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밥상 - 세계화는 전 세계의 식탁들을 어떻게 점령했는가
구정은 외 지음, 강윤중 사진 / 글항아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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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에 비하면 식료품을 구입하는 장소와 과정에 무척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플라스틱으로 된 장바구니를 들고서 시장에 가서 고등어도 한 마리 사고, 채소가게에서 -먹긴 싫었지만 - 이런저런 채소도 좀 사고, 김치찌개를 끓일 돼지고기도 사고,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가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니까 만두가게에 들러 만두 한 판을 사 먹고 선 낑낑거리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느새 만두는 뱃속에서 사라지고 꼬르륵 소리가 들립니다. 어린 저는 쌀을 씻어 밥부터 앉히고 고등어를 씻어 건져둡니다. 그리고 김치찌개를 끓일 준비를 하고...

지금도 좀 비슷하긴 합니다만, 시장 대신 집 근처의 중형마트로 갑니다. 제주도라는 지역의 특수성 때문에 육지보다는 대형마트의 지배를 덜 받긴 합니다. 그렇지만 제주에서 나는 고등어나 갈치, 옥돔 같은 것은 꿈의 생선이라 선물용으로 한두 마리 사는 정도이고 노르웨이 산을 먹을 것인가, 통조림 고등어를 먹을 것인가 살짝 고민합니다. 갈치는 꿈도 못 꿉니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다른 건 몰라도 생선만큼은 풍요로울 것 같은 제주에 살면서 왜 그런 고민을 하느냐고요? 그건 제가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이 섬에서 먹거리 때문에 고민하는 건 저 뿐만이 아닐 겁니다. 어쩌면 그 고민을 넘어서서 아무렇지 않게 인스턴트, 냉동식품들을 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러시아산 동태와 고니를 가지고 동태찌개를 끓이면서 별로 신경 쓰지 않으니까요. 제주산 흑돼지 역시 그렇습니다. 저는 보통 제주산 백돼지를 사지만 가끔은 덴마크산 삼겹살을 구입합니다. 다행인 건 통조림이나 레토르트 파우치, 그리고 전자레인지용 식품은 거의 구입하지 않는다는 점이지요. 모든 가공식품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되도록 신선한 재료를 구입해 요리를 하지만, 가끔 바쁠 때 한두 번 이용하는 것이라면 별로 해가 되지 않을 겁니다. 가공식품을 개발하는 연구원들도 무척 많은 노력을 기울여 되도록 좋은 식품을 공급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직접 요리하는 것보다 더 많이 들어가야 제맛을 내는 나트륨과 당분들 때문에 아무래도 계속해서 이런 음식들을 먹는다면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칠 테지요. 실제로 그렇습니다. 영양적인 면과 식품 공학적인 면을 모두 챙기는 건 정말 힘든 일입니다. 그러니 각 가정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신선한 식재료를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쉽게 손이 가는 각종 가공식품들은 전 세계 곳곳에 퍼져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식품들이 많이 공급되는 곳은 비만율이 높습니다. 마트는 꿈의 공간입니다. 전 세계 각종 식재료, 식자재들이 모여있습니다. 그저 데우기만 하면 되는 것들부터 이것저것을 사서 열을 가하며 조립하기만 하면 되는 것들도 있고, 간단히 조리해 먹을 수 있는 것들과 복잡한 조리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들이 모두 존재합니다. 복잡한 세상에서 복잡한 조리를 해서 먹을 것인가, 간단히 조리해서 먹을 것인가 골치 아프게 생각할 필요 없이 쿡방과 먹방을 보며 만족감을 느끼면서 라면을 후루룩 먹는 삶은 본인이 선택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식품에 관심이 많은 제가 이번에 읽은 책은 <지구의 밥상>이라는 책으로 경향신문 기획취재팀의 기자들이 세계 10개국에서 취재한 내용을 정리하여 낸 것입니다. 본디 신문 기사로 되어 있던 것이라 그리 어렵지 않은 문체로 간결히 서술되어 있습니다. 문체는 그러하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가벼이 읽을 수 없었습니다. 인구의 94.5퍼센트가 비만이며 성인 대부분이 당뇨를 앓는 남태평양의 나우루는 콜라 식민지라 불리는 섬으로 비극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큰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말 그대로 바다 건너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제가 사는 제주 역시 별다를 바가 없는 게 아닌가, 성인병, 비만 국내 1위인 이 섬에 사는 나는 그들의 삶과 동떨어져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걱정이 되었습니다. 

신선한 식품을 구할 수 없기 때문에 보존 기간이 긴 식품들만 사 먹을 수밖에 없는 미국인들, 의외로 빈부의 격차가 심해 굶는 사람이 백만 명이나 된다는 영국의 실정, 부유하기 때문이 아니라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유기농업을 하고 있는 쿠바의 이야기들이 후쿠시마 식품을 구매하는 일본의 주부들 이야기 못지않게 충격적이었습니다. 머리가 울릴 정도의 충격은 아니었지만, 과연 우리는 괜찮은가 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했습니다. 


로컬푸드보다 저렴한 가격에 수입상품을 구할 수 있고, 번거로운 조리과정 없이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지금의 환경이 과연 좋은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과연 우리는 이런 환경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인지, 탈출한다면 겪게 되는 많은 수고로움을 감내할 수 있을 것인지 수많은 고민이 저를 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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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치미교 1960
문병욱 지음 / 리오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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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혼란스러운 시대에 탄생한 동학은 인본주의를 기본으로 하여 인간 평등과 사회주의를 주장하였습니다. 이후 숱한 고난을 겪으면서도 그 사상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을 해 왔는데요. 동학 초기에 함께 했던 전정예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1899년 금강산에서 도를 닦다가 계시를 받았다며 백도교를 창시하는데, 1912년에는 자리를 잡고 정식으로 포교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한때 신자가 1만 명이 넘을 정도로 그를 따르는 이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교리는 동학의 그것과 거의 유사했다고 하는데, 주문을 열심히 외고 기도하면 신선이 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백도교를 세운지 얼마 되지 않은 1919년 전정예가 갑자기 사망하고 그의 아들 전용해는 간부 우광현과 함께 비밀리에 아버지의 시신을 암매장합니다. 교주의 사망 이후 신도들의 이탈이 생기고 포교 활동문제로 내분이 일어 결국 인천교와 백백교로 갈리게 됩니다. 

백백교 사건이라고 하면 가장 충격적인 것이 전용해와 그의 수하들이 10년 동안 전국 곳곳에서 80여 회의 살인을 벌여 300여 명이 희생되었다는 것일 텐데요. 그중에는 신도들도 있었고, 방해가 되는 인물들도 있었을 겁니다. 신비한 힘이 있다며, 머지않아 새 세상이 올 텐데 그곳에서는 신도가 바친 헌금의 액수에 따라 직책이 결정된다는 - 말도 안 되는 - 이야기로 신도들의 돈과 딸들을 취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엔 내부 고발로 전용해가 쫓기게 되고 자살로 끝을 맺습니다.


<사건 치미교 160 > 이 백백교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쓰인 소설입니다. 시대를 30년 정도 뒤로 조정하여 치미교라는 이름으로 재구성했지요. 치미교의 교주는 곽해용. 부친을 포함한 가족들이 친일파로 731부대와 유사한 성격을 가진 735부대에 근무했으나 해방 후 귀국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는 고향과 그 인근에는 발을 붙이지 못하고 쫓기듯 마을을 떠나는데요. 친절한 사람을 만나 차도 얻어타고 용기도 얻고 그러다 경남 함양군의 한마을에 닿습니다. 산속의 외진 마을에서 그곳 아이들에게 글도 가르치고 간단한 진료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습니다. 그대로 조용히, 과거에 저질렀던 죄들을 씻으며 잘 살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한국전쟁(6.25)가 발발하는 바람에 피난을 가게 되어 마을 사람들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휴전 후 달성군 비슬산 자락에서 마침내 자신이 궁리해 왔던 뜻을 펼치기로 결심합니다. 




  무엇이든 가지려 마음을 먹으면 가질 수 있는 힘을 얻고 싶었다. 가지고 싶은 것이 많다기보다 마음을 먹기만 하면 가질 수 있는 능력 그대로의 원초적인 힘을 원했다. 원하는 힘을 손에 넣으면 돈을 원할 때 돈을 가질 것이고, 여인을 원할 때 여인을 취할 것이었으며 명예를 원할 때 명예를 쥘 것이었다.

  그럼 그러한 힘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심을 해보니 돈만 많아서도, 매력만 있어서도, 명예만 높아서도 안 되었다. 다름 아닌 인간을 부릴 수 있어야 했다. 인간의 의식과 마음을 장악할 수 있어야 했다.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칭하는 인간을 멋대로 부리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힘의 실체일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

  인간을 부린다. 이는 곧 신이 되겠다는 뜻이었다.

-p.128



그리하여 흩어져 있던 마을 사람들을 모으고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이용해 그는 교주가 됩니다. 강원도에 완전히 자리를 잡고요. 그를 믿고 따르면 죽어서 영원한 행복이 있는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는 말에 사람들은 전 재산을 바치고선 그들과 공동생활을 합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성원의 아버지 철곤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막내딸인 유선을 교주에게 첩으로 바치기까지 하다니 성원과 동생들은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 사이비 종교에서 아버지를 빼내오기 위해 재산을 처분하고 그들 틈에 잠입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조직은 단단했고 아버지의 세뇌는 깊기만 했습니다.


소설은 시대를 넘나들며 흥미롭게 펼쳐집니다. 1960년대에 왔다가 일제시대로 돌아갔다가 해방 직후로 돌아갔다가 다시 60년대로 돌아오는 등 엄청난 널뛰기를 합니다만 책을 읽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습니다. 오히려 현재의 의문을 과거에서 해소하는 경우도 많았으니까요. 백백교를 모티브로 한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도진기의 <유다의 별>에서도 백백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치미교와 비교하며 읽어나가는 재미도 있었거든요. 참 나쁜짓도 많이 했습니다. 735부대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살려 인체 실험도 하고 병을 만들어 내 세상에 퍼트리기도 하고 백신인지 치료제인지 뭔지, 아무튼 그런걸 만들어내서 엄청나게 팔아먹기도하고요. 사람도 많이 죽어나갑니다. 그런걸 교주라고... 하긴 사람은 믿고 싶은 것만 보는 법이니까요.


치미교의 탄생부터 몰락까지를 한마디로 용두사미라고 할 수 있는데요.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 소설도 그랬습니다.

시작과 전개는 무척 대단했습니다. 흥미진진하여 책을 쉽게 놓지 못 했습니다. 몰입도가 굉장했죠. 과연, 영화로 만들어져도 좋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클라이맥스가 거의 없어요. 오름들을 오르락 내리락하다가 한 번쯤은 쭉 하고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그런 맛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냥 내려와서 집에 가요.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저로서는 다행이지만, 책에서는 백록담까지는 안 가더라도 1100고지까지는 다녀왔으면 좋겠거든요. 그런 아쉬움이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정말 아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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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선 가루카야 기담집
오노 후유미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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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충사>라는 만화가 있습니다. 애니로도,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요. 벌레를 잡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세스코 같은 해충박멸 전문가는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벌레는 불길하고 꺼림칙한 것, 하등하고 기괴하여 마치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은 생물인지 아닌지 악한 것인지 선한 것인지 애매한 그런 것들을 말합니다. 평소에 늘 보아왔던 것들이 아니기에 그런 것들과 접하게 되면 두려움을 느끼고 피하게 되지요. 그것이 전달하려는 메시지 같은 것에 귀 기울일 담대함 같은 건 없습니다. <충사>의 주인공 깅코는 여행을 하면서 많은 벌레와 그들로 인해 고통받거나 구원받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무척 서정적인 작품입니다. 수채화 속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을 읽어놓고 웬 <충사>타령일까 하시겠지만,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의 표지를 그린 작가가 <충사>의 우루시바라 유키입니다. 수채화로 그려진 표지가 참 아름답습니다. 기담집이라고는 하나 공포를 자아내는 표지 대신 어딘가 사연 있어 보이는 일본의 집을 그려놓았습니다. 표지 가운데에 깅코를 닮았지만 머리가 검은 청년이 목장갑을 끼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오바나라는 청년일 겁니다. 이 청년은 기담집의 여러 단편에 매번 등장하지만 - 그것도 거의 끄트머리에 - 주인공은 아닙니다.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은 각기 다른 주인공들이 겪는 기묘한 현상을 단편으로 엮었는데요. 연작 단편이라기보다는 각각의 개별 이야기로 되어 있는 독립형 단편입니다. 주인공들은 낡고 낯선 집으로 이사를 와서 괴현상을 겪기도 하고, 리모델링 후 괴현상을 겪기도 합니다. 혼자만 겪는 경우도 있고, 가족들과 함께 느끼기도 하며 때로는 동네에 괴담으로 떠도는 이야기를 체험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당장 이사를 갈 수 있는 형편도 아니고 달아날 수도 없으니 미쓰다 신조의 <흉가>나 <화가>에 등장하는 소년들처럼 버텨야 합니다. 마가 낀 게 분명해요. 공양이나 퇴마로 해결될 것 같지도 않고...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어쩌면 기분 탓인지도 모릅니다. 집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거나 하는 건 천장의 빈 공간으로 쥐나 고양이가 들어와서 뛰어놀고 있는 것일 겁니다. 그러니 공사를 하면 나아지겠죠. 

하지만 공사를 맡은 사람은 이상하게도 다른 곳을 소개해주겠다면서 '영선 가루카야'의 오바나를 소개해줍니다. 오바나가 특별히 퇴마를 해주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공사를 통해 영혼과 사람을 모두 편하게 만들어 주지요. 

온다 리쿠의 <우리집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절판된 책인데요. 그 소설에도 오바나와 비슷한 인부가 등장합니다만 이쪽은 좀 카리스마가 있어서 얌전히 있지 않으면 너희들 다 쫓겨난다!라는 식으로 그것들을 조용히 시킵니다. 그곳에는 사연 많은 것들이 모여 있었거든요.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에 등장하는 것들의 사연도 참 만만치 않습니다. 풍문으로 듣는 사연이라 확실한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바나의 손을 거친 후에는 잠잠한 걸 보니 그들의 마음을 잘 다독여준 모양입니다. 각 단편의 중간까지는 두려운 마음으로 읽다가 차츰 그들에게 마음을 열게 되고, 그들의 측은함을 느끼게 되니 괜스레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합니다. 특히 마지막, '우리 밖'은 제일 무섭고, 제일 슬펐습니다. 


<잔예>, <귀담백경>으로 호러는 별로인가!라는 감상을 갖게 했던 <십이국기>의 오노 후유미를 이 작품을 통해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남편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호러물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지요. 마음이 애틋해지는 호러 단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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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밀리언셀러 클럽 147
야쿠마루 가쿠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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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서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악당은 그 사실을 아주 잘 알아. 그래서 용서라는 성가시기 짝이 없는 걸 구하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아. 악당은 자신이 빼앗은 만큼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도 잘 알아. 그래도 기어코 나쁜 짓을 저지르고 마는 인간, 그게 바로 악당이라는 거다.

-p.243


정말 그런 걸까요? 죄를 저지르고 형을 사는 동안에 자신이 지은 죄를 뉘우치고 피해자에 대해 죄송한 마음을 가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만, 자신 역시 잃는 것이 많다는 걸 알면서도 다시 나쁜 짓을 저지르고 마는 걸까요...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일본의 경우 소년범 문제가 무척 심각한 모양입니다. 일본의 뉴스를 자주 접하지 않아 소설이나 만화에서 보는 것이 고작이지만, 허구를 실제라고 여겨서는 안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어느 정도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소년범이나 성인범(?)이나 그 죄의 질에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님에도 단지 미성년이라는 이유만으로 감형을 받거나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 특별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그들의 인권 때문이라고 하던데, 피해자보다 가해자에게 우선시 되는 인권이라니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피해자가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서,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 가해자는 우리가 낸 세금으로 먹고살고... 그러면서 제대로 갱생해서 나오면 좋겠습니다만, 감옥에서 더 질 나쁜 사람과 의기투합해서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되어 나오기도 한다니 한숨이 나옵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상당수가 그렇다고 알 고 있습니다.


<악당>에 등장하는 많은 악당들의 대부분도 여전히 나쁜 짓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누나를 잃은 사에키 슈이치는 경찰이 되어 근무 중 납치 강간범에게 총을 들이대는 바람에-발포는 하지 않았지만- 일을 그만두고 현재는 탐정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누나는 미성년이었던 세 명에게 강간 살해당했습니다. 아픔은 계속해서 그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근무하는 탐정사무소에 노부부가 찾아옵니다. 11년 전 아들을 살해하고 소년원에 들어갔던 사카가미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아봐달라는 의뢰를 합니다. 그를 용서해야 하는 이유,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그 이유를 찾아달라고 합니다. 사에키는 사카가미에게 접근해서 그를 관찰하지만 용서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노부부에게 그대로 보고합니다. 사카가미를 다른 곳에서 만났더라면 친구가 되었을는지도 모르겠지만 소년범들에게 누나를 잃은 사에키로서는 처음부터 사카가미에게서 용서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을는지도 모릅니다. 

소설은 연작 단편처럼 진행됩니다. 매 장마다 각각의 의뢰인이 등장, 사에키가 사건을 조사하고 의뢰인에게 보고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누나를 죽인 범인들의 뒷조사도 하는데요. 사에키 역시 그들을 용서할 이유를 찾고 싶어서였던 건 아닙니다. 그는 복수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차갑게 식어버린 그의 마음을 녹여줄 하루카. 그녀는 사에키를 사랑합니다. 사에키는... 글쎄요. 아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범죄 피해자가 가장 괴로운 순간은 가해자가 행복하게 살고 있음을 알았을 때다. 가해자가 자신이 저질렀던 범죄를 눈곱만치도 반성하지 않았음을 깨달았을 때다.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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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에 대하여 - 병, 캔, 상자에 담긴 쾌락
게리 S. 크로스.로버트 N. 프록터 지음, 김승진 옮김 / 동녘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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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사람들을 중독시켰던 것들이 있었을까 곰곰히 생각해보아도 분명하게 떠오르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여기서 중독이라는 건 독극물에 해를 입는다는 뜻이 아니라 특정한 그것이 없으면 안절부절하며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을 갖게 되는 걸 말하지요. 금방 떠오르는 건 알콜 중독, 마약 중독....또 요새 문제가 되는 인터넷 혹은 스마트폰 중독이 있을텐데요. 그런 것들에 중독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며칠동안 책을 읽지 않으면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건 제가 책에 중독되었기 때문일겁니다.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에 대하여>라는 책에서는, 말 그대로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합니다. 제목만으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 책에서는 상자, 용기, 포장재로 인한 (그 내용물에 대한) 중독, 혹은 의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그 분야가 무척 다양합니다.


 

 이 책은 포장된 쾌락이 어떻게 부상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1900년을 전후한 시기에 미국에서 매스 마케팅과 테크놀로지의 급속한 발달로 독특한 상품 집단이 등장한 과정을 다룬다. 이는 '현대 소비사회의 부상'이라는 더 큰 주제의 한 측면으로 볼 수도 있는데, 그 측면은 1920년대부터 현재까지 약 한 세기의 기간을 빨리감기로 돌려보면 윤곽을 더 뚜렷하게 볼 수 있다.

  우리가 살펴본 상품들은 당시에 떠오르고 있던 '소비사회'의 일부였다. 즉 사람들이 물건을 만들기보다는 구매하게 되고, 또 그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물건을 소비하게 된 '쇼핑 문화'의 일부였다. 한때는 쾌락이 희소한 것이었고, 대게 사회적인 성격을 띠었으며, 심지어 공짜였지만, 기계화와 매스 마케팅을 거치면서 상품화되고, 대량생산되고, 개인 용량 단위로 판촉되고, 개인적 차원에서 소비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우리가 구매하는 물건은 우리 정체성의 일부가 돼, 우리가 타인과 자신을 구분하는 방식과 타인과 소통하는 방식을 재구성했다. 나아가 소비사회는 우리의 감각 경험도 변모시켰다.

-p.360

 


이 책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1장과 2장의 내용을 정독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두 장에서는 우리의 문명의 순간이 어떻게 보존되고 그것들이 튜브에 들어가기 시작한 후로부터의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포장재의 급격한 발달 이전과 이후로 문명이 나뉘는 건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데요. 통조림, 우유 팩, 콜라 병 같은 것들이 등장함으로서 식품의 유통 구조와 식품산업의 형태가 달라졌다는 걸 생각하면 그 뒤의 내용들도 이해하기 쉽습니다. 안전한 유통을 위한 포장재가 개발됨으로서 상표나 포장 디자인도 생겨났으니 새로운 직업군도 생겨났을테고요. 이런 것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 초기에는 많은 인력이 필요했겠지만 점점 산업화, 자동화의 진행으로 오히려 실직자가 늘었겠지요. 모든것은 문화의 흐름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담배조차 씹는 담배나 파이프 담배를 피우던 시절에는 그 중독성이 덜했지만 종이담배를 생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좀 더 깊게 들이마시게 되고 남녀노소 누구나 접할 수 있도록 향과 맛을 첨가하는 바람에 독성과 중독성 모두가 증가하고 말았습니다. 

포장되는 것에는 식품뿐만 아니라 추억도 있는데요. 예전에 사진이 없던 시절엔 온전히 자신의 기억에 의존하며 과거를 추억해야만 했습니다. 우리 아이가 어릴 적에는 어땠는데 하면서요. 하지만 사진이 생겨남으로써 객관적으로 과거를 저장할 수 있게(일부겠지만요)되었습니다. 우리 어린 시절만 하더라도 필름과 현상비가 아까워 꼭 필요할때만 사진을 찍곤 했었는데요. 지금은 누구나 휴대폰에 있는 카메라로 쉽게 찍고 쉽게 버립니다. 추억을 담을 수 있는 매체, 사진을 담을 수 있는 매체가 달라진 것이지요. 코닥사에서 개발했던 필름이나 앨범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지금은 업로드 해둘 수도 있고, 전자 앨범을 만들수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초기 영화 - 이것도 사진기술의 발달과 함께 진화했겠죠-에서의 작업및 상영방식과 지금의 방식이 달라진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영화관만 해도 예전엔 각 극장에서 서로 다른 영화를 개봉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영화 개봉일이 되면 종로와 충무로를 누비고 다녔었는데, 현재는 멀티플렉스 형태라 영화관의 브랜드를 보고 찾아가는 방식으로 바뀌었죠.

이런 문화의 변화는 좋은 점도 있고 그렇지 않은 점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존재했던 TV 채널 전쟁. 좀 여유있는 집에서는 방에 TV를 따로 두어서 전쟁의 횟수를 줄였다지만 요새는 어디 그렇습니까. 정 맘에 들지 않으면 PC로 보거나 스마트폰으로 보면 되는걸요. 어제 뉴스에 따르면 TV를 보면서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사람도 40%가 넘는다고 하던데요. 현대의 사람들은 스마트폰이라는 상자에 든 내용물들에 중독이 되어 있나봅니다. 과거 축음기의 발명으로 LP에 소리를 가둬 두었을 때만 하더라도 모두 모여 소리를 즐겼었는데, 이제는 개인 기기를 이용하여 자신만의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건 취향의 존중일 수도 있지만 공유할 수 없거나 공유하지 않는다는 우울함도 함께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환상역시 포장 할 수 있는 것이어서 놀이 공원은 사람들의 환상을 잘 포장하여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누리게 해 줍니다. 이 책에서도 말하지만 실은 놀이공원이 어린이를 위한 공간이라기 보다는 어른을 위한, 어른의 마음속에 있는 아이를 위한 공간이기에 자신의 동심을 펼치며 환상을 이룰 수 있게 되어 있지 않나요? 쾌락과 환상을 한 장소에 묶어둠으로서 그 곳에 가면 환상의 세계를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엔 장단점이 있을겁니다. 급격한 변화, 정형화된 물건들, 용기 안에 들어 있는 즐거운- 맛난 것들. 이들은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고 잡아두려합니다. 한번 걸려들면 좀처럼 발을 빼기가 어렵죠. 그것은 그들이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져 있으며 중독되기 좋은 형태로 계속해 개발되고 있습니다. 기분 나쁜 중독도 있을 것이고, 빠져들어도 좋은 중독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선택은 개인의 몫이니 스스로 잘 판단해야겠죠? (하지만 얻어진 결과가 스스로의 선택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 자신이 선택한 것이라고 믿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과잉 소비의 시대를 살고 있으며, 가난한 나라들은 부유한 나라들을 따라잡기 위해 내달리고 있다. 과잉 소비의 나라들이 나머지 나라들에 대해 이렇게 기준을 설정하는 바람에, 세상을 누린다는 것은 곧 소비를 통해 세상을 포착하는 것을 의미하게 됐다. 포장된 쾌락은 바로 이런 새 세계를 가능케 한다. 인간이 전통적으로 경험해온 청각, 시각, 미각적 만족, 심지어 동작과 환각까지 끌어 모으고, 저장하고, 판매하는 새로운 방법을 가져와서 말이다. 이것이 포장된 쾌락이 일으킨 인간감각의 대변혁, 즉 포장된 쾌락의 혁명이다. 이 혁명이 인간의 경험을 너무나 근본적으로 바꿔낸 나머지 우리는 종종 그 변화 자체를 잊곤 한다.

-p.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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