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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른 : 저주받은 자들의 도시 ㅣ 스토리콜렉터 74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9년 7월
평점 :
한때 번성했으나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그나마 남아있는 사람들의 삼분의 일이 마약 중독자인 배런빌.
이곳에 모든 것을 기억하는, 과잉기억 증후군의 에이머스 데커는 FBI 동료 재미슨과 함께 휴가를 보내기 위해 와 있었습니다. 재미슨의 언니 앰버와 그녀의 딸 조이는 남편 프랭크의 직장 문제로 남들은 다 빠져나간다는 이 횅한 도시에 와 있던 건데요. 그들 역시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친하게 지내는 이웃은 별로 없습니다. 여섯 살 난 조이는 데커에게 살갑게 구는데 데커는 아이를 통해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자신의 딸과 아내를 떠올립니다. 떠올리려 하지 않더라도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이기에 괴로운 영상이 그와 함께하지만요. 그는 자신의 아이와 아내가 살해당한 현장을 보았거든요.
조이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데커는 이웃집에서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고 찾아가는데요. 그곳에서 두 구의 시신을 발견합니다. 목매달려 있는 시신 아래 대량의 혈액까지. 정말 이상한 현장이었습니다. 많은 영화에서 그렇듯 이젠 휴가가 끝나버렸군요. 주인공에게 휴가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인가 봅니다.
이 사건은 지역 경찰이 해결할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기에 FBI에도 보고하지만 결국 마약단속국(DEA) 에서 개입해야 한 문제였습니다.
지역 경찰인 그린과 레시티와 함께 곳곳을 조사하는 데커와 재미슨.
마을 사람들은 피폐한 이곳의 책임을 배런가(家)에 돌리고 있었습니다. 마을 이름이 배런빌인걸로 미루어보아 이 마을 전체를 소유한, 아니 한때는 소유했던 엄청난 가문 배런이 이곳이 엉망이 되는 데에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던 건데요.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1대의 존 배런이 얼마나 구두쇠에 고약한 사람이었는지. 자신들이 아는 것 그 이상이었다는 걸 몰랐어요. 그들은 존 배런이 대 저택을 지어놓고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1대의 존 배런은 자손들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았습니다. 자손들은 부유하게 지내기는커녕 막대한 영지와 저택을 유지하기 위해 죽을 만큼 일을 해야 했고, 너무 일찍 죽어버린 - 사고사로 처리되었지만 사실은 살해당했던 - 3대째의 존 배런 부부로 인해 현재의 4대 존 배런은 매우 매우 궁핍하게 살고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재산 상속은커녕 빚만 잔뜩 상속하고만 배런은 저택만큼은 지키고 싶었습니다. 은행에 융자도 받고 난방비도 아껴가며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었죠. 2대와 3대가 말했던, 어딘가에 숨겨져있는 1대의 재산은 환상일 뿐 존재하지 않을 거라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있었다면 이미 선대가 찾았겠죠. 집안 곳곳 벽에 뚫린 구멍이 이곳에 아무것도 없음을 증명할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배런가가 자기만 잘 먹고 잘 살고 있다고 여겼고. 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채 30여 년간 외롭게 지냈던 존 배런은 사람들의 시비에 마을에서 술 한잔하기도 힘들었습니다.
배런가의 탄광과 제지 산업으로 한때 번성했던 배런빌은 원망을 배런가에 돌리곤 마약에 찌들고 말았습니다. 그런 곳에 조이와 앰버가 이사 오다니. 만일 미리 알았더라면 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랬더라면 조이의 아빠 프랭크도 죽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사를 했고, 프랭크는 공장에서 로봇 팔에 끼어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데커가 발견한 두 구의 시체 이전에도 몇 명의 사람이 죽었다고 하는데 이들의 사건은 모두 연관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사건을 조사하다가 알게 된 이웃의 괴팍한 노인 프레드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사건을 파헤치던 데커와 재미슨은 프랭크의 죽음으로 괴로워합니다. 프랭크의 짐을 가지러 공장에 갔던 데커는 시설관리자가 프레드의 사이 나쁜 아들임을 알게 되고 약간의 의심을 합니다. 조사해두어 나쁠 건 없으니까요. 설마 프레드의 죽음까지 이번 연속 살인과 관련이 있는 걸까요.
이 소설에는 마약에 관한 문제가 무척 많이 등장합니다. 이른바 사회파 소설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 같아요.
등장인물도 많아서 처음부터 이름을 적어두고 읽을 걸 하는 후회를 했습니다. 한 번에 쭉 읽을 게 아니라면, 며칠 걸려 읽을 거라면 등장인물 이름을 좀 적어두고 간략하게 메모해두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주요 인물 외에 부수적인 인물이라거나 이미 죽은 사람의 이름도 자주 거론되는데 헷갈리거든요. 헷갈리는 등장인물, 그리고 사회 문제를 다룬 소설... 그래서 미미 여사가 떠올랐습니다. 미야베 미야키의 소설도 좀 그런 편이라서요. 특히 에도시리즈 말이죠.
<폴른: 저주받은 자들의 도시>에는 마약뿐만 아니라 산업 재해,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보험 이야기도 나오고 매장금 전설(?)도 등장합니다.이야, 매장금 전설이라니. 일본 소설이나 만화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바로 그 소재가 아닌가요. 그리하여 소설을 읽으며 이 소설의 주제는 마약인가, 산재인가, 보험인가, 아니면 매장금 전설인가. 하며 적어두었는데. 이런, 다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재미있어요.
다양한 내용을 다루지만 그것들이 따로 떼어서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던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말이에요.
이 도시 배런빌은 저주받은 곳이 아닙니다. 사람들 스스로 저주하고 있었고, 자신들을 파멸로 이끌고 있었던 거죠.
불 위에 얹어진 들통 속의 개구리 같은 그런 거였을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