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라는 건 학창시절부터 저를 괴롭혔던 것들 중 하나인데요. 스콜라 학파니, 에피쿠로스 학파니 그런 것을 외울 때부터 그 괴로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도통 모르겠더라고요.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던지, 지금도 이름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만, 에피쿠로스 학파는 에피쿠로스에 의해 창시되었다는 정도밖에 기억을 못 합니다. 어떤 주장을 했는지 몰라요. 스콜라 학파도 마찬가지죠. 이름이 조금 어렵습니다만 스콜라스티쿠스가 창시자예요. 플라톤이니, 아리스토텔레스니, 소크라테스니 이름은 참 잘 알죠. 그러나 그들의 철학 사상은 모르겠습니다. 인문학 책을 읽어도 그때뿐이고요. 흥미로운 고대 철학도 그러한데 근현대 철학이라니!! 제가 알리가 없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자꾸만 궁금합니다. 깊이 들어가는 건 두렵지만 말입니다.
근현대의 철학자들도 이름은 참 많이 들어봤습니다. 소설에서도, 비소설에서도 그 이름만큼은 자주 등장하니까요. 아마 제가 철학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일 겁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이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 소설에서 인용되고 소설가가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 심리학이나 가끔은 과학 서적에서도 이름이 등장하니만큼 그들의 영향이 결코 적지는 않다는 걸 눈치챘거든요. 그러니 쉬워 보이는 철학 관련 도서가 있으면 슬그머니 손을 뻗어보는 겁니다. 혹시 나 같은 철학 무식자도 읽을만한 책이 있나 해서요. 제 눈은 신기합니다. 어려워 보이는 단어나 문장이 있으면 자동으로 스킵 하는 기능이 있어요. 분명히 눈으로 훑은 것 같은데 실은 건너뛰고 있습니다. 읽으면서 그 단어를 좀 외우려고 해 볼 것이지. 신경 써서 읽더라도 잠시 후에 다시 그 기능이 발휘되어 어느새 편한 부분들만 읽고 있는 겁니다. 어쩌겠어요.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머리에 꾹꾹 눌러 담지는 못하더라도 제발 제대로 읽기라도 하라고 야단칩니다. 그때뿐이에요. 포니의 귀는 마이동풍이니까요.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철학 이야기>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니 세상에서 가장 흥미롭다는데 그때도 건너뛰면서 읽으면 어쩝니까. 읽을 이유가 없잖아요.
그래서 초점을 다시 맞췄습니다. '이건 제목이 잘못되었어!'라고 외치고선 말이에요 - 실제로 소리를 지르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 이 책은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철학 이야기>라기보다는 철학자의 이야기책입니다. 책 표지에 "그들도 우리처럼 방황했다."라고쓰여있잖아요.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이념으로 삼는 데는 뜬금없이 번뜩하고 떠오르는 일도 있을 수 있겠지만 보통은 시대적, 지리적 배경, 사회적 분위기, 주변 환경 (어라, 같은 말이 겹치는 것 같은데요?), 경제적 상황, 살아온 길등등 그런 것들과 교육과정 뭐 암튼 그 사람이 갖추고 있는 상황에서 깊은 사색을 하다가 또는 하고 나서 결정하는 거잖아요. 철학자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면 좋습니다. 그들도 인간이니까요. 이 책은 그런 것에 초점을 맞추고 읽으면 정말로 흥미로워집니다. - 여전히 어려운 단어는 머릿속에 넣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 위대해 보이던 철학자들이 다시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안 위대한 건 아니지만, 구름 위의 사람이라기보다는 우리와 같은 어쩌면 우리보다 더 나약한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세상의 이런저런 것들에 부딪히기에 좀 더 많은 생각을 해야 했고, 때로는 그런 생각들이 우울감을 불러일으켜 제 속을 파먹는 것을 알면서도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기도 합니다. 삶을 즐기며 행복해했던 철학자도 있었고, 시대와 다른 생각을 했기에 배척당한 철학자도 있었으며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철학자가 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읽으며 그들은 어째서 그런 사상을 이야기하게 되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 사상이 주류였던비주류였든 간에 참 용감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그렇게 소신 있게 주장하다니.
이 책에서는 근현대의 유명한 철학자들의 일대기를 사상과 더불어 이야기합니다. 책의 분량이 있기 때문에 길게 이야기할 수는 없기에 간단하게 이야기해주는데요. 누군가가 이들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맛깔나게- 너무 어렵게는 말고 - 한편 한편 제대로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해봤습니다. 그렇다면 철학에 대해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텐데 하는 마음에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