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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어 데스 ㅣ 스토리콜렉터 50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6년 11월
평점 :
우리 삶에서 행복과 불행은 물려받는 거라고, 오디는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넉넉하게 받고 어떤 사람들은 모자라게 받는다. 어떤 사람들은 부스러기 하나까지 음미하고 마지막 골수까지 쪽쪽 빨아들인다. 우리는 빗소리, 새로 깎은 풀 냄새, 모르는 사람들의 웃음, 더운 날 새벽의 시원함에서 기쁨을 느낀다. 우리는 세상을 배우고 우리가 모르는 것 이상은 결코 알 수 없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감기에 걸리듯 사랑에 걸리고, 폭풍우 속 난파선에 매달리듯 사랑에 매달린다.
-p.550
마이클 로보텀은 나무 같은 작가입니다. 그의 소설을 읽어보면 단단한 껍질 속에 싸여있는 굵은 나무줄기, 부드러운 가지와 푸른 잎사귀가 느껴집니다. 향기로 치자면 나무에 몸통을 긁고 간 사향노루의 향이 그대로 배어있는 샌들우드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굵직한 사건을 흥미로운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그가 묘사한 등장인물의 심층심리를 내 것인 양 받아들이게 됩니다. 결국 작가는 독자의 심리까지 움켜쥐는 데 성공하지요. 마이클 로보텀의 작품을 많이 접해봤던 건 아닙니다. 국내에 번역이 많이 되어 있지 않아서인데요. 북로드에서 출판된 조 올로클린 시리즈, <산산이 부서진 남자>,<내 것이었던 소녀>는 마이클 로보텀이 어떤 작가인가, 그의 소설의 흡인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충분히 알게 해 주었습니다. 조 올로클린의 나머지 시리즈도 속히 출간되기를 간절히 기다리게 만들었습니다. 이번에 북로드에서 마이클 로보텀의 책이 나온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선 조 올로클린이 또 나오는구나 하며 기뻐했었는데요. 이번의 신간 <라이프 오어 데스>는 조 올로클린 시리즈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뭐, 마이클 로보텀의 책이니까 분명히재미있을 거야.' 하며 읽었지요. 그리고 소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700만 달러의 현금수송 차량이 탈취된 엄청난 사건, 경찰과 대치했던 범인들은 모두 사살되었는데요.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 살아남아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오디는 무슨 영문인지 출소를 하루 앞둔 날, 탈옥합니다. 딱 하루만 기다리면 제 발로 당당히 걸어 나갈 수 있는 그곳을, 어째서 일부러 나가 수배자의 신세가 되어버렸을까요. 오디는 단 하나의 사랑이 남긴 말을, 자신이 그녀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죽어도 죽을 수 없는 자가 되어 반드시 살아남아야 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사랑에 목숨을 걸 수 있는 걸까요. 10년이라는 시간은 그것들을 퇴색시키기에 충분했을 텐데요. 오디는 마음이 강한 순정남 -이라는 표현은 촌스러운 거죠. 요새는 사랑꾼이라고 하는 모양이더라고요 - 이었습니다. 10년 전 사건 이전에도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강인했고,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면서도 그녀와 함께 하는 길을 포기하지 않았었는데, 총을 맞고 두개골이 부서져도, 지난 10여 년간 감옥에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겨가면서도, 탈옥 후 발데즈라는 보안관에게 쫓기면서도, 연방 요원 데지레의 추적을 받으면서도 결코 강인함만은 잃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려 합니다. 그가 피해야하는 건 경찰과 보안관, 연방요원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감옥에서 함께 지냈던 모스라는 친구도 오디를 추적합니다. 누군가가 반드시 오디를 찾아내라며 모스와 계약했던 건데요. 그는 돈을 좋아하고 아내를 사랑하며 자신을 사랑할 줄도 아는, 말하자면 지극히 인간적인 캐릭터이며, 마초였습니다. 우정을 지키고 싶은데, 그러자니 자신이 잃어야 하는게 너무나 많습니다. 소중한 것들과 맞바꿀 정도의 우정인가, 누구라도 고민될텐데요. 과연 모스는 오디를 의뢰인에게 넘기고 새 삶을 얻을 수 있을까요.
<라이프 오어 데스>라는 숨 가쁜 스릴러를 읽다 보면 어느새 그 남자의 사랑이 느껴져 마음이 아파집니다. 자세히 드러나 있지 않은 그의 10년이라는 세월마저 파고들어옵니다. 선한 사랑꾼 오디, 그가 사랑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일까지 할 수 있는가를 깨달았기 때문이겠죠. 굳이 그의 사랑이 어떤 것인가 알아보려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자연스레 알게 되니까요. 그저 그의 무사 생존을 기원하기만 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