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방문자들 - 테마소설 페미니즘 다산책방 테마소설
장류진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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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하나같이 이렇게 떫을까요. 씁쓸하기도 하고요.

총 여섯 편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나마 시원하다!!!고 외칠 수 있었던 건 하유지의 '룰루와 랄라' 정도였을 겁니다.

페미니즘 소설을 읽으면 '나는 시원하고 남자는 불편할 거야.'라고 생각했었는데 나 역시 불편해지다니. 세상에 너무나 흔하게 일어나는 일들을, 그리고 나 역시 겪었던 일들 혹은 일부를 느꼈던 것들을 이렇게 소설가의 펜으로 옮기니 객관화가 되어 그런가요. 무척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혹시 남자들은 알까요. 계단을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에 미어캣처럼 벌떡 일어나 귀를 문에 대고 있기도 하고, 개인 이삿짐센터에 이사를 부탁하고서 남자의 짐이 없다는 걸 눈치챈 아저씨가 애프터(?)를 신청했을 때 웃으며 거절하면서도 불안한 그런 마음요. 그런 일은 외모, 나이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이더군요. 어두운 골목길을 걸으면서 뒤따라오는 남자에게 해코지를 당하면 어떡하나 염려하면서도 괜한 사람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함께 따라붙고요. 이런 생존에 관한 두려움을 이야기하면 괜한 오버 한다, 거울은 보고 사느냐 등등의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염려하지 않을 수 없어요. 뉴스에 보도되는 것처럼 누가 봐도 범죄의 행위를 하는 남자도 있고, 내가 괜히 예민한 거 아닌가 싶은 행위를 하는 남자도 있습니다. 늘 희한하게 생각하는 건,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성추행을 당한 여자는 무척 많아요. 예전에 통계를 보니까 8명 중에 5명은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더라구요. 그렇지만 남자에게 물어보세요. 성추행 했다는 남자는 어디에도 없어요. 아주 극히 일부의 파렴치한 남자만이 그런 짓을 하는 거죠. 후우... 무척 바쁘기도 하죠. 그들은. 극소수의 몇 명이 그렇게 많은 이들을 추행하고 다녔다는 말이 되잖아요. 이게 무슨 일일까요.

<새벽의 방문자들>은 그냥 소설이라고 보고 넘기기엔 찝찝한 이야기들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너무 현실적이에요.

첫 번째 단편 '새벽의 방문자들'은 무슨 영문인지 혼자 사는 주인공의 오피스텔의 벨을 누르는 남자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각기 다른 날 각기 다른 시간에 그녀의 벨을 누르고 문을 두들기기도 하는데요. 모두 같은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오피스텔에 성 매수를 하러 온 자의 표정이었죠.

'룰루와 랄라'에선 '여자는...'이라는 프레임이 등장합니다. 거기에 '여자니까'까지 등장해요. 갑질도 있고요. 주인공은 그 프레임을 조금씩 부수다가 한 방 먹이기도 합니다. 상상만 했던 그 걸 해내더라구요. 아주 좋았어요. 하하. 나라면 할 수 있었을까요.

'베이비 그루피'는 한숨 푹푹. 그루밍을 당하는 사람은 그게 그루밍인 줄 몰라요. 사랑인 줄 알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이 남자는 왜 나를 만나는 걸까 고민하죠. 그게 사랑이 아니라 섹스만을 원하는 거라는 걸 빨리 깨닫는다면 좋을 텐데... 어릴수록 잘 모르죠. 길들여졌으니까요. 그런데 어쩌면 그루밍을 하는 남자들 중에서도 자신이 그런 짓을 하는 거라는 걸 모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사랑하는데, 사랑하니까 몸이 더 달아오르는 거라고 할지도 모르죠.

'예의 바른 악당'은...... 음. 그래요.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런 친구 진짜 있어요. 친구이지만 친구가 아닌 그런 친구요.

'유미의 기분'은 스쿨 미투와 퀴어에 관한 이야기가 적절히 배분되어 있습니다. 아아.. .남자들끼리의 대화가 무지 불편해요. 진짜 저런 이야기들을 하겠지...라는 생각을 하니까 화가 나요. 선생님이 유미에게 사과하고, 유미가 선생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비록 내용은 세세히 나오지 않았지만 - 마주 앉은 그 장면은 왜 슬펐을까요. 슬픈 장면은 등장하지도 않았는데도.

'누구세요.'는 제일, 최고로 불편했습니다. 아아아아아아아!!! 남자가 쓰레기에요. 사랑한 적도 없는 것 같은 놈. 하지만 전 이 여자의 마지막 행위를 보고 웃을 수 없었습니다. 블랙 코미디인 건 미러링이건 엄청 불편해요.

소설들이 불편했다고 이 책을 읽은 걸 후회하느냐.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도 읽고 함께 불편했으면 좋겠어요.

같이 불편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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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칸트인가 - 인류 정신사를 완전히 뒤바꾼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서가명강 시리즈 5
김상환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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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책을 리뷰하는 사람들 중에 제 리뷰가 가장 형편없을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며 글을 씁니다. 이 책을 모두 이해하려 했으나 알고리즘이 고장 났는지, 인풋을 하면 여러 단계를 거쳐 아웃풋이 일어나야 하건만, 이상한 메시지만 도출하지 뭡니까. 제대로 도식화해서 이해했어야 했나 봅니다.

그러고 보니 '도식화'라는 단어는 칸트의 개념인 초월론적 차원에서 생산된 선험적인 그림을 뜻합니다. 이미지와 구별되는 것으로 영상이나 그림 같은 현상계의 것들, 경험적인 것들입니다. 하지만 도식이라는 건 현상계의 것이 아닌 앞서의 것과 다른 종류의 그림입니다. 경험 대상은 선험적인 그림을 매개로 비로소 감성과 지성이 협동할 수 있습니다. 경험 대상의 가능 조건에 해당하는 그림이 있는 것인데, 칸트는 그런 선험적인 그림을 '도식'이라고 부릅니다. (p.49) 자, 여기까지 이해하신 분 손.

쉽게 이해하셨다면, 이 책을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랜만에 만난 한자어의 향연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문제집이 아닌 이상 책에 글씨를 쓰는 걸 무척 싫어하지만, 이 책에는 글씨를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몇 번이고 읽어야만 할 테니까요. 그때마다 단어를 찾을 수 없기에 이번에 낯선 단어를 보면, 게다가 문맥상 유추가 어려운 단어를 보면 자를 대고 줄을 긋고 뜻을 적어두었습니다. 마치 영어공부를 하듯 말이죠. 처음엔 투덜거렸습니다. 뭐야. 이거 너무 어렵잖아. 그러나 읽어나가면서 반성했어요. 내가 어려운 책을 계속 피하기만 했구나.

다시 칸트로 돌아가서.

<왜 칸트인가>의 소제목은 '인류 정신사를 완전히 뒤바꾼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입니다. 전회가 뭐지...? '전회'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아마도 앞서의 내용을 완전히 뒤바꾸었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을 겁니다. 코페르니쿠스적이니까요.

이 책 <왜 칸트인가>에서는 칸트가 남긴 3대 비판서 <순수이성비판>,<실천이성비판>,<판단력비판>을 통해서 칸트 철학의 내용과 흐름을 말하며, 칸트를 중심으로 그전과 후의 철학이 어떻게 달라졌는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순수이성비판>에서는 이론 이성을 해부하며 인식의 문제를 규명합니다. <실천이성비판>에서는 윤리의 문제를 규명하고, <판단력 비판>에서는 심미적 체험의 세계와 생명체의 세계를 다룹니다. 이 3대 비판서는 천문학에서 코페루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함으로써 우주를 보는 시각을 다르게 만들었던 것처럼 칸트 이전의 '인식'에 관한 것을 '초월론적 차원'을 통해 새롭게 마주할 수 있도록 하는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칸트를 시작으로 발전한 독일 관념론 - 정신, 이성, 이념 따위를 본질적인 것으로 보고, 이를 통해 물질적 현상을 밝히려는 사상으로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중엽 독일을 중심으로 칸트에서 시작되어 피히테, 셀링을 거쳐 헤겔에 이르는 철학- 은 서양 철학사의 주류 중 하나가 되어 현대 사상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칸트는 3대 비판서를 통해 이론적 지식의 객관성을 따질 때의 기준, 실천적 행동의 도덕성을 문제 삼을 때의 근거, 예술적 창작의 심미적 가치를 판정할 때의 원리를 차례대로 해명하고자 했다. 자연에 대한 과학적 지식은 어떻게 가능한가, 보편적 타당성을 지닌 도덕적 행위는 어떻게 가능한가, 심미적 판단이 과학적 지식만큼 보편성을 띨 수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세 가지 물음에 차례로 답하고자 했던 것이다.

-p.153

이 책을 잘 이해했더라면 칸트의 철학이 말하는 바와 현대에 이르러서 중요한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을 텐데. 아직도 전 <왜 칸트인가> 이해를 못 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말하는 교과서적인 내용 말고, 제 자신이 느끼는 '칸트' 말입니다.

여전히 저에겐 철학이 어렵습니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큰 벽을 만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깨고 나가야 할 벽이겠지요.

책에 마구 붙여놓은 플래그 덕분에 책만 고슴도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정복할 수 있겠죠.

서울대에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고, 읽을 수 있는 서가명강 <왜 칸트인가>를 몇 번이고 읽는다면 말이에요.

직관 없는 개념은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p.42

오로지 선의지만이 절대적으로 선하다

-p.124

풀잎 하나의 생성조차 인간 이성은 기계적 원인들에 의해 이해하기를 결코 희망할 수 없다.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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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가 돌아왔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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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소설은 무서운 것들이 연속으로 나와서 사람을 옭아매는 경우도 있지만, 평범했던 일상이 비일상으로 변하며 벌어지는 괴이. 그것으로인해 안으로부터의 괴로움이 밖으로 뛰쳐나오는 것에 소스라치게 놀라곤합니다. 그리고 멀쩡했던 무언가가 어디론가 빨려들어가는.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이번의 C.J. 튜더 장편소설 <애니가 돌아왔다>에서도 스티븐 킹의 그것을 느꼈습니다. 도입부에서부터 사람을 확 잡아당겨 붉은 빛의 덩굴로 옴짝달싹 못하게 하더니만, 잠시 그 끈을 느슨히 놓아줍니다. 마치 별개의 일인 것처럼요.

한차례의 잔인한 사건이 끝난 후 그 배경의 마을 안힐에 마치 사기꾼 같은 남자가 사건이 일어난 방을 빌리고 심지어 학교의 교사로 취직합니다. 이상한 메일을 받았기 때문이죠.

나는 네 여동생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 그 사태가 다시 벌어지고 있어.


그가 다시 떠올리기 싫어도 자꾸만 따라다니는 과거의 일들이 결국 그를 다시 이 곳 안힐로 불러들였습니다.

철없던 어린 시절, 학교에서 제일 파워가 있었던 스티븐의 패거리 중 하나였으나, 나는 다른 이들과는 다르다고 여겼던 존은 어느날 발을 들여서는 안되는 버려진 탄광에 친구들과 함께 들어갑니다. 어린 여동생 애니가 몰래 따라왔을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어요. 그들은 그곳에서 아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들을 발견하는데요. 스티븐은 유골을 마치 장난감 다루듯 합니다. 갑자기 나타난 애니. 그리고 동굴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딱정벌레들 때문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도망치다가 그만, 스티븐의 쇠지렛대에 애니가 크게 다치고 죽어버립니다. 구할 길 없었던 그들은 그대로 도망치고, 차마 부모님께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 할 수 없었던 존이 머뭇거리는 새 부모님은 애니의 실종신고를 냈습니다. 그리고 48시간 후 애니가 발견됩니다. 집으로 돌아왔죠.

"조이."

그녀는 미소를 지었고...... 그때 나는 뭐가 잘못됐는지 깨달았다. 뭐가 너무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하게 잘못됐는지 깨달았다. -p.196

"눈사람이 다 어디 있어?"

"눈이 다 녹았네."

"그래. 하지만 눈사람이 다 어디 있느냐고 어디로 갔느냐고."

나는 설명해보려고 했다. 다시 눈이 오면 눈사람을 또 만들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렇게 얘기할 따름이었다.

"다를 거야. 그건 내 눈사람이 아닐 거야." -p.160

그랬습니다. 그건 존의 여동생 애니가 아니었습니다. 다음해에 똑같은 눈사람을 만들었다고 해도 그때의 그 눈사람이 아니듯, 애니역시 그랬습니다. 다시 돌아온 여동생으로 인한 비극.

존은 이 곳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그렇게 되었고, 똑같은 비극이 다시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무슨 슈퍼 히어로도 아니고. 소설은 비극을 막으려는 노력을 하는 쪽으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 존이 처한 위험을 당장 해결하는 쪽으로 흘러가려합니다. 존은 그래요. 좋은 선생님이자 양아치입니다. 뭐 이런 희한한 놈이 다 있나 싶다가도 좋은 선생님이기도하고 매너좋은 남자이기도 합니다. 한순간에 또 달라지지만요.

존을 위협하는 스티븐. 그런 스티븐을 협박하려는 존. 도박빚을 내어준 팻맨의 명령으로 존을 다치게하고 위협하는 글로리아. 소설은 미지의 존재때문에 불안한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간의 일들 때문에 불안합니다. 학교에서의 알력관계도 과거와 흡사합니다. 역사가 다시 반복되려합니다. 존의 유일한 친구 브랜든은 그에게 차라리 경찰에게 신고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존 역시 경찰에 신고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건 후에 스티븐의 입으로 밝혀지지만요.

이 소설은 호러소설이자 미스터리 스릴러물이기도 합니다.

과거의 일들과 현재의 일들이 얽히고 교차되기도 하며 새로운 골칫거리가 나타나면서 독자는 다각도의 공포를 느낍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전 하마터면 잠을 자다가 꿈으로 끌려들어갈뻔했지 뭐예요.

역시 심장에 좋지 않은 소설입니다.

여름에 어울리는 그런 소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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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른 : 저주받은 자들의 도시 스토리콜렉터 74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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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번성했으나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그나마 남아있는 사람들의 삼분의 일이 마약 중독자인 배런빌.

이곳에 모든 것을 기억하는, 과잉기억 증후군의 에이머스 데커는 FBI 동료 재미슨과 함께 휴가를 보내기 위해 와 있었습니다. 재미슨의 언니 앰버와 그녀의 딸 조이는 남편 프랭크의 직장 문제로 남들은 다 빠져나간다는 이 횅한 도시에 와 있던 건데요. 그들 역시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친하게 지내는 이웃은 별로 없습니다. 여섯 살 난 조이는 데커에게 살갑게 구는데 데커는 아이를 통해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자신의 딸과 아내를 떠올립니다. 떠올리려 하지 않더라도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이기에 괴로운 영상이 그와 함께하지만요. 그는 자신의 아이와 아내가 살해당한 현장을 보았거든요.

조이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데커는 이웃집에서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고 찾아가는데요. 그곳에서 두 구의 시신을 발견합니다. 목매달려 있는 시신 아래 대량의 혈액까지. 정말 이상한 현장이었습니다. 많은 영화에서 그렇듯 이젠 휴가가 끝나버렸군요. 주인공에게 휴가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인가 봅니다.

이 사건은 지역 경찰이 해결할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기에 FBI에도 보고하지만 결국 마약단속국(DEA) 에서 개입해야 한 문제였습니다.

지역 경찰인 그린과 레시티와 함께 곳곳을 조사하는 데커와 재미슨.

마을 사람들은 피폐한 이곳의 책임을 배런가(家)에 돌리고 있었습니다. 마을 이름이 배런빌인걸로 미루어보아 이 마을 전체를 소유한, 아니 한때는 소유했던 엄청난 가문 배런이 이곳이 엉망이 되는 데에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던 건데요.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1대의 존 배런이 얼마나 구두쇠에 고약한 사람이었는지. 자신들이 아는 것 그 이상이었다는 걸 몰랐어요. 그들은 존 배런이 대 저택을 지어놓고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1대의 존 배런은 자손들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았습니다. 자손들은 부유하게 지내기는커녕 막대한 영지와 저택을 유지하기 위해 죽을 만큼 일을 해야 했고, 너무 일찍 죽어버린 - 사고사로 처리되었지만 사실은 살해당했던 - 3대째의 존 배런 부부로 인해 현재의 4대 존 배런은 매우 매우 궁핍하게 살고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재산 상속은커녕 빚만 잔뜩 상속하고만 배런은 저택만큼은 지키고 싶었습니다. 은행에 융자도 받고 난방비도 아껴가며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었죠. 2대와 3대가 말했던, 어딘가에 숨겨져있는 1대의 재산은 환상일 뿐 존재하지 않을 거라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있었다면 이미 선대가 찾았겠죠. 집안 곳곳 벽에 뚫린 구멍이 이곳에 아무것도 없음을 증명할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배런가가 자기만 잘 먹고 잘 살고 있다고 여겼고. 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채 30여 년간 외롭게 지냈던 존 배런은 사람들의 시비에 마을에서 술 한잔하기도 힘들었습니다.

배런가의 탄광과 제지 산업으로 한때 번성했던 배런빌은 원망을 배런가에 돌리곤 마약에 찌들고 말았습니다. 그런 곳에 조이와 앰버가 이사 오다니. 만일 미리 알았더라면 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랬더라면 조이의 아빠 프랭크도 죽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사를 했고, 프랭크는 공장에서 로봇 팔에 끼어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데커가 발견한 두 구의 시체 이전에도 몇 명의 사람이 죽었다고 하는데 이들의 사건은 모두 연관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사건을 조사하다가 알게 된 이웃의 괴팍한 노인 프레드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사건을 파헤치던 데커와 재미슨은 프랭크의 죽음으로 괴로워합니다. 프랭크의 짐을 가지러 공장에 갔던 데커는 시설관리자가 프레드의 사이 나쁜 아들임을 알게 되고 약간의 의심을 합니다. 조사해두어 나쁠 건 없으니까요. 설마 프레드의 죽음까지 이번 연속 살인과 관련이 있는 걸까요.

이 소설에는 마약에 관한 문제가 무척 많이 등장합니다. 이른바 사회파 소설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 같아요.

등장인물도 많아서 처음부터 이름을 적어두고 읽을 걸 하는 후회를 했습니다. 한 번에 쭉 읽을 게 아니라면, 며칠 걸려 읽을 거라면 등장인물 이름을 좀 적어두고 간략하게 메모해두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주요 인물 외에 부수적인 인물이라거나 이미 죽은 사람의 이름도 자주 거론되는데 헷갈리거든요. 헷갈리는 등장인물, 그리고 사회 문제를 다룬 소설... 그래서 미미 여사가 떠올랐습니다. 미야베 미야키의 소설도 좀 그런 편이라서요. 특히 에도시리즈 말이죠.

<폴른: 저주받은 자들의 도시>에는 마약뿐만 아니라 산업 재해,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보험 이야기도 나오고 매장금 전설(?)도 등장합니다.이야, 매장금 전설이라니. 일본 소설이나 만화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바로 그 소재가 아닌가요. 그리하여 소설을 읽으며 이 소설의 주제는 마약인가, 산재인가, 보험인가, 아니면 매장금 전설인가. 하며 적어두었는데. 이런, 다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재미있어요.

다양한 내용을 다루지만 그것들이 따로 떼어서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던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말이에요.

이 도시 배런빌은 저주받은 곳이 아닙니다. 사람들 스스로 저주하고 있었고, 자신들을 파멸로 이끌고 있었던 거죠.

불 위에 얹어진 들통 속의 개구리 같은 그런 거였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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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쓸모 -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2가지 통찰
최태성 지음 / 다산초당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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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프로그램을 본방사수하지 않고 시간이 여유로울 때 한 번에 몰아보기를 하는 저는 지난주 마리텔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좋아하는 최태성, 큰 별쌤이 나왔다는 것조차 몰랐습니다. 알았으면 즐거운 마음으로 보았을 텐데 말이에요. 아니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서도 팔로우를 하고 있었는데, 과거의 오늘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 그 소식만 쏙쏙 집어먹고 있었지 정작 그분의 소식은 몰랐다는 게 스스로 의아한데요. 마리텔에 출연했다는 소식은 인터넷의 뉴스에서 알았지 뭡니까. 요새 실시간 검색어나 연관 검색, 뉴스에 유명인의 이름이 뜨면 깜짝깜짝 놀라는데요. 좋은 소식보다도 나쁜 소식이 많으니 솥뚜껑 보고 놀라는 셈이죠. '최태성' 이름이 딱 뜨니까, 아 또 왜? 하면서 기사를 읽었더니. 갑자기 마음이 촉촉해지더군요. 요새 마리텔은 방송 중 기부를 받는 도네이션 시스템으로 진행 중인데, 마리텔 역대 최고 금액인 19,190,301이 기부되었어요. 눈이 휘둥그레진 샘 오취리와 딘딘은 입을 다물 줄 몰랐는데요. '큰★별쌤의 랜선 제자 일동'이름으로 기부된 이 어마어마한 금액은 올해가 3.1 운동 100주년으로 절대 이날을 잊지 말자는 취지로 최태성과 랜선 제자들이 미리 약속했던 것이라고 하더라구요. 감동받았어요.

역사를 강의하는 명강사님들은 많지만 제가 최태성을 좋아하는 이유는, 학교에 계심직한, 하지만 실제로는 찾기 힘든 그런 선생님의 모습을 하고 계시기 때문일 거예요. 부드러운 카리스마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의는 가만히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역사의 흐름 위에 올라타 시간 여행을 하게 되더라구요. 강렬하고 힘을 주는 강의는 아니지만 정사와 야사를 오가며, 그리고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전해주는 이야기는 역사란 외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그때의 사람들을 이해하며 알 게 되는 것이라는 걸 느끼게 합니다.

이번에 만난 <역사의 쓸모>는 딱딱한 역사 강의나 시대의 흐름에 따른 강의가 아닙니다. 현재 내가, 그리고 사회가 처한 사실들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며 이겨내기 위해, 과거의 일을 돌아보며 지혜를 얻는 그 과정을 배워나갈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역사는 무엇보다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입니다.

수천 년 동안의 사람 이야기가 역사 속에 녹아 있어요.

그중에 가슴 뛰는 삶을 살았던 사람을 만나 그들의 고민, 선택, 행동의 의미를 짚다 보면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의 삶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게 바로 역사의 힘입니다. -- 1장을 들어가며

길을 잃고 방황할 때마다 최태성에게 답을 알려주었던 역사는 저에게도 길을 열어 줄 것인지. 누구에게나 그랬듯이 저에게도 그리할지. 염려를 담아 기대를 해봅니다.

이 책은 최태성의 온라인 강의를 들을 때처럼, 아니 그것보다 조금 더 부드럽게 진행됩니다. 그렇기에 중학생 이상이면 누구나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는 좋은 책입니다.

좋은 글귀들을 발췌해서 포스트에 옮기고 싶은데, 좋은 말이 너무 많아서 옮길 수 없습니다.

책 한 권을 통째로 베끼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직접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방학을 맞는 학생에게 선물해주셔도 좋겠습니다.

포스트 본문 중에 이렇게 강하게 권하고, 사서 보시라고 잘 말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이렇게 강조하고 싶습니다.

좋은 책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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