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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오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
필립 스테드 지음, 에린 스테드 그림, 김경주 옮김, 마크 트웨인 원작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평점 :
마크 트웨인은 제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입니다. 아주 어렸을 때는 <왕자와 거지>를, 조금 자라서는 <톰 소여의 모험>,<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좋아했는데요. 책으로도 애니메이션으로도 모두 즐겁게 보았습니다. 어려서는 그들의 말썽과 신나는 모험을 재미있어하며 읽었는데, 어른이 되어서 만나니 그들은 마냥 즐겁고 행복한 아이들이 아니었어요. 몇 년 전에 <아서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를 읽었는데요. 타임 슬립물을 좋아하는 저인지라 진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마크 트웨인이 풍자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죠. 위트 속에 콕콕 박혀있는 풍자가 정말 즐거웠어요. 시간을 내어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군요. 이번의 <올레오 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덕분에 그의 책들을 다시 읽고 싶어져서 리스트업 했어요.
혤리혜성을 타고 태어난 그가 혜성이 다시 돌아오던 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요. 말년의 작품은 풍자를 넘어 우울했습니다. 사랑하던 딸이 세상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와 또 한 명의 딸이 죽어버렸으니 왜 안 그렇겠습니까. 그의 작품 <미스터리한 이방인>에서 그런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데요. 이 소설은 결국 완성되지 못한 미완의 작품입니다. 마크 트웨인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 저를 포함해서 - 그 뒷부분을 상상했죠. <미스터리한 이방인>은 네 가지 버전으로 남겨졌는데요. 편집자의 손을 거쳐 하나의 작품으로 하여 <미스터리한 이방인>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전 그 소설을 읽으며 편집자의 손을 거쳐 재탄생한 소설을 온전히 그의 작품이라고 보아도 좋은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요. 완성도의 문제가 아니라 작품 자체에 대한 서운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올레오 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은 편집자의 손이 아닌 칼데콧 상 수상자인 필립&에린 스테드 부부에 의해 완성된 작품입니다. 앞서 제가 말했던, 마크 트웨인이 사랑했던 딸들에게 들려주었던 동화들 중 유일하게 기록되었으나 완성되지 못했던 글이었는데요. 이름은 어쩐지 먹음직해 보이지만, 마크 트웨인의 세상이 19세기였던 걸 감안하면 오레오 쿠키도, 마가린도 없었지 않나.... 눈을 꿈뻑거리며 곰곰이 생각해봤는데요. 의외로 마가린이 19세기 프랑스에서 개발, 미국에서 1873년에 특허를 얻었다고 하니 어쩌면 이 마가린이 그 마가린인 거 같기도 하고. 어쩌면 마크 트웨인이 딸에게 이렇게 말했을지도 몰라요. "그 왕국에는 왕자가 있었는데..." "아빠, 왕자 이름이 뭐야?" "음.. 그러니까. 그래. 올레오 마가린이었단다." "꺄르르르르르. 웃겨."
아무튼 마가린에 신경이 무지 쓰이지만 사실 이 동화의 주인공은 올레오 마가린이 아닌 '조니'입니다.
조니는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었는데요. 그 당시의 기준으로 보아도 지금 기준으로 보아도 사랑받으며 사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소년이었습니다. 이 아이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는 걸 좀 잊어버린 것 같기도 해요. 왕의 권위는 하늘 높아서 이런 포고문을 내렸더라구요.
'오늘의 가두행렬은 최근 짐의 왕국을 지독히도 괴롭힌 원수, 다시 말해 극단적으로 키가 큰 놈들과 맞서 싸운 짐의 군사들의 영광스러운 승리를 축하하기 위한 것이다. 짐은 무한한 지혜와 체력을 바탕으로 모든 남녀에게 가장 적합한 키를 증명해 보였다. 오늘 이후로 짐보다 더 키가 큰 자는 짐의 권위를 모독하는 것이며 영원히 이 왕국의 적으로 간주될 것이다.' 이 말도 안 되는 포고문 때문에 전쟁에서 돌아오는 군인이나 그들을 환영하며 환호하는 사람들이나 모두 웅크리고 있지 뭐예요. 왕이 상상이상으로 키가 작았거든요.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조니의 집은 당장 먹을 것도 없어서 할아버지의 명령으로 친구처럼 지내던 닭 '전염병과 기근'을 팔러 도시로 나갔다가 그런 꼴을 본 거였어요. 닭의 이름은 '전염병과 기근'이지만 두 마리가 아닙니다. 한 마리에요. 인간도 먹을 게 없는 판에 닭이라고 뭐 제대로 먹었겠습니까만 은 이 녀석이 할아버지에 의해 잡아먹히는 것보다는 좋은 집에 가는 게 났겠지 싶었어요. 조니는 비쩍 마르고 앞을 보지 못하는 노파를 만났습니다. 구걸하는 노파에게 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며 닭을 친구로 삼아도 좋다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살게 해 준다고 약속한다면 닭을 드리겠노라고 했고, 노파는 닭을 받는 대신 아름답고 작은 씨앗을 한 움큼 건넸습니다. 엄청 힘든 상황이 닥치면 이 씨앗을 심고 확신을 가지고 기다리며 잘 돌보면 꽃이 핀대요. 그 꽃을 먹고 나면 배가 부르고 두 번 다시 허기를 느끼지 못할 거라고 했습니다.
소를 팔고 콩을 받아와서 혼이 났던 잭처럼 조니도 할아버지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습니다. 얼마 후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조니는 씨앗을 심었어요. 그리고 꽃을 먹었죠. 그러자 동물들의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했던 조니는 동물들과 친구가 되었어요. 이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 면 올레오 마가린 왕자는 어떻게 등장하나요.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입니다.
이 책은 필립 스테드가 마크 트웨인과 대화를 하다가 이야기를 이어받아 완결 짓는 식으로 진행되어요. 책 속에서 마크 트웨인과 대화를 하죠. 뭔가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조금은 냉소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이 이야기는 아이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어른을 위한 동화인 것 같아요. 예전에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봤는데요. 동화로 먼저 만났어야 했는데 영화로 먼저 만났지 뭐예요. 그래서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지?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신비롭긴 한데. 의미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거지? 동화를 만나고 나서 색이 분명해졌습니다. 아, 이런 이야기였구나.
이 책도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하더군요. 영화를 보기 전에 원작을 먼저 읽는 편이 좋을지도 몰라요.
<올레오 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은 아름답기만 한 동화도 아니고 사건을 명쾌하고 쾌활하게 해치우는 신나는 모험 동화도 아니거든요.
원작 필립&에린 스테드 글 그림 -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환상 동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