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터 1 스토리콜렉터 47
마리사 마이어 지음, 김지현 옮김 / 북로드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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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분위기의 루나 왕국. 거의 모든 것들에 마법이 씌워져 아름답고 화려하게 빛나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지구의 어떤 곳보다 더 황폐하고 더러운 곳입니다. 겉모습의 아름다움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운 것이 좋다고 교육받아온 지구인인 저와는 미적 기준이 다른 탓이겠지요.

마법에 내성이 있어, 마법을 사용하지도 못하고 걸리지도 않아 '껍데기'라고 불리는 루나인들을 제외하고서, 이곳에서는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자신을 실제보다 더욱 아름다워 보이게 하는 건 가장 기본적인 기술이었지요. 특별히 강한 마력을 가진 마법사는 사람들을 조종하기도 했는데, 마력에 전혀 노출된 적이 없었던 지구인들은 생체 전기를 사로잡히기 쉬워 그들에게 무조건 걸려들고 맙니다. 루나인들은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만일 사용하지 않고 참으며 살아간다면 정신에 문제가 생기고 맙니다. 하지만 참으려 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느 누구도 문제 되지 않습니다. 왕국의 단 한 사람, 윈터 공주만 제외하고요. 

윈터는 자신의 마력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마력으로 남을 조종하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옳지 않은 행동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 탓에 환각을 보고, 환청을 듣습니다. 사방이 피로 물들기도 하고 손발이 얼음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환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겨내기가 힘듭니다. 너무 생생한 탓입니다. 그녀는 마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아름답습니다. 그 아름다움을 질투한 레바나 여왕이 윈터 스스로의 손으로 얼굴에 칼을 대게 만듭니다. 길쭉한 세 개의 흉터가 있다 하더라도 이 왕국에서는 아마도 그녀가 가장 아름다울 겁니다. 윈터가 왕위 계승권이 없기에 망정이지, 아름다움에 왕위 계승권까지 있었다면 진작에 이곳에서 제거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신더-셀린 공주처럼요.

탑 속의 라푼젤보다 조금 나은 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감금생활을 하면서도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개인 동물원이 있었거든요. 그곳에는 늑대 류도 있었고, 얼마 전 잡혀온 스칼렛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언제까지고 자신을 지켜줄 단 한사람 근위병 제이신도 있었습니다. 예전엔 소꿉친구였지만,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랑을 드러낼 수 없지요. 레바나 때문에요.


드디어 <윈터>에서 루나 크로니클의 주인공들이 모두 모입니다. 신더, 스칼렛, 크레스, 그리고 윈터.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조금 뒤의 일이지만, 어쨌든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폭군 레바나 여왕을 몰아내고 지구와 루나의 평화를 되찾기 위한 모험을 합니다. 물론, 각자의 짝인 남주인공들도 만났다 헤어졌다 큰일 날뻔하다 말다 하지요. 


<윈터>는 루나 크로니클의 결말 편이라 그런지 분량이 꽤 됩니다.

책 두 권, 거의 천 페이지에 달하거든요. 하지만 순식간에 읽게 됩니다. 과연 이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궁금하거든요.

지금은 마지막까지 읽어버린 것이 너무나 아쉽고, 영화로 빨리 제작되어주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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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칼렛 스토리콜렉터 19
마리사 마이어 지음, 김지현 옮김 / 북로드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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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년도 넘게 미루어 두었던 리뷰를 이제야 하려고 합니다.

루나 클로니클 시리즈의 마지막 윈터까지 다 읽었거든요. 루나 클로니클 시리즈의 주인공 네사람, 신더, 스칼렛, 크레스, 윈터의 이야기를 모두 읽은 후에야 스칼렛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소설 <스칼렛>을 처음 읽었을 때엔 신더의 연장선으로 느껴져 스칼렛이라는 소녀에 대해 별로 느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리뷰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읽었습니다.


신더를 읽지 않은 사람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신베이징에 살고 있던 정비공이자 사이보그인 신더가 실은 루나 왕국의 셀린 공주였고, 레바나 여왕의 손에서 간신히 탈출합니다. 그리고 몇몇 사람의 도움을 받아 심하게 훼손된 신체부위를 기계로 치환하고 린씨의 양녀가 되어 지구인으로서 살아가게 되지요. 그 때 도움을 준 사람 중 한 명이 스칼렛의 할머니였습니다. 지금은 프랑스의 한 시골 마을에서 농장 운영을 하며 손녀와 알콜중독 아들을 건사하며 살아가고 있는데요. 아들은 쓰레기 같은 사람이었지만, 손녀는 할머니를 닮았던 모양입니다. 용감하고 씩씩하고 정이 넘치는 걸 보면요. 

스칼렛은 어느날 갑자기 실종된 할머니를 찾으려 합니다. 짐승남 울프와 함께 말이죠. 울프라고 불리는 남자는 '제브'라는 이름이 있지만 어쩐지 늑대같은 분위기라 모두가 울프라고 부릅니다. 처음엔 그를 경계하던 스칼렛도 그에게 마음을 열고, 사랑을 느낍니다.

한편 감옥에 갇혔던 신더는 카스웰이라는 남자와 함께 탈옥하고 자신의 과거를 찾기 위해 스칼렛의 할머니를 찾으려 합니다. 

스칼렛에게도, 신더에게도 결코 순탄치 않은 길이었지요.


스칼렛은 강하고 씩씩합니다. 불같은 면도 있죠. 우유부단하지 않으며 확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습니다.

소설 <스칼렛>에서 보이는 것보다 <윈터>에서의 활약이 더 두드러집니다.

그러니 <윈터>를 즐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스칼렛>을 거쳐야겠죠. 그녀와 울프는 어떻게 만났으며 어떻게 짝이 되었나 하는 걸 제대로 느끼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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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다스의 노예들 바벨의 도서관 9
잭 런던 지음, 김훈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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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잭 런던의 책 두 권 - <야성이 부르는 소리>, <조선 사람 엿보기>를 읽었는데요. 오늘의 <미다스의 노예들>을 끝으로 당분간은 잭 런던의 책을 읽지 않을 겁니다. 독서가들 중에서는 한 작가의 책을 연달아 읽어 그 작가의 작풍이나 성격에 대해 파악하고 연구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만, 저는 그렇게 읽으면 어쩐지 비슷한 패턴이 느껴져 질려버리거든요. 한마디로 쉽게 질리는 성격이라는 거죠. 그러니 잭 런던의 소설들은 매력적이지만 어느 정도 간격을 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지겨워지면 곤란하잖아요.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제9권은 잭 런던의 <미다스의 노예들>입니다.

다섯 개의 단편이 들어 있었는데요. 각각의 단편들은 서로 다른 분위기였지만, 내면의 공포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으악 무서워!라기보다는, 이것 참.... 하아... 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첫 번째 단편, '마푸히의 집'에선 우연히 진주를 획득한 마후히가 등장합니다. 그는 그 진주를 팔아서 가족 모두가 잘 살수 있는 집을 갖기를 원하지만, 거의 강탈당하다시피 장사꾼에게 넘기게 됩니다. 가족들의 타박을 받고 있던 그때, 허리케인이 갑자기 섬을 공격하고 모든 것은 산산이 부서져버립니다. 많은 사람이 죽고, 생존자들은 식수조차 구하기 어려운 형편입니다. 진주고 뭐고 모든 게 다 부서지고 날아가 버렸으니 어쩌면 좋습니까. 심지어 마푸히의 어머니 나우리는 바다로 휩쓸려 가는데, 놀랍게도 그녀는 살아남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흡사 노인과 바다를 연상케 하는 근성을 보여줍니다. 허리케인이 불어올 때의 장면과나우리의 여정은 눈을 책에다가 붙잡아둡니다. 

참 대단합니다.


'삶의 법칙'은 뭔가 무척 어렵습니다. <불을 피우기 위하여>가 생각났습니다. 

'잃어버린 체면'은 무서우면서도 괴이합니다. 주인공은.... 대단합니다! 

'미다스의 노예들'은 소설에 등장하는 무정부 단체인데요.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잔혹한 짓을 합니다. 주인공의 지인인 부자에게 끝없는 협박을 하는데, 돈을 내놓지 않으면 사람을 죽이겠다며 그와 관계없는 사람, 나아가서는 관계있는 사람을 죽입니다. 점점 다가오는 공포와 압박. 냉혹합니다. 

'그림자와 섬광'에는 어릴 때부터 심각한 라이벌이던 두 친구 폴과 로이드가 등장, 서로 다른 방식으로 투명인간이 되려는 연구를 합니다. 그 둘은 모두 투명인간이 되는 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그 끝은..



이 책에 실려있는 단편들은 모두 재미있었는데요. 저는 그 중 '마푸히의 집'이 가장 좋았습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체면'은 앞으로 어찌 될지 알기 때문에 점점 더 두려움에 빠지게 되는 매력이 있던 소설이었어요. 어, 그리고... 앗, 이러다가 모든 단편을 추천하고 말겠어요. 그러니 여기서 멈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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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웃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고재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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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읽은 적 없고 에세이로만 두 번째 만나는 마루야마 겐지의 <개와 웃다>입니다. 몇 년 전에 읽은 책,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에서 이 작가의 까칠함과 유머러스함을 즐겼었는데요. 성격이 참, 츤데레 과 입니다.


마루야마 겐지는 갑자기 개를 키우기로 결심합니다. 어릴 때부터 개를 키우고 싶었던 꿈을 이룬 것이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이개에게 쫓겨 달아나던 기억이 있던 어린이가 자라 어른이 되었기 때문에 절대고 마음속부터의 애견인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어느 날 주위를 둘러보니 자신이 소설가가 된 이후로 지인들이 하나둘 곁을 떠나 마음을 나눌 친구가 하나도 없더랍니다. 그리하여 아내와 의논 끝에 개를 키우기로 하는데요. 문제는, 단지 멋지다는 이유로 대형견을 키우려 든 것입니다. 질 나쁜 브리더 T 축견(기업형)에게 속아 처음 데리고 온 개는 며칠 만에 죽어버리고, 두 번째도 그랬습니다. 세 번째에 가까스로 건강한 녀석을 데리고 와서 함께 지내게 되었는데요. 참 서투릅니다. 소형견으로 했더라면 조금씩 적응해가기라도 했을 텐데. 대형견, 그리고 나아가 초대형견까지. 마루야마와 아내가 선택하는 개들은 죄 그렇습니다. 차우차우 견인 구마만 빼고요.

마당에 커다란 개집도 지어주고 운동장도 꾸며주고 산책도 데려가 주고 먹이와 물도 충분히 주는 데 이런 산만한 개들이라니! 도대체 뭐가 부족한 걸까요? 자유로워도 너무 자유롭습니다. 그렇다면 슬슬 깨달았으면 좋겠는데요. 주인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말이에요. TV 동물농장이라는 방송을 보면 문제견 보다 더 문제 있는 견주가 나오잖아요. 분명 주인에게 문제가 있었을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셰퍼드, 아프간하운드, 세인트버나드, 아이리시 울프 하운드, 도사견, 래브라도 레트리버... 모두가 제멋대로 일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고 뭐 공격적이었다거나 큰 사고를 쳤다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기본적인 명령복종 체계 같은 것이 없어 보였다는 거죠. 주종 관계가 아닌 가족 관계에서도 규칙은 존재해야 하는데, 그 규칙을 지키는 방법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 했습니다.


좀 답답할 때도 있었죠. 혼낸다고 개를 때리기도 하고요. 게다가 15년 정도의 기간 동안 9마리의 개가 그들을 거쳐갔습니다. 차우차우 구마는 고령으로 자연사했고요. 책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또 다른 차우차우 돈구리는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살아갑니다. 나머지는 적응하지 못해 남에게 주어버리거나 죽었습니다. 아니 왜 이렇게 같은 병으로 많이 죽게 두었는가 하며 화가 났습니다. 개들에게 흔한 병인 심장 사상충이었지만, 어떻게 예방하거나 할 수는 없었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그런데 책의 맨 뒤, 이 에세이가 처음 실렸던 곳의 리스트를 읽고 나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앞의 모든 상황들이요. 개를 처음 키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실린 것이 69년.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가 84년의 이야기였던 겁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손쉽게 사상충 예방을 할 수 있는 약 같은 것도 없거나 드물었을 겁니다. 개에 대한 대우도 그러했고요. 마루야마 겐지 정도면 훌륭하게 잘 키워나갔던 거였습니다. 외모로 개를 판단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요. 하지만 그는 개를 키우고 잃어가는 과정을 거치며 개를 사슬에 묶고 강압적으로 키우는 것보다 사랑으로 함께 하는 것이 옳다는 걸 깨달아갑니다.


이 책을 통해 개와 함께 하는, 혹은 허둥대는 일본의 아저씨를 상상하며 많이 웃었습니다. 책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돈구리도 이젠 세상에 없겠지요. 지금은 어떤 개와 함께 하고 있을까요? 문득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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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런던의 조선 사람 엿보기 - 1904년 러일전쟁 종군기, 제2판
잭 런던 지음, 윤미기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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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책을 읽으려면 불쾌할 각오를 하고 읽는 것이 좋습니다. 초판 역자 서문에 분명히 경고(?) 문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뭐 옛날이니까 다소 그런 시선으로 볼 수도 있겠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책 읽기를 시작했는데요. 생각한 것보다 불쾌감이 심합니다.



역자가 그러했듯이 이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은 어쩌면 큰 실망감이나 모멸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일본군을 따라서 러일전쟁을 취재한 종군기자로서 바라본 조선, 조선인은 이제 곧 제국주의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는 허약한 모습 그대로였던 것이다.

-p.23


 일전에 읽은 <야성이 부르는 소리>의 저자 잭 런던의 조선 방문기라니 신기하기도 하고 호기심도 일어, 그의 문장이라면 당시의 조선 모습을 서양인의 시선으로 잘 서술해놓았으려니 했는데요. 조선을 까도 너무 깝니다. - 이런 교양 없는 표현이라니.



조선인들은 이미 그들을 점령해 지금은 주인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상전인 '왜놈'들의 몸집을 훨씬 능가하는 근육이 발달한 건장한 민족이다. 그러나 조선인들에게는 기개가 없다. 일본인을 훌륭한 군인으로 만들어주는 그러한 맹렬함이 조선인에게는 없다.

-p.61


한마디로 말해서 백인 여행자가 조선에 체류할 때 겪는 일들은 조선에 도착한 처음 몇 주 동안 기분 좋은 것과는 영 거리가 멀다. 만약 그가 예민한 사람이라면 두 가지 강한 욕구 사이에서 씨름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하나는 조선인들을 죽이고 싶은 욕구이고 또 하나는 자살하고 싶은 욕구이다. 개인적으로 나라면 첫 번째를 선택했을 것이다. 지금은 면역이 되어서 여행을 계속하기에 충분한 이성이 생겼다.

-p.67


이 외에도 조선인과 조선을 비하하는 말들이 어찌나 많은지 일일이 열거하다간 책의 많은 부분을 옮기게 생겼으니 그만하려 합니다. 잭 런던이 본 조선은 그러하였으며 아무리 일본군을 따라 조선에 들어온 종군 기자였다지만 일본군에 대한 호감이 엄청납니다. 그러니 게으르고 비위생적인 데다가 탐관오리가 득시글대는 조선은 일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시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일본군에 대한 호감이 조금씩 낮아지는 것 같기도 했지만요.


어쨌든 이런 이야기들이 종군기자 잭 런던의 글을 통해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생각하니 분하기 짝이 없습니다. 서양인의 눈으로 본 조선이 그러하다는 것 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일본에 비해 어쩌고저쩌고... 운운하는 것은 일본의 식민지배가 조선을 위해 행해진 것이며 무척 고마운 일이고 당연한 일이라는 게 그의 시선이었다니. 일본인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기사를 작성했다는 것 자체가 끔찍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는 편중된 시선으로 바라보며 일본군의 착취나 수탈, 도둑질도 정당하다 생각했습니다.



조선인은 또 다른 불만을 토로한다. 병사들이 닭과 달걀을 훔쳐 간다는 것이다. 가난한 조선 백성의 형편에서 그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다른 식으로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병사들이 있는가? 전쟁이 존재해온 이후로 병사들은 닭장을 점령하고 닭과 달걀은 병사들의 공공연한 먹을거리처럼 간주되어오지 않았던가? 인간이 전쟁을 일으킬 만큼 비 이성적인 한 병사들의 위장과 사고방식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p.75



그러니 자기 눈으로 보기에 미개해 보이는 조선인의 집에 들어가서 말에게 먹일 보리를 내놓으라고 큰소리를 떵떵 쳤겠죠. 가난에, 수탈에 시달리고 러일전쟁에 몸 둘 곳 없는, 자신들 끼니도 걱정해야 하는 조선인의 집에 들어가서 말먹이를 내놓으라는 게 말이나 됩니까. 달라고 할 땐 안 주더니 돈을 내니 너도나도 주더라며 비아냥거리던데, 20세기 초 미국에서는 그런 행동이 용납되었던 걸까요? 아니라는 걸 압니다. 그런데 어째서 조선에서만 그랬을까요? 그런 점에서 서양인이 - 잭 런던 혼자만의 시선이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조선인들을 어떻게 보았는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실은, 조선에 관한 묘사보다는 러일전쟁에 관한 종군 기자로서의 이야기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일본군의 허가가 떨어지지 않아 최전방으로 가지 못하고 조선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작성한 조선 기사에, 조선인의 후손인 제가 화가 날 수 밖에요. 그 당시를 살아보지 않아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알 수 없습니다만.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속이 상했습니다. 

더불어, 혹여 우리가 다른 나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잭 런던이 조선을 보는 시선으로 보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어쩌면 무의식중에, 혹은 의식하면서 그런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21세기 임에도 불구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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