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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 쇼쇼쇼 - 가식의 식탁에서 허영을 먹는 음식문화 파헤치기
스티븐 풀 지음, 정서진 옮김 / 따비 / 2015년 11월
평점 :
식사를 준비하거나 식사를 할때 즐겨보는 방송이 있습니다. '냉장고를 부탁해', '집밥 백선생', '백종원의 삼대 천왕', '오늘 뭐 먹지', '쿡가대표'. 며칠 전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겁니다. 나는 지겹지도 않은가. 식재료를 장만하고 음식을 하고, 음식 게임을하고, 음식 관련된 방송을 보고... 하루 종일 먹을 것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이건 마치 먹기 위해 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먹기 위해 사는 것은 개인주의적 소비지상주의의 극치이자 막다른 상태이다. 먹기 위해 사는 이들은 그들이 진정 진지하다 해도 삶의 의미를 엉뚱한 곳에서 찾아 헤매는 셈이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접시를 내려다보며 말이다. (혹은 책을 보면서도, 그 자리에 없거나 세상을 떠난 이들과도 유쾌하게 어울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전반적인 상황이 좀 슬프지 않은가? 우리 시대의 광적인 푸디즘을 가장 지혜롭게 바로잡으려면 멀리 갈 것도 없이 한 세기전 W.S. 길버트가 남긴 격언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식탁 위에 무엇이 올라오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의자 위에 누가 앉는지가 중요하다."
-p.226
크리스마스트리 컬러의 이 책 <미식 쇼쇼쇼>는 음식의 준비와 소비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경향의 푸디즘을 따르는 이들을 푸디스트라고 부릅니다. 저는 푸디스트일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스타 셰프들의 요리를 눈으로 즐기기만 하고 따라 하지는 않으니 이 범주에 들어있지 않다고 생각하려 애써보지만, 결국 푸티스트의 가장자리에서 10미터 정도 안쪽으로 들어와 있는 준푸디스트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방송으로는 저런 것들을 보고 있지만, 인터넷을 통해 각 식재료의 영양분석 표도 살피고 어디에 좋은가도 관심 있게 보고 있거든요. 스타 셰프들이 지향하는 바와는 조금 다를지라도 무언가 먹을거리에 대해 관심을 쏟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어차피 내 입에 들어가는 거니까, 가족의 입에 들어갈 거니까 좋은 걸 찾아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 말이 있잖아요. "당신이 먹는 음식이 바로 당신이다."
19세기 초 프랑스 법관이자 정치가로 활동했으며 <미각의 생리학(요리법, 자신이 먹은 저녁들에 관한 일화, 탐식에 관한 이론화를 정리한 담론서)의 저자이기도 한 온화한 자기만족적 성향의 장 앙텔름 브리야사바랭은 오늘날 푸디스트가 경외하며 인용하는 옛 미식가이다. 이유인즉슨, 그가 푸디스트의 집착에 문학적 세련됨과 품위라는 그윽한 멋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명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말은 "당신이 먹은 음식을 말해 보라. 당신이 누구인지 알려 주겠다."일 게다. 나 참, 그렇다고 아무렴 내가 통닭의 한 부분이거나 감자칩은 아니지 않은가. 브리야사바랭의 약속은 마치 비트겐슈타인의 아침 식사를 면밀히 분석해 그의 철학을 추론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다. 하지만 이는 부유한 이들이 계급을 구분하고 미학적 감수성을 확인하는 일종의 표지로 음식을 사용한다는 걸 용인하는 것이다. 브리야사바랭은 "지성인만이 먹는 방법을 안다."라고 한다.
-p.32
그, 그렇죠. 제가 돼지고기 뒷다리살을 즐긴다고 해서 제가 돼지이거나 뒷다리는 아닐 테죠. 그리고 상추와 두부, 토마토, 사과로 이루어진 것도요. 이 책은 처음부터 제가 알고 있던 상식이나 개념을 파고들어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거의 모든 가치관에 대한 부정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가치관의 혼란이 오기 시작하면서 이젠 내가 좋아하는 '이연복'이나 '백종원'을 떠나야 하는 건가... 하는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요리사는 어떠한가? 음식이 영적이라면, 현대의 '유명 셰프'들은 성직자이거나 구루, 혹은 형언할 수 없는 것의 드루이드교 전달자가 되었다. 요리사는 '테루아르'와 조화를 이루는, 구미를 당기는 즐거움과 영적 향상을 위한 가이아의 통역자이다. 우리는 더 이상 정치가나 성직자를 신뢰하지 않는 대신, 요리사들이 우리에게 먹는 방식은 물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말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p.41
하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줄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그들은 자신의 요리와 알고 있는 것들을 우리에게 주장하고 전달하려 할 뿐이지 인생 살이까지 가르치려는 건 아닐 텐데요. 저자가 경계하는 스타 셰프는 제이미 올리버라거나 고든램지 같은 사람을 말하는 겁니다. 알콜 중독으로 자신의 가게를 망쳐버린 한 오너 셰프에게 혹독하게 야단치면서 조리법을 전수하고 일하는 법을 전수해서 가게를 일으키는 것도 좋지만, 사실은 알콜 중독 센터에 보내서 병을 치료하게 하는 게 먼저 가 아닌가 하는 거죠.
이 책은 당연하게 생각했던 푸드 마일리지와 로컬푸드에 관한 것도 반박하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스즈키가 주장한 "로컬푸드를 먹는 것은 그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다(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지구를 구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이다.)"라는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가능하면 국산, 특히 제주산 식자재를 구입했었으며 어쩌다가 수입품을 사게 되면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의기소침해지거나 - 금전적인 고통이었죠 - 자기 합리화를 하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그런 저에게 면죄부를 선사해주었습니다.
지구를 구하는 소명에는 그 위에서 현재 살아가고자 분투하는 수많은 불우한 이들의 희생이 따른다. 문제는 로커보어들이 고객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들, 즉 개발도상국이나 제3세계의 가난한 농민들로부터 먹거리를 구매하길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철학자 피터 싱어와 공동 저자인 짐 메이슨은 셈을 해 보더니 이렇게 주장한다. "콩을 사기 위한 1달러가 있다. 현지에서 재배한 콩을 사는 것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다면(현지 농부는 1달러 전체를 다 가질 수 있고 케냐의 농부는 1달러 중 겨우 2센트만 갖는다 할지라도) 케냐의 콩을 구매함으로써 빈곤을 줄이는 데 더 기여한다." 전 지구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로커보리즘이란 부유층이 먹거리를 물론 돈까지 자신들의 좁은 파벌 안에서만 순환하려고 만든 자기애적 사이비 도덕주의 클럽 같다.
-p.175
위에서 말한 논제들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정말로 다양한 측면에서 저자의 반박이 이어집니다. 유기농이 반드시 좋은 것 만은 아니다, 간편식을 무시하지 마라, 영양학자의 말에 너무 귀 기울이지 마라 등등... 제 상식을 모조리 깨고 부수는데 - 귀가 얇지도 않은 - 저는 어, 듣고 보니 그러네? 하며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반박만 하고 대안은 없는 건가? 말로만하는 건 삐딱한 눈만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만 12장에 이르러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합니다. 그는 스타 요리사, 지나친 요리에 대한 관심, 미슐랭에 대한 전적인 신뢰 등에 대해 일침을 놓고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그의 견해에 100%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요. 알고 있던 사실을 다른 측면에서 다시 보니 이제까지 몰랐던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결정은 결국 저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