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넌트 버티고 시리즈
마이클 푼케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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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프리오의 영화로 무척 유명해진 <레버넌트>의 원작 소설을 읽었습니다. 

영화를 볼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영화와는 상당히 다른 전개라고 하기에 책을 먼저 읽어보았지요. 

휴 글래스는 애슐리가 사장으로 있는 로키마운틴 모피회사 소속 사냥꾼으로 헨리 대위가 이끄는 무리에서 정찰 중 회색 곰에게 습격을 받아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큰 부상을 입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너덜너덜해진 그를 데리고 이동하다가더 이상은 무리라고 판단한 헨리는 그를 돌보거나 혹은 죽었을 때 무덤을 만들어 줄 사람들을 남깁니다. 피츠제럴드와 브리저는 자진해서 무리 뒤에 남는데요. 인정머리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돈을 좀 더 받을 생각에 그리 행동합니다. 그런데 생각보다글래스가 안 죽는 겁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인디언의 습격을 받아 자신들도 위태로워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피츠제럴드가글래스를 버리고 가자고 합니다. 브리저는 안된다고 주장했지만 뼈가 굵은 피츠제럴드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는 겨우 스무 살, 갓 소년티를 벗은 청년이었거든요. 송진과 알고 있는 지식을 동원해 그의 상처에 도움이 될 일을 했지만 결국은 피츠제럴드를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설에서의 글래스는 그들이 떠난 사실 자체는 이해할 수 있었나 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소지품을 가지고 가버린 것에 대해 분노하거든요. 총과 나이프.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물건들을 가지고 떠나버린 그들이 정말 미웠습니다. 그는 필사적으로 기어서 살아남습니다. 다리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고서는 절룩이며 이동하죠. 믿을 수 없을 만큼의 거리를 이동해 겨우 브라조 진지에 도착한 그는 타오르는 복수심에 쉴 틈도 없이 피츠제럴드를 찾아 나섭니다. 몸이 낫고서 이동하면 그놈을 놓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여정은 정신없습니다. 평화로운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였죠. 요약하자면, 동료가 죽고, 다치고, 굶고, 먹고, 죽고, 다치고... 뭐 그렇습니다. 결국 그는 브리저도 만나고 피츠제럴드도 만납니다. 그래서 복수를 완성했느냐고요? .... 팩션이니. 사실대로 말해도 좋을까요?... 안 가르쳐줄래요.


한 남자의 복수극으로 보자면 그냥 좀 그렇습니다. 두 남자는 글래스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리를 떠났으리만큼 소지품을 놔두고 갈 이유가 없지 않은가 싶었거든요. 물자가 아주 귀하던 시대에, 물물교환도 통하던 시대에, 게다가 여차하면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물건이기에 훔친다는 개념보다는 필요한 사람이 사용한다는 생각이었을겁니다.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어도 픽픽 죽어나가던 세상인데. 아무튼. 그래서 영화에서는 '아들이 죽었다.'라는 단서가 붙나 봅니다. 그래야 좀 더 복수심을 불태울 여지가 있으니까요. - 영화도 안 보고 이런 소릴 해대다니.


어쨌든, 이 소설을 읽다보면 눈앞에 200년 전 미국이 그려집니다. 얼마나 혹독하고 척박한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호랑이가 나온다는 산을 넘으려고 팀을 꾸렸던 게 생각나는 여러 장면들. 다수 혹은 소수의 사람들이 팀을 꾸려서 여정을 떠나도 그들은 인디언 -정확히는 아메리카 선주민-을 피하거나 이겨낼 수 없었습니다. 어느 쪽의 시선으로 봐야 하는지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그들이 조용히 이동하고 있는데 야만적인 인디언들이 습격을 했다고 본다면 인디언들이 나쁜 사람들이겠지만, 실은 인디언들이 살고 있는 땅을 그들이 침범해서 물소나 비버 같은 동물들을 마구잡이로 죽이고 있으니 그들을 쫓아내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무언가 책을 읽는 시점이 잘 못 된 건 알겠는데, 뭐 그다지 바로잡을 생각이 없습니다. 

어쨌거나 주인공은 슈퍼히어로가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죽음을 잘도 피해다닙니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죽었어도 몇 번이나 죽었을 그런 상황에서도 말이죠. 처음부터 안 죽고 살아난 게 참 대단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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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 쇼쇼쇼 - 가식의 식탁에서 허영을 먹는 음식문화 파헤치기
스티븐 풀 지음, 정서진 옮김 / 따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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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준비하거나 식사를 할때 즐겨보는 방송이 있습니다. '냉장고를 부탁해', '집밥 백선생', '백종원의 삼대 천왕', '오늘 뭐 먹지', '쿡가대표'. 며칠 전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겁니다. 나는 지겹지도 않은가. 식재료를 장만하고 음식을 하고, 음식 게임을하고, 음식 관련된 방송을 보고... 하루 종일 먹을 것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이건 마치 먹기 위해 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먹기 위해 사는 것은 개인주의적 소비지상주의의 극치이자 막다른 상태이다. 먹기 위해 사는 이들은 그들이 진정 진지하다 해도 삶의 의미를 엉뚱한 곳에서 찾아 헤매는 셈이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접시를 내려다보며 말이다. (혹은 책을 보면서도, 그 자리에 없거나 세상을 떠난 이들과도 유쾌하게 어울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전반적인 상황이 좀 슬프지 않은가? 우리 시대의 광적인 푸디즘을 가장 지혜롭게 바로잡으려면 멀리 갈 것도 없이 한 세기전 W.S. 길버트가 남긴 격언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식탁 위에 무엇이 올라오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의자 위에 누가 앉는지가 중요하다."

-p.226


크리스마스트리 컬러의 이 책 <미식 쇼쇼쇼>는 음식의 준비와 소비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경향의 푸디즘을 따르는 이들을 푸디스트라고 부릅니다. 저는 푸디스트일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스타 프들의 요리를 눈으로 즐기기만 하고 따라 하지는 않으니 이 범주에 들어있지 않다고 생각하려 애써보지만, 결국 푸티스트의 가장자리에서 10미터 정도 안쪽으로 들어와 있는 준푸디스트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방송으로는 저런 것들을 보고 있지만, 인터넷을 통해 각 식재료의 영양분석 표도 살피고 어디에 좋은가도 관심 있게 보고 있거든요. 스타 셰프들이 지향하는 바와는 조금 다를지라도 무언가 먹을거리에 대해 관심을 쏟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어차피 내 입에 들어가는 거니까, 가족의 입에 들어갈 거니까 좋은 걸 찾아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 말이 있잖아요. "당신이 먹는 음식이 바로 당신이다."


19세기 초 프랑스 법관이자 정치가로 활동했으며 <미각의 생리학(요리법, 자신이 먹은 저녁들에 관한 일화, 탐식에 관한 이론화를 정리한 담론서)의 저자이기도 한 온화한 자기만족적 성향의 장 앙텔름 브리야사바랭은 오늘날 푸디스트가 경외하며 인용하는 옛 미식가이다. 이유인즉슨, 그가 푸디스트의 집착에 문학적 세련됨과 품위라는 그윽한 멋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명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말은 "당신이 먹은 음식을 말해 보라. 당신이 누구인지 알려 주겠다."일 게다. 나 참, 그렇다고 아무렴 내가 통닭의 한 부분이거나 감자칩은 아니지 않은가. 브리야사바랭의 약속은 마치 비트겐슈타인의 아침 식사를 면밀히 분석해 그의 철학을 추론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다. 하지만 이는 부유한 이들이 계급을 구분하고 미학적 감수성을 확인하는 일종의 표지로 음식을 사용한다는 걸 용인하는 것이다. 브리야사바랭은 "지성인만이 먹는 방법을 안다."라고 한다.

-p.32


그, 그렇죠. 제가 돼지고기 뒷다리살을 즐긴다고 해서 제가 돼지이거나 뒷다리는 아닐 테죠. 그리고 상추와 두부, 토마토, 사과로 이루어진 것도요. 이 책은 처음부터 제가 알고 있던 상식이나 개념을 파고들어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거의 모든 가치관에 대한 부정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가치관의 혼란이 오기 시작하면서 이젠 내가 좋아하는 '이연복'이나 '백종원'을 떠나야 하는 건가... 하는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요리사는 어떠한가? 음식이 영적이라면, 현대의 '유명 셰프'들은 성직자이거나 구루, 혹은 형언할 수 없는 것의 드루이드교 전달자가 되었다. 요리사는 '테루아르'와 조화를 이루는, 구미를 당기는 즐거움과 영적 향상을 위한 가이아의 통역자이다. 우리는 더 이상 정치가나 성직자를 신뢰하지 않는 대신, 요리사들이 우리에게 먹는 방식은 물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말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p.41


하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줄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그들은 자신의 요리와 알고 있는 것들을 우리에게 주장하고 전달하려 할 뿐이지 인생 살이까지 가르치려는 건 아닐 텐데요. 저자가 경계하는 스타 셰프는 제이미 올리버라거나 고든램지 같은 사람을 말하는 겁니다. 알콜 중독으로 자신의 가게를 망쳐버린 한 오너 셰프에게 혹독하게 야단치면서 조리법을 전수하고 일하는 법을 전수해서 가게를 일으키는 것도 좋지만, 사실은 알콜 중독 센터에 보내서 병을 치료하게 하는 게 먼저 가 아닌가 하는 거죠.


이 책은 당연하게 생각했던 푸드 마일리지와 로컬푸드에 관한 것도 반박하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스즈키가 주장한 "로컬푸드를 먹는 것은 그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다(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지구를 구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이다.)"라는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가능하면 국산, 특히 제주산 식자재를 구입했었으며 어쩌다가 수입품을 사게 되면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의기소침해지거나 - 금전적인 고통이었죠 - 자기 합리화를 하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그런 저에게 면죄부를 선사해주었습니다.


지구를 구하는 소명에는 그 위에서 현재 살아가고자 분투하는 수많은 불우한 이들의 희생이 따른다. 문제는 로커보어들이 고객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들, 즉 개발도상국이나 제3세계의 가난한 농민들로부터 먹거리를 구매하길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철학자 피터 싱어와 공동 저자인 짐 메이슨은 셈을 해 보더니 이렇게 주장한다. "콩을 사기 위한 1달러가 있다. 현지에서 재배한 콩을 사는 것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다면(현지 농부는 1달러 전체를 다 가질 수 있고 케냐의 농부는 1달러 중 겨우 2센트만 갖는다 할지라도) 케냐의 콩을 구매함으로써 빈곤을 줄이는 데 더 기여한다." 전 지구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로커보리즘이란 부유층이 먹거리를 물론 돈까지 자신들의 좁은 파벌 안에서만 순환하려고 만든 자기애적 사이비 도덕주의 클럽 같다.

-p.175


위에서 말한 논제들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정말로 다양한 측면에서 저자의 반박이 이어집니다. 유기농이 반드시 좋은 것 만은 아니다, 간편식을 무시하지 마라, 영양학자의 말에 너무 귀 기울이지 마라 등등... 제 상식을 모조리 깨고 부수는데 - 귀가 얇지도 않은 - 저는 어, 듣고 보니 그러네? 하며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반박만 하고 대안은 없는 건가? 말로만하는 건 삐딱한 눈만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만 12장에 이르러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합니다. 그는 스타 요리사, 지나친 요리에 대한 관심, 미슐랭에 대한 전적인 신뢰 등에 대해 일침을 놓고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그의 견해에 100%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요. 알고 있던 사실을 다른 측면에서 다시 보니 이제까지 몰랐던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결정은 결국 저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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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 싶다
SBS그것이알고싶다 제작진 / 엘릭시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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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시간이 걸릴 것 같지 않았습니다.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들, 늘 그 자리에 있던 방송 프로그램을 책으로 엮은 것이니 하루도 걸리지 않아 뚝딱 읽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1000회까지 달려온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였으며 나의 이야기였기에 쉽게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SBS에서 <그것이 알고 싶다>를 처음 방송했을 때, 저는 그 방송을 볼 수 없었습니다. 제주에선 SBS를 볼 수 없었거든요. 1992년 3월의 이야기입니다. 1992년이라고 하니 사건이 하나 떠오르는군요. 혹시 1992년 휴거 소동을 아시나요? 저는 휴거라는 이야기를 아버지 친구분으로부터 처음 들었었습니다. 당시에 사극 악역으로 출연하거나 농촌 취재 리포터로 활동하시던 분이 제주에 온 김에 집에 들러 휴거 이야기와 참고 자료, 사진들을 보여주더군요. 아버지께서는 신기해하시면서 저에게도 어떠냐 어떠냐 하셨습니다. 친구분이 떠난 후 아버지께 사진은 신기하지만 그 외에는 별로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씀드렸고, 1992년 그날, 휴거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24회 그리고 237회에 이 사건을 다뤘었지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뤘던 사건들로 인해 지난 세월 동안 많은 것이 변했거나 변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것들이 진행형이어서 개운하게 해결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좀 더 나은 세상, 범죄자가 판치지 않는 세상, 살기 좋은 세상에서 살고 싶은 사람들의 알 권리를 챙겨주는 그것이 알고 싶다. 그동안 참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더군요. 진행자만 하더라도 문성근에서 정진영, 그런데 말입니다의 김상중. 중간에 오세훈 변호사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제목만 떠올려도 김상중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모가지의 위태위태함을 감수하면서도 열심히 취재해왔던 PD, 작가, 스태프들이 있었기에 이 프로그램은 1000회가 넘도록 사랑받았다고 생각합니다.

1000회를 기념하면서 엘릭시르 출판사와 함께 제작한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책은 주요 사건들을 테마에 맞게 연결해서 엮어두었습니다. 진행자의 인터뷰도 있었는데요. 인터뷰 형식의 글을 불편해하는 저조차 읽기 쉽도록 잘 편집되어 있었습니다. 엘릭시르와 미스터리아에게 수고하셨다고 말씀드리고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각 챕터에 전문인 및 피디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표창원, 이윤민, 이수정, 배정훈, 박준영, 고상만등의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객관적인 본문과 주관적인 내용 모두를 함께 하며 나 스스로도 생각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책 말미에는 <그것이 알고 싶다> 1000회 방송 목록이 적혀있었습니다. 모든 사건이다. 짧게 요약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좋은 일보다는 아프고 슬픈 일들이었지만요. 

어서 <그것이 알고 싶다>가 필요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우리에게 계속 알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전, 그것이 알고 싶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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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 어떤 동화 세계문학의 숲 19
조지 오웰 지음, 권진아 옮김 / 시공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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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모두가 다 함께 잘 살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속박하고 억압하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농장주만 없어지면. 공동생활을 하면서 생산물과 이윤을 나눈다면 서로를 의지하며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청동기 시대 이후로 지배층이 없는 생활은 해 본 적이 없기에, 누군가 모두를 통제해야만 했습니다. 파파 스머프처럼 지혜롭게 다독이며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건 만화에나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인가 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조지 오웰의 우화 속에서도모두가 평등하고 아름다운 세상은 만들 수 없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할 말이 없네. 다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인간과 인간의 행동 방식 모두를 증오하는 것이 여러분의 의무라는 걸 절대 잊지 말게. 두 발로 걷는 건 뭐든 다 적이야. 네 발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것들은 다 친구고. 또한 인간과 투쟁하는 과정에서 인간을 닮아가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잊지 말게. 인간을 타도한 후에도 인간의 악덕을 받아들여서는 안돼. 어떤 동물도 집에서 살거나 침대에서 자거나 옷을 입거나 술을 마신다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돈을 만지거나 장사를 해서는 안되는 거야. 인간의 습성은 모두 악한 걸세.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에게 군림해서는 안 되네. 약하건 강하건, 영리하건 단순하건 간에 우린 모두 형제들이야.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되네. 모든 동물은 평등한 거야."

-p.14


나이 많은 돼지 메이저 영감은 인간인 존슨이 운영하는 매너 농장에서 노동을 강요당하는 동물들을 구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멋진 연설 후 그들에게 '영국의 동물들'이라는 노래도 가르쳐줍니다. 그 노래와 연설은 동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고, 그가 죽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정말로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들은 존스를 몰아내고 농장을 차지합니다. 모두 행복해했지요. 자 이제 평등하게 공동생활을 하게 되는데요. 이른바 동물주의에 입각해 평화롭게 살기로 합니다. 좀 더 효율적인 농장 운영을 위해 그나마 글을 알고 영리한 축에 속하는 돼지들 - 스노볼, 나폴레옹, 스퀼러 - 가 그들을 통제하기 시작합니다. 다 함께잘 되자고 하는 일이니까 모두 기꺼이 돼지들을 따릅니다. 그러나 조금씩, 상황이 이상해져갑니다. 우유도, 사과도 돼지들이 차지하기 시작합니다.


"설마 우리 돼지들이 이기심과 특권 의식으로 이러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사실 우리 중에는 우유와 사과를 싫어하는 돼지들도 많습니다. 나부터도 싫어한다고요. 우리가 이걸 먹는 목적은 오로지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우유와 사과에는(이건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동지들) 돼지의 건강에 꼭 필요한 요소들이 들어있어요. 우리 돼지들은 정신노동자입니다. 이 농장을 경영하고 조직하는 일이 모두 우리에게 달려 있어요. 우린 밤낮으로 여러분의 안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유를 마시고 사과를 먹는 건 다 여러분을 위해서예요. 우리 돼지들이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압니까? 존스가 돌아올 거라고요! 그렇고말고요, 동지들."

-p.36


순진한 동물들은 착취를 당하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농장을 위해 일을 합니다. 열심히 일할수록 '반드시'풍요로워질 테니까요. 한편, 돼지들 사이에서도 다툼이 일어납니다. 동물들로부터 농장을 재탈환하고자 했던 인간들과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훈장을 받은 스노볼은 나폴레옹과 이념 갈등 - 특히 풍차 건립 때문에 -을 겪고 축출당합니다. 나폴레옹은 이 날을 기다렸다는 듯이 강아지들을 매섭게 훈련시켜 자신의 군대로 삼고 있었거든요. 스노볼의 추방 이후로 농장의 모든 잘못된 일은 모두 스노볼의 짓으로 소문을 냈고, 돼지들은 그럴싸한 말로 동물에게 강제노동의 굴레를 씌웁니다. 돼지들은 메이저 영감이 하지 말라고 한 모든 것들을 어깁니다. 그리고 절대권력자들이 행하는 모든 짓들을 그대로 따라 합니다. 자아비판 후 자살, 혹은 처형까지. 돼지들에게 불가능한 것들은 없었습니다.


길지도 않은 소설을 읽던 매 페이지마다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어쩜 이리도 내가 아는 것들과 닮아있는지. 어릴 적부터 들어왔던 -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 북한의 이야기와도 닮아있었고, 소련의 이야기와도 닮아있었습니다. 세치 혀에 놀아나는 동물들이 어리석어 보였습니다.(돼지 혀는 더 길던가요?) 당근이 되었던 채찍이 되었든 간에 이것저것을 주워 먹으며전보다 못한 생활을 하면서도 느끼지 못하는 게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충성을 다했지만 결국 그 시신마저도 돼지들의 배를 불리는 데 사용되고 마는 동물의 모습에 분노했습니다. 세대가 바뀌어 이렇게 사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동물들을 생각하면 더 답답합니다. 그게, 소설 속의 동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게 더 화가 납니다. 이 이야기는 20세기의 이야기이며, 21세기에도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시대가 흘렀으니 조지 오웰에게 "당시엔 그랬군요. 지금은 그렇지 않답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몇몇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종종 챙겨보는 TvN의 비밀 독서단에서 '은밀하고 위대한! 시대의 금서'편을 하더군요. 읽어본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이 있었는데요. 뭔가 찔리는 사람들이 금서로 정했었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편견에 의해 금서가 된 책도 있었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금서가 된 경우가 많아서 좀 씁쓸했습니다. 누가 자신들을 쿡쿡 찔러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는 있구나. 비밀 독서단에서 소개한 금서 중 1위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었습니다. 

 

책을 읽고 나니 왜 그런지 알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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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책 - 당신이 쓰는 모든 글이 카피다 카피책 시리즈
정철 지음, 손영삼 이미지 / 허밍버드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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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읽은 책의 대부분을 리뷰합니다. 

처음부터 리뷰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책을 읽을 때에는 플래그와 독서메모용 노트, 볼펜, 책갈피를 반드시 옆에 끼고 있습니다. 편안히 읽어도 좋을 것을 뭘 그리 유난 떨며 읽느냐 하시겠지만, 기억력이 예전 같지가 않아요. 책을 많이 읽어 뇌를 활발히 굴리면 치매 예방도 된다던데 저에게는 해당 없음인가 봅니다. 메모도 해야 하고, 플래그도 붙여야 합니다. 책에 직접 적어두시는 분들도 있는 걸로 아는데요. 학교를 졸업 한 후, 책에 글을 적는 것에 대해 불편해하는 저로서는 이 방법이 최선입니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책을 읽다가 자리를 옮길라치면 모든 도구들이 함께 이동합니다. 제 가방에 파우치가 없는 날은 있어도 필통과 노트가 없는 날은 드뭅니다. 그 안에 책이 없을 때라도요.


메모와 플래그를 확인하며 리뷰 초고를 작성하거나 말하자면 콘티 같은 것을 짜봅니다. 술술 써지는 날이 있는가 하면 어떤 날은 머리를 쥐어 뜯으며 고민합니다. 그래서 정수리에 탈모가 있나 봅니다. 이 책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싶은 책은 차라리 낫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다른 분들의 리뷰를 읽고 나면 어느 정도 길이 보이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정말 골치 아픈 건, 많은 메시지를 던져주는 책입니다. 작가가 의도한 바가 아니더라도 제 스스로의 인생과 평소의 마음가짐 때문에 이야기가 마구 쏟아지고 감상이 흘러내리는 경우가 있거든요. 한두 줄기라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과도한 곁가지가 저를 뒤흔들어 놓습니다. 도대체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해야 할까. 이것저것 생각이 났다고 해서 그 모든 걸 글에다가 쏟아버리면 그냥 흙탕물이 되고 말 겁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몇 가지의 이야기만 자연스레 연결되게 글을 써야 합니다. 대실패를 하고 마는 글도 있지만 그렇게 글을 쓰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글쓰기는 30년째 저를 괴롭히고, 저는 글을 괴롭힙니다. 마크 트웨인은 "우리는 가지고 있는 열다섯 가지 재능으로 칭찬받으려 하기보단, 가지지도 않은 한가지 재능으로 돋보이려 안달한다."라고 말했는데요. 저한테 하는 말인가 봅니다. 글쓰기는 저에게 그런 녀석입니다. 애증의 관계죠. 말을 잘하는 사람, 글을 잘 쓰는 사람을 보면 부럽습니다. 질투 나고요. 긴 문장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샘이나 그 능력을 가로챌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습니다. 하물며 짧은 문장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쇼트-쇼트의 대가 호시 신이치는 한두 페이지짜리 단편을 쓰는 능력자였습니다. 어쩜 이렇게 짧은 소설 속에 그의 SF, 판타지가 들어 있을 수 있을까. 위트는 또 어떻고. 

그런데 호시 신이치보다 더 짧은 문장으로 사람의 눈과 마음을 가로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카피라이터죠. 우연히 마주한 문장을 보고 '아니 도대체 누가 이런 재치 있는 글을 쓴 거야?'라며 질투합니다.


우리나라 대표 카피라이터 정철의 <카피책>을 읽었습니다. <카피책>을 읽고 그의 능력을 카피할 테다!라는 포부를 가지고요.

췟. 카피는 무슨 카피. 못하겠어요. 저는 아직 이 단계에 이르를 수 없습니다. 그도 아날로그고, 나도 아날로그인데 왜 그는 되고 나는 안되는 걸까요? 그는 <내 머리 사용법>을 쓴 사람이고, 나는 읽지도 않은 사람이기 때문일까요. 아마도 생각과 생각의 분할 방식이 달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카피책>을 읽다말고 그의 능력을 훔치고자 온라인 서점에 접속. <내 머리 사용법>을 북카트에집어넣었습니다. 다음에 지름신이 내려오시면 질러주겠노라고 다짐하면서요. <카피책>은 초반부터 저를 웃게 만들고 안달복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이 모든 게 내 것이 되는 게 아닌데도요. 이 책은 굉장히 재치 있습니다. 재치 있는 사람과 몇 시간을 함께 있는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피곤했습니다.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짧은 시간 동안 그의 30년 카피 라이프를 훔쳐내는 게말이 되나요? 천천히 다시 함께 해야겠습니다. 카피를 쓸 생각은 없어요. 다만 짧은 문장에 의미를 함축하는 법을 알고 싶고, 말하지 않아도 아는 그런 문장을 만들고 싶고, 피식 웃음이 나오게 만들고 싶을 뿐입니다. 정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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