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쩌겠어요, 이렇게 좋은데 - 시시한 행복이 체질이다 보니
김유래 지음 / 레드박스 / 2018년 8월
평점 :
제주에는 한 달 살기 하러 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지금은 열기가 조금 가시긴 했지만, 꾸준히 한 달 살기 방이 나오는 걸 보니 여전히 한 달 동안 제주를 느끼러 오는 분들이 있나 봅니다. 다소 비싼 방세를 지불하면서도 호텔이나 펜션비와 비교해서 계산하면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기쁘게 결제하고 제주의 자연과 먹거리를 누립니다. 떠난 후엔 제주가 그리워 다시 찾기도 하고 아예 이주를 결심하기도 합니다.
이 책의 저자 김유래는 갑상샘 항진증 진단을 받고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려 발리의 우붓으로 향합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데요. 보면 볼수록 우리 애 같습니다. 긴장을 잘 하고, 예민하며 겁이 많아서 호시탐탐 엄마와 같이 자려고 하는, 벌레를 무서워하고 낯선 곳을 두려워하는 우리 애와 닮아서 살짝 긴장하며 읽었습니다. 물론 저희 애는 고등학생이고 저자는 서른이 넘었지만, 얘가 커서는 씩씩하고 겁도 없는 어른이 될 것 같지 않거든요. 약간의 경계는 생존에 필요한 소양이지만 지나친 경계와 긴장은 건강에 좋지 않아요. 아무튼, 나이를 떠나서 딸 같은 저자는 겁도 많으면서 혼자서 우붓으로 갔습니다. 대단하죠. 그런 용기가 있다니. 쥐어짜낸 용기를 가지고 도착한 우붓에서 많은 이의 미소를 만나고 친절을 만나고, 작열하는 태양과 더위를 만나기도 하며 때로는 쏟아지는 비를 쫄딱 다 맞고 걷기도 합니다. 본래의 주민이나 게스트 하우스의 스텝과 소통하고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이방인과 소통하기도 합니다.
마치 꿈같은 날들이죠. 영화 같습니다. 푸른 자연 속에서 만나는 싱그러움. 눈부신 햇살 아래 피어나는 향기. 자연 속에 내가 들어가 그것들과 하나가 되는 것 같습니다. 우붓의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도 살아있는 것들과 함께하길 바라는가 봅니다. 우리였다면 부실 공사로 여겼을 문 주위의 틈 같은 것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그리로 도마뱀이나 거미 같은 것들이 드나드는 데도요. 저자는 그들뿐만 아니라 커다란 바퀴벌레나 나방 같은 것에도 시달립니다. 적응을 못했어요. 어떻게 적응하겠어요. 저자가 본 그것들은 제가 사는 곳 근처에도 사는걸요.
힘차게 날아다니는 엄지손가락만 한 바퀴벌레는 도심에서 자주 만났었는데요. 여기선 정말 아기 손바닥만 한 거미를 자주 만나요. 길에서 뱀의 허물을 발견할 뿐만 아니라 요번엔 차에 치인 사오십 센티미터 짜리 뱀도 봤는걸요. 우붓에서 저자가 새소리에 잠이 깼지만, 저는 그건 기본이고 새들끼리 싸우는 소리도 들어요. 시끄러워요. 요번엔 전깃줄에 제비가 수십 마리 앉아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는걸요.
저자가 두려워했던 것들, 기뻐했던 것들... 그런 것들 중 반은 제 주변에도 있어요. 그래서 부럽지 않았겠다고요? 아뇨.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서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내가 하고픈 대로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건 정말 부럽죠. 외지인은 몰라도 거주민은 아무래도 신경 써야 하잖아요.
저는 저자의 느낌과 우붓 현지인의 느낌 양쪽을 오가며 책을 읽었습니다. 게다가 제주의 한 달 살기와 비교하며 읽게 되더군요. 그러다 보니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지만, 이 책은 어깨의 힘을 빼고 읽어가면 됩니다. 여행기이면서도 에세이, 혹은 저자의 일기장 같은 것이었거든요. 저자가 우붓에서 뭔가 대단한 걸 하지는 않아요. 그런데도 어쩐지 부드럽달까. 나는 왜 남들이 한 달이라도 살아보고 싶어 하는 제주에서 몇 년째 살면서 저런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찌들어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늘만 해도 작열하는 자외선에 자이글자이글 될 뻔했거든요. 거센 바람과 뜨거운 태양에 피부는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고 높은 습도 탓에 여기저기가 쑤시고 머리는 늘 부스스해 투덜거렸어요. 만약 내가 이곳에 여행을 온 것이라면 온몸으로 이 태양과 공기를 받아들이고 즐거워할 텐데요. 아 참, 저 역시 왕퀴벌레는 절대 적응 못할 거예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저자가 반한, 저자의 언니와 남동생도 매료시킨 그곳엔 무엇이 있는지 가보고 싶어요. 오래 있을 자신은 없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