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탕 1 - 미래에서 온 살인자, 김영탁 장편소설
김영탁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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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탕을 먹어본 지 무척 오래되었습니다. 연구회 오라버니들을 따라가 먹어 본 게 마지막이었으니 제법 되었지요. 간을 하지 않은 채 먼저 국물 맛을 보고, 간을 할 후 다시 맛을 보는 걸 습관처럼 하라고 했습니다. 집에서 만들기 어려운, 제대로 만들려면 불가능에 가까운 곰탕은 사골만 우려내 만든 사골국과는 다른 맛이 났습니다. 입안에 쩍쩍 들러붙는다고 할까요. 누군가는 깍두기 국물을 부어 묘한 맛을 즐기기도 하겠지만 저는 파를 조금 더 넣어 즐기는 편입니다. 여기서 잠깐, 곰탕과 설렁탕은 어떻게 다를까요? 곰탕은 주로 한우 양지, 사태 등 고기를 이용해 끓이고 설렁탕은 사골을 주로 하여 끓입니다. 식당마다 조금씩 비율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그렇습니다. 노년의 아내가 사골을 끓이기 시작하면 며칠 동안 어딜 가려는 걸까 염려하는 남편도, 점심엔 설렁탕, 저녁엔 곰탕을 시켜 먹으며 구속될까 염려하던 MB도 막상 그것들을 먹을 때는 맛나게 먹었겠죠. 입을 쩝쩝 다시면서.
음식 만드는 일에 웬만해선 겁을 안내는 저이지만 15년 전 사골을 끓인 이후로 뭔가를 고아 내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열 살 남짓부터 스무 살이 넘도록 때때로 이런저런그런 것들을 커다란 들통이나 솥에서 끓여내다 보면 지겨워질 만도 하지 않겠어요? 그래도 남이 끓여준 건 먹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곰탕이나 도가니탕, 설렁탕, 꼬리곰탕 같은 것들. 추운 겨울이나 몸이 아플 때 곰탕 한 그릇이면 가뿐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진한 육수가 위에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위통에 시달리는 요즘도 때때로 생각납니다. 곰탕은, 추억의 맛일까요?

2063년 근미래의 부산에는 곰탕이 없습니다.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겁니다. 구제역으로 가축을 죽여 멸종시키고 만 미래인들은 단백질 합성고기니 곤충 단백질이니 하는 걸 버리고 희한한 신종 식용 가축을 만들어냈습니다. 쥐를 닮은 생김새에 소고기의 노린내를 가진 '그것'을 그냥 '그것'이라고 불렀습니다. <곰탕 1>의 주인공 이우환은 '그것'을 가지고 요리를 하는 국물 음식 식당에서 주방보조로 일했습니다. 그러나 주방장이 국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준대도 거절할 만큼 바람직하지 못했던 맛이었나 봅니다. 사장은 주방장에게 오래전 먹었던 고깃국, '곰탕'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모자라 결국 주방장을 통해 이우환에게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권합니다. 곰탕의 비법과 재료를 사가지고 돌아오면 돈을 주겠다고 합니다.

시간 여행선엔 열 세명이 탑니다.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여행이라고 했습니다. 가는 것도 돌아오는 것도. 결국 함께 출발한 열 세 명 중 두 명만이 2019년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주인공인 이우환과 스물도 안 된 소년 김화영은 바다를 헤엄쳐 뭍에 닿았습니다. 죽일 사람이 있어 왔다던 화영은 떠나고, 이우환은 부산 곰탕집에 취직합니다. 그 집의 사고뭉치 아들 이순희, 그의 여자친구 강희와는 특별한 인연일지 모른다는 예감이 들지만 애써 부인합니다.

부산의 강력반 양창근 형사는 순희가 싸움질을 하는 현장에서 발견된 시신을 조사하다 묘한 점을 발견합니다. 이게 과연 말이 되는 일인가. 시신의 옆구리는 무언가에 정교하게 도려내져 있었지만 잘린 부분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한편 이 책을 추천한 강풀 작가의 본명 '강도영'과 같은 이름의 까칠한 형사도 맹활약을 하는데요. 작가의 이름이 김영탁인 것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괜히 웃음이 나왔습니다. - 강풀의 타이밍 시리즈 주인공이 김영탁이거든요.

이 소설이 곰탕 레시피를 구하기 위한 한 남자의 모험기였으면 심란하지 않았을 텐데, 그 남자가 얻어 가는 건 레시피와 재료가 아닌 다른 것이었습니다. 곰탕을 끓이고 먹고 나누는 동안에 쌓여가는 건 사십 대 중반이 되도록 느끼지 못했던 '정'이었던 겁니다. 곰탕의 국물만큼 뜨끈한 정이 흐르는데, 식당 가족들이 품어준 것도 아닌데 스스로 깨쳐가며 쌓아갑니다.
한편, 부산의 형사들은 각자 자신의 촉과 추리에 따라 맡은 사건들을 추적해가는데, 그 끝은 미래인을 향하고 있습니다.

<곰탕 1>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김조한의 'Cause you're my girl'이 흘러나오며 광고 배너가 떠줘야 할 것 같은 반전이 있어 잠깐 심장이 쿵떡. 
이 소설은 여러 장르가 혼합되어 있으나 전혀 어색하지 않고 흡인력이 있으며 스크린을 메울법한 영화 같은 장면들이 종이를 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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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에 로리타 패션 그리는 법 : 기본적인 신체부터 코스튬까지 모에 로리타 패션 그리는 법
(모에)표현 탐구 서클.카도마루 츠부라 지음, 남지연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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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간결한 선으로 그려진 만화는 성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베르사이유의 장미>정도는 아니더라도 <캔디캔디> 정도는 되어야 성의 있는 그림이라고 생각했었죠. 왜 한참 공주님 좋아할 나이 아니었나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레이스 원피스에 검은 후드티를 겹쳐 입은 괴이한 옷차림입니다만 마음만은 한들한들합니다. 과거 프린세스 메이커를 하며 이다음에 딸을 낳으면 예쁜 드레스에다가 미스릴 갑옷을 마련해줄 테다(?)라고 별렀으나 실제로는 활동성 있는 옷을 주로 입히며 키웠습니다. 그래도 마음 한 편에서는 예쁘고 화려한 의상을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물론 실제로 입거나 입힐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 건 어울리는 사람이 입어야 하는 거니까요. 그래서 15년 전쯤에는 예쁜 옷을 디자인해 만들어서 인형에게 입혔었어요.


이제는 뭘 쪼물락 만드는 것도 점점 귀찮아져서 아무것도 만들지 않습니다만, 여전히 귀엽고 사랑스러운 건 좋아요. 

본론으로 들어가서, <모에 로리타 패션 그리는 법>이라는 책을 탐독했습니다.
이 책에서는 미소녀에게 예쁜 옷을 입히는 방법과 표현 방법을 잘 알려주고 있어요.



책 읽기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은 건, 
이 패션을 소화시키기 위해서는 프릴, 레이스, 토션 등과의 사투를 벌여야 하는구나!!였습니다.
인형 옷을 만들 때도 그 작업이 제일 귀차, 아니 힘들었는데 말이에요. 역시 뭔가를 얻으려면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미소녀 바디를 그리고, 그 위에 옷을 입혀 나가는 식으로 진행해야 밸런스가 잘 맞는다고 합니다. 엉뚱한 데에서 팔다리가 튀어나오지 않으려면 기본 데생은 필수.



이 책에서는 친절하게도 저희 집에서 사용하는 사이툴을 이용해 일러스트 메이킹 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하지만, 저희 집에 사이툴은 있으나 드로잉을 할 수 있는 타블렛 펜 같은 게 없으므로 - 마우스로 작업하다 쥐가 날 수도 있으므로 이 페이지는 딸에게 참고하라고 넘겨주고 저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책을 따라가보려 합니다. 

아래의 과정 진행은 책에 이런 내용이 나와있더라~하는 걸 소개하기 위함이지 정말 그림 그릴 때 저런 과정을 거치지는 않습니다. 



먼저 미소녀의 바디라인을 그려봅니다. 여러 가지 각도의 기본 바디가 있었습니다만 저는 평소에 거의 그리지 않았던 뒷모습을 그렸습니다. 공부하는 자세로 그려야 하니까요. 서툴러서 여러 번 고쳐 그렸습니다. 자연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곡선이라고 어렸을 때 선생님께 들은 것 같은데, 이상하게 그리면 직선 비스름한 게 나옵니다. 미소녀의 경우 더 부드러운 선으로 그려야 하는데.




속옷을 제대로 갖춰 입어야 나중에 드레스를 입거나 할 때 모양이 잘 살아납니다. 
그래서 캐미솔과 드로어즈를 입혔습니다. 



그 위에 파니에를 입혔어요. 이렇게 부풀린 파니에(속치마)를 입혀야 겉의 의상 볼륨이 잘 삽니다.  파니에 아래로 드로어즈 끝부분의 프릴이 보이도록 남겨두었습니다.



머리 모양을 예쁘게 빗겨주고, 하이힐을 신겼습니다. 
힐을 신기면 다리가 길어 보이고 종아리 모양도 삽니다. 




각도에 따른 스커트 모양을 알려주는 페이지를 참고해서 의상을 완성했습니다.
의상 아래로 파니에의 레이스와 드로어즈의 프릴이 보입니다.



펜 터치를 했습니다. 맨 다리가 신경 쓰여서 펜 터치를 하며 즉석에서 타이즈를 신겨주었습니다. 채색 전이라 무릎 위에 레이스 밴드를 한 것처럼 보입니다. 
가는 선은 플러스 펜, 굵은 선은 미피 수성펜으로 그렸습니다.




구두와, 소매 레이스, 머리 리본을 컴퓨터용 수성 사인펜으로 검게 칠했습니다.


유성 파버 카스텔 색연필로 색칠하면 완성. 의상을 검은색으로 칠하는 바람에 주름 선이 살지 않았습니다. 책의 앞 부분에 검은 의상을 검게 칠하면 좋지 않다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검게 칠했습니다만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컴퓨터에서 작업을 하거나 물감이나 마커같이 색을 깨끗하게 칠할 수 있는 도구로 채색을 한다면 음영을 나타낼 수 있는 다른 색으로 검정의 느낌을 내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림을 완성한 후, 스마트폰의 앱을 이용해 효과를 넣어주면 또 다른 느낌의 그림이 됩니다.

<모에 로리타 패션 그리는 법>을 보며 그림 하나를 완성해보았는데요. 
좀 더 잘 그릴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연습해야겠습니다. 소개된 일러스트처럼 멋지게 그릴 수는 없을 것 같지만, 계속 그리다 보면 언젠가는 레이스와 프릴을 정복할 수 있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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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 피난처 - 달아나는 세금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24
시가 사쿠라 지음, 김효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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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사기동대 같은 것을 보며 탈세는 나쁜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던 저였기에, 탈세와 조세 회피가 다른 것이라는 건 짐작도 못했습니다. 읽는 이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국어와 영어의 지문과는 달리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문제, 즉 수학을 사랑하는 딸은 사회 과목 중에선 경제가 제일 마음에 든다지만, 전 경제라는 글자만 보아도 울렁거리거든요. 

<조세 피난처>라는 책 제목을 보았을 때 첫인상은 그랬습니다. '역시 이와나미 신서의 오렌지빛은 참 적절하게 예뻐.' 마치 기능은 보지 않고 디자인만으로 가전제품을 선택하는 사람같이 표지만을 음미하고 있었죠. 예쁜 책을 손에 쥐고 이와나미 신서니까 어렵지 않을 거야 하면서 책을 열었고, 이내 '큰일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용어조차 낯설어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올해 수능 국어 문제를 풀어보겠다고 PDF 파일을 내려받고서 27번부터 32번 (짝수형)에 해당하는 지문을 만났을 때와 비슷한 강도의 충격이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과학 관련 도서를 읽고서 '전혀 어렵지 않아요. 쉽게 설명되어있어요.'라고 자신 있게 말했던 것. 그것을 믿고 책을 읽었던 '과학과는 거리가 먼' 분들께 사과하고 싶어졌습니다. 이 책도 그럴 겁니다. 경제에 대해 보통 정도의 관심이 있는 분께는 쉽지만 저는 못 알아먹는 책. 
필살기를 사용했습니다. 학교에서 공부할 때처럼 문장을 요약해 노트에 적어가며 읽고, 그래도 모를 때는 강의자의 느낌으로 직접 입으로 중얼중얼 소리 내어 읽어가며 내용을 파악했습니다. 오호. 이제는 조금씩 이해가 됩니다. 여세를 몰아 읽어나갔습니다. 중요한 건 용어의 이해였습니다. 저자가 무얼 말하는지 전혀 알지도 못하는데 책을 이해할 수는 없지 않나요. 
저자는 친절했습니다. 제가 따로 사전을 찾거나 검색을 하지 않아도 책 안에서 제대로 잘 설명해주고 있었습니다. 책은 친절합니다. 제가 모자란 것이지. 
책을 다 읽고 나니 전보다는 1mm쯤 유식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덴마크의 빈부 격차가 크다는 딸의 말에, 그래도 지니 계수(통계 수치를 바탕으로 소득 분포의 상황을 나타내는 지표)가 낮으므로 소득 분배가 잘 이루어진 나라라며, 빈부 격차가 큰데도 이렇다면 복지 정책이 상당히 잘 된 나라라며 알은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지니계수는 2016년 기준으로 0.357로 전년에 비해 상향되었습니다.(근로 연령층인 만 18~65세는 0.371로 역시 증가했습니다) 소폭 증가이지만 빈부격차가 벌어졌음을 시사합니다. 책의 85 페이지 자료에 의하면 2008년 기준으로 일본의 경우 0.30 부근이었습니다. 빈부격차 심하다는 소문에 비해 너무 낮아 의아했지만 아마도 공표된 것이랑 실제가 많이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조세 피난처란 편법을 이용해 세금을 적게 내려는 수작, 조세 회피에 이용되는 장소를 말합니다. 이런 장소는 탈세, 조세 회피의 수단으로 이용될 뿐만 아니라 마피아 같은 범죄 조직의 자금 세탁, 테러 자금 세탁 및 은닉에 이용되며 나아가 세계 경제의 대규모 파괴를 유발합니다. 세금이 없는 국가나 지역, 혹은 세금이 거의 없는 국가나 지역이 조세 피난처로 이용되는데, 흔히 카리브 섬같이 야자수가 우거진 아름다운 섬을 애용합니다. 특히 부유층이나 테러집단이 좋아하는데요. 일단 이곳에 들어간 자금은 행방을 추적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애초에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의 모색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 무턱대고 규제했다간 근근이 살아가는 섬주민의 생계에 지장이 생기므로 신중한 대처방안 모색이 필요할 것입니다.
실은 여기보다 군소 역외 금융센터의 문제가 더 심각한데, 오스트리아,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위스 등의 금융센터를 피난처로 삼는 행위는 자국 경제 기반에 깊이 파고들어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울컥하고 짜증이 나는 건, 겉으로는 훌륭한 체하는, 런던과 뉴욕인데요.- 세계 3대 금융 센터가 런던, 뉴욕, 도쿄에 있으나 저자가 일본인이라 도쿄의 언급을 피한 건지, 도쿄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건지, 일본 기업은 도쿄를 피난처로 이용하지 않는 건지, 저로선 알 수 없습니다.  - 실상은 그들 모두 조세 피난처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계 경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머니 게임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니 화가 납니다. 

국고로 들어가야 할 세금을 회피하여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경향은 조금 이해합니다. 탈세도 아니고 편법 좀 쓴다는 데 그게 무슨 문제겠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로 인해 우리나라가 IMF를 겪었다는 걸 깨닫는다면 큰 문제라는 걸 인식할 수 있습니다. 
자금 세탁 방지 기구(FATF), 금융안정위원회(FSB) 등의 기관에서 국제 룰을 조정하고 개입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조세 피난처 퇴치에 적극 나서는 체하며 자국 권익을 우선시하는 선진 경제 대국이 양심적인 행보를 보였으면 합니다.

시가 사쿠라의 <조세 피난처>는 생소한 용어 때문에 처음엔 어렵게 생각되었으나, 익숙해지니 일본의 전 대장성 주세국 관료로서 직접 겪고 느꼈던 것들을 생생하게 전해 듣고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세금이 문명의 대가'라면 세금을 내는 사람은 그 대가인 '문명'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조세 피난처는 그런 '문명'의 향유를 방해하고 더 나아가 '문명'에 재앙을 가져온다.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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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사랑한 소년 스토리콜렉터 60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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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무척 읽고 싶은데, 읽기 싫어.'
흥미롭고 재미있을 것 같아 두근거리지만, 이런 악함을 즐기는 나 자신이 혹시 어딘가 잘못되거나 고장 난 건 아닐까, 잔혹한 장면으로 가득 찬 책을 읽으며 재미있다고 말하는 게 정상일까. 그렇다고 해서 여기저기 잘려나간 것들을 보며 행복해하는 것도 아닌 데다 잔뜩 찌푸린 얼굴로 심각하게 책을 읽는 바람에 아이의 걱정을 사면서 왜 이런 책을 읽는 걸까요. 단정 지을 수 없는 그 무언가가, 그리고 매력이 있기에 저는 계속 스릴러, 미스터리를 찾는 거겠죠. 
안드레아스 그루버의 '마르틴 S. 슈나이더 시리즈'도 읽고 싶은데 읽기 싫은 책들 중 하나입니다. 책을 여는 순간 그 안에 사로잡힐 거라는 걸 알면서, 잔인함이 가득 뿌려져 있을 것을 알면서도 읽을 수밖에 없죠. 전에도 말했지만, 소설 속의 사람들이 어떤 일을 당하건 간에, 나 자신은 이곳에서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마음 놓고 즐기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이번의 소설 <죽음을 사랑한 소년>은 지난번의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이나 <지옥이 새겨진 소녀>보다 더 잔혹합니다. 그래서 더욱 안전한 곳이 필요했습니다. 사건이 벌어지는 독일 일대에서 멀리 떨어진, 바로 이곳 말이에요. 

<죽음을 사랑한 소년>의 사건은 까칠한 프로파일러 마르틴 S 슈나이더조차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그를 비난하던 주변인들이 연달아 살해당했거든요. 그리고 진행 중입니다. 슈나이더를 추종하는 광팬이거나, 아니면 그를 함정에 몰아넣고 싶은 인물의 짓이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뭐겠어요. 사랑 아니면 증오겠지요. 안드레아스 그루버의 슈나이더는 정말 비호감입니다. 마야 유타카의 탐정 메르카토르보다 더 비호감인 탐정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요. 슈나이더에 비하면 그는 그냥 잘난 척이 심한 천재 탐정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슈나이더는 상황이 어떻거나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입니다. 생각을 할 때는 옆 사람이 마시는 공기  때문에 자신의 두뇌 회전에 필요한 산소가 부족해진다며 불평하는 인물이에요. 차라리 마리화나를 끊지. 어찌나 피워대는지, 마리화나를 구경도 못 해본 저마저 그 냄새가 들척지근하며 담배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지 뭔가요. 까칠하고 도도하고 제멋대로이지만 프로파일링 능력과 수사력은 다른 이들보다 월등해 경찰 내에서도 뭐라 못하는 모양입니다. 그는 미드 한니발의 윌 그레이엄처럼 범행 현장에서 범죄자의 입장이 되어 사건의 흐름을 추리해내기도 합니다. 윌은 -실제로 존재하는 병명인지는 모르겠지만-과잉 공감 장애를 앓고 있는 반면, 슈나이더는 프로파일링이며 추리이기에 더 대단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의 능력에도 단점이 있는데, 고집도 세고 자신의 말이 옳다고 강하게 믿는 나머지 맹점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 부분을 커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자비네이죠. 연차로 보자면 풋내기에 지나지 않겠지만,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에서부터 그녀의 활약은 슈나이더가 인정하는 바입니다. 특히 조카들 덕분에 동화에 대해선 줄줄 꿰고 있는데요. 이번 <죽음을 사랑한 소년> 역시 안데르센 동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자비네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소설 속에서 제일 올바른 사람이에요. 생각도 깊고 결단력도 있고 행동력도 좋습니다. 여차할 때는 슈나이더의 말도 거역할 수 있는 당찬 경찰입니다. 

슈나이더라고 하면 마르틴 S. 슈나이더보다 더 유명한 사람이 있습니다. 쿠르트 슈나이더(1888~1917)라는 독일의 정신병리학자인데요. 프로이트와 아브라함이 사람은 자라나면서 겪는 일 때문에 인격 장애를 일으킨다고 주장한 반면, 크레펠린은 인격장애는 타고난 기질이며 한 번 발현되면 치료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쿠르트 슈나이더는 두 가지 이론을 모두 아우르고, 처음으로 10가지 인격장애를 분류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이코패스라고 말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에 관한 정의를 처음으로 내린 사람이지요. 소설의 슈나이더의 이름을 이 학자에게서 따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했는데요. 우리의 슈나이더는 프로파일러이지만 누구보다도 사이코패스에 대해 잘 알고 심리를 이해하는 걸로 보아 영 다른 사람은 아닌 것 같고, 알고 보면 먼 친척쯤 되지 않을까요? 

대신 <죽음을 사랑한 소년>에는 한나라는 젊은 심리치료사가 등장합니다. 쿠르트 슈나이더의 진짜 후예는 이쪽이 되겠군요. 그녀는 슈타인펠스 교도소로 실습을 나오는데요. 이곳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죄수들을 수용한 곳입니다. 소아 성애자, 사이코패스, 사디스트 범죄자 같은 이들을 가둬둔 곳인데 영화 <더 록>의 알카트라즈 수용소처럼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최고의 보안 교도소입니다. 지난 오 년간 이곳에 들어갈 수 있기를 소원했던 한나는 전임자의 추락사로 실습 자리가 비는 바람에 운 좋게(?) 오게 되었지만, 어쩐지 그녀의 목적은 훌륭한 심리치료사로서 죄수들의 치료를 돕는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조급한 마음에 수상쩍은 행동을 하다 그만, 일을 그르치고 맙니다. 
한편, 슈나이더와 자비네는 잔인하게 살해당한 시신에 새겨진 숫자의 의미를 찾으려 합니다. 숫자와 더불어 늘어가는 피해자들, 살인자는 말 그대로 serial killer입니다. 그들은 카운트를 멈출 수 있을까요. 

"매일 아침 케냐에서 가젤 한 마리가 눈을 떠.
사자에게 잡히지 않으려면 그보다 빨리 뛰어야 한다는 걸 깨닫지.
그런데 매일 아침 케냐에선 사자도 눈을 떠.
사자도 굶어 죽지 않으려면 가젤보다 빨리 뛰어야 한다는 걸 알지.
결국 우린 사자건 가젤이건 해가 뜨면 그냥 달려야 하는 운명인 거야."



이 책에 관한 이야기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제가 하고픈 이야기를 전혀 할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읽으신 분께선 아시겠지만 스포일러가 되어버릴 테니까요. 

스릴러를 넘어선 마음 아픈 사연이 숨어있습니다. 

그 사연과 그것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어 며칠 동안 글을 쓰지도 못하고 끙끙 앓았습니다. 이게 바로 말 못할 괴로움이라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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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
서미애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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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우진은 삼 년 전 사랑하는 딸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아내마저 잃었습니다. 과연 그에게 살아갈 힘이 남아있을까요. 그의 아내가 죽는 순간, 저는 잠시 책을 덮었습니다. 아이를 잃는다면.... 저에게 단 하나의 공포가 있다면, 바로 아이를 잃는 것입니다. 끝없는 절망과 절망에 나의 온 우주가 닫혀버릴 거라는 생각에 숨 쉬는 것조차 잊고 불안한 마음에 차가워진 손끝을 어루만지며, 행여나 이런 상상이 불길함을 초래할까 두려워 머리를 흔들며 생각을 털어냅니다. 
우진의 아내도 그랬겠지요. 열여섯 살의 딸이 살해당한 이후에도 매일 아침 아이의 책상에 우유 한 잔을 가져다 두며 살아있을 때처럼 방을 관리하며,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 괴로움은 그녀의 몸을 갉아먹었습니다. 암에 걸려 치료를 받는 게 아팠던 게 아닙니다. 원무과에서 알게 된 사실과 폭언에 더 이상 버틸 힘을 잃었습니다. 그렇게 아내는 투신자살합니다. 손끝에서 아내를 놓친 우진은 딸과 아내의 뒤를 따르려 했는데요. 주머니에서 쪽지를 발견합니다. '진범은 따로 있다.' 삼 년 전 딸을 죽인 범인들은 재판을 받고 죗값을 치르고 있는데, 진범이 따로 있다니요. 우진은 아주 조금 힘을 냅니다. 진범을 찾아야 하거든요. 딸을 죽이고, 아내를 죽게 만들고, 자신을 세상에 혼자 남게 만든 그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딸 수정이는 부모 마음도 헤아릴 줄 아는 착한 아이였습니다. 이다음에 천문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는, 별을 사랑하는 소녀였습니다. 어서 자라서 천체 망원경으로 별을 보고 싶어 했던 아이는, 하늘의 별이 되어 아빠를 보고 있을까요. 지금 보고 있는 그 별빛은 몇 만년 전 사라져 지금은 없는 별의 마지막 인사일 텐데요. 아빠는 그걸 알기에 더 슬픕니다. 

모든 사악한 것들은 순수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p.104

요사이 미성년자에 의한 끔찍한 사건들의 보도가 늘었습니다. 실제 사건이 늘어난 건지, 예전보다 많이 드러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심각한 폭력에 대한 흉포함과 더불어 후안무치함이 소름 끼칩니다. 특별히 사이코패스 경향이 있어서 그런 걸까요? 소년법의 악용일까요? 아직 어려서 몰라 그런 걸까요? 다른 건 몰라도 아직 어려서라는 건 서너 살 때까지만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세 살짜리도 남을 때리면 안 된다고 가르치면 잘 알아듣습니다. 그런데 열세 살이 넘는 아이들이 친구를 피투성이가 되도록 때리면 안 된다거나 벽돌로 치면 죽을 수 있다는 걸 몰라서 행한다고요? 그런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을. 다 압니다. 게다가 그래도 감옥에 가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압니다. 
미성년자의 범죄를 다룬 국내외 소설이 여럿 있습니다. 작가에 따라 그들에게 엄벌을 처해야 한다거나 그래도 갱생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주제로 스토리를 끌어갑니다. 독자는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견해를 조정해가지요. 저는 그렇습니다. 가해자였던 자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새사람이 되도록 노력한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가벼운 처벌과 - <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에서처럼 사회봉사 몇 시간으로 때울 수 있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반성 없이 살아간다면, 피해자와 가족들은 어떤 기분이겠습니까. 제가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 있는 것도 결국 남의 일이니 그럴 겁니다. 나의 일이라면, 아니 생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은 반전이 있는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입니다. 서미애 작가는 추리의 여왕이라고 불리고 있는데요. 명불허전입니다. 배경과 대사 모두 생생하게 살아서 독자의 감정을 끌고 갑니다. 저는 우진에게 빙의해 그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싶은 그의 심정이 콱 박히자 잠이 몰려왔습니다. 이 상황을 피하고 싶어, 잠으로 도피하고 싶었나 봅니다. 그와 세영이가 가벼운 교통사고로 병원 응급실에 갔을 때에도 다시 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우진은 피하지 않았습니다. 정면 승부. 저도 과자를 한 움큼 집어 와삭와삭 씹어먹고선 다시 싸움을 준비했습니다. 우진이 다닌 길들, 세영의 아빠 재혁이 다닌 길들이 낯설지 않아 감정과 움직임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비록 제 기억 속의 장소들은 10년, 20년 전의 것들이지만요. 그것이, 그 감정들이 너무 생생해 상당한 체력을 소모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우진이 되었다가, 재혁이 되었다가.... 그리고 다시 우진이 되었습니다. 

차가운 바닥에 몸을 뉘어봅니다. 

저 멀리 하늘에서 삼태성을 두른 오리온이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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