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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6년 8월
평점 :
지난번에 읽은 <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처럼, 위안부에 관한 책이나 글을 많이 읽었었기에 어느 정도의 면역이 되어 있을 거라생각했습니다. 다른 이들이 무섭다, 마음 아프다며 읽기 힘들다던 소설을, 그래도 나는 잘 이겨나가면서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저의 오해였으며 착각이었습니다. 이런 건 면역이 생길 수 없는 일이더군요. 저 역시 고통스러워하며 읽어나갔습니다.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둘이었는데 간밤 한 명이 세상을 떠나.
차분히 담요를 개키던 그녀의 손가락들이 곱아든다. 세 명에서 한 명이 세상을 떠나 두 명 남았다는 소식을 들은 게 불과 한 달 전이다. 귤색이던 극세사 담요는 바래고 물이 빠져 살구색에 가깝다.
그녀는 마저 담요를 개켜 한쪽으로 치우고 손으로 방바닥을 쓴다. 먼지와 실오라기, 살비듬, 은빛 머리카락들을 손바닥 아래로 모아 뭉치던 그녀는 나직이, 중얼거린다.
여기 한 명이 더 살아 있다.....
-p.9~10
도입부에 사로잡혔습니다. 소설은 생존해계시는 위안부 피해자가 단 한 명뿐인 어느 미래의 한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그 가까운 미래에 서서 저는 먼 과거를 보았습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내 어머니가 태어나기도 전의 그 과거에서 시간은 빠르게 흘러 이 자리까지 왔지만, 그 소녀들은 그곳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이 더 아팠습니다. 그들의 상처와 고통은 시간이 치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 한 번의 성폭행도 영혼을 무너뜨릴 수 있는 잔인한 범죄인데, 소녀들에게 매일 같이 가해진 수차례의, 아니 수십 차례의 성폭행은 그들의 몸과 마음, 영혼까지 파괴하는 중범죄인 것입니다. 감히 상상도 못할.
소설의 주인공 수많은 이름을 가진 그 소녀- 이제는 할머니가 된 그녀 때문에 아픕니다.
마음이 아파 평소처럼 긴 이야기를 주저리 늘어놓지 못하겠습니다.
읽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이 이야기를. 아프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