전엔 손글씨 우편물이 오갔었기에 두근대는 마음으로 우체부를 기다렸던 사람들도 이제는 전기 요금 고지서 같은 것이나 우편물로 오기 때문에 시큰둥 할 수도 있지만, 자식들이 모두 도회지로 나가 젊은이를 보기 힘든 노인들은 그를 우체부이자 자식처럼 여기기도 하는가 봅니다. 


 



가을걷이를 하고 나면 우편물보다도 노인들의 심부름 물건으로 행낭이 가득 차버리지만 그가 배달하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정이기에 그의 자전거는 날아갈 듯합니다. 



이 만화를 보면서 가끔씩 찌잉하게 울리는 것이 두통을 잊게 하지만 가슴은 무거워집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예쁜 꽃들을 보며 행복해지지요. 참 예쁩니다. 산, 나무, 풀, 꽃, 집, 개구리.... 뭐하나 버릴 것이 없이 정말 예쁩니다.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든 모습들이 그렇습니다. 험하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예쁜 것들이 돋아나는 법이니까요.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성치 않잖아. 그래서 살아온 길, 걸어온 길, 잊지 않으려고 얼굴에 하나하나 약도를 그려놓은 건데, 뭐... 즐겁게 웃으며 간 길은 눈 옆에 그려 넣고, 힘들어 이를 악물고 간 길은 입 옆에 그려 넣고, 먼 길은 긴 주름을, 가까운 길은 짧은 주름을..."

"야화리만 뱅뱅 도는 저는 어떤 주름이 생길까요?"

"미리 알면 그게 무슨 재민가? 자네가 한 줄 한 줄 그려 나가 봐."

-p.9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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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44 - 2 - 시크릿 스피치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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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2월 25일, 스탈린 사후 처음으로 열렸던 소련 제20차 당대회에서 니키타 흐루쇼프는 스탈린 및 그의 체제에 대한 강한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개인숭배, 권력남용, 비밀경찰에 의한 무자비한 체포와 고문, 재판도 없이 행해진 수많은 처형들에 대해 비인간적이라며 무려 4시간에 걸쳐 비난합니다. 당시 참석했던 많은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는데요. 이날의 연설문은 모두 비공개 처리하기로 했었습니다. 그러나 흐루쇼프는 은근히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했기 때문에 - 자기가 제일 먼저 이런 말을 했다는 걸 남기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 비밀리에 이 비공개 문서를 공개하게 만듭니다. 대량으로 인쇄된 이 문서는 세상 곳곳에 번져나가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연설문으로 인해 지금까지의 든든한 공산주의 체제 - 사실은 스탈린 체제 -가 흔들리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람들을 해쳐왔던 사람들은 비난받고 공격당할까 두려워 자살을 선택하기도 하고 아니면 김일성처럼 흐루쇼프를 비난하며 독재체제를 더욱 강화시키기도 했습니다. 헝가리나 동유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들고일어나 대규모의 자유화 운동이 일어났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소련의 탱크에 희생되기도 했습니다. 


<차일드44 시크릿 스피치>의 주인공 레오는 전직 MGB(옛 소련의 비밀경찰)로써 많은 사람들을 체포했습니다. 친구라고 여겼던 레오에게 체포당한 사람들 중에는 강제수용소에 보내진 사람도 있을 것이고, 죽은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레오는 MGB에서 나와 살인 조사과에 근무 중입니다. 스탈린 시대에는 너무나 완벽해서 살인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스탈린이 없으니 살인도 있겠죠. 과거의 잘못을 어깨에 둘러메고 그는 아내와 입양한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입양한 딸들은 자신의 손으로 체포했던 남자의 아이들입니다. 동생인 엘레나는 몰라도, 언니인 조야는 알고 있습니다. 조야는 끝없이 반항합니다. 입양되어 함께 산 지도 3년, 레오와 라이사의 사랑을 받아들여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능하면 자기 손으로 레오를 죽이고 싶어 합니다. 라이사와는 가족이 될 수 있어도 레오와는 가족이 될 수 없습니다. 그날도 변함없이 잠들어 있는 레오에게 다가가 칼을 움켜쥐고 겨누는 의식을 하던 중 갑자기 들려온 전화벨 소리에 놀라 방으로 달아납니다. 그 벨 소리는 앞으로 일어날 수많은 고통들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였습니다. 

레오의 상관이었던 니콜라이가  두툼한 우편물을 받고 나서 괴로워하며 자신의 아내와 딸들을 죽이고 자살한 날, 레오에게도 우편물이 도착합니다. 흐루쇼프의 연설문이 담긴 그 우편물은 어디에서 배달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운명을,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의 운명을 뒤흔들어버립니다. 

7년 전엔 신부의 아내였지만 잠입해서 함께 생활하던 레오에 의해 배신당해 남편과 아이를 모두 잃은 프레이아는 강하고 차가운 여자로서 이 지역의 브로이(갱단) 두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야를 납치하고 강제수용소에 있는 남편과의 교환을 원합니다. 물론 그 일은 반드시 레오가 해야만 했지요. 레오는 딸을 위해 강제수용소에 죄수로서 잠입합니다. 도착하자마자 자신을 알아본 전직 신부 때문에 모진 고문을 당하지요. 그리고 계속되는 사건들이 독자로 하여금 한시도 방심할 틈을 내주지 않습니다. 

어떡하지, 큰일이네... 걱정 끼쳤다가 괜찮아진 것처럼 위장한 후 다시 한 방 때리는 기법으로 스릴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합니다. 


전편의 <차일드 44>를 읽을 때도 과연 어느 쪽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었는데, 이번에도 그렇습니다. 선과 악을 분명하게 가르지 못하겠는 겁니다. 주인공인 레오는 무척 매력적이고 호감이 가는 캐릭터입니다만, 악행을 저질러 온 것은 분명합니다. 아무리 명령을 따랐다고는 하지만 그가 저지른 일들은 지금의 도덕적 기준으로 보아 옳지 못한 일이거든요. 당시의 기준으로 보아도 그러하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마음을 바꾸고 착하게 살아보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윗선의 명령을 어기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니 이 사람은 옳은 사람인가 아닌가 잘 모르겠습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그렇습니다. 이 사람은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우리 편, 남의 편... 가를 수가 없어요. 심지어 10대 어린 소년 소녀들의 경우에도 말이죠. 

그들이 모두 시대의 희생양들이라고 생각해도 좋을까요. 선과 악을 따지기 전에 생존이 우선이었던 시대였으니까요. 모두가 차갑게 얼어붙은 냉전시대.

스릴 넘치게 읽고 나서 잠시 우울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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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합본)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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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비밀>이라는 소설은 1998 년작이니 참 오래되었습니다. 벌써 20여 년 전이네요. 90년대에 유행했던 코드였는지 아니면 제가 그런 걸 좋아해서 찾아다녔기에 눈에 더 띄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영혼이 서로 뒤바뀌는 내용의 소설, 만화, 영화들이 많았습니다. 영혼이 뒤바뀌어 육체를 잘 못 찾아들어가는 경우 웃픈 해프닝들이 벌어지는데요. 보통은 마지막에 영혼이 제자리를 찾아 들어가고 신기한 경험을 했던 그들은 그 후로도 잘 살아갑니다. 아, 그러고 보니 90년대에만 유행했던 게 아니네요. 시크릿 가든에도 그런 내용이 들어 있었으니까요. 아무튼, 저는 그런 이야기들을 좋아합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일까요? 지금은 어휴. 싫습니다. 뚱뚱하고 못생겼지만 그런 제 자신의 그릇 안에 들어 있길 원합니다. 

영혼이 뒤바뀌는 내용의 소설 <비밀>은 몇 년 째 읽지 않고 미뤄두고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이런 종류의 소설들은 참 마음을 후벼파거든요. 그러니 우울함에 우울을 더하지 않으려고 몇 년 동안 못 본 척하고 있었는데, 오늘 느닷없이 충동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후회했습니다. 다른 날 읽을걸. 오늘은 혼자 있는 날이거든요. 실과 바늘 관계에 있는 제 딸이 오늘은 수련회에 가서 없는 날이에요. 그런 날, 딸아이와 영혼이 바뀌는 소설을 읽다니. 그것도 사고가 나는 바람에 말이에요. 


스키버스를 타고 친정으로 가던 나오코와 모나미는 기사의 졸음운전으로 전복사고를 당합니다. 엄마는 죽고 딸은 기적적으로 살아났다고 생각했건만, 살아난 것은 딸의 육체와 아내의 영혼이었던 것입니다. 남편 헤이스케와 아내 나오코는 혼란스러웠지만, 어쨌든 서로의 호칭을 조심하며 아빠와 딸 모나미로서 살아가기로 합니다. 아내의 결혼반지는 모나미의 곰인형 안에 넣고 꿰매었습니다. 호칭은 달라졌지만, 부부라는 사실은 잊지 않기 위해서.



"이 곰인형은 우리 두 사람만의 소중한 비밀이에요."

그녀는 마치 곰인형이 두 사람을 이어주는 마지막 끈인 것처럼 꼭 껴안았다.

-p.77


딸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아내를 온전히 아내로 대하기도, 그렇다고 온전히 딸로 대하기도 어려운 헤이스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 소설은 한없이 무거울 법도 한데, 가벼운 위트를 곁들이며 시간이 흘러갑니다. 헤이스케는 말하자면, 여러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여서, 사고를 낸 기사의 가족에게까지 신경을 씁니다. 자신에게 벌어진 일만으로도 버거울 텐데요. 처음엔 이 소설이 만화나 드라마처럼 어느 정도 짧은 시간, 길어봐야 일이 년 사이에 끝날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무척 긴 시간을 소요하며 진행됩니다. 메인으로 보이는 시간만도 무려 5년이거든요. 그 사이에 모나미- 의 모습을 한 나오코-는 인생을 열심히 살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서 사립 중학교에 진학하고 또다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고등학교에 입학합니다. 의대에 가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 그들은 점점 적응해가고 어쩐지 정말로 아빠와 딸의 모습 같아집니다. 마음 좋았던 아빠는 점점 질투합니다. 혼자서만 젊음을 누리는 아내에게, 혹은 남자아이들과 어울리는 아내에게. 그것은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뺏기는 것만 같아 불안해하는 모습 같겠지만, 특수한 상황이라는 걸 빼고 객관적으로 본다면 사춘기 딸과 그 딸을 사랑하는 아빠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아이가 성장할수록 아빠와의 관계는 멀어지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는 데다가 속내를 다 알 수 없으니 아빠로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모습에 진한 질투를 더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생활도 조금씩 변화가 생깁니다. 사라져버린 줄 알았던 모나미가 사실은 그 안에 함께 살고 있었던 듯. 깨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 뒤 그들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됩니다. 


간단한 줄거리로 모두 말할 수 없는 이 이야기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제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아니 오히려 지금이기에 더 가슴 아프게 받아들였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한 길을 택한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이기적이기 때문이지요. 소설은 그들이 상황에 적응해 나갈수록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저를 무척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이 감정이 슬픔인지 사랑인지 아픔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건 헤이스케도 마찬가지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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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이 부서진 남자 스토리콜렉터 36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현 옮김 / 북로드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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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가 무너져가는 것과 정신이 무너져가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힘든 일일까요. 남의 일이라고 섣불리 결정을 내릴 수 없는화제인 것 같습니다. 만약 자신의 일이라면 사정이 달라질 테니까요. 

저희 외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파킨슨병을 앓으셨습니다. 일흔이 넘으셔도 스커트 정장 차림으로 고운 구두 신고 씩씩하게 다니시던 분이셨는데, 여든이 넘으시면서 찾아온 파킨슨병으로 몸의 통제력을 상실하셨습니다. 병세가 깊어져서 요양원에 계셨었는데요. 파킨슨병도 할머니의 정신력은 좀 먹지 못했나 봅니다. 화장도 곱게 하시고 뭇 사람들에게 윙크를 날리시며 재미있게 지내셨거든요. 돌아가시기 전 날까지도요. 그래서 저는 파킨슨병이 사람을 괴롭게 만드는 병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 했습니다. 하지만 왜 아니었겠습니까. 심한 몸살이 나 팔다리가 내 것 같지 않을 때에도 괴로운걸. 


더욱이 중년의 나이에 찾아온 파킨슨병은 한 심리학자의 정신마저 흔들었습니다. 정신분석학 교수이자 임상 심리학자인 조 올로클린은 파킨슨병이 조금씩 진행되는 것 때문에 우울해합니다. 육체가 부서져가면서 조금씩 정신도 무너져 가는 것이었지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따로 움직이고 흔들리는 몸의 왼쪽 부분 때문에 힘듭니다. 환경을 바꿀 겸해서 런던 생활을 정리하고 잉글랜드 남서부의 작은 도시로 이사를 한 조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습니다. 여전히 열심히 일하는 아내와 사랑스러운 두 딸들 모두 이곳에서의 생활을 만족스러워합니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조는 경찰의 요청으로 벼랑에서 투신자살을 하려는 알몸의 여자를 설득하기 위해 그곳으로 갑니다. 하지만, 설득도 해보기도 전에 그녀는 '당신은 이해 못해'라는 말을 남기고 절벽에서 떨어지지요. 자신이 그녀를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을 하고 있던 그에게 죽은 여자의 딸 다이시가 찾아옵니다. 엄마는 고소공포증이었기에 높은 곳에 올라가 뛰어내릴 리 없다는 이야기를 하지요. 조는 오갈 데 없는 다이시를 보호하는 한편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 스스로 탐정 역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런던에 있던 퇴직 경찰인 빈센트가 합류하면서 그들의 사건 추적이 본격화되려는데 또 한 명의 여자가 알몸으로 동사합니다. 범인은 같은 사람이지요.


그는 여자를 말리려 했지만 소용없었을 것이다. 여자는 내 말을 듣고 있었으니까. 이게 바로 전문가와 덜떨어진 아마추어의 차이다. 나는 사람의 마음을 여는 법을 안다. 마음을 구부릴 수도 있고, 부술 수도 있으며, 겨울 동안 폐쇄 조치를 내릴 수도 있다. 그 밖에도 오만 가지 방식으로 마음을 조져버릴 수 있다.

-p.29


조와 빈센트, 그리고 경찰 베로니카가 찾는 범인은 기드온입니다. 그는 군 출신이거나 탈영한 군인입니다. 범행 동기는 자신을 떠나버린 아내와 딸을 찾기 위함입니다. 아내와 딸은 그리스 여객선 침몰 사고로 죽었다고 하지만 절대 믿지 않습니다. 그는 아내에게, 딸에게 심각할 정도로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내의 친구들을 하나씩 괴롭히다가 죽인다면 양심의 소리를 듣고 아내가 나타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는, 정신이 부서진 남자였습니다. 기드온은 군에서 사람들을 고문하고 죽이는 법을 배웠습니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며 잠입하고 이동하는 데 전문가였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 댈 수 있는 그야말로 괴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튼튼한 신체를 가졌지만 그의 정신은 무너져가고 있었지요. 그는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딸을 데리고 있다고 합니다. 사전 조사를 통해 완벽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그는 상대방이 믿지 않을 수 없도록 교묘하게 말을 잇고 그녀의 통제력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합니다. 딸을 구하고 싶었던 엄마들은 그렇게 그의 희생물이 되고 맙니다.


"조, 나는 사람이 희망을 모두 잃는 순간이 언제인지 알아. 긍지, 기대, 믿음, 욕망이 모조리 사라지는 순간. 나는 그 순간을 지배해. 완전히 장악해버리지. 그리고 그 순간, 내가 기다리던 바로 그 소리가 들려."

"무슨 소리?"

"마음이 부서지는 소리. 뼈가 부서지는 것처럼 요란한 소리는 아니야. 그렇다고 심장이 저며지는 것처럼 부드럽고 축축한 소리도 아니지. 그건 하나의 인간이 얼마나 큰 고통을 받을 수 있는지 자연히 상상하게 되는 소리야. 가장 강력한 의지가 무너져내리고, 과거가 현재로 스며들어오는 소리. 너무나 높은 고음이라서 지옥의 사냥개들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 네게도 그 소리가 들리나?"

-p.574


마이클 로보텀의 <산산이 부서진 남자>는 대단한 스릴러물입니다. 6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임에도 전혀 그 두께를 실감할 수 없을 정도로 흠뻑 빠져들게 만듭니다. 게다가 묘사력도 대단해서 점점 숨이 막혀오는 기분, 싸늘해지는 기분들을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저 역시 딸을 키우고 있는 엄마이기 때문에 만일 기드온과 같은 사람이 전화를 걸어와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면 아이를 해치겠다고 말한다면, 과연 나는 빠져나갈 수 있을까, 그가 지켜보는 것 같은 상황에서 PC를 이용해서 도움을 청하는 건 가능할까... 어떻게 사실을 확인해서 대처해야만 하지... 하며 불안했습니다. 


<산산이 부서진 남자>는 피터 도넬리라는 사람에 의해 일어났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쓰인 소설입니다. 후속작인 <내 것이었던 소녀>가 24일, 어제 날짜로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내 것이었던 소녀>는 호주에서 발생한 리네트 도슨 실종사건을 모티브로 한다고 합니다. 그 소설은 또 얼마나 제 마음을 뒤흔들지... 기대하며 기다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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