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라이즈 아르테 미스터리 16
T. M. 로건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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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헌트>의 루카스가 생각났어요.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든다면 매즈 미켈슨이 주연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쩜 이렇게 억울할 수가. 조셉 린치가 교감을 만나고 정직을 당하는 장면에서 매즈 미켈슨이 떠올랐습니다. 한순간이구나. 가정적인 남자 라테 파파이자 성실한 교사인 그가 참고인 조사 - 인척하는 용의자 조사였지만-을 받으러 경찰서에 출두하는 장면이 SNS에 올라가자 학교의 명예를 걱정한 학교 측에서 취한 조치였던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조셉의 명예는 누가 책임 지나요. 
당장 조셉이 신경 써야 하는 건 자신의 목숨과 가정의 안전이니 명예는 잠시 뒤편으로 빼두어도 좋을까요.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걸까요. 책을 다 읽은 저는 알고 있지만, 주인공인 그 역시 지금은 알고 있지만 그땐 몰랐어요.

윌리엄이 상장을 받았다고 즐거워하던 어느 날, 호텔로 들어가는 아내의 차를 따라간 조셉은 아내 멀이 친구 남편인 벤을 만나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바람을 피우고 있었던 건가. 멀의 차가 사라지자 벤에게 접근, 항의를 하는데 조셉에 비해 덩치가 작은 벤이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조셉의 멱살을 잡습니다. 화가 난 조셉이 손을 뿌리치는데 벤이 제풀에 넘어지면서 쿵! 의식은 없고 귀에서 피가 흐릅니다. 앗 큰일이다 싶어 도움을 청하려는데 아들 윌리엄이 천식 발작을 일으킵니다. 늘 가지고 다니던 흡입기도 하필 오늘만 놓고 왔지 뭔가요. 하는 수없이 집으로 빨리 돌아와 아들 먼저 돌보고 호텔 주차장으로 돌와왔지만 벤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의 차도  핏자국도. 다행이다. 잠시 기절했던 건가 보다...라고 생각했는데요.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이상한 사진이 올라올 때까지만 해도 잃어버린 휴대폰과 사라진 벤이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뒤바꿔놓을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아내는 벤의 회사 일로 그를 만났었다고 말을 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임이 밝혀집니다. 멀의 친구이자 벤의 아내인 베스가 그 둘이 바람피우는 증거를 들이대며 울부짖었거든요. 벤은 그날 이후로 실종 상태입니다. 경찰은 그의 흔적을 찾으려 애쓰는데요. 시간이 지날수록 생존 증거가 아니라 살해되었다는 증거를 찾아가게 됩니다. 조셉은 환장할 노릇이지요. 벤은 멀쩡히 살아있는데다가 여러 방법으로 그에게 연락을 하거든요. 분명히 살아있는데 경찰은 죽은 게 아니냐하고, 심지어 멀이 벤과 불륜 관계였다는 걸 알게 되자 치정 살인으로 여겨 조셉에게 바짝 접근합니다. 그러던 중에 그의 경찰서 방문 소식이 학생의 SNS를 통해 널리 퍼졌구요. 
벤에게 위협당하지, 벤이 살해되었음이 확실시되자 용의자가 되었지, 벤을 찾는다고 나섰다가 안 좋은 꼴 당하지... 모든 증거들이 조셉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건 뭐 <나를 찾아줘>도 아니고.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건 나만 아는 사실인가요? 아니지. 진범도 알고 있지.

초반부터 계속 신경 쓰이던 것들이 있었습니다. 증거 조작은 그 사람이 아니라면 좀 어려우니 그 사람이 맞을 거예요. 정말 가증스럽군. 네 맞아요. 그 사람이 맞긴 한데요. 동시에 아니기도 해요. 이봐들. 그냥 싫어졌으면 상황을 끝내는 다른 방법도 있을 텐데. 꼭 이렇게 복잡하게 가야 하는 건가.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거짓을 말하는 편이 더 쉬울 때도 있습니다. 그편이 더 유리할 때도 있고요. 하지만 그러려면 기억력이 좋아야 해요. 게다가 앞뒤가 잘 짜여 있어야 하죠.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에이머스 데커도 어쩌다 한 번씩 기억해야 하는 부분을 놓치던데, 이들이라고 모든 걸 기억할 수는 없잖아요. 우리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니 되도록 정직하게 살아야 하는데, 그것 또한 쉽지 않아요. 책을 다 읽고 난 이제 와하는 말이지만 이들의 경우엔 사실대로 말해도, 거짓을 말해도 어차피 스릴러였을 거예요. 주인공인 조셉 외엔 다들 한 성격하니까요. 

이 책은 <비하인드 도어>의 저자 B.A. 패리스의 추천을 받은 소설로 아마존 선정 '세상을 놀라게 할 심리 스릴러' 1위를 했다는데요. 세상을 놀라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좋은 심리 스릴러임은 확실합니다. 읽으면서 쪼이는 맛도 있고, 저 사람이 수작을 부리는 건 맞는 거 같은데 어떤 방법으로 그러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건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책을 놓을 수가 없더군요. 빨리 읽어버리고 싶었습니다. 가독성이 참 대단해요. 스릴과 가독성 모두 만족스러운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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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겠어요, 이렇게 좋은데 - 시시한 행복이 체질이다 보니
김유래 지음 / 레드박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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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는 한 달 살기 하러 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지금은 열기가 조금 가시긴 했지만, 꾸준히 한 달 살기 방이 나오는 걸 보니 여전히 한 달 동안 제주를 느끼러 오는 분들이 있나 봅니다. 다소 비싼 방세를 지불하면서도 호텔이나 펜션비와 비교해서 계산하면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기쁘게 결제하고 제주의 자연과 먹거리를 누립니다. 떠난 후엔 제주가 그리워 다시 찾기도 하고 아예 이주를 결심하기도 합니다. 

이 책의 저자 김유래는 갑상샘 항진증 진단을 받고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려 발리의 우붓으로 향합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데요. 보면 볼수록 우리 애 같습니다. 긴장을 잘 하고, 예민하며 겁이 많아서 호시탐탐 엄마와 같이 자려고 하는, 벌레를 무서워하고 낯선 곳을 두려워하는 우리 애와 닮아서 살짝 긴장하며 읽었습니다. 물론 저희 애는 고등학생이고 저자는 서른이 넘었지만, 얘가 커서는 씩씩하고 겁도 없는 어른이 될 것 같지 않거든요. 약간의 경계는 생존에 필요한 소양이지만 지나친 경계와 긴장은 건강에 좋지 않아요. 아무튼, 나이를 떠나서 딸 같은 저자는 겁도 많으면서 혼자서 우붓으로 갔습니다. 대단하죠. 그런 용기가 있다니. 쥐어짜낸 용기를 가지고 도착한 우붓에서 많은 이의 미소를 만나고 친절을 만나고, 작열하는 태양과 더위를 만나기도 하며 때로는 쏟아지는 비를 쫄딱 다 맞고 걷기도 합니다. 본래의 주민이나 게스트 하우스의 스텝과 소통하고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이방인과 소통하기도 합니다. 
마치 꿈같은 날들이죠. 영화 같습니다. 푸른 자연 속에서 만나는 싱그러움. 눈부신 햇살 아래 피어나는 향기. 자연 속에 내가 들어가 그것들과 하나가 되는 것 같습니다. 우붓의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도 살아있는 것들과 함께하길 바라는가 봅니다. 우리였다면 부실 공사로 여겼을 문 주위의 틈 같은 것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그리로 도마뱀이나 거미 같은 것들이 드나드는 데도요. 저자는 그들뿐만 아니라 커다란 바퀴벌레나 나방 같은 것에도 시달립니다. 적응을 못했어요. 어떻게 적응하겠어요. 저자가 본 그것들은 제가 사는 곳 근처에도 사는걸요.
힘차게 날아다니는 엄지손가락만 한 바퀴벌레는 도심에서 자주 만났었는데요. 여기선 정말 아기 손바닥만 한 거미를 자주 만나요. 길에서 뱀의 허물을 발견할 뿐만 아니라 요번엔 차에 치인 사오십 센티미터 짜리 뱀도 봤는걸요. 우붓에서 저자가 새소리에 잠이 깼지만, 저는 그건 기본이고 새들끼리 싸우는 소리도 들어요. 시끄러워요. 요번엔 전깃줄에 제비가 수십 마리 앉아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는걸요. 
저자가 두려워했던 것들, 기뻐했던 것들... 그런 것들 중 반은 제 주변에도 있어요. 그래서 부럽지 않았겠다고요? 아뇨.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서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내가 하고픈 대로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건 정말 부럽죠. 외지인은 몰라도 거주민은 아무래도 신경 써야 하잖아요. 

저는 저자의 느낌과 우붓 현지인의 느낌 양쪽을 오가며 책을 읽었습니다. 게다가 제주의 한 달 살기와 비교하며 읽게 되더군요. 그러다 보니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지만, 이 책은 어깨의 힘을 빼고 읽어가면 됩니다. 여행기이면서도 에세이, 혹은 저자의 일기장 같은 것이었거든요. 저자가 우붓에서 뭔가 대단한 걸 하지는 않아요. 그런데도 어쩐지 부드럽달까. 나는 왜 남들이 한 달이라도 살아보고 싶어 하는 제주에서 몇 년째 살면서 저런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찌들어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늘만 해도 작열하는 자외선에 자이글자이글 될 뻔했거든요. 거센 바람과 뜨거운 태양에 피부는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고 높은 습도 탓에 여기저기가 쑤시고 머리는 늘 부스스해 투덜거렸어요. 만약 내가 이곳에 여행을 온 것이라면 온몸으로 이 태양과 공기를 받아들이고 즐거워할 텐데요. 아 참, 저 역시 왕퀴벌레는 절대 적응 못할 거예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저자가 반한, 저자의 언니와 남동생도 매료시킨 그곳엔 무엇이 있는지 가보고 싶어요. 오래 있을 자신은 없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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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 - 성서에 생애를 바친 개혁자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30
도쿠젠 요시카즈 지음, 김진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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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마르틴 루터가 로마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에 반대하며 95개조 반박문을 내놓았다는 것을 종이에 적어가며 외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로 인해 프로테스탄트, 즉 개신교라는 것이 생겨났고 내가 다니던 교회의 뿌리가 되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마르틴 루터라는 이름은 칼뱅과 더불어 종교 개혁 이야기를 다룰 때 없어서는 안되는 인물이라는 정도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의 '이와나미 신서' 중 <마르틴 루터>를 읽게 되었을 때 살짝 망설였습니다. 종교색이 진하면 어쩌나 하고요. 예전에 스님이 내신 책을 읽을 때도 망설임은 있었는데, 읽고 나니 참 좋은 책이었다고 느꼈었기에 이 책도 종교적 문제가 아닌, 역사적 인물로 접근하여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책을 펼쳤습니다. 다행히 제 의지와 같은 - 인물과 그의 업적에 충실한 책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1500년대의 로마 교황청은 부패할 대로 부패한 곳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선을 쌓았던 교인들이 천국으로 가면서 남기고 간 선은 교회에 속하며 그것은 교회의 보물이다... 따라서 이 보물로 죄를 면할 수 있는데 이걸 면죄부라고 한다.... 살 사람? 하며 면죄부를 팔아오던 말도 안 되는 짓에 반발을 한 수도사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마르틴 루터입니다. 그는 원래 좀 있는 집 자제로 아버지의 교육열에 힘입어 대학에 진학했으나 어느 날 귀가 중 바로 옆에 벼락이 떨어지는 바람에 죽을 뻔한 순간, 광부들의 수호성인인 성 안나에게 구원을 요청하며 수도사가 되기로 하였고, 그 약속을 지켜 정말 수도원에 들어가 버립니다. 아버지의 실망과 배신감은 말로 다 못했을 겁니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로 함부로 '너'라고 부르지도 않고 좋은 색시를 얻어줄 생각에 매일매일 들떠있었을 아버지는 혹시 루터의 결심이 악마의 속삭임에 의한 게 아닌가 염려했습니다. 
무척 엄격한 수도사 생활을 하고 있다가 사제가 되어 대학에서 성서 강의를 합니다. 당시 성서는 모두 라틴어로 되어 있었고 예배(미사) 역시 라틴어로 진행했기에 민중이 교회에 오기는 오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이건 제 의견이지만, 뭐라고 하는지도 못 알아듣고, 뭐라고 쓰여있는지도 모르는데 그들의 신앙심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결국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속살거리는 자의 말을 믿고 따를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교리다!!라고 외치면 복종할 수밖에 없는 터였습니다. 루터는 이제까지 라틴어로 되어 있던 성서를 독일어로 옮기는 작업을 하며 민중이 성서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은 무척 중요한 일로, 종교계의 변혁뿐만 아니라 후세에 구텐베르크의 활자 인쇄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까지 생각하면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그 자신과 주변인들은 앞으로의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전혀 몰랐을 테지만, 그들이 속해있는 세상 자체에도 보통의 사건은 아니었던 것 만은 분명합니다. 진정한 구원은 교회의 규율에 얽매이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며 강연하였습니다. 그의 글과 연설에 감명을 받아 따르는 무리가 점점 늘어났고, 수녀원을 이탈한 수녀 중 한 명과 결혼하여 본 교회로부터 더 큰 공격을 받습니다. 

이와나미 신서의 <마르틴 루터>는  그의 전 일대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의 삶뿐만 아니라 이념, 그리고 방향을 알립니다. 기독교에 깊은 관심을 두고 신앙생활을 하는 분이라면 이미 마르틴 루터와 그의 성서 번역에 대해 알고 있겠지만, 저로서는 처음이라 마르틴 루터가 에라스무스와 성서에 관한 격한 논쟁을 한 것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에라스무스 역시 성서를 번역하였지만 루터와는 다른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에라스무스에 관해 읽게 된다면 그의 성장과정과 이념은 어땠을까를 알게 되겠지만, 제 독서습관으로 미루어보아 근시일에 찾아볼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마르틴 루터>에 관한 책을 누가 일부러 밀어 주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지나갔을 일들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책을 건네주신 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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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가 낳은 천재들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29
이나미 리쓰코 지음, 이동철.박은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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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때 김용의 무협지를 좋아했습니다. 역사의 큰 흐름 위에서 정파니 사파니 하며 다툼을 벌이는 스토리도 좋았고 경공술로 날듯이 이동하는 남녀는 낭만적이었습니다. 경공, 초식, 사자후, 비기 등등을 읽으며 상상하며 저런 것들이 실제로 가능한 걸까 의심도 들었지만, 중국은 땅도 넓고 인구도 많으니 저런 기인이나 초능력자가 없으라는 법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역사를 따라가면 범인들은 생각지도 못하는 일을 해내는 사람이 세계 곳곳에 있어왔으니까요. 그러니 가능할지도 몰라요.

<중국사가 낳은 천재들> 을 읽다 보니 과거 생각도 나고, 이런저런 사색도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이 책은 중국 문학을 전공한 국제일본 문화연구센터 명예 교수인 이나미 리쓰코가 춘추전국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56인의 삶과 업적, 행적 등을 소개하고 그들의 명언이나 작품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교과서에서 보았던 인물의 정사뿐만 아니라 일화나 숨겨진 이야기들도 볼 수 있어서 좋았는데요.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고 간결하게 서술되어 있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상당히 많은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이 꼭 필요한 부분만 간추려서 읽는 이로 하여금 편하게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꾸려놓아서 '역사'라는 단어에 긴장하는 저도 마치 이야기책을 읽는 것처럼 편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인물을 소개하는데요. 너무나도 유명해 저 같은 사람도 이름을 알고 있는 공자나 장자, 진시황, 왕희지, 이백, 도연명, 루쉰 같은 인물을 만나면 아는 사람을 만나 반갑고, 임포, 신기질, 유경정, 모진 같은 사람을 만나면 새로운 만남에 즐거웠습니다. 인물을 소개함은 간략하게 되어 있지만 모자람은 없습니다. 호감이 가서 더 궁금한 것이 있으면 다른 책이나 인터넷을 뒤지면 되니까 아쉬움도 없습니다. 책의 자연스러운 진행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중국사와 책에 수록된 인물에게 관심을 갖게 하는 데엔 전혀 부족함이 없는 책이었습니다.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인명이 한자음으로 되었다가 중국식으로 되었다가 하는 점이었는데, 어차피 한글 뒤에 한자로 표기했으므로 중국음을 병기하거나 통일했으면 어떠했을까 합니다. 

이 책은 56명의 인물을 소개하고 있으므로 연속해서 읽지 않고 짬짬이 읽을 수 있어서 더 좋았습니다. 누구도 시간이 없어서 책을 읽을 수 없다는 핑계를 댈 수 없는 책이었달까요.

우연이었겠지만 이 책을 읽는 며칠 사이에 제 주변인에게 좋은 일이 생겼습니다. 진심으로 축하하고 난 후 몇 시간 지나자 갑자기 우울해지더군요. 모두가 전진하고 있는데, 나만 이룬 것이 없다는 슬픔이랄까요. 다른 이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나아가는 동안 나는 뭘 했을까... 속상했습니다. 그리고 만난 청나라 말기의 저널리스트 량치차오의 시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해도(志末酬)'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더 좋았습니다.



비록 이룬 것 적더라도

감히 스스로 비하하지 말지니,
적은 것이 없다면
많은 것이 어디서 나오리!
雖成少許, 不敢自輕, 不有少許兮, 多許奚自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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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선택한 남자 스토리콜렉터 66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이한이 옮김 / 북로드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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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발다치의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는 매년 한 편씩 북로드를 통해 출판되고 있는데요. 과잉기억 증후군이라는 특이한 질환이자 특수한 능력을 가진 데커가 FBI와 함께 사건을 해결해가는 무척 매력 있는 작품입니다. 에이머스 데커는 과거 미식축구선수로 경기 중 큰 부상을 입고 뇌에 손상을 입는 바람에 과잉기억 증후군을 앓게 되었는데요.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가 되고 맙니다. 수험생이나 중년 이후 깜빡깜빡하는 사람은 그의 기억력을 부러워할 만도 하지만, 망각이란 신이 준 축복 중의 하나로,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다는 건 정말 괴롭습니다. 때로는 사라져야 하는 기억도, 흐려져야 하는 기억도 있는 법이니까요. 가족의 죽음을 목격한 데커로서는 정말 저주스러웠겠죠. 하지만 전편의 시리즈를 통해 그는 자신의 괴로움을 극복해나가며 특수한 능력을 동원해 FBI와 함께 일합니다. 기억력이 좋은 것뿐만 아니라 저돌적인 성향과 정의감, 그리고 뛰어난 판단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겁니다.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 <죽음을 선택한 남자>는 시작부터 강렬합니다. FBI의 거점인 후버 빌딩 앞에서 슈트를 멋지게 잘 차려입은 한 남자, 윌터 데브니가 앤 버크셔를 향해 총을 쏘아 살해합니다. 그 장면을 목격하고 달려온 데커 앞에서 그는 스스로에게도 총을 쏘아 자살을 시도합니다. 어째서 FBI 건물 앞에서 여성을 살해했는지 이유를 밝히기도 전에 그는, 병원에서 사망하고, 이 <죽음을 선택한 남자>의 행동을 모두 목격한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데커가 수사에 합류, 사건을 추적합니다. 

윌터 데브니는 성공한 사업가로 FBI 프로젝트와 관련된 컨설팅 회사의 사장인데, 그런 그가 하필 FBI 건물 앞에서 한 여자를 총으로 쏘았다는 것도 납득이 가지 않는 데다, 피해자인 앤 버크셔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카톨릭계 학교의 교사로 데브니와의 접점이 없었기에 수사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데브니의 부검 결과 뇌종양 말기였음을 알게 되고, 병을 비관한 묻지 마 살인이었을 수도, 종양의 압박으로 인한 인격의 변화에 따른 살인이었을 수도 있다는 짐작을 해보지만, 그렇게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는 건 데커도, 독자도 다 압니다. 데커는 이 사건의 이면에 숨겨진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며 사건을 추적합니다. 가해자인 데브니 뿐만 아니라 피해자인 버크셔까지 조사하는데요. 양쪽을 모두 조사하다 보면 분명 둘의 접점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FBI뿐만 아니라 DIA(미 국방부 정보국)에서도 관심을 보이는데요. 하마터면 사건에서 밀려날 뻔했던 데커와 동료들이 일련의 일을 겪으며 결국 사건을 계속 수사합니다. 

데커와 함께하는 동료이자 룸메이트 제미슨은 DIA의 브라운을 탐탁지 않아 하는데요. 데커와 자주 함께하는 브라운을 보며 질투한 것이 아닌가 짐작해봅니다. 동료애 일 수도 있고, 자신들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연애 감정이었을 수도 있겠죠. 참, 데커와 제미슨은 <괴물이라 불린 남자>멜빈 마스의 집에 세입자이자 관리자로 거주합니다. 지난번 시리즈에서 멜빈 마스와 데커의 케미를 쭉 보고 싶다고 소망했었는데, 이렇게 연결되니 책 읽다 말고 덩실덩실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스는 어째 계속 등장하지 않고... 이러다 집주인으로 이름만 나오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결국 등장합니다. 데커와 마스가 둘이 합쳐 240 킬로그램의 몸무게로 문을 부술 때는 까르륵하고 웃었습니다. 역시 둘은 참 잘 어울려요. 원죄를 쓰고 감옥 살이 20년의 경력의 마스는 의외로 순진해서 브라운과 갑자기 진한 썸을 탈 땐 데커도 저도 걱정했습니다만, 그들 둘이 참 잘 어울려요. 제미슨은 한시름 놓은 것 같았습니다. 왤까요? 하핫. 

이렇게 스릴러는 사랑을 싣고 결말로 달려가는데, 네... 사랑입니다. 사랑이에요. 사랑이 없었다면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전편을 읽은 독자는 <죽음을 선택한 남자>를 참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예요. 뭔가 데커 사랑 전선의 예고편 같은 느낌도 있으니 다음 편에 대한 기대감도 있을 테고요. 이 작품이 처음인 독자도 단독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데커와 마스에 관한 과거를 잠깐씩 언급하니까 염려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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