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은 없다 - 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
남궁인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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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아주 어릴 때, 고열과 구토로 밤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아 응급실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절망과 분노를 느끼고 끝내 의사에게 큰소리로 항의하는 진상을 부렸습니다. 괴로워하는 환자에게 적절한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는 의사를 만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행운인지 그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제 입장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긴박한 순간이었지만 응급실당직의의 입장에서는 별일이 아니었을 그런 사건이었던 것도 같습니다만 애초에 그 의사는 내과적인 처치를 할 줄 모르는 다른 분야의 선생님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개 응급실을 찾을 때는 제정신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올바른 판단을 하기 어렵고요. 환자로서, 보호자로서도 마찬가진데요. 저는 참 드물게도 멀쩡한 정신으로 가본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오래된 기억은 한밤중 갑자기 복통을 일으킨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갔던 때의 일입니다. 아버지는 평소 걸어 다니는 약국이라고 불릴 만큼  건강 염려증이 심한 분이었던 데다가 엄살까지 두루 갖추고 있어서 배가 아파 병원에 가야겠다고 하실 때에도 사실 미심쩍었습니다. 정말 그만큼 아픈 걸까? 그렇지만 혹시 맹장염일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적어도 스스로 걸을 수 있으실 때 병원에 모시고 가야 한다는 어린 마음에 - 아마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을 겁니다 - 택시로 아버지를 응급실에 모셨었죠. 정말 창피했습니다. 아버지의 엄살은 그치지 않았거든요. 그냥 배탈이었어요. 어쨌든 응급실에 계시는 분들은 그런 사람에게도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분들을 귀찮게 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고요. 저희 아버지는 주사 맞을 때도 아프다고 엄살을 부리셨거든요. 민망했습니다.

응급실엔 엄살쟁이들이 다녀가기도 하지만 - 참, 타인의 입장에서는 말입니다. 당사자에게는 커다란 고통일 수도 있어요- 실제로는 생사가 갈리는 곳입니다. 저 역시 응급실이라는 곳에서 새 생명을 부여받은 후 깨달음을 얻어, 죽는 것보다 사는 게 좋다는 자세로 이날까지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신이 오락가락할 때 의사 선생님께 야단맞은 기억이 생생합니다. 소리를 지르진 않았지만 단호한 말투로 나무라셨거든요. 저 뿐만 아니라 보호자로 온 사람들도 야단맞았어요. 저는 지금껏 제가 그런 식으로 가버리면 마음에 상처를 받을 사람으로 가까운 이들을 생각했을 뿐, 상처 입은 자 명단에 의사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실은 그들도 살려내지 못한 환자들에 대해 큰 상처를 받고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만약은 없다>는 응급의학과 전문의인 남궁인이 실제 응급실에서 있었던 일들을 복기하듯 기록한 책입니다. 그의 글에서는 고통이 느껴졌고 슬픔, 회한이 느껴졌습니다.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이토록 무서운 책은 읽은 적이 없습니다.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이 다양한 형태로 죽어갑니다. 원했던 죽음도 있었고, 거부하고 싶었던 죽음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들은 대부분 죽어갔습니다. 하지만 더욱 무서운 것은, 이것이 허구가 아니라 실제이며 매일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응급실의 사람들은 이런 일들을 겪고 있었습니다. 스스로가 원해서 의사의 길을, 간호사의 길을 선택했지만 그들이 감당해야 하는 것들은 선택의 무게보다 더 큰 것들이었습니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사람을 살려낸 일, 폭력으로 죽음에 가까워진 이를 살려내지 못 했던 일, 죽는 것이 오히려 평안하다는 걸 알면서도 의사이기에 몇 번이고 살려야만 했던 그의 경험이 마치 내 것인 양 알알이 박혔습니다. 

무겁고도 슬퍼 한 번에 읽지 못하고 쉬기를 반복, 꿈에까지 찾아와 저를 쉬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챕터 2 '알지 못하는 세계:삶에 관하여'에서는 조금이라도 웃을 일이 생기더군요. 그렇다고 다치는 사람이나 죽어가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래도 경계의 이쪽에서 바라볼 수 있어 조금은 편했다는 이야기지요.


이 책은 국립중앙도서관 10월 사서 추천도서로 선정된 책입니다. 저 역시 추천하고 싶습니다. 다만 무게를 감당해야만 한다는 것은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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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철학 이야기 : 근현대 편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철학 이야기
이동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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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라는 건 학창시절부터 저를 괴롭혔던 것들 중 하나인데요. 스콜라 학파니, 에피쿠로스 학파니 그런 것을 외울 때부터 그 괴로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도통 모르겠더라고요.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던지, 지금도 이름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만, 에피쿠로스 학파는 에피쿠로스에 의해 창시되었다는 정도밖에 기억을 못 합니다. 어떤 주장을 했는지 몰라요. 스콜라 학파도 마찬가지죠. 이름이 조금 어렵습니다만 스콜라스티쿠스가 창시자예요. 플라톤이니, 아리스토텔레스니, 소크라테스니 이름은 참 잘 알죠. 그러나 그들의 철학 사상은 모르겠습니다. 인문학 책을 읽어도 그때뿐이고요. 흥미로운 고대 철학도 그러한데 근현대 철학이라니!! 제가 알리가 없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자꾸만 궁금합니다. 깊이 들어가는 건 두렵지만 말입니다.


근현대의 철학자들도 이름은 참 많이 들어봤습니다. 소설에서도, 비소설에서도 그 이름만큼은 자주 등장하니까요. 아마 제가 철학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일 겁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이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 소설에서 인용되고 소설가가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 심리학이나 가끔은 과학 서적에서도 이름이 등장하니만큼 그들의 영향이 결코 적지는 않다는 걸 눈치챘거든요. 그러니 쉬워 보이는 철학 관련 도서가 있으면 슬그머니 손을 뻗어보는 겁니다. 혹시 나 같은 철학 무식자도 읽을만한 책이 있나 해서요. 제 눈은 신기합니다. 어려워 보이는 단어나 문장이 있으면 자동으로 스킵 하는 기능이 있어요. 분명히 눈으로 훑은 것 같은데 실은 건너뛰고 있습니다. 읽으면서 그 단어를 좀 외우려고 해 볼 것이지. 신경 써서 읽더라도 잠시 후에 다시 그 기능이 발휘되어 어느새 편한 부분들만 읽고 있는 겁니다. 어쩌겠어요.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머리에 꾹꾹 눌러 담지는 못하더라도 제발 제대로 읽기라도 하라고 야단칩니다. 그때뿐이에요. 포니의 귀는 마이동풍이니까요.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철학 이야기>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니 세상에서 가장 흥미롭다는데 그때도 건너뛰면서 읽으면 어쩝니까. 읽을 이유가 없잖아요. 

그래서 초점을 다시 맞췄습니다. '이건 제목이 잘못되었어!'라고 외치고선 말이에요 - 실제로 소리를 지르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 이 책은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철학 이야기>라기보다는 철학자의 이야기책입니다. 책 표지에 "그들도 우리처럼 방황했다."라고쓰여있잖아요.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이념으로 삼는 데는 뜬금없이 번뜩하고 떠오르는 일도 있을 수 있겠지만 보통은 시대적, 지리적 배경, 사회적 분위기, 주변 환경 (어라, 같은 말이 겹치는 것 같은데요?), 경제적 상황, 살아온 길등등 그런 것들과 교육과정 뭐 암튼 그 사람이 갖추고 있는 상황에서 깊은 사색을 하다가 또는 하고 나서 결정하는 거잖아요. 철학자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면 좋습니다. 그들도 인간이니까요. 이 책은 그런 것에 초점을 맞추고 읽으면 정말로 흥미로워집니다. - 여전히 어려운 단어는 머릿속에 넣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 위대해 보이던 철학자들이 다시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안 위대한 건 아니지만, 구름 위의 사람이라기보다는 우리와 같은 어쩌면 우리보다 더 나약한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세상의 이런저런 것들에 부딪히기에 좀 더 많은 생각을 해야 했고, 때로는 그런 생각들이 우울감을 불러일으켜 제 속을 파먹는 것을 알면서도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기도 합니다. 삶을 즐기며 행복해했던 철학자도 있었고, 시대와 다른 생각을 했기에 배척당한 철학자도 있었으며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철학자가 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읽으며 그들은 어째서 그런 사상을 이야기하게 되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 사상이 주류였던비주류였든 간에 참 용감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그렇게 소신 있게 주장하다니. 


이 책에서는 근현대의 유명한 철학자들의 일대기를 사상과 더불어 이야기합니다. 책의 분량이 있기 때문에 길게 이야기할 수는 없기에 간단하게 이야기해주는데요. 누군가가 이들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맛깔나게- 너무 어렵게는 말고 - 한편 한편 제대로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해봤습니다. 그렇다면 철학에 대해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텐데 하는 마음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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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는 요리책 - MWA 선정 세계 최고 미스터리 작가들의
케이트 화이트 엮음, 김연우 옮김 / 라의눈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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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WA 라고 하면, 북로드에서 나온 <뉴욕 미스터리>에서 그 이름을 처음 접했습니다. 

역사도 오래되었고, 수많은 작가들이 함께하고 있는 곳이지만 말이에요. 미국에서 상업, 금융, 그리고 문화의 중심지로 꼽히는 뉴욕. 그 뉴욕의 문학 파트 중 미스터리 작가들이 함께 하고 있는 곳이 MWA, 미국 추리 소설가 협회인 것입니다.

미국 추리소설가 협회(MWA)는 1945년 3월에 창립되어 2015년에 7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클레이튼 로슨, 앤서니 바우처(그의 이름을 딴 앤서니 상도 있습니다만), 로렌스 트리트, 브렛 할리데이를 비롯한 10여 명의 작가들로 시작했던 이 단체는 점점 그 규모가 커져 현재는 수많은 작가들이 이 협회에 속해있다고 합니다


죽이는 요리책을 엮은 케이트 화이트 <코스모폴리탄>의 편집장을 지냈으며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합니다. 베일리 위긴스 미스터리 시리즈의 저자인데요. 혹시 읽어보신 분 계신가요? 저는 들어본 바가 없어서요. 수많은 책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모든 책이 번역되는 것도 아니고, 설사 들어온다고 해도 제가 다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무척 유명하신 분이라도 이름을 모를 수밖에요. 이 <죽이는 요리책>에 참여한 작가들의 이름도 그렇습니다. 아는 작가보다는 모르는 작가가 더 많았어요. 스치듯 어느 단편에서 만났을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머리에 쏙 들어오는 작가의 이름들은 몇 없었습니다. 이를테면 리 차일드라거나 길리언 플린이라거나 뉴욕 미스터리를 편집했던 메리 히긴스 클라크라거나, 람보의 원작 퍼스트 블러드의 원작자 데이비드 모렐이라거나... 그런 분들 말이죠. 


사실, 표지가 멋지고, 사은품이(구입 당시 고기 망치를 주더군요.) 멋지고, 미스터리와 함께 하는 요리책이라니 대단하다!!!라는 생각에 구입을 망설이지 않았던 것인데요. 조금은 망설여도 좋을 뻔했습니다. 저는 소설 중 음식이 나오는 부분을 발췌해서 일부 보여주고 그 음식의 레시피 같은 것이 있을 거라고 상상했었는데, 그런 건 아니더라고요. 소설 속에 나오는 음식은 맞습니다만, 어느 소설에 누가 좋아한 음식이다. 등장한 음식이다. 요리한 음식이다...라는 식으로 되어 있어서, 그 소설을 알지 못하는 저로서는 그렇게까지 땡기지 않았습니다. 

알고 있던 사실이긴 한데- 서양의 레시피북이 원래 그림이나 사진보다는 줄글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죽이는 요리책>이 다른 소설로 꼬리를 물게 할 수 있는 책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러니 그런 부분은 조금 실망이었습니다.

하지만, 책은 표지부터 내부까지 고급스럽습니다. 뭔가 우아한 분위기랄까요. 그래서 읽는 동안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초반엔 레시피를 열심히 읽었드랬습니다. 괜찮은 게 있으면 따라 해볼까 싶어서요.

그러나, 생소한 재료도 많고, 오븐이 있어야 하고... 등등.. 뭔가 따라 할 수는 없지만 식욕을 자극하는 - 혹은 식욕을 떨어지게 하는 음식들 때문에 아, 이런 것이 바로 그림의 떡이로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제 자신의 감정을 배제하고 생각한다면 이 책의 정가는 전혀 아깝지 않은 수준입니다. 표지도, 내부 편집도 모두 신경을 써서 잘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이런저런 점에 대해 실망한 저이지만, 구입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아, 이런 것이 바로 덕심인가보다.



** 참, 고기망치는 유용하게 잘 쓰고 있습니다. 고기가 아주 야들야들해져요.

** 일반적인 요리책으로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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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스토리콜렉터 49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황소연 옮김 / 북로드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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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학원 Q의 메구미는 선천적인 순간 기억 능력자입니다. 그녀의 능력이 Q 반의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 때가 많지만 한 번 본 것은 절대로 잊을 수 없다는 건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다는 걸 알기에 Q 반 친구들은 되도록 메구미에게 살인 사건의 현장을 보여주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끔찍한 장면은 사진이나 영상처럼 촬영되어 뇌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을 테니까요. 저는, 절대로 그런 능력을 갖고 싶지 않습니다. 적당한 망각이라는 것은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축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만일 메구미처럼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다른 사건도 아닌, 사랑하는 가족이 무참히 살해된 현장을 보게 된다면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기 힘들 겁니다. 그런 경우의 수는 무척이나 적겠지만 <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의 데커는 무척이나 운이 없었나 봅니다. 처남의 피로 발을 적시고 아내의 시신을 부둥켜안았으며 딸의 시신 앞에서 모든 것을 잃고 모든 것을 기억하고 말았으니까요.


미식축구 선수 출신의 형사이자 이 책의 주인공인 데커는 어느 날 가족들의 그런 살해 현장과 만나고 맙니다. 제목 그대로인 그는 자신의 능력을 이해해주는 단 하나의 사랑, 아내와 딸을 잃은 충격으로 경찰을 그만두고 폐인에 노숙자, 뚱보 탐정이 되어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죽지 못해 살아간다는 말이 딱 맞을 것 같습니다. 세바스찬 레오폴드라는 남자가 자신이 그 사건을 저질렀노라고 자수할 때까지 그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습니다. 범행 동기는 데커에게 무시당했기 때문이라는데, 당최 데커의 기억 속에는 레오폴드가 없었습니다. 만일 만났었더라면 기억 못할 리가 없는데. 

한편 데커가 졸업한 맨스필드 고등학교에서 총기 사고로 학생들과 교직원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사건 해결에 관한 데커의 능력을 높이 사고 있는 서장님은 데커를 유료 컨설턴트로 고용합니다. 사건을 추적하는 데커, 자신의 사건과 맨스필드 고등학교 사건이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아무리 정확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의 감정이나 마음속까지 기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평소와 같은 자신의 행동과 말이, 전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에게 슬픔을 안겨 줄 수 있습니다. 그 슬픔은 점점 커다래져 악의가 되었지만 스스로다독였을 겁니다. '저 사람은 모르고 있었어. 전혀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을 거야.' 그리고선 마음속 깊은 곳에 가둬두거나 잊어버렸을 테지요. 그렇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호문쿨루스가 되어 자라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축복받은 아이 일수도 저주받은아이일 수도 있는 그 호문쿨루스는 누군가의 속삭임을 듣고 거대한 악이 되어버립니다. 사랑받지 못한 그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싶었을 겁니다. 그것이 바로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라는 소설 속, 범인의 범행 동기였습니다.

잘못된 생각이 슬픔을 낳고, 슬픔은 악의를 낳고, 악의는 다시 슬픔을 낳게 되는 비극의 연속.

스릴러인 이 소설 속엔 그런 것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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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9PM 밤의 시간 다음, 작가의 발견 7인의 작가전
김이은 지음 / 답(도서출판)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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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2 PM 책을 덮고 잠시 해선이 되어봅니다. 끈적끈적한 피들이 손가락 사이에 들러붙습니다. 그 질척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느낌이 싫어 거품 세정제로 손을 세심하게 씻어냅니다. 창밖엔 비가 내리고 이런 날엔 무언가가 나를 찾아올 것만 같아 두렵습니다. 하지만, 낮은 더 두렵습니다. 밝은 곳은 현실, 이렇게 어두운 밤엔 꿈이라도 꿀 수 있으니까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생각해보면 <11:59 PM 밤의 시간>의 주인공 해선의 처지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신이 운영하는 유기농 쿠키 카페도 잘 되어가고 있고, 공무원이며 순진한 남편 동식이도 그냥저냥 나쁘지 않습니다. 자기를 꼭 닮은 딸, 교영도 있고 - 지나치게 닮아서 위험합니다만 - 철모르는 아들 진영도 있습니다. 바로 옆집이 시댁인 것만 빼면 완벽합니다. 시장 터줏대감인 시어머니 문자는 옛날 통닭을 팔며 생활하니 경제적 문제도 없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산다면요. 하나뿐인 시누이는 딱 시누이스럽습니다. 

그러나 해선의 마음속에는 고르고가 살고 있었습니다. 페르세우스가 나타나도 퇴치하지 못할 그런 고르고 세 자매가 그녀의 마음 속에 단단히 들어앉아 있었습니다. 그 고르고는 인형의 모습을 하고서 교영의 품 안에서도 살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괴물은 해선의 엄마에게서부터 스며든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디기탈러스의 위험한 향을 맡으면서 말이죠.


<11:59 PM 밤의 시간>은 어둡습니다. 무척 어둡고, 검은빛을 띄고 있습니다. 이곳이 바닥인가 싶은데, 점점 더 아래로, 아래로 내려갑니다. 해선의 마음속의 어둠은 한밤중이면 밖으로 기어 나와 그녀의 주변을 물들입니다. 붉은색으로.

그녀가 원한 건 '진정한 평안'이었습니다.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는 편안한 생활,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저도 자주 하고 있기에 그녀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닙니다. 다만, 저는 스스로를 가두는 것으로 타인과의 접촉을 하지 않으려는 히키코모리적인 - 어쩌면 퇴행적인 행동을 하고 있지만, 해선은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갑니다. 아무도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 무시하지 않는 곳으로 가려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실은 롭 곤살베스의 그림과 같아서 그녀가 느끼는 것과는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걸 모른 채 말입니다.

그녀의 스위치가 켜진 건, 디기탈러스 과량 복용으로 자살한 엄마로부터 였는지, 좋아하는 걸 실컷 드시다가 저세상으로 -예정보다 빨리 - 하늘로 가버린 아버지 때문이었는지, 도대체 어떤 인간이었는지 알 수 없는 교영의 친아빠이자 해선의 죽은 전남편 때문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교영이 진영을 계단에서 밀어 죽이는 걸 본 것 때문인지 알 수 없습니다만, 어쨌든 그녀는 서서히 주변의 장애물을 하나씩 제거하면서 걸어갑니다. 그녀의 엄마가 어린 시절 귀에 속삭여주었던 우아함을 잃지 않기 위해. 호텔 엑시트에서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라면 못 할 일이 없습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는 동반자 클럽에 입성하는 것이 그녀의 꿈이고, 그녀의 종착지는 호텔 엑시트가 될 것입니다.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꿈의 공간 엑시트. 그곳에서는 설령 자살을 하겠다고 결심했다면, 그것마저도 이룰 수 있습니다. 다만, 클럽 가입비가 있는데요. 얼마인지는 비밀입니다. 해선은 아는데, 저는 모릅니다. 어찌 되었건 겨우 몇 억 정도는 아닐 것 같습니다. 파라다이스에 가는데 고작 그 정도이려고요. 해선이 알려주지 않았지만, 상현이 알려주지 않았지만, 보험 설계사 병숙이 알려주지 않았지만 기분 상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그곳에 갈 생각이 없으니까요. 내가 원하는 대로 뭐든지 해준다는 설정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걸리적거리는 것도 싫지만, 누가 옆에서 시중들고 비위 맞춰 주는 건 더 싫거든요. 그런 생활을 꿈꾸는 해선에게는 그것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고 여겨졌겠지만요. 그래서 그녀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 인간임을 포기했습니다. 그때마다 찾아오는 투견 더스트의 눈빛을 바라보면서요.

더스트는 그녀의 짝이었을지도 모르고, 그녀 자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11:59 PM 밤의 시간>은 한 여자가 파멸에 이르는 길을 잘 그려낸 소설입니다. 정신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한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방어하는지도 보여주고요. 마리 유키코의 <골든 애플>의 테마 감응정신병을 이 책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변의 여럿에게 전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엄마로부터 아이에게로 전염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는 대개 어린 시절 양육자의 사상이나 정신적인 면을 걸러내지 않고 순수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니 양육자에게 문제가 있다면, 아이에게서도 문제가 발견되기 마련이지요. 해선의 엄마도 우아한 사람이긴 했지만, 타인을 멸시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이 우위에 서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자신이 바닥으로 추락했을 때 견뎌낼 수 없었던 것일 테죠. 자신이 벌레처럼 바라보던 바로 그것이 되다니. 그리고 해선은 자라나 교영의 엄마가 됩니다. 교영은 또래 아이들보다 파괴적이고 가학적인 상상을 하며 그것을 즐깁니다. 그 아이에게 아름다운 동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어째서 교영이 그렇게 되었을까요? 마음에 들지 않는 남동생을 계단에서 굴려버린 것은 - 그러다가 죽을 줄 몰랐기에 저지른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교영은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동생이 죽은 뒤에도 전혀 죄책감이나 두려움 같은 건 없었던 걸 보면요. 해선은 아이에게 사이코패스 기질을 물려준 모양입니다.

두 사이코패스가 한자리에 있을 때, 과연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둘은 정말 서로를 사랑하며 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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