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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에 대하여 - 병, 캔, 상자에 담긴 쾌락
게리 S. 크로스.로버트 N. 프록터 지음, 김승진 옮김 / 동녘 / 2016년 6월
평점 :
아주 오래전에 사람들을 중독시켰던 것들이 있었을까 곰곰히 생각해보아도 분명하게 떠오르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여기서 중독이라는 건 독극물에 해를 입는다는 뜻이 아니라 특정한 그것이 없으면 안절부절하며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을 갖게 되는 걸 말하지요. 금방 떠오르는 건 알콜 중독, 마약 중독....또 요새 문제가 되는 인터넷 혹은 스마트폰 중독이 있을텐데요. 그런 것들에 중독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며칠동안 책을 읽지 않으면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건 제가 책에 중독되었기 때문일겁니다.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에 대하여>라는 책에서는, 말 그대로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합니다. 제목만으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 책에서는 상자, 용기, 포장재로 인한 (그 내용물에 대한) 중독, 혹은 의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그 분야가 무척 다양합니다.
이 책은 포장된 쾌락이 어떻게 부상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1900년을 전후한 시기에 미국에서 매스 마케팅과 테크놀로지의 급속한 발달로 독특한 상품 집단이 등장한 과정을 다룬다. 이는 '현대 소비사회의 부상'이라는 더 큰 주제의 한 측면으로 볼 수도 있는데, 그 측면은 1920년대부터 현재까지 약 한 세기의 기간을 빨리감기로 돌려보면 윤곽을 더 뚜렷하게 볼 수 있다.
우리가 살펴본 상품들은 당시에 떠오르고 있던 '소비사회'의 일부였다. 즉 사람들이 물건을 만들기보다는 구매하게 되고, 또 그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물건을 소비하게 된 '쇼핑 문화'의 일부였다. 한때는 쾌락이 희소한 것이었고, 대게 사회적인 성격을 띠었으며, 심지어 공짜였지만, 기계화와 매스 마케팅을 거치면서 상품화되고, 대량생산되고, 개인 용량 단위로 판촉되고, 개인적 차원에서 소비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우리가 구매하는 물건은 우리 정체성의 일부가 돼, 우리가 타인과 자신을 구분하는 방식과 타인과 소통하는 방식을 재구성했다. 나아가 소비사회는 우리의 감각 경험도 변모시켰다.
-p.360
이 책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1장과 2장의 내용을 정독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두 장에서는 우리의 문명의 순간이 어떻게 보존되고 그것들이 튜브에 들어가기 시작한 후로부터의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포장재의 급격한 발달 이전과 이후로 문명이 나뉘는 건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데요. 통조림, 우유 팩, 콜라 병 같은 것들이 등장함으로서 식품의 유통 구조와 식품산업의 형태가 달라졌다는 걸 생각하면 그 뒤의 내용들도 이해하기 쉽습니다. 안전한 유통을 위한 포장재가 개발됨으로서 상표나 포장 디자인도 생겨났으니 새로운 직업군도 생겨났을테고요. 이런 것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 초기에는 많은 인력이 필요했겠지만 점점 산업화, 자동화의 진행으로 오히려 실직자가 늘었겠지요. 모든것은 문화의 흐름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담배조차 씹는 담배나 파이프 담배를 피우던 시절에는 그 중독성이 덜했지만 종이담배를 생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좀 더 깊게 들이마시게 되고 남녀노소 누구나 접할 수 있도록 향과 맛을 첨가하는 바람에 독성과 중독성 모두가 증가하고 말았습니다.
포장되는 것에는 식품뿐만 아니라 추억도 있는데요. 예전에 사진이 없던 시절엔 온전히 자신의 기억에 의존하며 과거를 추억해야만 했습니다. 우리 아이가 어릴 적에는 어땠는데 하면서요. 하지만 사진이 생겨남으로써 객관적으로 과거를 저장할 수 있게(일부겠지만요)되었습니다. 우리 어린 시절만 하더라도 필름과 현상비가 아까워 꼭 필요할때만 사진을 찍곤 했었는데요. 지금은 누구나 휴대폰에 있는 카메라로 쉽게 찍고 쉽게 버립니다. 추억을 담을 수 있는 매체, 사진을 담을 수 있는 매체가 달라진 것이지요. 코닥사에서 개발했던 필름이나 앨범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지금은 업로드 해둘 수도 있고, 전자 앨범을 만들수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초기 영화 - 이것도 사진기술의 발달과 함께 진화했겠죠-에서의 작업및 상영방식과 지금의 방식이 달라진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영화관만 해도 예전엔 각 극장에서 서로 다른 영화를 개봉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영화 개봉일이 되면 종로와 충무로를 누비고 다녔었는데, 현재는 멀티플렉스 형태라 영화관의 브랜드를 보고 찾아가는 방식으로 바뀌었죠.
이런 문화의 변화는 좋은 점도 있고 그렇지 않은 점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존재했던 TV 채널 전쟁. 좀 여유있는 집에서는 방에 TV를 따로 두어서 전쟁의 횟수를 줄였다지만 요새는 어디 그렇습니까. 정 맘에 들지 않으면 PC로 보거나 스마트폰으로 보면 되는걸요. 어제 뉴스에 따르면 TV를 보면서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사람도 40%가 넘는다고 하던데요. 현대의 사람들은 스마트폰이라는 상자에 든 내용물들에 중독이 되어 있나봅니다. 과거 축음기의 발명으로 LP에 소리를 가둬 두었을 때만 하더라도 모두 모여 소리를 즐겼었는데, 이제는 개인 기기를 이용하여 자신만의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건 취향의 존중일 수도 있지만 공유할 수 없거나 공유하지 않는다는 우울함도 함께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환상역시 포장 할 수 있는 것이어서 놀이 공원은 사람들의 환상을 잘 포장하여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누리게 해 줍니다. 이 책에서도 말하지만 실은 놀이공원이 어린이를 위한 공간이라기 보다는 어른을 위한, 어른의 마음속에 있는 아이를 위한 공간이기에 자신의 동심을 펼치며 환상을 이룰 수 있게 되어 있지 않나요? 쾌락과 환상을 한 장소에 묶어둠으로서 그 곳에 가면 환상의 세계를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엔 장단점이 있을겁니다. 급격한 변화, 정형화된 물건들, 용기 안에 들어 있는 즐거운- 맛난 것들. 이들은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고 잡아두려합니다. 한번 걸려들면 좀처럼 발을 빼기가 어렵죠. 그것은 그들이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져 있으며 중독되기 좋은 형태로 계속해 개발되고 있습니다. 기분 나쁜 중독도 있을 것이고, 빠져들어도 좋은 중독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선택은 개인의 몫이니 스스로 잘 판단해야겠죠? (하지만 얻어진 결과가 스스로의 선택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 자신이 선택한 것이라고 믿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과잉 소비의 시대를 살고 있으며, 가난한 나라들은 부유한 나라들을 따라잡기 위해 내달리고 있다. 과잉 소비의 나라들이 나머지 나라들에 대해 이렇게 기준을 설정하는 바람에, 세상을 누린다는 것은 곧 소비를 통해 세상을 포착하는 것을 의미하게 됐다. 포장된 쾌락은 바로 이런 새 세계를 가능케 한다. 인간이 전통적으로 경험해온 청각, 시각, 미각적 만족, 심지어 동작과 환각까지 끌어 모으고, 저장하고, 판매하는 새로운 방법을 가져와서 말이다. 이것이 포장된 쾌락이 일으킨 인간감각의 대변혁, 즉 포장된 쾌락의 혁명이다. 이 혁명이 인간의 경험을 너무나 근본적으로 바꿔낸 나머지 우리는 종종 그 변화 자체를 잊곤 한다.
-p.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