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보다 뛰어난 과학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쩐지 황폐한 모습의 지구. 특권층을 제외한 보통의 지구인들은 현재보다 훨씬 낙후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안드로이드나 사이보그가 자연스럽게 그들 생활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런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제4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부분들이 파괴되고 훼손되어 회복될 수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제 3 시대력을 사용하는 그들은 뛰어난 과학력을 지녔음에도 제대로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심각한 전염병도 퍼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레투모시스 전염병은 치사율도 높습니다. 작은 마을의 아이도,동방 연방의 왕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10년이 넘도록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지만, 결과물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 치료제는 루나에서 개발되었고, 루나의 여왕인 레바나는 이 약을 주겠다는 명분으로 결혼 동맹을 요구합니다. 자신의 마음보다 더 큰 그림을 보아야 하는 동방 연방의 카이토 황제는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구보다 조금 화려한 느낌의 루나는 지구의 위성, 달입니다. 달은 차가운 느낌을 주지만 예로부터 신비한 힘을 지녔다고 믿어왔지요. 동서양을 막론하고서요. 그런 환상이 루나 크로니클 시리즈에서도 나타납니다. 루나인들은 마법으로 본인의 외양을 꾸밀 뿐 아니라 지구인이나 마력이 없는 자를 조종할 수 있습니다. 그중 강한 마법 소유자(마법사)는 타인을 강하게 통제하고 조종하여 두려움을 모르는 병사로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지구인보다 루나인이 강할 수밖에 없겠죠. 지구인은 마법을 사용하지 못 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손쉽게 조종되니까요. 무척이나 아름답고 화려한 루나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왕과 귀족들이 거주하고 있는 아르테미스 시에 한정된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기타 지구(지역)는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곳으로 아르테미스 시가 보랏빛을 연상시킨다면, 이곳은 세피아 빛을 떠올리게 합니다. 루나의 상류층은 자신들과 같은 루나인들을 착취할 뿐만 아니라 마력을 지니지 못하고 태어난 아이들- 껍데기라고 불리는-을 부모에게서 빼앗아 가두어 두고선 혈소판을 채취합니다. 레투모시스와 관련된 약을 만들 때 필요하다는 이유였지요. 그들의 부모는 아이들이 그런 일을 당하고 있다는 걸 전혀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 개조를 통한 늑대 인간 부대도 양성합니다. 전투에 최적화된 인체로 만드는 것이죠. 본능적인 싸움꾼으로 길러집니다. 그들은 너무나 강해 웬만해서는 마력으로 통제가 안됩니다. 그들을 길들이려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공포와 먹이를 통한 통제 훈련이 필요합니다. 가끔 스스로의 의지로 옳은 판단을 하는 늑대인간도 있지만, 무척 드문 일입니다. 





북로드에서 출판된 마리사 마이어의 루나 크로니클 시리즈는 이런 배경으로 펼쳐지는 범우주적이고 전 지구적인 이야기입니다. 동화에서 모티브를 따왔지만 무척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지요. 그렇지만 동화에서 포인트가 되는 부분들은 정확히 들어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신데렐라가 무도회에서 신발을 떨어뜨리고 가는 부분이라거나 - 신더에서는 아예 발을 떨어뜨리지만요 - 빨간 모자의 할머니가 늑대 때문에 고초를 겪는다거나 하는,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 갇혀서 바깥세상을 그리워하는 라푼젤, 남자는 눈이 멀고, 사막을 헤매게 되는 것까지 모두 들어 있습니다. 백설공주는 마녀이자 여왕이 건네준 사과 때문에 가사 상태에 빠지는 그런 포인트들이 모두 들어가 있습니다. 



<신더>는 신데렐라에서 모티브를 따왔습니다. 동양계의 소녀이고요, 신베이징에 거주하는 사이보그입니다. 자신이 어렸을 때린씨에게 입양되었다는 것만을 기억하고 있을 뿐, 이미 죽은 양아버지에게 자세한 이야기는 들은 바 없습니다. 양어머니와 언니에게 구박을 받으면서도 단짝 친구인 사이보그 이코와 함께 용감하게 살아가고 있었지요. 그녀는 지구 최고의 수리공이었습니다. 자신이 루나의 공주 셀린인 것도 모르고 있었죠. 동방 연방의 황제 카이토가 신더의 짝입니다.




<스칼렛>은 빨간 모자에서 모티브를 따왔습니다. 붉은 머리의 프랑스 소녀죠. 할머니와 농장을 경영하는 조종사입니다. 루나크로니클 시리즈에서 조종 기술을 선보일 기회보다는 액션과 모험을 보여줄 기회가 많았지만 말입니다. 그녀의 용기와 사랑스러움, 당찬 성격은 루나의 개조 인간 울프마저 반하게 만듭니다. 알파 수컷인 울프 - 제브의 짝이 되지요.



<크레스>는 천재 해커 소녀, 라푼젤입니다. 루나의 껍데기로 인공위성에 갇혀 살면서 여왕의 직속 마법사 시빌 미라의 명령에 따라 지구의 정보를 해킹합니다. 지구의 많은 정보를 접하다 보니 신더에게 호감을 갖게 되고 카스웰에게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서인지 상상력이 대단합니다. 작은 소녀이지만 무척 용감합니다. 키가 작아서 그런가 자꾸만 어리게 생각되지만 실은 어린 아가씨랍니다.



<윈터>는 백설공주로, 검은 머리의 미인입니다. 루나인이라면 당연히 숨 쉬는 것처럼 사용하는 마법을 쓰지 않으려 애쓰는 바람에 환각과 환상에 시달립니다. 레바나를 두려워하면서도 신더들과 합류합니다. 작은 용기를 내보지만, 작품 전체에서 매력은 좀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도 불분명한데, 어릴 때부터 두려워하며 살았는데 갑자기 변화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 그녀를 지키는 근위병이자 사랑꾼 제이드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윈터가 변화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신더, 스칼렛, 크레스 역시 성격적인 면에서 크게 변화하는 부분은 없습니다. 천성 그대로 밀어붙이는 것이죠. 그래도 좋습니다. 동화나 대부분의 할리우드 영화 또는 애니메이션에서는 위기에 처한 여주인공을 남주인공이 구해내고 사랑을 속삭이는 것이 대부분인데요, 루나 크로니클 시리즈에서는 성별과 상관없이 각자의 능력과 상황에 따라 성차별 없이 행동하는 편입니다. 심지어 신더의 경우엔 위기에 처한, 억류되어 있는 카이토를 구해내는 훌륭한 전사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는걸요. 이 소설은 정말이지 사랑과 우정과 액션이 하모니를 이룹니다.


아 참, 숨은 여주인공이라고 해도 좋을 한 사람을 빼먹을 뻔했군요. 신더의 절친 이코 말이에요. 신더의 새어머니가 해체해서 부품별로 팔아치웠지만 결함이 있다는 - 사실은 매력이 터지는 - 인격 칩만은 남아, 신더 곁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지요. 예쁜 걸 좋아하고, 의리 있고, 당찬 성격의 멋진 소녀랍니다. 저런저런, "왜 나는 빼먹은 거냐. 포니."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루나 크로니클은 무척 매력적인 시리즈라 장황하게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실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있어요. 그렇지만 제가 이야기를 다 해버리면 책을 읽는 재미가 떨어지겠죠? 그러니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직접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특히 꿈과 상상력이 풍부한 당신이시라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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