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 2 - 내일을 움직이는 톱니바퀴
다니 미즈에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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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시 (時) 수리합니다.

전편의 따뜻한 일상 미스터리로 마음을 훈훈하게 해 주었던 슈지와 아카리 커플의 이야기를 다시 만나게 되어 무척 기뻤습니다.지난번의 안개속에 비치는 환상 같은 분위기에서 살짝 벗어나, 이번엔 현실속의 인연과 사정들이 교차하며 흘러가는 시간을 재구성 해놓은 듯 했습니다.
지금은 쇠락해버린 쓰쿠모 신사 거리 상가를 지키는 사람들 중 하나인 천재 시계사 슈지는 드디어 헤어살롱 유이의-운영하지는 않지만-아카리와 대놓고 연애중입니다. 불타오르는 사랑은 아니지만요.


명랑하고 씩씩한 아카리와 차분하고 사려깊은 청년 슈지와의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사랑은 -어딘가 안 맞는 조합인 것 같지만- 째깍째깍 잘도 흘러갑니다. 신사를 지키는 다이치는 여전히 독특한 캐릭터인데 ,혹시 인간이 아니고 신사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 아닐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이 세 사람을 중심으로 네 편의 단편이 진행되는데요, 슈지 아카리 커플의 유일하다시피한 공통점인 은근 오지랖 덕분에 사람들은 마음의 치유를 얻습니다. 그들의 사연속에는 반드시 시계가 자리하는데 ,시계라는 것이 그저 시간의 흐름을 나타나는 도구인 것 같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크고 작은 정교한 톱니바퀴들이 서로 맞물려, 하나의 톱니바퀴가 움직이면 모두 조금씩 움직이며 시간을 흐르게 합니다. 톱니바퀴 중 어느 하나라도 제 역할을 못하거나 위치에서 벗어나면 시계는 작동을 멈추지만 제대로 된 솜씨를 가진 시계사를 만나 수리를 받으면 다시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 관계도 그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이번 소설의 고장난 시계는 배다른 여동생에게 물려준 아버지의 시계였고, 남편과 아내와 그들의 친구 사이의 오래된 삼각관계로 멈춰버린 라즈베리 시계였으며, 육상선수라는 자신의 꿈과 함께 15년전 돌이 되어버린 손목시계였고, 35년 전 재혼한 아내가 낙뢰가 있던 날 사라진 후 멈춰버려 가지 않는 괘종시계였습니다. 추억은 기억이기도 하지만 오해이기도해서 상처를 싸안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 주춤거리기도 하는 탓에 스스로를 힘겹게하기도 하지요. 시계의 주인들은 시계의 수리와 더불어 지나간 추억의 아픔과 슬픔도 수리합니다. 앞으로의 미래가 더 나아질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과거의 상처에서는 벗어나 앞으로의 시간을 살아갈 힘을 얻은 것 만은 분명합니다.

이번 이야기들에서 슈지와 아카리의 사랑스런 모습도 살짝 엿보이는데요. 아카리는 애교가 조금 늘었고 슈지는 여전히 다정합니다. 부드럽고 자상한 남자 슈지 가 세상에 질투를 하더라니까요? 그런데도 그들, 정말 부드러워요. 저렇게 보들보들 연애를 하는 커플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어찌나 사랑스러워 보이는지.

전편을 읽었을 땐 이야기의 주인공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웠지만 2편이 나올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듬어진 2편을 만나고 행복을 얻으니 혹시 3편도 나와주지는 않을까 하고 은근히 기대를 해봅니다. 3편에선 다이치의 이야기도 다루어 주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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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두리 없는 거울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박현미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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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지무라 미즈키의 세계는 독특합니다. 무척 현실적인것 같으면서도 비현실적입니다.

츠나구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테두리 없는 거울>에서도 우리를 그 경계면으로 끌고갑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란 무척 위험한 것이라 그 경계가 무너져버리게되면 감당 할 수 없는 무게에 짓눌리고 맙니다.

이 소설의 메인인 <테두리 없는 거울>의 주인공도 거울을 이용한 주술로 자신의 미래를 점쳐보려했지만 오히려 그 불분명한 경계에 먹혀버리고 맙니다. 간절히 소망하고 바라는 것이 자신의 것이 된다고해서 꼭 행복해지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꾸만 욕심을 부리게 됩니다. 그렇게라도 반드시 가져야만 하는 것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이 최선이고, 그것만 있다면 세상의 모든 행복을 가질 것만 같은 기분에 잘못된 선택을 하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벌이게 되어 감당 할 수 없게 됩니다. 소설 속 그녀, 가나코가 원했던 건 사랑이었습니다. 그를 가지길 열망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었고 거울점 속에서 보았던 그와 자신의 아이를 사랑스럽게 여기며 밤마다 꿈속에서 아이를 잘 교육하며 아빠처럼 음악의 재능을 꽃피워 모녀가 사랑받으려 하지만, 꿈은 점점 악몽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는 자신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재능을 갖추지 못한 딸이 밉습니다. 어째서 내 바람을 이뤄주지 못하는거지. 가나코는 이 꿈을 끝내고 그와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에 더욱 괴로워합니다. 결국 거울점을 끝내기 위해 그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맙니다. 그와의 미래를 꿈꾸며.

이 소설은 호러 단편집입니다. 각각의 이야기는 별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져있는데, 모든 이야기에 어린이가 나옵니다. 주연 혹은 조연 그것도 아니면 엑스트라라도. 호러에 어린아이가 등장하면 조금 더 마음이 아리다는 사실은 미야비 미유키를 통해 충분히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음, 이 소설에는 아이가 등장하는군.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겠어."라고 결심할 수는 없습니다. 이내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마지막 이야기 '8월의 천재지변'편이 계속 마음에서 울립니다. 약간의 따돌림을 면하려고 이웃 마을에 가상의 친구를 만들어 낸 신지가 그 거짓말이 들통나는 바람에 큰 곤경에 빠진 것을 안타까워하던 친구 교스케, 여름방학때 그 둘은 신사에서 우화한 매미를 발견하고 난 후 상상 속의 친구 유짱을 실제로 만납니다. 유짱은 신지의 상상속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심지어 다른 아이들의 눈에도 보이다니.

기적이었죠. 하지만 유짱이 과연 이 곳에 계속 머물 수 있을까요? 상상 속의 친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친구가 현실에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진 저의 딸이 신지와 겹쳐저 가슴이 더 짠해왔습니다. 책을 덮고 아이에게도 읽어보라고 밀어주고나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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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릴리언스
마커스 세이키 지음, 정대단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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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열광하지만 자신과 다른 존재, 특히 자신들에게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경향은 경외심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다른 존재에 대한 탄압이나 제노사이드 같은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혹시나 그들이 평범한 자신들을 지배하려할까봐, 아니면 자신들이 이미 이루어 놓은 지위를 무너뜨릴까봐 걱정하는 것이기도하고, 생명의 위협을 - 그들이 먼저 어떤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커스 세이키의 브릴리언트에는 특수능력자들이 등장하는데, 현재의 서번트 증후근인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자폐 성향은 제외한, 그들의 특수한 천재성만을 갖춘 존재로, 전체 인구의 1%를 차지하며 브릴리언트라고 불립니다. 미 정부는 어린시절부터 아카데미에서 같은 종족을 불신하게 만드는 교육을 통해 서로 단합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브릴리언트들은 각자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소설의 주인공인 쿠퍼는 사물이나 사람의 행동을 패턴화하여 예측하는 특수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끔은 사람의 기분을 색채로 느끼며 그 색채에 따라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하는 것까지 알아챕니다. 어쩌면 우리가 말하는 예술가들의 공감각일 수도 있겠는데요. 쿠퍼의 이 능력은 시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브릴리언트들을 체포하는데 사용됩니다. 일반적으로 아카데미에서 삽입한 GPS로 위치가 추적되는 브릴리언트들과는 달리 테러를 일으키려고하는 불순분자들을 체포하는데 있어서 쿠퍼의 능력은 무척 유용합니다. 그는 초기 브릴리언트였기에 아카데미 출신은 아닙니다. 아카데미에서 브릴리언트들의 능력에 대해 긍적적인 방향으로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음울하게 만들어 일반인들에게 의존할수 밖에 없는 성향으로 키우는데, 쿠퍼의 딸 역시 1급 브릴리언트임이 분명해 조만간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아카데미에 들어간다는 것은 부모로부터의 단절도 의미하기에 보내기 싫습니다. 이에 쿠퍼는 자신의 딸을 아카데미에 보내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 테러리스트의 수장 존 스미스를 잡기 위해 - 일부러 테러 누명을 쓰고 자신의 부서에서 도망칩니다. 그가 일부러 누명을 썼다는 사실은 국장만이 알고 있기에, 그는 우수한 자신의 동료들로부터 도망치면서 존 스미스에게 접근해야합니다.

 

처음부터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쿠퍼가 능력을 사용할 때의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아서 더 실감났습니다. 마치 셜록에서 셜록이 순간적으로 대상을 스캔하듯이 살피고 그에 대해 알아채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띠지에 리 차일드가 "이제껏 당신이 읽어보지 못했을 이야기."라고 추천해주었지만, 사실 내용이나 흐름면에서는 그렇지도 않습니다. 중반쯤 읽었을때, 혹시 뭐 그런거 아니야? 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랬거든요. 그러니 스토리 라인은 예측 불가한 것은 아니었죠. 하지만, 어쩐지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긴박감과 스릴이 있었습니다. 소설이 진행되는 것은 2013년. 책 소개에서는 근미래의 모습이라고 했지만, 읽으면서 느껴지는건 미래가 아니라 현실감이었습니다. 지금도 굉장한 능력자들을 때때로 보게 되는데, 이들이 사실 브릴리언스가 아닐까하는 상상도 들었구요.

이 책 브릴리언스는 인터스텔라 , 다크나이트를 만든 레전저리 픽처스에서 영화로 만들 예정이라고 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영화를 느꼈는데, 영화로 본다면 더 멋질것 같아요. 3D의 느낌이 확 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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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 무엇인가 - 진정한 나를 깨우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철학 에세이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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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왜 이리 일관되지 못하지?'

엄마의 모습인 나, 딸로서, 누나로서의 나, 일 할때의 나, 학부모서 다른 이들에게 보여지는 나, 이웃주민들을 대할때의 나, 블로그 이웃들에게 보여지는 나. 이 모든게 각기 달라서

 '나는 혹시 겉다르고 속 다른 인간인 건가, 솔직하지 못한 인간인건가. 이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내 모습으로 살고 싶다. 그렇다면 진정한 나는 어떤 모습인거지?'

......그리고 상상. 

'아니, 그건 되고 싶은 모습이고, 진짜 '나'말이야. 에이 모르겠다 귀찮아. '

그러고선 지금까지의 삶을 계속 살아갑니다.

이건 현재에 국한된 이야기이고, 과거로 돌아가면 더 여러가지 모습의 제가 있습니다. 슬픔과 괴로움을 가지고 있지만 잘 잊기도 하고 견디기도 하는 나.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런것들이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느닷없이 튀어나올까봐 두렵기도 합니다. 그러니, 구석지에 웅크린 나도 존재한다는 것이죠. 지금의 모습과는 다른 암울한 나 말이에요.

이런, 이렇게 되면 성격이니 뭐니로 '나'라는 존재를 정의하기가 어려워지고 말았네요.

정말, '나'는 누구일까요?


<결괴>의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는 저의 이런 괴로운 질문에 답을 던져주었습니다. 저서 <나란 무엇인가>에서 그는 '분인(dividual)'이라는 개념을 착안, 대인 관계마다 드러나는 여러 얼굴을 모두 '진정한 나'라고 말합니다. 분인이라는 개념이 처음 이 책에 등장했을때, 말하자면 책을 펴고 바로입니다만,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제가 이 책을 괜히 읽겠다고 덤빈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지요. 그러나 이내 분인의 개념이 내 안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분인'이란 다른 사람들을 대할때 드러나는 다양한 모습의 자신을 의마합니다. 그러니 앞서 고민했던 여러 모습의 내가 모두 다 나 자신이라는 것이죠. 갑자기 모든 '나'가 구원 받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분인은 모두 '진정한 나'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고, 유일무이한 '진정한 나'라는 환상에 사로잡힌 까닭에 숱한 고통과 압력을 감내해왔다. 어디에도 실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고 그것을 찾아내야 한다는 끊임없는 부추김에 시달려왔다.

 그것이 바로 '나'란 무엇인가 라는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다.

p.50


한 명의 인간은 '나눌 수 없는 individual'존재가 아니라 복수로 '나눌 수 있는 dividual'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단 하나의 '진정한 나' 수미일관된 '흔들리지 않는'본래의 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p.79

분인은 크게 사회적 분인, 그룹용 분인, 특정 상대용 분인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크기가 전부다르며, 차지하는 비율도 다릅니다. 그럴수 밖에요. 저의 경우 엄마로서의 분인이 가장 커다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분인의 크기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축소될 수도, 소멸될수도, 그리고 창조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거대화 될 수도 있겠지요. 14년전만 하더라도 엄마로서의 제 분인은 없었지만 지금은 무척 커다래진 것 처럼 말이에요. 그러니, 괴로운 과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과거의 분인으로 여기며 다른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분인을 발판으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분인을 만들어 낼 수도 있겠지요. 분인은 대인관계, 커뮤니케이션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렇다고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다고 분인이 적다고 애통해 할 것 없습니다. 어짜피 개인을 1이라고 한다면 분인은 1안에 포함된 분수니까요. 3/3이면 어떻고, 130000/130000 이면 어떻습니까. 결국 1인걸요.


중요한 것은 늘 자기 분인의 전체 균형을 바라보는 태도다. 내 안에는 언제나 여러 분인이 존재하므로 혹시 분인 하나의 상태가 나빠져도 다른 분인을 발판으로 삼으면 된다. '이쪽이 안되면, 저쪽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러는 중에 여유가 조금 생기면, 상태가 나빠진 분인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면 된다.

p.139


이 책은 초반에 다소 어렵습니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역시 쉬운 편은 아니지만 읽다보면 빠져드는 것처럼 이 책 역시 그렇습니다. 에세이치고는 어렵고, 철학서라기엔 편안한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어루만져주었습니다. 흩어져있던, 그리고 갈팡질팡 헤메이던 모든 부분들이 비로소 하나가 되어 온전한 '나'를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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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속의 소녀들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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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부모에대해 의심한 번 해보지 않고 살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만은 막상 그런 순간이 닥쳐온다면 의심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혐오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가 서로 달라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다면 더욱 그렇겠지요. 자신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둘 중 하나일겁니다. 좀더 논리적으로 그럴싸하게 말하는 사람의 말을 믿거나, 아니면 좀더 애정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거나. 결국은 그런겁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어릴 때는 결론을 내릴 수 없었죠. 아니, 좀 더 쉽게 결론을 내렸을 지도 모릅니다. 아이의 잔인하리만큼 솔직한 대답에 한쪽은 섭섭하지만 그냥 웃으면서 이녀석~! 하고 볼을 꼬집을겁니다. 그렇지만, 어른이 된 후의 이런 일은 쉽사리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자신이 어른이기에, 그들이 지나온 생활의 반만큼은 자신도 겪어왔기에 오히려 더 감당키 어려운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우리 부모님을 알기는 아는 걸까?

부모님을 사랑했는데 어느 새 나도 모르게 부모님을 방치하고 있었다. 변명을 하자면 엄마와 아버지는 한 번도 먼저 나서서 힘든 일을 이야기하는 편이 아니었다. 부모님은 과거를 잊고 미래를 향해 나가아 더 행복한 정체성을 만들고 싶어했다. 어쩌면 나는 부모님의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파헤치는 건 자식 된 도리가 아니라고 주장함으로써 내 무관심을 해명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의 아들이자, 유일한 자식이다.

p.158

런던에서 동성인 애인과 동거중인 다니엘은 커밍아웃하지 못해, 스웨덴으로 이주해간 부모님께 찾아가보지 못한지 꽤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버지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지요. 엄마가 아프다는. 그것도 정신적으로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피해망상증으로 주변을 모두 적으로 대하고, 음모가 숨어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뵈러 스웨덴으로 출발하려던 다니엘은 오히려 정신병원에서 나온 엄마가 런던으로 찾아와 자신의 편이 되어주기를 원하는 바람에 엄마와 함께 런던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엄마의 이야기는 런던을 출발해 스웨덴의 한 외진 마을 농장을 구입하는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원래 스웨덴 출신이었으나 어린시절부터 영국에서 생활하다 다시 스웨덴으로 돌아간 엄마는 고향은 아니었지만 이사 해 간 그곳에서 마을의 유지 하칸을 알게되고 그와 자신의 남편 뿐만 아니라 다른 남자들 - 광범위하게는 스웨덴 전역의 남자들 - 이 서로 공모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칸의 양녀인 미아와 친해진것, 그리고 그녀가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어했으며 하칸에게서 벗어나고 싶어했던 것, 그러다가 어느 날 미아가 마을에서 사라져버린 것..... 그런 것들이 엄마를 두렵게 했고 미스터리 속으로 빠지게 했습니다. 심지어 하칸도, 형사도 미아의 실종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척, 찾고 있는 척하고 있다고 느꼈거든요. 엄마는 그들이 공모하여 미아를 살해했으며 유기했고,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 같은 자신을 함정에 빠뜨려 정신이상자로 몰아가려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남편까지 공모해서요. 16세에 가출했지만 그래도 올바른 판단을 내려줄 거라 믿었던 아버지(다니엘의 외할아버지)를 찾아갔지만, 그 아버지 역시 딸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사위에게 넘깁니다. 그러니 유일한 희망은 아들이었죠. 그러나 아들이 아버지와 한패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다니엘은 엄마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었죠. 혼란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들은 어머니를 런던의 정신병원에 입원시킵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배신감을 느꼈죠.


나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이메일에 분명하게 적힌 내 이름을 보았다.


다니엘!


엄마의 그 필사적인 이메일을 보고도 나는 대수롭지 않게 흘려넘겼다. 그때 엄마의 마음속에서 내가 아버지를 대체할 사람, 엄마를 믿어줄 사랑하는 이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건 전혀 몰랐다. 엄마의 음모론은 이미 그때부터 내 안에서 살기 시작했던 것이다.

p.281


엄마는 아버지를 악당이라고 말하고, 아버지는 엄마를 정신이상자라고 말합니다. 이 틈바구니에서 다니엘이 어떻게 괴롭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그러나 작가는 다니엘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단순한 부부싸움 사이에 끼어있는 어린 아들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까요.

몇 달 후 다니엘은 진실을 찾기 위해 스웨덴으로 갑니다. 그 곳에서 다니엘은 엄마와 아버지가 지내던 농장도 살펴보고, 하칸도 만나보고, 형사도, 의사도 만나봅니다. 그리고 평생 처음으로 외할아버지도 만나봅니다. 엄마의 담임선생님까지도요. 그리고 놀라운 결과를 찾아냅니다.


이 소설에서의 피해자는 단 한사람. 그러나 제가 생각하고 있는 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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