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런던의 조선 사람 엿보기 - 1904년 러일전쟁 종군기, 제2판
잭 런던 지음, 윤미기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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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책을 읽으려면 불쾌할 각오를 하고 읽는 것이 좋습니다. 초판 역자 서문에 분명히 경고(?) 문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뭐 옛날이니까 다소 그런 시선으로 볼 수도 있겠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책 읽기를 시작했는데요. 생각한 것보다 불쾌감이 심합니다.



역자가 그러했듯이 이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은 어쩌면 큰 실망감이나 모멸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일본군을 따라서 러일전쟁을 취재한 종군기자로서 바라본 조선, 조선인은 이제 곧 제국주의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는 허약한 모습 그대로였던 것이다.

-p.23


 일전에 읽은 <야성이 부르는 소리>의 저자 잭 런던의 조선 방문기라니 신기하기도 하고 호기심도 일어, 그의 문장이라면 당시의 조선 모습을 서양인의 시선으로 잘 서술해놓았으려니 했는데요. 조선을 까도 너무 깝니다. - 이런 교양 없는 표현이라니.



조선인들은 이미 그들을 점령해 지금은 주인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상전인 '왜놈'들의 몸집을 훨씬 능가하는 근육이 발달한 건장한 민족이다. 그러나 조선인들에게는 기개가 없다. 일본인을 훌륭한 군인으로 만들어주는 그러한 맹렬함이 조선인에게는 없다.

-p.61


한마디로 말해서 백인 여행자가 조선에 체류할 때 겪는 일들은 조선에 도착한 처음 몇 주 동안 기분 좋은 것과는 영 거리가 멀다. 만약 그가 예민한 사람이라면 두 가지 강한 욕구 사이에서 씨름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하나는 조선인들을 죽이고 싶은 욕구이고 또 하나는 자살하고 싶은 욕구이다. 개인적으로 나라면 첫 번째를 선택했을 것이다. 지금은 면역이 되어서 여행을 계속하기에 충분한 이성이 생겼다.

-p.67


이 외에도 조선인과 조선을 비하하는 말들이 어찌나 많은지 일일이 열거하다간 책의 많은 부분을 옮기게 생겼으니 그만하려 합니다. 잭 런던이 본 조선은 그러하였으며 아무리 일본군을 따라 조선에 들어온 종군 기자였다지만 일본군에 대한 호감이 엄청납니다. 그러니 게으르고 비위생적인 데다가 탐관오리가 득시글대는 조선은 일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시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일본군에 대한 호감이 조금씩 낮아지는 것 같기도 했지만요.


어쨌든 이런 이야기들이 종군기자 잭 런던의 글을 통해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생각하니 분하기 짝이 없습니다. 서양인의 눈으로 본 조선이 그러하다는 것 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일본에 비해 어쩌고저쩌고... 운운하는 것은 일본의 식민지배가 조선을 위해 행해진 것이며 무척 고마운 일이고 당연한 일이라는 게 그의 시선이었다니. 일본인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기사를 작성했다는 것 자체가 끔찍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는 편중된 시선으로 바라보며 일본군의 착취나 수탈, 도둑질도 정당하다 생각했습니다.



조선인은 또 다른 불만을 토로한다. 병사들이 닭과 달걀을 훔쳐 간다는 것이다. 가난한 조선 백성의 형편에서 그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다른 식으로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병사들이 있는가? 전쟁이 존재해온 이후로 병사들은 닭장을 점령하고 닭과 달걀은 병사들의 공공연한 먹을거리처럼 간주되어오지 않았던가? 인간이 전쟁을 일으킬 만큼 비 이성적인 한 병사들의 위장과 사고방식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p.75



그러니 자기 눈으로 보기에 미개해 보이는 조선인의 집에 들어가서 말에게 먹일 보리를 내놓으라고 큰소리를 떵떵 쳤겠죠. 가난에, 수탈에 시달리고 러일전쟁에 몸 둘 곳 없는, 자신들 끼니도 걱정해야 하는 조선인의 집에 들어가서 말먹이를 내놓으라는 게 말이나 됩니까. 달라고 할 땐 안 주더니 돈을 내니 너도나도 주더라며 비아냥거리던데, 20세기 초 미국에서는 그런 행동이 용납되었던 걸까요? 아니라는 걸 압니다. 그런데 어째서 조선에서만 그랬을까요? 그런 점에서 서양인이 - 잭 런던 혼자만의 시선이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조선인들을 어떻게 보았는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실은, 조선에 관한 묘사보다는 러일전쟁에 관한 종군 기자로서의 이야기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일본군의 허가가 떨어지지 않아 최전방으로 가지 못하고 조선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작성한 조선 기사에, 조선인의 후손인 제가 화가 날 수 밖에요. 그 당시를 살아보지 않아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알 수 없습니다만.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속이 상했습니다. 

더불어, 혹여 우리가 다른 나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잭 런던이 조선을 보는 시선으로 보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어쩌면 무의식중에, 혹은 의식하면서 그런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21세기 임에도 불구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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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가게
너대니얼 호손 외 지음, 최주언 옮김 / 몽실북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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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시인이자 문학가인 보르헤스는 도서관장으로 근무했던 독특한 이력이 있는데요. 그의 문학성과 평론은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30대 때부터 약시로 고생하면서도 거의 실명에 이를 때까지 80만 권의 책을 읽었다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의 우주와 같은 '바벨의 도서관'에 들어갈만한 작품들을 골랐다고 하면 - 제가 잘 못 알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가 '환상'을 테마로 골랐던 단편들이 있습니다. 그중 몇 권은 제가 읽고 리뷰하며 소개 한 적도 있었는데요. 난해한 것들도 있고,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평범한 독자와 위대한 독서가이자 문학가인 분의 내공은 다른 법이니까요.


이번에 '몽실 북스'에서 나온 신간 <마술가게>를 읽어보았습니다. 보르헤스가 선정한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더군요. 혹시 조금 어려운 것은 아닐까 걱정되었지만, 노랗고 예쁜 표지가 저를 자꾸만 끌어당겼습니다. 책 뒤표지에도 '판타지 풍의 고전,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라고 되어 있으니 안심하고 읽기로 했습니다. 어린이도 읽을 수 있는데, 나 같은 어른이야 편하게 읽을 수 있을 테지요.

확실히 그러하더군요. 어렵지 않습니다. 재미있고요.

솔직히 말하자면 맨 처음의 '목소리 섬(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조금 산만한 경향도 있습니다. 장소의 이동이 심하거든요. 하지만 이내 적응할 수 있습니다. 케올라는 게을러서(어쩐지 라임) 몰라카이의 현인이자 마법사인 장인 칼라마케한테 혼나지 싶었는데요. 역시나 그렇습니다. 말 잘 듣고 있었더라면 무서운 모험은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요. 그러나 어쩔 수 없습니다. 애초에 스티븐슨이라는 작가는 <보물섬>이라거나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은, 주인공이 무지무지 모험을 많이 해야 하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러니 케올라도 모험을 할 운명을 가지고 탄생했던 거죠. 중반까지는 흥미롭습니다만, 마지막엔 큰일이야! 어떡하지!!! 무섭습니다. 

'몽실북스'의 <마술가게>는 허버트 조지 웰스를 좋아하나 봅니다. 책에 실려 있는 6개의 단편 중 세 편이 허버트 조지 웰스의 작품이거든요. 어린이의 감성을 자극하지만, 어른에게는 두려운 공간일 수도 있는 '마술가게' 이야기를 읽으며 저도 한 번 방문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안 무서워할 자신이 있어요. 단, 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았을 경우에만요. '초록문'의 이야기는 언젠가 읽었던 단편이라 무척 반가웠습니다. 어디서 읽었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무척 재미있기도 하고 깜짝 놀란 부분도 있고 해서 아이에게도 이야기해 준 적이 있어요. <마술가게>라는 책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건 '눈먼 자들의 나라'였습니다.

눈먼 자들의 나라에서는 외눈박이가 왕이라는 말도 있지만 과연 그럴까요? 팔이 네 개 달린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 사는 사람이 우리의 세상에 온다면 스스로는 우리보다 편리하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제 생각에는 오히려 불편할 것 같거든요. 과연 눈이 보이는 누녜스는 어떻게 될까요?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와는 무척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로드 던세이니의 '얀 강가의 한가한 나날' 은 작가의 꿈결같은 세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던세이니는 자신이 상상한 것을 쓰는 작가가 아니라 꿈꾼 것을 쓰는 작가거든요. 멘델스존과 다른 꿈을 느낄 수 있는 단편이었습니다.

나다니엘 호손의 '페더탑'은 슬펐어요. 마녀의 말이 맞아요. 사람이면서 사람답지 않게 사는 자들도 많은데, 페더탑이 상처받지 않고 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허수아비와는 다른 매력을 가진 허수아비랍니다. 


가족과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출판된 몽실북스의 <마술가게>는 아주 어린 친구가 읽기엔 조금 어려운 것 같아요. 스스로 읽을 수 있는 나이라고 하더라도 어른이 함께 상상하며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고전이되 동화는 아니니까요. 적어도 초등학교 고학년쯤부터 스스로 상상하며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른에겐 더할 나위 없습니다. 환상적인 것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더욱요. 저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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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이 부르는 소리 잭 런던 걸작선 4
잭 런던 지음, 곽영미 옮김 / 궁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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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에 <야성의 절규>라는 책이 언급되자, 문득 초등학생 때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내용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커다란 개가 있었고, 무척 추운 곳에서 썰매를 끌고 으르렁거리고 울부짖었던 것만은 생각났습니다. 무척 좋아하던 소설 중 하나였기에 다시 읽고 싶어져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책이 없었습니다. 도서관에도 주니어용으로 나온 것 밖에 없더군요. 이 소설이 잊혀버린 건가 섭섭해하며 저자의 다른 책이라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잭 런던으로 검색을 했습니다. 이런, 제가 기억하던 <야성의 절규>는 <야성의 부름>이라거나 <야성이 부르는 소리>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있었던 겁니다. 반가운 마음에 <야성이 부르는 소리>라는 제목의 궁리 출판사에서 나온 책으로 골라 읽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몇 안되는 즐거운 기억을 찾아가기 위해서요.


그러나 이 책은 신나는 모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싸움과 몸부림, 그것이 야생과 인간의 세상 모두에 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밀러 판사의 대 저택에 속한 개로 우아한 생활을 하던 벅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지내는 시골 신사들처럼 자부심이 강하고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아버지인 세인트버나드의 근육과 털, 스코틀랜드 산 양치기 개인 어머니의 지혜를 물려받아 누구보다 멋지고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정원사의 조수인 매뉴얼이 자신을 몰래 팔아넘길 때까지만 해도 말이죠. 팔려간 벅은 처음으로 몽둥이가 무서운 것이며 그것을 들고 있는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개 장수의 손에서 알래스카의 클론다이크 지역으로 팔려간 벅은 우편배달 썰매개가 됩니다. 아시다시피 개들에게는 서열이 무척 중요한데, 썰매개의 경우엔 리더에게 절대복종, 주인에게 절대복종이 필요하기 때문에 위계질서가 무너지는 것은 우두머리(알파)도, 주인도 원하지 않습니다. 리더인 스피츠는 벅에게 적개심을 보이는데, 친구인 컬리를 잔인하게 죽이고 그 옆에서 웃던 스피츠를 향한 벅의 적개심을 눈치챘기 때문입니다. 벅은 그들과 함께하며 우아했던 자신의 과거를 버리고 썰매개로서의 삶에 적응하게 됩니다. 스피츠는 그런 벅의 목덜미를 노리는데, 교활하고 야비하게도 외부의 허스키 개들 100여 마리가 캠프를 습격했을 때, 그들을 물리치고 있는 벅의 목을 물어버립니다. 하지만 벅과 동료들은 살아남았는데요. 나날이 계속되는 벅과 스피츠의 신경전에 다른 개들도 동요합니다. 결국 스피츠는 자신이 파놓은 덫에 자신이 걸려들어 불쾌한 최후를 맞습니다. 그리고 무리의 대장이 된 벅은 스피츠보다도 더 멋지게 썰매를 리드합니다. 여기까지로 끝났더라면 야성이 부르는 소리라기보다는 이렇게 하면 썰매개 대장이 될 수 있다... 뭐 그런 소설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벅은 일종의 워크 홀릭이었나 봅니다. 지나치게 열심히 일하는 상사를 둔 부하직원들이 피곤하듯, 벅의 부하들도 힘들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열심히 일하고, 또 일한 나머지 우편물과 택배를 기다리던 고객님들은 대만족했을지 모르지만, 개들은 더 이상 업무를 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우편업무를 계속해야만 했던 개몰이꾼들은 그들을 경험도 없는 미국 남자들에게 팔아버립니다. 그리고 개고생 길이 다시 열렸습니다. 개들은 지쳤고, 사람들은 미숙했습니다. 미숙한 정도가 아니라 말도 안 되게 미련했습니다. 

손튼이라는 사람은 벅을 구해주고 깊은 우정과 사랑을 쌓았습니다. 벅은 판사의 저택에서 살 때조차도 느끼지 못 했던 애정을 손튼에게서 느낍니다. 야성의 부름을 받고 원시의 조상이 그랬듯이 자연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요.


이 책은 야성으로 점점 돌아가는 개, 벅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가혹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남는 그의 모습을 통해 혹독한인간 세상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폭력에 굴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목숨 걸고 해내기도 하고, 동료애를 꿈꾸다가 배신당하기도 하고, 처절하게 살아가다가 진한 우정과 사랑을 만나기도 합니다. 과연 나 자신의 안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진실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 자신의 속으로 들어가 생각하게 합니다.


이 <야성이 부르는 소리>는 잭 런던의 출세작이자 클론다이크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함께 실려 있는 <불을 피우기 위하여>, <북쪽 땅의 오디세이아>가 시리즈의 나머지 단편들인데요. <불을 피우기 위하여>는 영하 50,60도의 가혹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눈물겨운 상황에 처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의 고통이 전해지는 것 같아서 눈물이 핑 돌고, 마음이 아립니다. 이런 곳일수록 혼자여서는 안 된다. 반드시 동료가 있어야 한다는 노인의 말을 듣지 않은 그는 후회막심입니다. 여기에도 개가 등장합니다. 엑스트라로요. <북쪽 땅의 오디세이아>에는 한 남자의 슬픈 러브 스토리가 들어있습니다. 이것을 러브 스토리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결혼 첫날밤에 아내를 빼앗긴 추장이 그녀를 되찾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겪는 이야기들이 마음 아프게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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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6
강상중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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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의 작가라는 편협한 이유로 가까이하지 않았던 작가 나쓰메 소세키. 그러다 슬그머니 <도련님>을 읽고 즐거워했고,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어 볼까 망설이는 동안 '현암사'에서 하나씩 나오던 나쓰메 소세키 시리즈가 완결, 주변에서 한 권씩 챙겨 읽으며 그 감상을 말하는 바람에 마음이 많이 흔들렸습니다. 일본 소설들을 챙겨 읽는다고 해도 좋을 만큼 많이 읽으면서 어째서 나쓰메 소세키의 책은 읽으려 하지 않는 걸까. 저는 어쩌면 고전 문학은 어렵다는 편견에서 핑계를 대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망설이다 잊고, 기억해냈다 잊어버리는 동안에도 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시시때때로 일어나곤 했지요. 그러던 중, <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를 만났습니다. 강상중은 부모님이 일제시대 때 일본으로 건너가 정착한 재일교포 1세대인데요. 나가노 데츠오라는 일본 이름을 쓰며 일본 학교를 다녔지만 심한 차별을 겪으며 재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와세다 대학 정치학과에 재학 중이던 1972년 처음 한국을 방문해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합니다. 이에 강상중이라는 한국 이름(본명)을 사용하며 한국 사회의 문제와 재일 한국인이 겪는 차별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행동했다고 합니다(출판사 제공 저자 소개). 그는 학자, 교수, 저자로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나쓰메 소세키를 -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인생의 스승으로 여기고 있다고 합니다. 소세키의 책을 읽으며 자신의 인생과 닮아있는 주인공들에게 감정 이입을 하면서 나아갈 길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위안을 얻기도 하며 깊이 빠져들어갔습니다. 섬세하면서도 동시에 대담하며 유머러스하면서도 위태로운(p.14), 어떻게 보면 모순된 모습을 보여주는 그에게 매력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는 <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라는 책을 통해 수많은 나쓰메 소세키의 책들 중 데뷔작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전기 3부작 <산시로>,<그 후>, <문> 그리고 <마음>을 소개하며 소세키와 소세키 문학의 매력을 전합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소세키 문학의 행간을 읽어줍니다. 소설은 흐름 자체만으로도 즐겁지만 그 안에 내포된 의미나 배경을 알고읽을 때, 그 맛이 더 좋아지는 법입니다. 물론 반드시 그 패턴을 따라 읽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같은 것은 없습니다만 작가가 어떤 시각을 가지고,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썼는가 하는 걸 안다면 그 작품의 깊은 맛까지 음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작품에 대한 해설집 같은 책이로군요. 문학 작품의 해설집, 혹은 해설이 독이 될 때도 있습니다. 다소 난해한 소설을 읽었는데 마침 뒤에 해설이 있어,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더니 더욱 모르게 되어버리는 경우도 흔하지 않습니까. 멀리 갈 필요 없이, 국어 시간에도 겪는 일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다면 염려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이 책은 교양 있는, 사려 깊은 선생님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문학의 깊이를 담뿍 안고서 되도록 쉬운 말로 다정하게 읽어주는 기분이 들게 하니까요. 얼마나 그러 하냐 하면, 강상중으로 인해 소세키라는 작가의 매력이 마음속에 틀어박혀 저는, 인터넷 서점을 뒤적이고 말았습니다. 전집을 한 번에 사려 하니 제 기준으로는 큰 돈이 들게 생겨서 낱권으로 사야겠구나 싶었지만요. 일단은 이 책에서 소개하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산시로>시리즈, <마음>부터 읽어봐야겠습니다. 그 책들을 읽은 후 <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를 다시 읽는다면 더 뚜렷하게 마음에 박힐 것 같습니다. 아니, 어째서 저는 바보처럼 이제껏 소세키를 멀리했던 거죠?


AK 커뮤니케이션즈에서 발행 중인 AK 이와나미 시리즈에도 관심이 생겼는데요. 기회가 된다면 제1권인 이와나미 신서의 역사부터 읽어보고 싶습니다. 혹시 어렵지는 않을까, 내가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지만, 이 책 <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 정도라면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는 애초에 주니어도 읽을 수 있게 쓰인 책이니까요.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그러하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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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바다
김재희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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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분위기의 아름다운 바다를 그리게 하는 표지입니다. 김재희라는 이름에 끌렸고, 표지의 빛깔에 끌려 이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내 기억 속의 애월 바다는 쪽빛을 띄고 있지 않았지만, 책 속의 애월 바다는 함덕의 바다처럼, 월정리의 바다처럼, 하도리의 바다처럼 쪽빛을 띄고 있었습니다.


<봄날의 바다>주인공인 희영은 10년 전 동생 준수가 새별 오름 인근에서 은행원을 성추행하고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지만 구치소에서 자살해버린,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들의 무죄를 주장하던 어머니는 작년에 돌아가실 때까지도 준수의 무죄를 밝혀야 한다며 희영에게 당부했습니다. 동생이 살아 있을 때에도, 죽은 후에도 희영에게는 동생이 짐처럼 느껴졌습니다. 가해자의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특히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엔 지워도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평생 자신을 옭아맬 올무가 되어 언제고 준수와 자신의 이야기가 튀어나올지 몰라 두렵습니다. 

동생이 죽은 지 10년이 지난 현재, 새별 오름에서 당시의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다시 발생합니다. 그리고 인터넷에 올라온 연쇄살인설 찌라시에 한 가닥 희망을 가져봅니다. 희영은 사실을 알고 싶었고, 동생을 위해서라기 보다 자신을 위해 사건을 조사하려 제주에 내려옵니다. 주인장이 용의자일지도 모르는 바다 게스트하우스에 일부러 묵으며 그를 관찰하고, 그곳에서 현우를 만납니다. 현우는 사건에 접근하는 희영을 돕습니다. 희영의 친구 소정을 만날 때도, 감건호라는 프로파일러를 만날 때도 함께였습니다.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고향 애월에서 하나의 끈, 하나의 의지가 되어 준 현우는 어쩐지 끝까지 믿어주지 못 했던 동생 준수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준수에 대한 죄책감이 현우를 통해 치유되는 것 같았습니다.


<봄날의 바다>에서는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픈 이야기를 합니다. 준수가 판결이 나기 전에 자살했기 때문에 그 사건은 미결로 남았지만, 많은 의혹을 남기고 있습니다. 수많은 고등학생들 중에 하필 왜 그 아이가 지목되었던 것인지, 프로파일링이 그렇게 대단한 것이었는지. 구치소에서 바지를 찢어 목을 매 죽었다면 날붙이는 누가 전해 준 것인지. 부인과 자백, 그리고 다시 부인을 했던 준수. 과연 어느 것이 진실인지... 그 모든 것이 밝혀지지 못한 채 희영은 10년간을 고통 속에 살아온 것입니다. 과연 그녀는 모든 진실을 찾고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사실 조금 아쉬웠습니다. 초반 50여 페이지에서 추리도 아닌, 흐름상의 짐작을 했는데, 그게 맞아버렸거든요. 설마하니 그렇기야 하겠나 싶었는데, 추리물의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금새 눈치 채고만 것 같습니다. 게다가, 방언 적용이 잘 못 되어 있었습니다. 차라리 그냥 표준어로만 구사를 하는 편이 낫지 않았나 싶었는데요. 몇 개 나오지 않은 방언마저 이상하게 적혀 있어서 참 아쉬웠습니다. 희영이 제주공항 택시 승강장에서 택시를 타고 20여 분 달리니 애월의 한담 해변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실은, 제주공항에서 노형로터리를 벗어나는 데만도 20분은 걸릴 겁니다. 한밤중인 지금 달려도 30분 좀 넘게 걸리거든요. 뭐 그런 저런 게 괜히 마음에 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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