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 붉게 피던 집
송시우 지음 / 시공사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재 잘 나가는 대중문화 평론가 현수빈이 유년 시절에 살았던 다가구 주택을 추억합니다. 일곱 살이었던 그녀의 기억은 어렴풋하고 순서가 뒤죽박죽이어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남자친구인 박우돌이 기억을 보충해주고 블로그에 당시 함께 살았던 사람을 찾는다는 팝업도 띄워주는 등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 반드시 아름답지만은 않다고 하는데요. 라일락 하우스라고 부르기로 한 그 집에서 함께 살았던 우돌이 처음부터 그녀의 유년 시절 추억하기 칼럼을 반대했더라면 어땠을까요. 모든 과거가 다 들춰지는 게 싫었다면 말이죠. 가난했지만 알콩달콩 살았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만으로 끝났으면 좋았으련만은 함께 살던 대학생 조영달이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었던 기억을 떠올리고 칼럼을 쓴 그날부터 과거가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합니다. 일곱 살 여자아이가 알았던 과거와 어른들이 알고 있던 과거, 그리고 진실은 조금씩 달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 5학년 때였나, 6학년 때였나... 저도 연탄가스를 마신 적이 있었습니다. 새벽 서너시쯤 연탄을 갈고 방으로 들어와 잠이 들었는데요. 아침 여섯 시쯤 알람을 끄고 일어나려니 도저히 일어나지지 않더군요. 어지럽고, 메스꺼운 것이 도저히 아침을 준비할 수 없었어요. 저쪽 옆에서 자던 동생을 깨워서 세수부터 하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누나가 아파서 아침을 못 줄 거 같으니까 일단 학교 갈 준비를 하라고요. 그런데 세수하러 나가던 동생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 피아노와 라면 박스에 몸을 와당탕하고 부딪혔다더군요. - 쓰러졌고, 그 소리에 아빠가 안방에서 뛰어나오셨어요. 이러저러하다 말씀드리니 큰일 났다며 연탄가스를 마신 거 같다고 하시고선 덧문과 창문을 모두 열고 바깥 방으로 나와 누우라고 하시고 연탄보일러를 살피시더군요. 살피신다고 해도 워낙에 기계치에 몸쓰는 일은 하나도 못하는 분이라 그냥 불문을 살피고 뚜껑을 잘 닫는 정도였지만요. 이유는 모르지만, 어디선가 가스가 샜고, 가스가 들어오는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제가 제일 많이 들이마셨나 봅니다. 아휴. 그때 가스만 안 마셨어도 엄청 똑똑할 뻔했는데. 

당시엔 주요 난방재가 연탄이었던 만큼 사고도 참 많았습니다. 그놈의 일산화탄소는 동치미로 해결이 안 되는데, 희한하게 김치 국물이나 동치미를 마시고 나면 좀 좋아지는 것입니다. 그런 플라세보효과를 누릴 새도 없이 조영달은 그렇게 죽어버렸고, 그의 죽음은 자살이니 사고니 말이 많았었지만, 당시엔 자살로 수사가 종결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모종의 살인 음모 같은 건 없었지만, 조금씩 어긋난 무언가가 살의를 부추기기도 했고, 의혹도 낳았으며 오해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라일락 하우스의 사람들은 서로에게 미심쩍은 부분 하나씩을 안았지만, 3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모두 잊혀가려던 중, 천진난만해서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캐릭터 현수빈이 나타나 과거를 열어젖히려 합니다. 다시 불안해지는 사람들. 과거와 마주한다는 건. 몰랐던 일을 알게 된다는 건. 새로운 비극을 낳을 수 있다는 걸 현수빈은 몰랐습니다.

<라일락 붉게 피던 집>에선 1980년대 서민의 생활이 제대로 그려져 있었습니다. 전혀 기억하지 못했던 것들이 끄집어내졌는데요. 특히 골목길에 있던 콘크리트 쓰레기통이 그러했습니다. 제주로 이사 왔을 때, 신시가지였던 탓에 그런 쓰레기통이 없었던 것 같은데요. 지금의 클린하우스와는 다르지만 뭔가 산뜻한 쓰레기 버리는 곳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학교에는 그런 게 있었어요. 좀 커다란. 소각장도 있었고... 콘크리트 쓰레기통에 관한 묘사를 읽는 순간, 미화원이 철제 삽으로 쓰레기통 안을 긁는 소리와 함께 그 냄새까지 화악하고 떠오르는 겁니다. 서울 시범아파트에서의 더스트 슈트와 함께요. 소설을 읽으며 80년대에 정말 그 정도로 못 살았던 건가 하는 생각에 기억을 마구 더듬어 보는데, 기억이 안 나요. 저는 어린 시절의 기억 대부분을 갖다 버렸거든요. 딸아이는 다섯 살 때 살던 집의 구조도 기억해 내는데, 저는 기억나지 않아요. 버리고 싶었던 기억이었기 때문인가 봅니다.

라일락 하우스의 사람들도 그랬겠지요. 버리고 싶었던 기억이었고, 버렸던 기억인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싱 유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문학수첩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에도 데이트 사이트가 있나 모르겠는데, <리카>에서도 그렇지만 왜 그렇게 낯선 이에 대한 경계가 부족한지 모르겠습니다. 저야 경계심이 지나쳐 상대방을 서운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말이에요. 낯선 이를 만난다는 건 두근거리는 설렘과 동시에 위험요소가 있는데요. 아니, 바로 그 위험 요소 때문에 더 두근거리는 건가요? 스릴 같은 거 말이죠. 제가 할런 코벤의 <미싱 유> 같은 스릴러 소설을 읽을 때처럼. 
그러고 보면 저도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게 그렇게 위험한 일은 아니라고 여겼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당시엔 온라인 채팅으로 번개를 하는 게 유행이기도 했었고, 커뮤니티를 통해 오프 모임을 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나, 저에겐 나름 원칙이 있었습니다. 단둘이 만나지 않을 것.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요. 상대방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보는 게 미안하긴 하지만 술과 함께하는 번개라면 더욱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었지요. 좋은 모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보내는 것만을 원했으니까요. 번개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저랑 같은 생각을 했을 겁니다. 아니, 제가 순진했던 걸까요? 뭐, 둘 다 아니면 말고요.

이가라시 다카히사의 <리카>에서의 위험이 낯선 이의 집착 어린 스토킹이었다면, <미싱 유> 의 그것은 피싱입니다. 매력적인 이성과 연결되어 대화를 나누고 전화 통화도 하고, 그러다가 상대방이 만나자는 제의를 하면 기쁜 마음에 달려나가다가 그대로 단물만 쪽 빨리고 이 세상에서 로그아웃당하고 말지요. 그들이 경솔해서 그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외로워도 경계심은 충분했던 사람들인데 범죄자 쪽이 좀 더 지능적이고, 계획적이며 끈기가 있었던 탓이지요.

외로운 독신 생활을 하고 있는 뉴욕 경찰 캣의 친구 스테이시는 그녀를 위해 데이트 사이트에 계정을 만들어 주는데요. 호기심 반, 시큰둥 반이었던 캣은 남자들 프로필 사진을 넘겨보다가 18년 전 자신을 떠난 약혼자 제프를 발견합니다. 그에게 캣임을 밝히는 메시지를 남기지만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게 좋겠다는 그의 말에 눈물을 머금고 포기하는데, 브랜던이라는 10대 청년이 엄마를 찾아달라며 경찰서로 찾아옵니다. 그녀를 콕 찍어 지명한 이유는 엄마가 데이트 사이트에서 알게 된 새로운 남자친구와 여행을 떠났는데, 연락 두절. 그 남자 친구라는 게 캣의 제프라는 겁니다. 브랜더는 해킹을 하던 중에 제프와 연락을 주고받은 캣을 찾아낸 것이고요. 마마보이의 징징거림쯤으로 여긴 지역 경찰과 캣은 이 일을 넘겨버리려 하지만, 캣 입장에서는 제프가 걸려있느니만큼 쉽게 넘겨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잖아도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범죄자가 최근에 암으로 죽었지만, 그가 범인이 아닐 거라는 의심에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닌 탓에 상사로부터 밉보여서 강제 휴가도 받았겠다, 캣은 브랜던 엄마 찾기에 한 쪽 발가락을 담가봅니다. 조금씩 드러나는 이상한 점들. 개별적인 것으로 보면 그냥 넘길 수 있는 일들이 모이니 이상한 일이 되어 캣의 직감을 휘젓습니다. 그리고 캣은 결국 제프와 만나게 되지요. 제프는 브랜던의 엄마를 어떻게 한 걸까요? 정말 둘이 거액을 인출해서 새 출발을 하려던 참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으면 다정했던 그 남자가 그 사이에 여자를 등쳐먹는 말종이 되어 있었던 걸까요. 

작가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를 누가 죽였는가 하는 건 초중반에 이미 눈치를 차버렸습니다. 복선을 지나치게 많이 깔았기 때문이지요. 다만, '왜?' 가 궁금했기에 긴장을 늦추진 못했습니다. 브랜던의 엄마 실종 사건은 잠시 숨 쉬는 것을 잊을 정도로 스릴이 넘쳤습니다. 제대로 멋진 스릴러였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제주 4.3은 왜?
신여랑 외 지음, 김종민 외 그림 / 사계절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학 다닐 때만 하더라도 4.3이나 광주 이야기를 하는 건 과격파라거나 빨갱이로 의심을 받을 만한 행동이었습니다. 집안 사정상 제대로 된 동아리에서 활동을 할 수 없었던 저는, 그래도 뭔가를 하고 싶었기에 사회 무슨 연구회 같은 곳에 들어갔는데요. 선배들과 함께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라 알고 가입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무시무시하게도 광주 이야기랑 4.3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이렇게 무서운 곳인 줄 알았더라면 가입하지 말 걸... 후회하면서 되도록 예쁜 핑계를 대며 탈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시대였으니 4.3이 뭔지 모두들 쉬쉬하기 때문에 제대로 알 수 없었습니다. 아빠께 여쭤 봤더니 낮에는 우리 쪽 군인이 죽이고 밤에는 빨갱이가 죽인 사건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아빠도 제주 사람이 아니어서 자세히는 몰랐거나, 그냥 정말로 그렇게 알고 계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한 달 전에 딸아이가 4.3 사건이 정확히 뭐냐고 물어보더군요. 제대로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저 역시 제대로 알지 못했으니까요.

영화 <지슬>을 보면서 마음 아파해놓고 정작 무슨 사건이 어떻게 벌어져서 진행되고 그 사이에 사람들이 '왜' 그렇게 희생되었는지 몰랐습니다. 4.3 평화 기념관에도 가봐야지, 가봐야지 하면서도 대중교통의 접근성이 용이하지 않다는 핑계로 가보지 못했습니다. 시티 투어 버스를 타면 갈 수 있었는데도요.

그렇게 무지렁이로 살아가고 있던 제가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제주 4.3은 왜?>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제주도서관 2017 공감 독서 "같이 한 책 읽기" 도서로 선정된 책인데요. 지난 수요일, 책을 잔뜩 빌려서 나서려는데 이 책이 눈에 띄더군요. 표지가 어린이용처럼 아기자기하게 되어 있어서 사실 조금 망설였습니다. 무거운 주제의 글일 텐데 지나치게 가볍게 다루어져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지요. 하지만 읽지 않으면 알 수 없잖아요. 그래서 이 책 한 권을 더하였습니다. 
프롤로그 부분을 읽어보니 어린이, 청소년 책 치고는 용어가 무척 어렵더군요. 이래가지고 어디 이해할 수 있겠어? 하며 혀를 끌끌 찼지요. 그렇지만, 이내 이 책에 빠져들었습니다. 프롤로그만 어렵고 본문은 누구라도 읽을 수 있도록 편한 단어와 문체를 사용했더군요. 


대화 안에 제주어를 살려 생동감이 있었습니다. 당시의 제주인은 좀 더 진한 제주어를 사용했었겠지만,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수준으로 낮추어서 표현해주어 알아보기도 쉬운 데다가 마치 등장인물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육지의 독자가 읽으면 좀 어려울지는 모르겠지만요. 대체로 문맥으로 유추할 수 있는 수준인 것 같았습니다. - 블로그에서 이웃님들께 여쭈어 보았지요. 이 책의 진행은 소설 혹은 동화 부분과 당시 실제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삽입되어 있어서 접근이 용이했습니다. 

4.3 사건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이 포스팅에 모두 쏟아 놓을 수 없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눈물을 훔쳐야 했는데요. 무척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알았습니다. 4.3 사건이 어떤 일이었는지... 세상에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졌었군요.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시간들. 이제는 관덕정에 갈 때마다, 이마트에 가면서 지나쳤던 북 초등학교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플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시간들을 이겨내고 이렇게 살아남아 제주를 지켰군요. 제주의 곳곳이 이제는 다르게 보일 것 같습니다. 지명만 떠올려도 눈물이 나는 걸요.

소설인데 소설이 아니에요. 허구인데 허구가 아니에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둑비서들 - 상위 1%의 눈먼 돈 좀 털어먹은 멋진 언니들
카밀 페리 지음, 김고명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높은 등록금 탓에 학자금 대출을 받아 사회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빚쟁이인 요즘 청년들의 안타까운 이야기는 우리나라만의 것은 아닌가 봅니다. <도둑 비서들>에 등장하는 비서들이 메고 있는 채무는 2만에서 10만 달러에 이르는데요. 화려한 대언론사 임원 비서이지만 월급은 그저 그런 수준이라 언제 터질지 모르는 물고인 천장 아래의 1.5룸에서 생활하거나 집도 없이 자동차에서 살기도 합니다. 몇 년을 갚아야 끝이 날까, 과연 끝날 수는 있을까 막막합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무리하면서 대학에 진학해 공부를 했느냐고, 무리라는 걸 알면 중도 포기하고 다른 길을 가며 되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라도 학업을 마친 그들의 결정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게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경제적 이유로 대학원을 중퇴하기로 결정한 날의 아픔은 지금까지의 손꼽히는 가슴 아픈 사건 베스트 10에 들어갈 정도인데요.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다. 순조롭게 진행이 되면 앞으로는 이렇게 저렇게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했던 모든 미래의 계획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리는 것이기에, 갑자기 미아가 되어버린 기분이 들기도 하고, 모든 것을 다시 계획해야 한다는 공포감까지 듭니다. 그러니 웬만해서는 포기하지 않고 대출을 받아 가며,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버티는 것이겠죠.

어쨌든 소설 속의 그녀들은 학자금 대출이라는 족쇄를 한쪽 다리에 차고 힘겨운 나날을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집에서는 보잘것없는 상상 이상의 빠듯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 모시고 있는 상사는 억만 장자로 화려한 생활을 하니 상대적 박탈감도 무시 못할 일입니다. 그래도 성실하고 소심한 원칙주의자 티나 폰타나는 공은 공, 사는 사. 보스의 신뢰를 받으며 열심히 회사 생활을 하지요. 그러다 우연히 실수같이 저질러버린 횡령. 잘 못 발급된 수표라는 걸 알면서도 무엇에 홀린 듯 학자금 대출금을 갚아버리는데요. 빚이 사라지면 시원할 줄 알았더니만, 웬걸. 불안하기만 합니다. 며칠이 지나 들키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 순간, 경비 처리부서의 바비 걸 에밀리에게 발각되고 서류 조작을 통해 자신의 학자금도 갚을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를 합니다. 이렇게 두 건으로 끝나도 심장이 두근두근할 텐데, 눈치채는 사람이 늘어가면서 일이 점점 커져버립니다. 
제발 멈췄으면 좋겠는데 멈추질 않습니다. 심지어 비영리단체를 - 어찌어찌하다 보니 - 만들게 됩니다. 이 소설이 풍자극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녀들이 잘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의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결국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돈을 횡령해서 빚을 갚는데, 몇 십만 달러란... 재벌 입장에서는 푼돈이라는 논리로 포장해보지만 결국엔 스스로가 몇 년 동안 갚지 못해 힘들어하는 큰 돈이라는 걸 인식했으면 좋겠는데, 불안해하는 건 주인공 티나 뿐인 것 같습니다. 

통쾌하다고 생각해야 할까요? 재벌 아저씨 로버트가 악역이 아닌 탓에 그렇게 통쾌하지는 않았지만 유쾌하긴 했습니다. 독특한 소설이었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덕 중간의 집 사건 3부작
가쿠타 미츠요 지음, 이정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며칠 뒤면 딸아이의 생일입니다. 우리 둘이 세상에서 만난 지 벌써 만으로 15년이 되었군요. 한 몸이었을 때를 제외하고도 그렇게나 되다니. 감격스럽습니다. 딸과 저는 보통의 다른 모녀 사이와는 다른 것 같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좋은 뜻으로 말하는 분도 있고, 좋지 않은 뜻으로 말하는 분도 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지금과 같은 관계가 된 것은 일종의 전우애 같은 것이 섞여 있기 때문이니 전쟁을 겪지 않은 사람들과는 다를 수밖에요.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와 함께 목숨을 건 대모험을 합니다. 여물지 않은 머리로 산도를 뚫고 나오는 데에는 엄마가 밀어내는 힘과 아이의 나오려는 힘이 함께 제대로 박자를 맞추어야 합니다. 죽을 만큼 아파야 아이가 태어나지만, 어쩌면 아기의 아픔이 엄마보다 더 할지도 모릅니다. 아픔을 겪고 세상에 나왔더니 눈부신 조명에 처음 보는 생명체들이 우글거립니다.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이것을 시작으로 아기는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법과 하나의 온전한 생명체로서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익히게 됩니다. 그 과정에는 엄마와 아빠 같은 양육자의 역할이 무척 중요합니다. 초보 인간이 초보 부모와 함께 하는 날들이니 얼마나 위태롭겠습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슬기롭게 헤쳐나갑니다. 이 모든 것이 과정이라는 것을 이해하면서요.

그렇지만, 강요된 모성애는 옳지 않습니다. 엄마니까 이렇게 해야 하고, 희생해야 하고, 마땅히 해야 하고... 한두 시간씩 쪼개어 대여섯 번 자는 생활이 이어지면, 포로수용소에서 고문을 당하는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누군가 다정한 말로 다독여주고, 육아를 도와주었으면 좋겠는데 시큰거리는 손목으로 아이를 씻기고 미역국도 끓여 먹어야 합니다. 아기 옷이며 수십 장의 가제 손수건을 손빨래해서 널어놓으면 철없는 남편이 밥 타령을 합니다. 싫은 소리라도 할라치면 다른 집 여자들은 그러고 몸매 관리까지 잘만 하던데 너는 게을러 가지고 집안 꼴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타박합니다. 자괴감이 듭니다. 정말일까, 남편의 말대로 제 몸 사리느라 엄살을 떠는 걸까. 다른 여자들은 애를 업고 마트 가서 장도 잘만 봐오는데, 게을러빠져서 남편에게 데리러 와달라고 전화했다며 화를 냅니다. 저혈압으로 갑자기 쓰러진 날에도 창백한 얼굴로 혼자 병원을 가고 그리고 청소를 하고 아기를 봅니다. 제대로 못해냈다는 말을 듣기 싫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의 수많은 전쟁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 한 조각의 전투를 떠올렸습니다. <언덕 중간의 집> 의 리사코와 미즈호를 보면서요. 

세 살난 딸을 둔 전업주부 리사코는 형사재판의 보충 재판원 (배심원)으로 선정됩니다. 미즈호라는 여자가 젖먹이 아기를 욕조에 빠뜨려 죽게 만든 사건의 재판이었는데요. 비슷한 나이에다 아기가 있는 리사코는 미즈호의 사건 재판이 진행될수록 그녀에게 감정 이입하게 되고, 그녀의 시어머니, 남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기 주변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했던 말들의 속내를 깨닫게 됩니다. 가족과 함께 있지만 자신은 혼자였다는 사실과 그들의 보이지 않는 덫에 걸려 있었다는 걸 알고 몸서리칩니다. 

리사코는 미즈호를 보았지만, 저는 그녀들을 보았습니다. 아이를 학대하거나 하는 것에 동의를 하는 건 아니지만, 심신 미약에 가까울 정도로 내몰리는 상황이 어떤 것인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외모도 형편없고 할 줄 아는 것 하나도 없는 내가 과연 세상에 나가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직장은 구할 수 있을까, 아르바이트라도 좋은데. 네가 나가서 한 달에 30만 원만이라도 벌어오면 내가 인정한다. 네까짓 게 어떻게 일자리를 구하느냐는 폭언은, 어렸을 때 아빠에게 수없이 들었던 네까짓 게, 여자가 어딜, 말도 안 되는...이라는 말들과 이어져 집 밖으로 나서는 게 두려워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아이와 함께 생존하고 있습니다.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정상인과 비슷한 모습으로 - 비록 무척 가난하지만 -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마음속은 <편의점 인간>입니다. 날갯짓을 하는 게 두렵습니다. 그래도 나는 엄마니까. 이 전투의 대장이니까. 강요된 모성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온 - 지키고 싶다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실형을 받은 미즈호는 그렇다 쳐도 앞으로 열심히 살아가야 할 리사코는 좋은 선택을 하고, 좋은 길로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어쩐지 마음이 아프고, 감정이 이입되어 진하게 읽어버린 <언덕 중간의 집> 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