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9PM 밤의 시간 다음, 작가의 발견 7인의 작가전
김이은 지음 / 답(도서출판)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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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2 PM 책을 덮고 잠시 해선이 되어봅니다. 끈적끈적한 피들이 손가락 사이에 들러붙습니다. 그 질척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느낌이 싫어 거품 세정제로 손을 세심하게 씻어냅니다. 창밖엔 비가 내리고 이런 날엔 무언가가 나를 찾아올 것만 같아 두렵습니다. 하지만, 낮은 더 두렵습니다. 밝은 곳은 현실, 이렇게 어두운 밤엔 꿈이라도 꿀 수 있으니까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생각해보면 <11:59 PM 밤의 시간>의 주인공 해선의 처지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신이 운영하는 유기농 쿠키 카페도 잘 되어가고 있고, 공무원이며 순진한 남편 동식이도 그냥저냥 나쁘지 않습니다. 자기를 꼭 닮은 딸, 교영도 있고 - 지나치게 닮아서 위험합니다만 - 철모르는 아들 진영도 있습니다. 바로 옆집이 시댁인 것만 빼면 완벽합니다. 시장 터줏대감인 시어머니 문자는 옛날 통닭을 팔며 생활하니 경제적 문제도 없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산다면요. 하나뿐인 시누이는 딱 시누이스럽습니다. 

그러나 해선의 마음속에는 고르고가 살고 있었습니다. 페르세우스가 나타나도 퇴치하지 못할 그런 고르고 세 자매가 그녀의 마음 속에 단단히 들어앉아 있었습니다. 그 고르고는 인형의 모습을 하고서 교영의 품 안에서도 살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괴물은 해선의 엄마에게서부터 스며든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디기탈러스의 위험한 향을 맡으면서 말이죠.


<11:59 PM 밤의 시간>은 어둡습니다. 무척 어둡고, 검은빛을 띄고 있습니다. 이곳이 바닥인가 싶은데, 점점 더 아래로, 아래로 내려갑니다. 해선의 마음속의 어둠은 한밤중이면 밖으로 기어 나와 그녀의 주변을 물들입니다. 붉은색으로.

그녀가 원한 건 '진정한 평안'이었습니다.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는 편안한 생활,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저도 자주 하고 있기에 그녀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닙니다. 다만, 저는 스스로를 가두는 것으로 타인과의 접촉을 하지 않으려는 히키코모리적인 - 어쩌면 퇴행적인 행동을 하고 있지만, 해선은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갑니다. 아무도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 무시하지 않는 곳으로 가려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실은 롭 곤살베스의 그림과 같아서 그녀가 느끼는 것과는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걸 모른 채 말입니다.

그녀의 스위치가 켜진 건, 디기탈러스 과량 복용으로 자살한 엄마로부터 였는지, 좋아하는 걸 실컷 드시다가 저세상으로 -예정보다 빨리 - 하늘로 가버린 아버지 때문이었는지, 도대체 어떤 인간이었는지 알 수 없는 교영의 친아빠이자 해선의 죽은 전남편 때문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교영이 진영을 계단에서 밀어 죽이는 걸 본 것 때문인지 알 수 없습니다만, 어쨌든 그녀는 서서히 주변의 장애물을 하나씩 제거하면서 걸어갑니다. 그녀의 엄마가 어린 시절 귀에 속삭여주었던 우아함을 잃지 않기 위해. 호텔 엑시트에서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라면 못 할 일이 없습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는 동반자 클럽에 입성하는 것이 그녀의 꿈이고, 그녀의 종착지는 호텔 엑시트가 될 것입니다.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꿈의 공간 엑시트. 그곳에서는 설령 자살을 하겠다고 결심했다면, 그것마저도 이룰 수 있습니다. 다만, 클럽 가입비가 있는데요. 얼마인지는 비밀입니다. 해선은 아는데, 저는 모릅니다. 어찌 되었건 겨우 몇 억 정도는 아닐 것 같습니다. 파라다이스에 가는데 고작 그 정도이려고요. 해선이 알려주지 않았지만, 상현이 알려주지 않았지만, 보험 설계사 병숙이 알려주지 않았지만 기분 상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그곳에 갈 생각이 없으니까요. 내가 원하는 대로 뭐든지 해준다는 설정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걸리적거리는 것도 싫지만, 누가 옆에서 시중들고 비위 맞춰 주는 건 더 싫거든요. 그런 생활을 꿈꾸는 해선에게는 그것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고 여겨졌겠지만요. 그래서 그녀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 인간임을 포기했습니다. 그때마다 찾아오는 투견 더스트의 눈빛을 바라보면서요.

더스트는 그녀의 짝이었을지도 모르고, 그녀 자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11:59 PM 밤의 시간>은 한 여자가 파멸에 이르는 길을 잘 그려낸 소설입니다. 정신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한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방어하는지도 보여주고요. 마리 유키코의 <골든 애플>의 테마 감응정신병을 이 책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변의 여럿에게 전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엄마로부터 아이에게로 전염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는 대개 어린 시절 양육자의 사상이나 정신적인 면을 걸러내지 않고 순수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니 양육자에게 문제가 있다면, 아이에게서도 문제가 발견되기 마련이지요. 해선의 엄마도 우아한 사람이긴 했지만, 타인을 멸시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이 우위에 서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자신이 바닥으로 추락했을 때 견뎌낼 수 없었던 것일 테죠. 자신이 벌레처럼 바라보던 바로 그것이 되다니. 그리고 해선은 자라나 교영의 엄마가 됩니다. 교영은 또래 아이들보다 파괴적이고 가학적인 상상을 하며 그것을 즐깁니다. 그 아이에게 아름다운 동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어째서 교영이 그렇게 되었을까요? 마음에 들지 않는 남동생을 계단에서 굴려버린 것은 - 그러다가 죽을 줄 몰랐기에 저지른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교영은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동생이 죽은 뒤에도 전혀 죄책감이나 두려움 같은 건 없었던 걸 보면요. 해선은 아이에게 사이코패스 기질을 물려준 모양입니다.

두 사이코패스가 한자리에 있을 때, 과연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둘은 정말 서로를 사랑하며 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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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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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꿈을 꾸었습니다. 무척이나 흥미로운 꿈이어서 단편소설처럼 끄적여볼까 했지만, 저의 나쁜 버릇인 귀차니즘이 발동되어 그만두었습니다. 꿈의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어느 날 집으로 알약이 배달됩니다. 마치 이키가미처럼요. 이키가미에서는 죽음을 알리는 통보가 오고 어릴때 맞았던 약의 시한장치 때문에 죽는 것이지만, 제 꿈속에서는 추첨에 의해 이번에 죽을 사람으로 정해진 사람들이 배달된 약을 먹는 시스템이었습니다. 디스토피아였죠. 적절한 인구 조절 때문이라고 했는데, 자세한 이유는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제가 죽을 거라고 여겨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죠. 막상 약을 받고 나서 생각하니 억울했습니다. 꿈속의 가족 모두에게 - 그런 경우는 드물었는데도- 같은 날 약이 배달되었습니다. 죽기 싫었습니다. 도망칠 수 있다면, 달아나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빨리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매일매일 살아갈 사람처럼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죽어야 한다니...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어도 똑같은 고민을 했을 것 같습니다. 힘들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련 또한 많아서 아직은 여한이 없다는 말을 할 수 없거든요. 분명 내가 없더라도 세상은 돌아갈 텐데, 내가 없으면 안 되는 부분이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내가 없어도 나머지 사람들은 잘 살아갈 텐데, 지켜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요.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한 채 갑자기 죽음을 맞은 사람들은 사자가 된 후에 운명을 납득하고 저세상으로 갈 수 있을까요? 그래서 종교에 따라 이름은 다르지만 뭔가 죽기 전의 기억을 지우는 강이나 의식 같은 게 존재하나 봅니다. 아사다 지로의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에서는 매우 독특한 시스템이 있었습니다. 중유라는 곳에서 입국 심사 용지를 작성하는 것처럼 자신의 프로필을 작성하고심사 기준에 맞춰서 분류됩니다. 반성을 할 수 있는 교육실도 있어서 그곳에서 충분한 반성을 하고 나면 좋은 곳으로 보내줍니다. 정말 단 하나의 잘못도 하지 않은 사람은 극락 왕생하지요. 그러나 여기 미련이 엄청나게 남은 세 사람이 있습니다. 백화점 여성의류 코너의 쓰바키야마 과장, 조폭 두목 다케다, 그리고 아직 이곳에 오기엔 어린 7살 렌짱이 그들인데요. 과로사한 쓰바키야마 과장은 아직도 일에 대한 미련이 철철 넘칩니다. 그리고 똑똑한 아들과 아름다운 아내에게 작별 인사를 못한 것도 마음에 걸립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음행의 죄라니! 하늘을 우러러 한 점의 부끄러움.... 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렇게 죄라고 할 만한 걸 지은 것 같지 않은데.결혼 전에 만났던 여사친이자 온몸으로 정을 나누었던 그 여자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게 왜 잘못인지 모르겠습니다. 조폭 두목 다케다 역시 억울합니다. 정말 야쿠자인가 싶을 정도로 성실한 그는 아우들이 걱정됩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으로 오해받아 살해당하다니, 애초에 킬러가 노린 건 누구란 말인가요. 궁금합니다. 그리고 렌 짱. 자신을 키워주신 부모님께도 죄송하지만, 친부모를 만나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결국 그들은 다른 사람의 모습을 하고 세상으로 돌아옵니다. 단 3일 동안만요. 규칙은 세 가지. 돌아올 시간 엄수, 정체 들키지 않기, 복수 금지. 과연 그들은 그 규칙을 잘 지킬 수 있을까요? 규칙을 어기면 무시무시한 벌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잘 할 테죠.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불량 청소년으로 살아보기도 하고 야쿠자, 다단계 판매원 등등을 했던 작가의 다양한 경험 때문인지 이야기는 유쾌하기도 하고 흥미롭게 흘러갑니다. 그러다가 코끝을 찡하게 만들기도 하고... 죽은 자, 그리고 7일이라는 점에서는 위화의 소설 <제7일>이 생각납니다만,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은 그렇게 무거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책을 읽고 나서 책 정보를 찾아보니 <돌아와요 아저씨>의 원작 소설이라는군요. 그런 드라마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드라마는 원작을 잘 살렸을까요? 조금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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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
조 R. 랜스데일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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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남에게 쉽사리 털어놓지 않는 비밀은 있는 법입니다. 감추려고 말하지 않는 것도 있을 테고, 굳이 말할 필요가 없기에 드러내지 않는 것도 있을 겁니다. 저에게도 그런 것이 몇 가지 있는데요. 전자의 것도 있고, 후자의 것도 있습니다. 만일 털어놓는다면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지요. 정말 그럴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어릴 때보다는 더 많이 가지고 있고, 앞으로 더욱 많은 비밀을 쌓아가면서 살아갈 것 같아요. 그러나 어릴 때 안고 있었던 비밀 중 일부는 다 털어내 버렸는데요. 생각보다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비밀 없이 산다면 그것이 드러날까 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고, 불안해하지 않아도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건 저 역시 남의 눈을 의식하는 '사람'이기 때문일 테죠.


조 R 랜스데일의 소설 <밑바닥>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의 비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소한 비밀이나 상처이기도 했고, 인생의 방향을 다르게 만들어 버릴 만큼의 큰일도 있었죠. 왜 아니겠어요. 어른들이었는데요. 중장년, 그리고 노인들. 모든 걸 털어놓고 살 수 없는 인생의 뒤안길에 서 있었는데다가 시대적 배경이 1930년대니까 가슴속의 응어리 같은 것도 털어놓기 힘들었을 겁니다.특히 흑인이라면 더욱 그랬겠죠. 흑인이 대통령이 되는 세상인 지금도 인종차별 문제가 여전한데, 당시에는 더 심했거든요. 우리나라도 그랬잖아요. 신분제가 없어진 후에도 머슴이었던 자의 아들은 여전히 주인집의 아들에게 뭔가 불편한 마음이 있었다고 하던데요.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는 무척 심각해서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갖은 차별과 오해를 받곤 했습니다. 이 소설에서도 그런 점이 많이 드러나고 있는데, 자꾸만 깜둥이, 깜둥이 운운하면서 비아냥 거리는 인간들, 특히 네이선네 집안사람들은 짜증 그 자체입니다. 책은 좋은데 그들 때문에 덮을 뻔했습니다. KKK 단도 등장하는데, 복면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괴팍하고 파괴적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비밀들을 가지고 있을까요?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닐 텐데요. 동부 텍사스의 - 텍사스 치고는 비옥한 마을과 그 옆 흑인 마을, 그리고 그 사이에 사는 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비밀을 감추고 이웃을 대하고 있을까요.


<밑바닥>의 화자는 자신의 13세 소년 시절을 추억합니다. 그 나이에도 비밀은 있기 마련이죠. 나름대로의 비밀. 지금 우리나라로 치면 중1,2 때이니까... 말하지 않아도 알 만 하군요. 호기심도 많고, 말썽도 많이 부릴 때입니다만, 주인공인 소년 해리는 나름 예의도 바르고, 누이동생을 지킬 때는 지키는 멋진 오빠입니다. 어른들은 대공황이니 뭐니 힘들어도 아직 그런 건 잘 모르는 - 아이에 가까운 소년이었습니다. 하루는 누이동생과 함께 키우던 개의 안락사를 위해 강의 저지대를 탐험하는데요. 그곳에서 심하게 훼손된 흑인 여자의 시체를 발견합니다. 심지어 염소 인간에게 쫓기기까지 하는데요. 간신히 도망친 아이들은 이발사이자 지역 경관인 아버지께 사건을 이야기하고 그 후 마을은 뒤숭숭해집니다. 개는 안락사 당하지 않고 함께 살기로 결정되고, 사건에 대한 소년의 호기심은 그치지 않습니다. 백인들은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범인은 흑인이었을 것이고, 흑인이 흑인을 죽인 사건이므로 별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식으로 여기지만, 다음번에 백인 여성이 시신으로 발견되자 사건은 인종적인 것으로 발전합니다. 그 와중에 모스라는 흑인 노인이 범인으로 지목당해 잔인하게 공개 처형됩니다. 그를 지키지 못 했던 해리의 아버지 제이콥은 큰 좌절에 빠집니다. 정말로 모스가 범인이었을까요. 아니었다면 진범은 어둠 속에서 음흉한 웃음을 짓고 있었을텐데요.


모두가 지니고 있었던 서로 다른 비밀들. 그것들을 털어놓았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일도 아니었지만, 비밀들이 조금씩 얽혀 있었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분노를 낳고, 잔인함을 낳고, 슬픔을 낳았습니다. 광기 어린 한 인간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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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애플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7
마리 유키코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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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응정신병이라는 게있습니다만, 이 책의 날개를 읽기 전까지는 그런 병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습니다. <골든 애플>은 마리 유키코의 일곱 번째 작품으로, '감응정신병'이라는 정신병리학 증상을 모티프로 하는 여덟 가지 이야기가 숨 막히게(책날개에) 이어진다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감응정신병이 무언인가를 알아야 이 책의 이해가 쉬워질 테지요. 하지만, 저는 그냥 읽었습니다..... 아니요! 감응정신병이 무언인가를 알고 읽었어야 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감응정신병'이 무엇인가 검색해보고 눈을 질끈 감았으니까요.

감응정신병이란 한 사람의 정신이상자의 증세가 타인에게 감염되어 야기되는 정신장애라고 하는데요. 정신질병자나 조현병자의 환상이나 환각, 망상 등이 타인에게 전염되는 걸 말합니다.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종교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열혈 신자가 믿고 따르는 행위라거나, 부모님의 이상한 망상을 아이가 사실로 믿고 있는 것 같은 거 말이죠. 그런 걸 표현하는 용어가 바로 감응정신병이라고 합니다. 아마 정신질병자나 조현병자의 언변이 훌륭하고 그럴싸할수록, 카리스마가 있을수록 전염성이 높을 것 같고요. 듣는 상대의 마음이 어지럽거나 약하거나, 암시에 걸리기 쉽거나 미신을 믿는다거나 할수록 감염이 쉽게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딱히 정답은 없어요. 나는 강인하고 주관이 있으니까 절대 감염되지 않을 거라고 단언할 수는 없을 거라는 거죠. 혹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이 책을 읽어보셔요. 정말 그럴까,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책은 연작 단편인지 아닌지 아무튼 뭐 그런 개별적인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단편인데, 연관이 있어요. 그렇다면 연작 단편이겠죠. 그런데 과연 정말로 연결되어 있는 걸까요? 별도의 이야기일까요? 그러니 그냥 단편일지도 몰라요. 갸웃? 장편인 거 같기도 합니다.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척하면서 횡설수설하니 성가시죠? 말하는 저 역시 답답합니다.


<골든애플>에서는 '에로토마니아', '클레이머', '칼리굴라', '골든애플', '핫 리딩', '데자뷔', '갱 스토킹', '폴리 아 드'라는 정신학용어를 각 단편의 제목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그 용어가 이르는 대로의 스토리를 보여주지요. 

잡지에 소설을 연재하고 있는 인기 소설가 미사키는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과 동명의 개그맨 가와카미이자 백화점 멘치까스 판매원에게 칼을 맞습니다. 이에 그를 변호하고 나서는 마이코. 여기까지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진실은 어떨까요? 마이코의 주장대로라면 미사키가 가와카미를 스토킹했고, 도저히 참지 못 했던 그가 미사키를 찔렀다고 합니다만, 잡지 편집부의 주장으로는 가와카미가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착각한 나머지 편집부도 괴롭히다가 결국엔 작가를 찾아가 해코지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뒤에 이어지는 각각의 단편을 읽어나가다 보면, 이야기는 더욱 복잡해집니다. 위의 둘 중 하나가 진실이겠거니 하고 있던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되어, 사실은 미사키와 가와카미는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마이코가 훼방을 놓은 것 같습니다. 셋 중에 제정신이 아닌 사람은 도대체 누구냐고요. 


책 속의 사건이 이것 하나뿐이면 어떻게든 머리를 정리해보겠는데, 이게 다가 아닙니다. 가와카미가 근무하던 백화점 식품매장에서는 크로켓 속에서 사람의 손가락이 발견되는 대사건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참, 가와카미의 회사 제품은 아닙니다. 그 손가락은 어떻게 크로켓 안에 들어간 건가 하는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습니다. 그건 배경일 뿐, 다른 사건이 벌어지거든요. 그리고 또 몇 년 후 그 사건 때문이 벌어지는 또 다른 사건. 

교통사고 피해자가 기억해내지 못하는 상실된 단편들 속에 숨어있는 살인사건. 그녀가 살인을 한 건지, 피해자일 뿐인 건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시내의 한 맨션에서는 몇 년 새 사람이 살해당하는 일이 몇 번이나 일어나고, 그 일에 대한 소문이 커졌다가 사그라지고, 다시 커졌다가 사그라듭니다. 책의 마지막까지 읽고 나서도 그러니까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반은 명확하고 반은 애매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사건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이리저리하여 그리되었다고 하면 오,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일이 많은데, 기사를 그럴듯하게 쓴 기자의 글을 보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해버리기도 하고, 스스로 진실을 캐내는 건 생각보다 위험한 일이기도 하고 귀찮은 일이기도 하니 내 일이 아니면 그냥 듣고 잊어버리기 일쑵니다. 그러니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 누구는 옳고 누구는 그르며 누구는 정상인데 누구는 미쳤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참, 그렇네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신병에 감응된 것은 등장인물들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미끼를 물고 현혹되어버렸네요. 작가가 끌고 가는 대로 이리 끌려가고 저리 끌려 간 걸 보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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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섬 바벨의 도서관 5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김세미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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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실 북스에서 출판된 <마술가게>에 수록된 첫 번째 이야기 '목소리 섬'을 읽었더니 스티븐슨의 다른 단편들도 읽고 싶어졌습니다. '목소리 섬'이전에는 그가 쓴 단편을 접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중2병에 걸렸을 때  셜록 홈스, 오스칼 등과 더불어 내 마음을 떨리게 했던 상남자 실버가 등장한 <보물섬>의 저자 스티븐슨. 그의 책은 <보물섬>과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밖에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땐 막연한 동경심으로 읽었던 거죠. 소설이라기보다는 동화 같은 기분으로 읽었드랬습니다. '목소리 섬'에서는 앞서의 두 편과는 다른 모습을 보게 되었어요. 앞서 <마술가게>를 리뷰할 때 살짝 언급했지만, '목소리 섬'의 배경은 하와이의 한 섬, 몰로카이입니다. 하와이 원주민들 사이에서, 이 섬에는 오래전부터 마법사가 살았다는 전설이 있지요. 실제로 그랬을는지도 모릅니다. 처음 '목소리 섬'을 읽었을 때는 실제의 섬인가 가상의 섬인가 궁금했었어요. 지금은 한 세기도 훌쩍 지나버려서 찾아간다고 하더라도 주인공 케올라를 만날 수 없겠지만, 그의 마법사 장인은 아직도 목소리 섬에서 헤매고 있을 것만 같았거든요.


이 책에는 '목소리 섬'외에 '병 속의 악마', '마크하임', '목이 돌아간 재닛'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악마가 들어 있는 병을 산 후 부유함을 얻었지만 불안과 공포 때문에 이내 병을 팔아버린 남자 케아웨. 사랑스러운 여인을 만나 청혼하고 승낙을 얻은 날, 자신이 문둥병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되고 병을 치료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병을 삽니다만 이 병의 판매 규칙인 구매가격 보다 저렴하게 팔아야 한다는 덫에 걸려 매일매일 괴로워합니다. 이 남자가 되 산 가격은 1센트였거든요. 더 낮은 가격에 팔 수 없었던 거죠. 이런 사실을 아내 코쿠아에게 털어놓습니다. 아내는 프랑스령으로 가면 더 낮을 화폐단위가 있다는 걸 그에게 알려줍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여행을 떠나는데요. 소설의 끝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어 스릴감을 주었던 이야기, '병 속의 악마'였습니다.


'마크하임'은 올바르지 않은 인간입니다. 자신의 약혼녀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려고 평소에 거래하던 장물아비- 여기서는 중개인이라고 말하지만, 그래봤자 장물아비-에게 찾아갑니다. 그는 선물로 손거울을 추천하는데요. 여기서 마크하임은 울컥하고 맙니다. 아마도 내면에 숨겨두었던 양심 때문이었겠죠. 손거울이라니! 지난 과거와 죄악과 어리석음을 상기시키는 이런 물건, 이런 양심을 비추는 손거울을 주다니!(p.117) 화를 내는 마크하임에게 중개인은 물건을 사던지 꺼지라고 합니다. 이내 마크하임은 그에게 사과를 하고 다른 물건을 보여달라고 하는데요. 다른 물건을 찾던 중개인을 찔러 죽입니다. 그 뒤 그의 그의 마음의 소란함과 낯선 남자, 그리고 마크하임이 내린 결론과 결심이 이 소설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이 돌아간 재닛'은 무섭습니다. 재닛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마녀로 몰리고, 집단 징벌을 받습니다. 이때 나타난 주인공 목사가 예수님이 그러하셨듯,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치라... 같은. 뭐 그런 이야기는 안 했지만, 어쨌든 그녀를 구해줍니다. 그런데, 구하지 말걸 그랬습니다. 그 뒤로 재닛은 목이 이상하게 돌아간 채로- 한쪽 어깨 쪽으로 축 처졌었나 봅니다.- 공포심을 유발하는데요. 결국 목사는 신앙심을 대방출 할 기회를 획득합니다. 아이고 무서워요.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목소리 섬>은 그의 몽상가적 기질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오컬트적인 요소가 많이 보였는데요. 상상을 하며 읽는다면, 신비면서도 기괴함에 마음을 사로잡혀버릴지도 몰라요. 곡성을 보면서도 태연자약했던 저는 이 책을 읽다가 잠이 드는 기행을 보이기도 했지만, 실은 좀 무섭답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읽으셔야 해요. 슬며시 찾아와 내 곁에 서서 귓가에 속삭이는 악마를 발견하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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