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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44 - 2 - 시크릿 스피치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1956년 2월 25일, 스탈린 사후 처음으로 열렸던 소련 제20차 당대회에서 니키타 흐루쇼프는 스탈린 및 그의 체제에 대한 강한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개인숭배, 권력남용, 비밀경찰에 의한 무자비한 체포와 고문, 재판도 없이 행해진 수많은 처형들에 대해 비인간적이라며 무려 4시간에 걸쳐 비난합니다. 당시 참석했던 많은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는데요. 이날의 연설문은 모두 비공개 처리하기로 했었습니다. 그러나 흐루쇼프는 은근히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했기 때문에 - 자기가 제일 먼저 이런 말을 했다는 걸 남기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 비밀리에 이 비공개 문서를 공개하게 만듭니다. 대량으로 인쇄된 이 문서는 세상 곳곳에 번져나가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연설문으로 인해 지금까지의 든든한 공산주의 체제 - 사실은 스탈린 체제 -가 흔들리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람들을 해쳐왔던 사람들은 비난받고 공격당할까 두려워 자살을 선택하기도 하고 아니면 김일성처럼 흐루쇼프를 비난하며 독재체제를 더욱 강화시키기도 했습니다. 헝가리나 동유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들고일어나 대규모의 자유화 운동이 일어났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소련의 탱크에 희생되기도 했습니다.
<차일드44 시크릿 스피치>의 주인공 레오는 전직 MGB(옛 소련의 비밀경찰)로써 많은 사람들을 체포했습니다. 친구라고 여겼던 레오에게 체포당한 사람들 중에는 강제수용소에 보내진 사람도 있을 것이고, 죽은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레오는 MGB에서 나와 살인 조사과에 근무 중입니다. 스탈린 시대에는 너무나 완벽해서 살인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스탈린이 없으니 살인도 있겠죠. 과거의 잘못을 어깨에 둘러메고 그는 아내와 입양한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입양한 딸들은 자신의 손으로 체포했던 남자의 아이들입니다. 동생인 엘레나는 몰라도, 언니인 조야는 알고 있습니다. 조야는 끝없이 반항합니다. 입양되어 함께 산 지도 3년, 레오와 라이사의 사랑을 받아들여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능하면 자기 손으로 레오를 죽이고 싶어 합니다. 라이사와는 가족이 될 수 있어도 레오와는 가족이 될 수 없습니다. 그날도 변함없이 잠들어 있는 레오에게 다가가 칼을 움켜쥐고 겨누는 의식을 하던 중 갑자기 들려온 전화벨 소리에 놀라 방으로 달아납니다. 그 벨 소리는 앞으로 일어날 수많은 고통들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였습니다.
레오의 상관이었던 니콜라이가 두툼한 우편물을 받고 나서 괴로워하며 자신의 아내와 딸들을 죽이고 자살한 날, 레오에게도 우편물이 도착합니다. 흐루쇼프의 연설문이 담긴 그 우편물은 어디에서 배달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운명을,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의 운명을 뒤흔들어버립니다.
7년 전엔 신부의 아내였지만 잠입해서 함께 생활하던 레오에 의해 배신당해 남편과 아이를 모두 잃은 프레이아는 강하고 차가운 여자로서 이 지역의 브로이(갱단) 두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야를 납치하고 강제수용소에 있는 남편과의 교환을 원합니다. 물론 그 일은 반드시 레오가 해야만 했지요. 레오는 딸을 위해 강제수용소에 죄수로서 잠입합니다. 도착하자마자 자신을 알아본 전직 신부 때문에 모진 고문을 당하지요. 그리고 계속되는 사건들이 독자로 하여금 한시도 방심할 틈을 내주지 않습니다.
어떡하지, 큰일이네... 걱정 끼쳤다가 괜찮아진 것처럼 위장한 후 다시 한 방 때리는 기법으로 스릴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합니다.
전편의 <차일드 44>를 읽을 때도 과연 어느 쪽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었는데, 이번에도 그렇습니다. 선과 악을 분명하게 가르지 못하겠는 겁니다. 주인공인 레오는 무척 매력적이고 호감이 가는 캐릭터입니다만, 악행을 저질러 온 것은 분명합니다. 아무리 명령을 따랐다고는 하지만 그가 저지른 일들은 지금의 도덕적 기준으로 보아 옳지 못한 일이거든요. 당시의 기준으로 보아도 그러하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마음을 바꾸고 착하게 살아보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윗선의 명령을 어기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니 이 사람은 옳은 사람인가 아닌가 잘 모르겠습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그렇습니다. 이 사람은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우리 편, 남의 편... 가를 수가 없어요. 심지어 10대 어린 소년 소녀들의 경우에도 말이죠.
그들이 모두 시대의 희생양들이라고 생각해도 좋을까요. 선과 악을 따지기 전에 생존이 우선이었던 시대였으니까요. 모두가 차갑게 얼어붙은 냉전시대.
스릴 넘치게 읽고 나서 잠시 우울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