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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방문자들 - 테마소설 페미니즘 ㅣ 다산책방 테마소설
장류진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7월
평점 :
어쩌면 하나같이 이렇게 떫을까요. 씁쓸하기도 하고요.
총 여섯 편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나마 시원하다!!!고 외칠 수 있었던 건 하유지의 '룰루와 랄라' 정도였을 겁니다.
페미니즘 소설을 읽으면 '나는 시원하고 남자는 불편할 거야.'라고 생각했었는데 나 역시 불편해지다니. 세상에 너무나 흔하게 일어나는 일들을, 그리고 나 역시 겪었던 일들 혹은 일부를 느꼈던 것들을 이렇게 소설가의 펜으로 옮기니 객관화가 되어 그런가요. 무척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혹시 남자들은 알까요. 계단을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에 미어캣처럼 벌떡 일어나 귀를 문에 대고 있기도 하고, 개인 이삿짐센터에 이사를 부탁하고서 남자의 짐이 없다는 걸 눈치챈 아저씨가 애프터(?)를 신청했을 때 웃으며 거절하면서도 불안한 그런 마음요. 그런 일은 외모, 나이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이더군요. 어두운 골목길을 걸으면서 뒤따라오는 남자에게 해코지를 당하면 어떡하나 염려하면서도 괜한 사람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함께 따라붙고요. 이런 생존에 관한 두려움을 이야기하면 괜한 오버 한다, 거울은 보고 사느냐 등등의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염려하지 않을 수 없어요. 뉴스에 보도되는 것처럼 누가 봐도 범죄의 행위를 하는 남자도 있고, 내가 괜히 예민한 거 아닌가 싶은 행위를 하는 남자도 있습니다. 늘 희한하게 생각하는 건,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성추행을 당한 여자는 무척 많아요. 예전에 통계를 보니까 8명 중에 5명은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더라구요. 그렇지만 남자에게 물어보세요. 성추행 했다는 남자는 어디에도 없어요. 아주 극히 일부의 파렴치한 남자만이 그런 짓을 하는 거죠. 후우... 무척 바쁘기도 하죠. 그들은. 극소수의 몇 명이 그렇게 많은 이들을 추행하고 다녔다는 말이 되잖아요. 이게 무슨 일일까요.
<새벽의 방문자들>은 그냥 소설이라고 보고 넘기기엔 찝찝한 이야기들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너무 현실적이에요.
첫 번째 단편 '새벽의 방문자들'은 무슨 영문인지 혼자 사는 주인공의 오피스텔의 벨을 누르는 남자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각기 다른 날 각기 다른 시간에 그녀의 벨을 누르고 문을 두들기기도 하는데요. 모두 같은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오피스텔에 성 매수를 하러 온 자의 표정이었죠.
'룰루와 랄라'에선 '여자는...'이라는 프레임이 등장합니다. 거기에 '여자니까'까지 등장해요. 갑질도 있고요. 주인공은 그 프레임을 조금씩 부수다가 한 방 먹이기도 합니다. 상상만 했던 그 걸 해내더라구요. 아주 좋았어요. 하하. 나라면 할 수 있었을까요.
'베이비 그루피'는 한숨 푹푹. 그루밍을 당하는 사람은 그게 그루밍인 줄 몰라요. 사랑인 줄 알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이 남자는 왜 나를 만나는 걸까 고민하죠. 그게 사랑이 아니라 섹스만을 원하는 거라는 걸 빨리 깨닫는다면 좋을 텐데... 어릴수록 잘 모르죠. 길들여졌으니까요. 그런데 어쩌면 그루밍을 하는 남자들 중에서도 자신이 그런 짓을 하는 거라는 걸 모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사랑하는데, 사랑하니까 몸이 더 달아오르는 거라고 할지도 모르죠.
'예의 바른 악당'은...... 음. 그래요.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런 친구 진짜 있어요. 친구이지만 친구가 아닌 그런 친구요.
'유미의 기분'은 스쿨 미투와 퀴어에 관한 이야기가 적절히 배분되어 있습니다. 아아.. .남자들끼리의 대화가 무지 불편해요. 진짜 저런 이야기들을 하겠지...라는 생각을 하니까 화가 나요. 선생님이 유미에게 사과하고, 유미가 선생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비록 내용은 세세히 나오지 않았지만 - 마주 앉은 그 장면은 왜 슬펐을까요. 슬픈 장면은 등장하지도 않았는데도.
'누구세요.'는 제일, 최고로 불편했습니다. 아아아아아아아!!! 남자가 쓰레기에요. 사랑한 적도 없는 것 같은 놈. 하지만 전 이 여자의 마지막 행위를 보고 웃을 수 없었습니다. 블랙 코미디인 건 미러링이건 엄청 불편해요.
소설들이 불편했다고 이 책을 읽은 걸 후회하느냐.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도 읽고 함께 불편했으면 좋겠어요.
같이 불편해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