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전쟁 환상문학전집 37
조 홀드먼 지음, 김상훈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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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베트남 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베트남의 통일 과정에서 미국이 개입하고 참전하여 장장 15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던 전쟁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분들 중에서도 베트남전에 참전하면 동생의 병역을 빼준다거나 돈을 많이 준다거나 하는 말에 전쟁터에 뛰어든 분도 있었는데요. 그 일들이 실현이 되었는지 어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어릴 적, 어른의 무용담으로 들었던 이야기라서요. 우리나라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병한 나라입니다. 그 와중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겠지요. 제 정신으로 행할 수 없는 일들도 많았을 겁니다. 지원해서 갔다 하더라도 정확히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고서 갔을는지...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예민한 부분이라 전쟁을 겪어보지도 않은 주제에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 어렵네요.


스티븐 킹의 <롱 워크>에서는 소년들이 영문도 모른 채 걷습니다. 낙오되거나 걸음을 멈추면 죽는다는 규칙이 있지요. 왜 걷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완주하고 나면 큰 보상이 따른다는 말만 믿고 걷습니다. 그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걷기 위한 자로 뽑혔으니 죽어가면서도 끝없이 걸어야만 했을 뿐. 어디 그들만 그렇겠습니까. 이번 전투에서 승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면 영웅이 되어 있거나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넘어가 참전했던 군인들은 상대방을 죽여야 한다니까 총을 들고 적을 죽이고, 제정신으로 싸우기 어려워 마약의 도움을 받기도 했었죠. 훈련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날아든 포탄에 목숨을 잃기도 하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고 있던 친구가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시체가 되어 있기도 하고... 무서워서 그만두고 싶어도 고향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습니다. 끝까지 가는 수밖에 없지요. 겨우 살아남아 돌아간 고국은 상상과는 달리 나를 그렇게 환영해주지 않았고, 그래도 스스로 영웅이라 생각하며 이겨나가려 했지만, 전쟁 후에 남은 건 고장 난 몸뚱이, 고엽제 후유증, 마약의 유혹... 달라져버린 물가, 고향의 그들과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같은 곳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베트남전 이야기입니다.


SF의 고전, 조 홀드먼의 <영원한 전쟁>에서 똑같은 걸 보았습니다. 베트남전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물리학과 천문학을 전공한 조홀드먼은 졸업 후 베트남전에 징집되어 전투에 투입되지만 심각한 부상으로 명예 제대를 한 후 소설가의 길을 걷습니다. <영원한 전쟁>은 그의 물리 천문학 지식에다 베트남 참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광대한 우주에서의 전쟁을 보여줍니다. 

1997년 스타쉽 트루퍼스라는 영화를 보면서 '이거, 스타 크래프트를 영화화한 건가 보다.'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영원한 전쟁>을 읽으면서 또 그런 실수를 했지 뭡니까. 자꾸만 스타쉽 트루퍼스 영화가 생각이 나서 '스타쉽 트루퍼스가 이 책 보고 쓴시나리오인가 보다.'라고 말이에요. 로버트 하인라인의 <스타쉽 트루퍼스>가 먼저입니다. 조 홀드먼이 그 책의 영향을 받았지요. 어딘가 모르게 연상되는 장면들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주인공들의 외모를 영화 스타쉽 트루퍼스의 등장인물들로 상상하며 읽게 되었습니다. 좀 더 실감 났죠.


<영원한 전쟁>은 베트남전이 끝난지 20여 년 후의 근미래에서 시작됩니다. 지금 기준으로는 과거지만, 소설이 1970년대에 나왔으니 당시로 따지면 근미래죠. 1960년대에 달 구경을 했을 뿐인데 1990년대의 지구인들은 미래로 진출합니다. 우주 식민지 건설을 위해서였는데요. 지능이 있는 생명체가 지구인만 있는 건 아니니까, 당연히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특별 부대를 조직하는데, 아이큐 150 이상의 남녀 50명씩을 훈련시켜 군인으로 만듭니다. 싸우는 거 보면 아이큐랑 크게 상관있는 거 같지도 않았지만, 주인공인 만델라는 물리학, 천문학 지식을 원활하게 사용하는 걸 보면 고 지능의 군인이 필요했던 게 맞긴 한가 봅니다. 그들은 엘리트 징병 법에따라 뭐 거부할 자유 같은 건 없고 무조건 입대해서 훈련을 받고 군인이 됩니다. 제가 보기엔 머리 좋은 오합지졸이었는데, 높은 분들에게는 무슨 뜻이 있었나 봅니다. 훈련 중에 병사들이 픽픽 죽어나가는데, 살아남은 군인들을 정예병으로 하여 무시무시한, 지구인들이 토오란이라고 부르는 외계 생명체가 있는 한 행성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그들을 강인하게 만들기 위해 조작된 기억을 심어 적대심을 키워줍니다. 흥분상태의 병사들은 그 좋은 머리를 제대로 써볼 겨를 없이 본능만으로 마구잡이 총질을 하다 죽어갑니다. 정말 집에 가고 싶겠지요. 


SF 영화나 소설을 많이 읽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우주선에서의 시간과 지구에서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갑니다. '워프'라고 부르고 싶지만 책에서는 '콜렙서 점프'를 해서 공간을 뛰어넘습니다. 여기에서 시간차가 나기 시작하는데요. 자세히 들어가면... 제가 곤란해지므로 그냥 그렇구나 하며 읽으면 됩니다. 아무튼, 우주선 내에서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지구로 돌아와보니 어머니가 여든이 넘어 있었습니다.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닌, 21세기의 차가운 세상이. 주인공 만델라는 전쟁을 치르고 귀환을 했음에도 결국 적응하지 못해 다시 우주로 날아갑니다. 그것이 앞으로 몇 백년의 여정이 될지도 모르고요. 그리고 마침내 귀환했을 때, 그가 마주한 세상은 상상조차 하지 못 했던 뜻밖의 것이었습니다. 


이번 황금가지의 <영원한 전쟁>은 서문도 있고, 작가의 말도 있고, 마지막에 해설도 있는데요. 특히 해설. 왜 이리 긴 거야!라고 투덜거렸지만, 제가 막상 리뷰를 쓰려고 하니 말이 길어지네요. 이 책이 좀 그렇습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실은 지구와 다를 바가 없어요.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도 알 수 없고, 무엇을 위해 싸우는 건지도 알 수 없습니다. 심지어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거든요. 비극이죠. 그렇지만 해피엔딩입니다. (무슨 소리냐!) 

보통 자기 계발서를 읽을 때 플래그를 덕지덕지 붙이게 되는데요. 이 책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플래그가 엄청나게 붙었습니다. 읽다 보면 내가 우주에 있는 건지 지독한 현실에 있는 건지 알 수 없거든요. 주인공의 독백도 제대로 와 닿고 그의 사랑도, 전우애도 와 닿습니다. 사실 전투 장면이랑 우주 물리학 이야기할 때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상상하는 거죠. 제가 AU를 알겠습니까, 상대성 원리를 이해하겠습니까, 중력 가속도 같은 건 잊어버린지 오래죠. 작가가 정말 뿌듯해하는 부분이라는데,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를 우주에서 적용해 중력 가속도가 어쩌고저쩌고 함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내는 장면이 있어요. 전, 뭔지 몰랐습니다. 아, 만델라가 말한 걸 좀 응용했고, 그래서 이 여자가 살았구나... 다행이다. 흑. 이런 기분이었으니까요.

만약에 물리, 천문학 지식이 풍부한 분이 읽으신다면, 전쟁에 대해 많은 걸 아는 분이 읽으신다면, 모든 부분에서 흠뻑 취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좀 질투가 났습니다 . 지식이 없는 제가 읽어도 이렇게 재미있는데 그런 분은 얼마나 재미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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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어 데스 스토리콜렉터 50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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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서 행복과 불행은 물려받는 거라고, 오디는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넉넉하게 받고 어떤 사람들은 모자라게 받는다. 어떤 사람들은 부스러기 하나까지 음미하고 마지막 골수까지 쪽쪽 빨아들인다. 우리는 빗소리, 새로 깎은 풀 냄새, 모르는 사람들의 웃음, 더운 날 새벽의 시원함에서 기쁨을 느낀다. 우리는 세상을 배우고 우리가 모르는 것 이상은 결코 알 수 없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감기에 걸리듯 사랑에 걸리고, 폭풍우 속 난파선에 매달리듯 사랑에 매달린다.

-p.550



마이클 로보텀은 나무 같은 작가입니다. 그의 소설을 읽어보면 단단한 껍질 속에 싸여있는 굵은 나무줄기, 부드러운 가지와 푸른 잎사귀가 느껴집니다. 향기로 치자면 나무에 몸통을 긁고 간 사향노루의 향이 그대로 배어있는 샌들우드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굵직한 사건을 흥미로운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그가 묘사한 등장인물의 심층심리를 내 것인 양 받아들이게 됩니다. 결국 작가는 독자의 심리까지 움켜쥐는 데 성공하지요. 마이클 로보텀의 작품을 많이 접해봤던 건 아닙니다. 국내에 번역이 많이 되어 있지 않아서인데요. 북로드에서 출판된 조 올로클린 시리즈, <산산이 부서진 남자>,<내 것이었던 소녀>는 마이클 로보텀이 어떤 작가인가, 그의 소설의 흡인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충분히 알게 해 주었습니다. 조 올로클린의 나머지 시리즈도 속히 출간되기를 간절히 기다리게 만들었습니다. 이번에 북로드에서 마이클 로보텀의 책이 나온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선 조 올로클린이 또 나오는구나 하며 기뻐했었는데요. 이번의 신간 <라이프 오어 데스>는 조 올로클린 시리즈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뭐, 마이클 로보텀의 책이니까 분명히재미있을 거야.' 하며 읽었지요. 그리고 소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700만 달러의 현금수송 차량이 탈취된 엄청난 사건, 경찰과 대치했던 범인들은 모두 사살되었는데요.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 살아남아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오디는 무슨 영문인지 출소를 하루 앞둔 날, 탈옥합니다. 딱 하루만 기다리면 제 발로 당당히 걸어 나갈 수 있는 그곳을, 어째서 일부러 나가 수배자의 신세가 되어버렸을까요. 오디는 단 하나의 사랑이 남긴 말을, 자신이 그녀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죽어도 죽을 수 없는 자가 되어 반드시 살아남아야 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사랑에 목숨을 걸 수 있는 걸까요. 10년이라는 시간은 그것들을 퇴색시키기에 충분했을 텐데요. 오디는 마음이 강한 순정남 -이라는 표현은 촌스러운 거죠. 요새는 사랑꾼이라고 하는 모양이더라고요 - 이었습니다. 10년 전 사건 이전에도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강인했고,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면서도 그녀와 함께 하는 길을 포기하지 않았었는데, 총을 맞고 두개골이 부서져도, 지난 10여 년간 감옥에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겨가면서도, 탈옥 후 발데즈라는 보안관에게 쫓기면서도, 연방 요원 데지레의 추적을 받으면서도 결코 강인함만은 잃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려 합니다. 그가 피해야하는 건 경찰과 보안관, 연방요원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감옥에서 함께 지냈던 모스라는 친구도 오디를 추적합니다. 누군가가 반드시 오디를 찾아내라며 모스와 계약했던 건데요. 그는 돈을 좋아하고 아내를 사랑하며 자신을 사랑할 줄도 아는, 말하자면 지극히 인간적인 캐릭터이며, 마초였습니다. 우정을 지키고 싶은데, 그러자니 자신이 잃어야 하는게 너무나 많습니다. 소중한 것들과 맞바꿀 정도의 우정인가, 누구라도 고민될텐데요. 과연 모스는 오디를 의뢰인에게 넘기고 새 삶을 얻을 수 있을까요.


<라이프 오어 데스>라는 숨 가쁜 스릴러를 읽다 보면 어느새 그 남자의 사랑이 느껴져 마음이 아파집니다. 자세히 드러나 있지 않은 그의 10년이라는 세월마저 파고들어옵니다. 선한 사랑꾼 오디, 그가 사랑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일까지 할 수 있는가를 깨달았기 때문이겠죠. 굳이 그의 사랑이 어떤 것인가 알아보려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자연스레 알게 되니까요. 그저 그의 무사 생존을 기원하기만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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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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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읽은 <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처럼, 위안부에 관한 책이나 글을 많이 읽었었기에 어느 정도의 면역이 되어 있을 거라생각했습니다. 다른 이들이 무섭다, 마음 아프다며 읽기 힘들다던 소설을, 그래도 나는 잘 이겨나가면서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저의 오해였으며 착각이었습니다. 이런 건 면역이 생길 수 없는 일이더군요. 저 역시 고통스러워하며 읽어나갔습니다.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둘이었는데 간밤 한 명이 세상을 떠나.

차분히 담요를 개키던 그녀의 손가락들이 곱아든다. 세 명에서 한 명이 세상을 떠나 두 명 남았다는 소식을 들은 게 불과 한 달 전이다. 귤색이던 극세사 담요는 바래고 물이 빠져 살구색에 가깝다.

그녀는 마저 담요를 개켜 한쪽으로 치우고 손으로 방바닥을 쓴다. 먼지와 실오라기, 살비듬, 은빛 머리카락들을 손바닥 아래로 모아 뭉치던 그녀는 나직이, 중얼거린다.

여기 한 명이 더 살아 있다.....

-p.9~10


도입부에 사로잡혔습니다. 소설은 생존해계시는 위안부 피해자가 단 한 명뿐인 어느 미래의 한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그 가까운 미래에 서서 저는 먼 과거를 보았습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내 어머니가 태어나기도 전의 그 과거에서 시간은 빠르게 흘러 이 자리까지 왔지만, 그 소녀들은 그곳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이 더 아팠습니다. 그들의 상처와 고통은 시간이 치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 한 번의 성폭행도 영혼을 무너뜨릴 수 있는 잔인한 범죄인데, 소녀들에게 매일 같이 가해진 수차례의, 아니 수십 차례의 성폭행은 그들의 몸과 마음, 영혼까지 파괴하는 중범죄인 것입니다. 감히 상상도 못할. 

소설의 주인공 수많은 이름을 가진 그 소녀- 이제는 할머니가 된 그녀 때문에 아픕니다. 

마음이 아파 평소처럼 긴 이야기를 주저리 늘어놓지 못하겠습니다. 


읽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이 이야기를. 아프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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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은 없다 - 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
남궁인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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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아주 어릴 때, 고열과 구토로 밤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아 응급실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절망과 분노를 느끼고 끝내 의사에게 큰소리로 항의하는 진상을 부렸습니다. 괴로워하는 환자에게 적절한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는 의사를 만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행운인지 그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제 입장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긴박한 순간이었지만 응급실당직의의 입장에서는 별일이 아니었을 그런 사건이었던 것도 같습니다만 애초에 그 의사는 내과적인 처치를 할 줄 모르는 다른 분야의 선생님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개 응급실을 찾을 때는 제정신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올바른 판단을 하기 어렵고요. 환자로서, 보호자로서도 마찬가진데요. 저는 참 드물게도 멀쩡한 정신으로 가본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오래된 기억은 한밤중 갑자기 복통을 일으킨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갔던 때의 일입니다. 아버지는 평소 걸어 다니는 약국이라고 불릴 만큼  건강 염려증이 심한 분이었던 데다가 엄살까지 두루 갖추고 있어서 배가 아파 병원에 가야겠다고 하실 때에도 사실 미심쩍었습니다. 정말 그만큼 아픈 걸까? 그렇지만 혹시 맹장염일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적어도 스스로 걸을 수 있으실 때 병원에 모시고 가야 한다는 어린 마음에 - 아마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을 겁니다 - 택시로 아버지를 응급실에 모셨었죠. 정말 창피했습니다. 아버지의 엄살은 그치지 않았거든요. 그냥 배탈이었어요. 어쨌든 응급실에 계시는 분들은 그런 사람에게도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분들을 귀찮게 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고요. 저희 아버지는 주사 맞을 때도 아프다고 엄살을 부리셨거든요. 민망했습니다.

응급실엔 엄살쟁이들이 다녀가기도 하지만 - 참, 타인의 입장에서는 말입니다. 당사자에게는 커다란 고통일 수도 있어요- 실제로는 생사가 갈리는 곳입니다. 저 역시 응급실이라는 곳에서 새 생명을 부여받은 후 깨달음을 얻어, 죽는 것보다 사는 게 좋다는 자세로 이날까지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신이 오락가락할 때 의사 선생님께 야단맞은 기억이 생생합니다. 소리를 지르진 않았지만 단호한 말투로 나무라셨거든요. 저 뿐만 아니라 보호자로 온 사람들도 야단맞았어요. 저는 지금껏 제가 그런 식으로 가버리면 마음에 상처를 받을 사람으로 가까운 이들을 생각했을 뿐, 상처 입은 자 명단에 의사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실은 그들도 살려내지 못한 환자들에 대해 큰 상처를 받고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만약은 없다>는 응급의학과 전문의인 남궁인이 실제 응급실에서 있었던 일들을 복기하듯 기록한 책입니다. 그의 글에서는 고통이 느껴졌고 슬픔, 회한이 느껴졌습니다.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이토록 무서운 책은 읽은 적이 없습니다.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이 다양한 형태로 죽어갑니다. 원했던 죽음도 있었고, 거부하고 싶었던 죽음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들은 대부분 죽어갔습니다. 하지만 더욱 무서운 것은, 이것이 허구가 아니라 실제이며 매일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응급실의 사람들은 이런 일들을 겪고 있었습니다. 스스로가 원해서 의사의 길을, 간호사의 길을 선택했지만 그들이 감당해야 하는 것들은 선택의 무게보다 더 큰 것들이었습니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사람을 살려낸 일, 폭력으로 죽음에 가까워진 이를 살려내지 못 했던 일, 죽는 것이 오히려 평안하다는 걸 알면서도 의사이기에 몇 번이고 살려야만 했던 그의 경험이 마치 내 것인 양 알알이 박혔습니다. 

무겁고도 슬퍼 한 번에 읽지 못하고 쉬기를 반복, 꿈에까지 찾아와 저를 쉬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챕터 2 '알지 못하는 세계:삶에 관하여'에서는 조금이라도 웃을 일이 생기더군요. 그렇다고 다치는 사람이나 죽어가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래도 경계의 이쪽에서 바라볼 수 있어 조금은 편했다는 이야기지요.


이 책은 국립중앙도서관 10월 사서 추천도서로 선정된 책입니다. 저 역시 추천하고 싶습니다. 다만 무게를 감당해야만 한다는 것은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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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철학 이야기 : 근현대 편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철학 이야기
이동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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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라는 건 학창시절부터 저를 괴롭혔던 것들 중 하나인데요. 스콜라 학파니, 에피쿠로스 학파니 그런 것을 외울 때부터 그 괴로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도통 모르겠더라고요.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던지, 지금도 이름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만, 에피쿠로스 학파는 에피쿠로스에 의해 창시되었다는 정도밖에 기억을 못 합니다. 어떤 주장을 했는지 몰라요. 스콜라 학파도 마찬가지죠. 이름이 조금 어렵습니다만 스콜라스티쿠스가 창시자예요. 플라톤이니, 아리스토텔레스니, 소크라테스니 이름은 참 잘 알죠. 그러나 그들의 철학 사상은 모르겠습니다. 인문학 책을 읽어도 그때뿐이고요. 흥미로운 고대 철학도 그러한데 근현대 철학이라니!! 제가 알리가 없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자꾸만 궁금합니다. 깊이 들어가는 건 두렵지만 말입니다.


근현대의 철학자들도 이름은 참 많이 들어봤습니다. 소설에서도, 비소설에서도 그 이름만큼은 자주 등장하니까요. 아마 제가 철학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일 겁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이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 소설에서 인용되고 소설가가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 심리학이나 가끔은 과학 서적에서도 이름이 등장하니만큼 그들의 영향이 결코 적지는 않다는 걸 눈치챘거든요. 그러니 쉬워 보이는 철학 관련 도서가 있으면 슬그머니 손을 뻗어보는 겁니다. 혹시 나 같은 철학 무식자도 읽을만한 책이 있나 해서요. 제 눈은 신기합니다. 어려워 보이는 단어나 문장이 있으면 자동으로 스킵 하는 기능이 있어요. 분명히 눈으로 훑은 것 같은데 실은 건너뛰고 있습니다. 읽으면서 그 단어를 좀 외우려고 해 볼 것이지. 신경 써서 읽더라도 잠시 후에 다시 그 기능이 발휘되어 어느새 편한 부분들만 읽고 있는 겁니다. 어쩌겠어요.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머리에 꾹꾹 눌러 담지는 못하더라도 제발 제대로 읽기라도 하라고 야단칩니다. 그때뿐이에요. 포니의 귀는 마이동풍이니까요.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철학 이야기>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니 세상에서 가장 흥미롭다는데 그때도 건너뛰면서 읽으면 어쩝니까. 읽을 이유가 없잖아요. 

그래서 초점을 다시 맞췄습니다. '이건 제목이 잘못되었어!'라고 외치고선 말이에요 - 실제로 소리를 지르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 이 책은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철학 이야기>라기보다는 철학자의 이야기책입니다. 책 표지에 "그들도 우리처럼 방황했다."라고쓰여있잖아요.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이념으로 삼는 데는 뜬금없이 번뜩하고 떠오르는 일도 있을 수 있겠지만 보통은 시대적, 지리적 배경, 사회적 분위기, 주변 환경 (어라, 같은 말이 겹치는 것 같은데요?), 경제적 상황, 살아온 길등등 그런 것들과 교육과정 뭐 암튼 그 사람이 갖추고 있는 상황에서 깊은 사색을 하다가 또는 하고 나서 결정하는 거잖아요. 철학자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면 좋습니다. 그들도 인간이니까요. 이 책은 그런 것에 초점을 맞추고 읽으면 정말로 흥미로워집니다. - 여전히 어려운 단어는 머릿속에 넣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 위대해 보이던 철학자들이 다시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안 위대한 건 아니지만, 구름 위의 사람이라기보다는 우리와 같은 어쩌면 우리보다 더 나약한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세상의 이런저런 것들에 부딪히기에 좀 더 많은 생각을 해야 했고, 때로는 그런 생각들이 우울감을 불러일으켜 제 속을 파먹는 것을 알면서도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기도 합니다. 삶을 즐기며 행복해했던 철학자도 있었고, 시대와 다른 생각을 했기에 배척당한 철학자도 있었으며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철학자가 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읽으며 그들은 어째서 그런 사상을 이야기하게 되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 사상이 주류였던비주류였든 간에 참 용감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그렇게 소신 있게 주장하다니. 


이 책에서는 근현대의 유명한 철학자들의 일대기를 사상과 더불어 이야기합니다. 책의 분량이 있기 때문에 길게 이야기할 수는 없기에 간단하게 이야기해주는데요. 누군가가 이들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맛깔나게- 너무 어렵게는 말고 - 한편 한편 제대로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해봤습니다. 그렇다면 철학에 대해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텐데 하는 마음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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