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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칸트인가 - 인류 정신사를 완전히 뒤바꾼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ㅣ 서가명강 시리즈 5
김상환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6월
평점 :
어쩌면 이 책을 리뷰하는 사람들 중에 제 리뷰가 가장 형편없을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며 글을 씁니다. 이 책을 모두 이해하려 했으나 알고리즘이 고장 났는지, 인풋을 하면 여러 단계를 거쳐 아웃풋이 일어나야 하건만, 이상한 메시지만 도출하지 뭡니까. 제대로 도식화해서 이해했어야 했나 봅니다.
그러고 보니 '도식화'라는 단어는 칸트의 개념인 초월론적 차원에서 생산된 선험적인 그림을 뜻합니다. 이미지와 구별되는 것으로 영상이나 그림 같은 현상계의 것들, 경험적인 것들입니다. 하지만 도식이라는 건 현상계의 것이 아닌 앞서의 것과 다른 종류의 그림입니다. 경험 대상은 선험적인 그림을 매개로 비로소 감성과 지성이 협동할 수 있습니다. 경험 대상의 가능 조건에 해당하는 그림이 있는 것인데, 칸트는 그런 선험적인 그림을 '도식'이라고 부릅니다. (p.49) 자, 여기까지 이해하신 분 손.
쉽게 이해하셨다면, 이 책을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랜만에 만난 한자어의 향연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문제집이 아닌 이상 책에 글씨를 쓰는 걸 무척 싫어하지만, 이 책에는 글씨를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몇 번이고 읽어야만 할 테니까요. 그때마다 단어를 찾을 수 없기에 이번에 낯선 단어를 보면, 게다가 문맥상 유추가 어려운 단어를 보면 자를 대고 줄을 긋고 뜻을 적어두었습니다. 마치 영어공부를 하듯 말이죠. 처음엔 투덜거렸습니다. 뭐야. 이거 너무 어렵잖아. 그러나 읽어나가면서 반성했어요. 내가 어려운 책을 계속 피하기만 했구나.
다시 칸트로 돌아가서.
<왜 칸트인가>의 소제목은 '인류 정신사를 완전히 뒤바꾼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입니다. 전회가 뭐지...? '전회'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아마도 앞서의 내용을 완전히 뒤바꾸었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을 겁니다. 코페르니쿠스적이니까요.
이 책 <왜 칸트인가>에서는 칸트가 남긴 3대 비판서 <순수이성비판>,<실천이성비판>,<판단력비판>을 통해서 칸트 철학의 내용과 흐름을 말하며, 칸트를 중심으로 그전과 후의 철학이 어떻게 달라졌는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순수이성비판>에서는 이론 이성을 해부하며 인식의 문제를 규명합니다. <실천이성비판>에서는 윤리의 문제를 규명하고, <판단력 비판>에서는 심미적 체험의 세계와 생명체의 세계를 다룹니다. 이 3대 비판서는 천문학에서 코페루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함으로써 우주를 보는 시각을 다르게 만들었던 것처럼 칸트 이전의 '인식'에 관한 것을 '초월론적 차원'을 통해 새롭게 마주할 수 있도록 하는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칸트를 시작으로 발전한 독일 관념론 - 정신, 이성, 이념 따위를 본질적인 것으로 보고, 이를 통해 물질적 현상을 밝히려는 사상으로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중엽 독일을 중심으로 칸트에서 시작되어 피히테, 셀링을 거쳐 헤겔에 이르는 철학- 은 서양 철학사의 주류 중 하나가 되어 현대 사상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칸트는 3대 비판서를 통해 이론적 지식의 객관성을 따질 때의 기준, 실천적 행동의 도덕성을 문제 삼을 때의 근거, 예술적 창작의 심미적 가치를 판정할 때의 원리를 차례대로 해명하고자 했다. 자연에 대한 과학적 지식은 어떻게 가능한가, 보편적 타당성을 지닌 도덕적 행위는 어떻게 가능한가, 심미적 판단이 과학적 지식만큼 보편성을 띨 수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세 가지 물음에 차례로 답하고자 했던 것이다.
-p.153
이 책을 잘 이해했더라면 칸트의 철학이 말하는 바와 현대에 이르러서 중요한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을 텐데. 아직도 전 <왜 칸트인가> 이해를 못 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말하는 교과서적인 내용 말고, 제 자신이 느끼는 '칸트' 말입니다.
여전히 저에겐 철학이 어렵습니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큰 벽을 만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깨고 나가야 할 벽이겠지요.
책에 마구 붙여놓은 플래그 덕분에 책만 고슴도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정복할 수 있겠죠.
서울대에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고, 읽을 수 있는 서가명강 <왜 칸트인가>를 몇 번이고 읽는다면 말이에요.
직관 없는 개념은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p.42
오로지 선의지만이 절대적으로 선하다
-p.124
풀잎 하나의 생성조차 인간 이성은 기계적 원인들에 의해 이해하기를 결코 희망할 수 없다.
-p.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