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애플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7
마리 유키코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감응정신병이라는 게있습니다만, 이 책의 날개를 읽기 전까지는 그런 병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습니다. <골든 애플>은 마리 유키코의 일곱 번째 작품으로, '감응정신병'이라는 정신병리학 증상을 모티프로 하는 여덟 가지 이야기가 숨 막히게(책날개에) 이어진다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감응정신병이 무언인가를 알아야 이 책의 이해가 쉬워질 테지요. 하지만, 저는 그냥 읽었습니다..... 아니요! 감응정신병이 무언인가를 알고 읽었어야 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감응정신병'이 무엇인가 검색해보고 눈을 질끈 감았으니까요.

감응정신병이란 한 사람의 정신이상자의 증세가 타인에게 감염되어 야기되는 정신장애라고 하는데요. 정신질병자나 조현병자의 환상이나 환각, 망상 등이 타인에게 전염되는 걸 말합니다.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종교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열혈 신자가 믿고 따르는 행위라거나, 부모님의 이상한 망상을 아이가 사실로 믿고 있는 것 같은 거 말이죠. 그런 걸 표현하는 용어가 바로 감응정신병이라고 합니다. 아마 정신질병자나 조현병자의 언변이 훌륭하고 그럴싸할수록, 카리스마가 있을수록 전염성이 높을 것 같고요. 듣는 상대의 마음이 어지럽거나 약하거나, 암시에 걸리기 쉽거나 미신을 믿는다거나 할수록 감염이 쉽게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딱히 정답은 없어요. 나는 강인하고 주관이 있으니까 절대 감염되지 않을 거라고 단언할 수는 없을 거라는 거죠. 혹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이 책을 읽어보셔요. 정말 그럴까,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책은 연작 단편인지 아닌지 아무튼 뭐 그런 개별적인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단편인데, 연관이 있어요. 그렇다면 연작 단편이겠죠. 그런데 과연 정말로 연결되어 있는 걸까요? 별도의 이야기일까요? 그러니 그냥 단편일지도 몰라요. 갸웃? 장편인 거 같기도 합니다.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척하면서 횡설수설하니 성가시죠? 말하는 저 역시 답답합니다.


<골든애플>에서는 '에로토마니아', '클레이머', '칼리굴라', '골든애플', '핫 리딩', '데자뷔', '갱 스토킹', '폴리 아 드'라는 정신학용어를 각 단편의 제목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그 용어가 이르는 대로의 스토리를 보여주지요. 

잡지에 소설을 연재하고 있는 인기 소설가 미사키는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과 동명의 개그맨 가와카미이자 백화점 멘치까스 판매원에게 칼을 맞습니다. 이에 그를 변호하고 나서는 마이코. 여기까지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진실은 어떨까요? 마이코의 주장대로라면 미사키가 가와카미를 스토킹했고, 도저히 참지 못 했던 그가 미사키를 찔렀다고 합니다만, 잡지 편집부의 주장으로는 가와카미가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착각한 나머지 편집부도 괴롭히다가 결국엔 작가를 찾아가 해코지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뒤에 이어지는 각각의 단편을 읽어나가다 보면, 이야기는 더욱 복잡해집니다. 위의 둘 중 하나가 진실이겠거니 하고 있던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되어, 사실은 미사키와 가와카미는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마이코가 훼방을 놓은 것 같습니다. 셋 중에 제정신이 아닌 사람은 도대체 누구냐고요. 


책 속의 사건이 이것 하나뿐이면 어떻게든 머리를 정리해보겠는데, 이게 다가 아닙니다. 가와카미가 근무하던 백화점 식품매장에서는 크로켓 속에서 사람의 손가락이 발견되는 대사건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참, 가와카미의 회사 제품은 아닙니다. 그 손가락은 어떻게 크로켓 안에 들어간 건가 하는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습니다. 그건 배경일 뿐, 다른 사건이 벌어지거든요. 그리고 또 몇 년 후 그 사건 때문이 벌어지는 또 다른 사건. 

교통사고 피해자가 기억해내지 못하는 상실된 단편들 속에 숨어있는 살인사건. 그녀가 살인을 한 건지, 피해자일 뿐인 건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시내의 한 맨션에서는 몇 년 새 사람이 살해당하는 일이 몇 번이나 일어나고, 그 일에 대한 소문이 커졌다가 사그라지고, 다시 커졌다가 사그라듭니다. 책의 마지막까지 읽고 나서도 그러니까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반은 명확하고 반은 애매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사건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이리저리하여 그리되었다고 하면 오,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일이 많은데, 기사를 그럴듯하게 쓴 기자의 글을 보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해버리기도 하고, 스스로 진실을 캐내는 건 생각보다 위험한 일이기도 하고 귀찮은 일이기도 하니 내 일이 아니면 그냥 듣고 잊어버리기 일쑵니다. 그러니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 누구는 옳고 누구는 그르며 누구는 정상인데 누구는 미쳤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참, 그렇네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신병에 감응된 것은 등장인물들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미끼를 물고 현혹되어버렸네요. 작가가 끌고 가는 대로 이리 끌려가고 저리 끌려 간 걸 보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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