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러브레터
야도노 카호루 지음, 김소연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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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저는 오랫동안 인터넷 같은 것과는 인연이 없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페이스북도 반년 전에 시작했습니다. 뭔가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자유로운 시간을 주체할 수가 없었고, 달리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오랫동안 아무런 취미도 없이 살아온 제가, 시간을 때울 방법은 인터넷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페이스북을 시작해서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을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중략)

제가 사는 동네에는 이제 곧 벚꽃이 핍니다.

당신네 동네는 어떤가요?

-p.11

인터넷을 할 것 같지 않았던 50대의 남자가 남들이 다 한다는 인터넷을 하게 되고 겨우 반년 전부터 페이스북을 하다 우연히 - 지금 와서는 정말 우연이었을까 하는 의심도 들지만 - 삼십 년 전 자신과의 결혼식 날 돌연 달아나버린 옛 연인을 발견해 메시지를 보냅니다.

처음엔 답장을 주지 않았던 그녀였지만 몇 번의 계절이 바뀐 후 그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전하자 드디어 답장을 합니다.

독신인 것 같은 그가, 자신이 떠나버렸던 그가 암에 걸려 쓸쓸하게 지내고 있다는 게 마음에 걸려서였을까요. 어렵게 답장을 한 그녀 미호코와 그녀의 서신을 반긴 남자 미즈타니는 서로가 함께 했던 대학 시절을 회상하며 당시의 일들,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눕니다.

괜찮으시다면 당신의 주소를 가르쳐주실 수 있을까요?

어디에 살고 계시는지 정도는 알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입니다.

현재의 이름도, 주소도 알려주지 않는 그녀.

저는 내내 어째서 결혼식 날 그를 버렸을까 궁금해하며 그들의 인연을 읽어나갔습니다.

페이스북에서 번갈아가며 메시지를 보내는 그들.

페메를 저렇게 길게 남기는 사람들도 있는건가 머릿속에 페이스북 메신저 창을 띄워 그려보았지만 상상도 못하겠습니다. 30년 전의 그에게서 저런 메시지를 받았다면 나는. 과연.

두근거려 잠 못 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더 이상의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짧은데, 복잡한 이 심경.

에도가와 란포가 21세기에 돌아와 다시 글을 쓴 것 같습니다.

반전의 느낌이 그러합니다. 그의 향기가 강합니다.

다른 독자들의 추천대로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읽어보았습니다.

글의 의미가 바뀌었습니다.

전혀 다른 맛, 다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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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 철학을 잊은 과학에게 과학을 잊은 철학에게
장회익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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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학창시절 물리, 생물, 화학, 지구과학으로 나뉜 과학 과목을 공부했었습니다. 저는 생물과 화학을 선택했었는데 물리와 지구과학은 계산할 것도 많고 복잡해서 싫었습니다. 심지어 나는 절대 못한다고 생각했었죠. 대학에 가서 생화학을 배우면서도 여전히 생물과 화학은 별개의 것이라고 여겼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여러 과학 서적을 읽다 보니 과학을 네 가지로 분류하여 이것은 좋고 이것은 싫다고 선을 딱 그을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점점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생물과 화학을 완전히 갈라놓고 생각하기 어렵듯이 물리나 지구과학(이라고 말하는 우주과학) 또한 그런 게 아닐까 합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 한 우물을 파는 것도 좋지만 그것이 반드시 미덕이라고 할 수 없는 이 시대에서 살아가다 보니 과학을 네 가지로 분류해서 공부했던 건 어디까지나 편의를 위해서였으며 실제로 그렇게 사분화된 사고를 하는 게 좋지 않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에서는 과학을 철학과 합쳐서 생각합니다. 책 소개를 읽을 때만 하더라도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신 차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철학자라고 알고 있는 데카르트 역시 과학자였으며, 과학자로 알고 있던, 철학자라고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그 역시 철학자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5 원소설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가 알고 있던 많은 철학자들은 자신의 철학을 증명하기 위해 수학, 과학을 이용했고, 새로운 이론을 발견해낸 과학자들도 철학 하여 사고하는 과정에서 그것들을 도출해냈습니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는 솔직히 쉬운 책이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장회익 교수는 12세기 곽암 선사의 심우십도와 16세기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에서 착안, 이 책의 흐름을 정했습니다.

처음엔 동양 철학과 사유가 나오는 바람에 그걸 이해하는 데 한참 걸렸습니다. 아니 실은 아직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쉬운 책을 주로 읽어온 제 탓입니다. 장회익의 글이나 문장은 쉬운 말로 쉽게 쓰여있었습니다. 제가 모자라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책을 읽다가 블로그 이웃 중 몇 분이 떠올랐습니다. 그분들이라면 이 책을 쉽게 읽어나가실 텐데...

서양 철학 쪽으로 가니 좀 편해졌습니다. 한자, 한자어 때문이었나 봅니다. 한자 공부를 해야 할까요. 아이고...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읽으면 되는 걸 굳이 적어가며 이해해보겠다고 공식을 따라 쓰고 대입해가며 읽은 저는 뭘까요. 이 책을 읽으시는 분께 처음엔 그냥 쭉 읽어나가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서 다시 읽을 때는 천천히 깊게 철학 하며 읽으라 권합니다.

이 책은 열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매 장에서 철학 이야기, 철학자 이야기, 철학 혹은 과학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마무리는 대개 물리나 수학 이야기를 하는데요. 인문과 과학을 넘나들며 아우르는 책입니다. 과거 뉴턴이나 데카르트도 이런 식의 사유를 했을 것 같습니다. 깊이 생각하고 관찰하고 고민하다가 탄생하는 위대한 발견들. 아인슈타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상대성이론 같은 거, 제가 이해할 수 있을 리는 없지만 이런 과정들에 의해 탄생했다는 걸 보며 역시 범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이야기'형식을 취하고 있고, 또 특정 분야의 사전 지식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으나, 불가피하게 일정 분량의 수학적 표현들마저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오히려 이러한 수학적 표현 그 자체가 중요한 지적 성취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기에, 힘이 든다고 해 수학적 표현을 피해가는 것은 산을 안내하는 자가 산을 피해가는 길만 안내하려는 태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p.8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동서양의 철학자, 학자 그리고 과학자들입니다. 그들의 이론은 이해할 수 없어도 그 이름만은 친숙해 만나면 반가웠습니다.

여현 장현광의 <우주설>에서부터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스피노자, 볼츠만 등을 책에서 만나며 그들의 철학과 함께합니다.

이 책의 서두에서 고등학교에서 배운 내용만으로도 이해 가능하게 서술하였다 했지만, 첫 번째, 물리 수업을 제대로 들었을 것. 두 번째, 그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 필요조건일 듯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책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특히 물리 관련 지망하는 학생에게는 좀 더 넓은 시야를 줄 수 있을 책이었습니다.

맨발에 가슴 풀어헤치고 저잣거리 들어서니

흙투성이 재투성이라도 얼굴엔 함박웃음 가득하다.

신선이 가졌다는 비법이 없어도

마른 나무 위에 곧바로 꽃을 피우는구나.

-p.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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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쇼핑몰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넘어
박노성.정윤환.조영준 지음 / 성안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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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인터넷 쇼핑몰 운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엔 도메인을 따서 직접 세팅을 하는 형식이었기에 - 물론 지금도 그런 형식의 쇼핑몰도 많지만 - 여러 가지 복잡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홍보가 큰 문제였죠. 따라서 수수료가 있지만 운영하기 나름 편리하다는 이유로 옥션에 사업자 등록을 하고 물건을 올리곤 했었는데요. 주문은 개별 쇼핑몰보다는 주로 옥션에서 발생했어요. 시기 상조였나 봅니다. 사진 하나 찍고 작업해 올리는 것도 힘들었고, 아기도 어리고 집안 상황도 꼬여있고 해서 별로 좋은 여건은 아니었기에 흐지부지되고 말았어요. 온라인에서 물건을 산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 사람이 많았던 때라 매출이 저조했었고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운영에 열의가 없었다는 것도 한몫했죠. 그 시기를 잘 넘겨서 2010년대를 맞이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은 온라인 쇼핑이 보편, 활성화되어 있어요. 마트나 백화점에서 직접 물건을 보고 고르기도 하지만 온라인 몰에서 물건을 사면 집 앞까지 바로 배송해주니까 얼마나 편리해요. 이용자가 늘어난 만큼 사업자도 늘었는데요. 구매자로써는 배송의 편리함, 가격비교 등등 이점이 있기에 신나지만 판매자로서는 경쟁이 엄청나기에 오프매장과 마찬가지로 살아남으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요. 그런데, 경쟁자들을 제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뭘 어찌해야 할까요.

공부, 공부, 공부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책으로 공부하던 강의를 듣던, 시장 돌아가는 것도 알아야 하고요. 온라인에서 어떻게 홍보할 것인가, 마케팅 전략은 어떻게 세울 것인가... 이런 걸 공부할 필요가 있어요. 나는 타고났으니까 그냥 열심히 하면 된다고!라고 말하는 사람도 그냥 멍하니 있는 건 아닐 테죠. 뉴스도 보고 인스타나 네이버 검색을 통해서 트렌드를 공부하고 살피고 있을 거예요. 마케팅을 공부했다거나 다른 곳에서 이미 경력을 쌓았다면 문제가 없지만 완전 초보는 어쩌면 좋죠? 저였다면 막막했을 텐데...

요즘은 책들이 참 잘 나와있더라고요. 이번에 읽은 <최강의 쇼핑몰>만 해도 그래요. 이 책은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에 최적화하는 법을 중심으로 가이드하고 있지만 인스타그램 같은 곳에서 홍보하려면 다른 전략을 짜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도 해줍니다. 스마트 스토어에 입점하고 있는 업체가 얼마나 많은지. 수많은 점포들 중에서 살아남는 점포만 살아남잖아요. 온라인이라고 우습게 보고 누구는 떼돈 벌었네... 나도 할 수 있어. 하며 무조건 들이대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을 거예요. 공부해야 해요.

안 그럼 저처럼.... 흑.

<최강의 쇼핑몰>은요.

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닌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책

쇼핑몰 플랫폼의 날카로운 분석과 선택에 도움을 주는 책

쇼핑몰 마케팅의 이론적인 지식 배경과 구체적인 사례가 어우러진 책

실질적인 매출 성과를 올리는 마케팅 노하우를 담은 책

세밀한 매뉴얼과 쇼핑몰 사업 계획의 통찰을 주는 창업 가이드!

이런 의도로 집필되었다고 해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제대로 운영하려는 사람이 봐야 할 단 한 권의 책은 아니지만 참고해서 나쁠 것 없는 책, 도움이 되는 책인 것 같아요. 제가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할 때에도 이런 가이드가 있었다면 좀 더 좋은 수익을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더라구요.

그리고 이 책은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운영에 최적화되어있어요. 스마트스토어에 입점 중이거나 입점 계획이 있다면 도움이 되지만 다른 플랫폼을 이용할 때에는 참고 서적 정도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책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스마트 스토어 만 이용하는 판매자 710명 중(설문 응답자) 55%가 월 매출 200만 원 미만이라고 하니 다중 플랫폼을 고려하는 것이 옳은 방법일 거예요.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고 있는 검색 엔진인 네이버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죠.

저는 온라인 쇼핑몰 운영이나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 입점할 계획은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좋은 것들을 얻었어요. 이를테면 블로그 마케팅에서 최적화에 관한 부분이라거나 무료 이미지 사용이 가능한 사이트 같은 거요. 저는 픽사베이를 이용하고 있었는데요. 그 외에도 다른 좋은 사이트들이 있더라고요. 시간 내어 한 번씩 들어가 보려고 해요. 각 사이트마다 특징이 있으니 서로 다른 사진들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책에서는 스마트스토어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블로그, 인스타그램, 유튜브를 통한 효율적 홍보를 가이드 하기도 해요. 매체 각각 특성에 맞춘 전략이 필요하죠. 저도 조금 도움을 받아 볼까 해요.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의 효율적 운영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책을 읽으며 연구해보려고요.

쇼핑몰 창업에 관한 공부를 적극적으로 하시려는 분은 창업, 마케팅 전문 교육기관 셀러마케팅 캠퍼스라는 곳에서 교육을 받을 수도 있나 봐요. 교육비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책 뒷날개에 5만 원 수강 할인 쿠폰이 붙어있더라고요. 사용기간은 2020년 8월 30일까지니까 책을 읽고 공부하고 싶으신 분은 쿠폰 사용기간 만료 전에 수강 신청하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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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전 - 설명할 수 없는 마음들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기 위하여
김버금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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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다

[동사]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다

구골만큼 사랑해. 그것은 어떤 느낌일까. 나를 닮은 아이가 있다는 것. 나를 엄마,라고 부른다는 것. 두 팔을 벌리면 뛰어와 내게 안긴다는 것. 온몸으로 안긴다는 것. 내가 지은 이름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 내가 사라진 세상에서도 그 이름으로 살아갈 거라는 것. 그 아이가 온몸으로 나를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어떤 느낌일까.

-p.86

'사랑하다'라는 동사에 담긴 작가의 생각이 갑자기 가슴을 쳐, 안방구석을 빙글빙글 돌아다니며 사색에 감긴 딸에게, 십수 년 전 그랬던 것처럼 두 번 손뼉을 치고 팔을 활짝 벌렸습니다. 아이는 방긋 웃으며 다가와 꼬옥 껴안았습니다. 다만, 이번엔 나보다 커진 녀석이 나를 안아주었다는 것만이 예전과는 달랐습니다. 자신의 품으로 나를 안았습니다. 그땐 내 아이 역시도 나를 구골만큼 사랑했고, 온몸으로 사랑했지만, 자아가 커진 녀석은 내가 지어준 자신의 이름이 남의 입에서 불리는 걸 싫어합니다. 극혐한답니다. 섭섭했습니다. 이유를 물었습니다. 자신의 이름이 함부로 의미 없이 불리는 게 싫다고 했습니다. 내가 지어준 이름이 싫은 게 아니었구나. 몇 날 며칠을 고민해 지은 이름을 미워하는 줄 알고 서운했습니다. 하지만 녀석은 나름의 방법으로 자신의 이름을 아끼고 있는 거였습니다.

김버금 작가는 <당신의 사전>을 통해 '단어'가 가진 자신의 의미를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글은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며, 잔잔하기도 합니다. 형용사나 동사에 담긴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이야기를 한 단어로 표현했다기보다는 한 단어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기에 그 단어가 나에겐 어떤 의미인지 떠올리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처연하다','미안하다','애틋하다'같은 단어의 사전적 의미와 더불어 인생에 놓인 부분이 피어오릅니다. 47개의 단어와 47편의 이야기는 독자 자신의 마음의 이름을 알려주고, 생각에 잠기게 합니다. 그렇게 한 단어가 여러 개의 의미로 자리에 앉습니다.

제 사전엔 무엇을 적을 수 있을까요.

국어사전을 펴서 눈에 띈 단어를 가지고 이렇게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바람으로 그칠 테지요.

그래서 저는 오늘도 책을 읽고 책과 함께 내 이야기를 합니다.

김버금 작가만큼 잘 쓰지는 못하더라도.

가장 빛나는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제는 그 말을 이렇게 바꾸어 말하고 싶다. 가장 빛나는 날은 우리에게 이미 왔다고, 그리고 각기 다른 빛으로 빛날 날들은 앞으로도 무수히 올 것이라고. 그러니 우리, 빛나지 않는 오늘을 사랑하는 건 어떤가. 살아온 무수한 날들을 더 사랑해보는 건 어떤가. 제 안에 작은 꽃을 틔우는 무화과처럼. 오늘이란 꽃을 품은 우리에게도, 지금 이 순간이 가장 빛나는 날일 테니까.

-p.127 '익숙하다'

너의 내일은 힘내지 않아도 좋은 날이기를. 너의 내일은 힘내지 않아도 충분하기를. 힘든 사람에게 힘내라는 인사말 대신 정반대의 말을 해주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했던 날이 있었다.

내일은 당신이 힘을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충분한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p.174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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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김종관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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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영화를 만들길 잘했다고 느끼는 까닭은, 결국은 나의 허비되고 실패하고 아깝게도 다시 올 수 없는 지난날들의 힘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버려진 시간들이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선물로 받는다.

-p.106

영화를 만들고 글을 쓰는 김종관 감독은 배우 이지은의 첫 영화인 <페르소나- 밤을 걷다>를 통해 대중에게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더 테이블>,<최악의 하루>라는 영화를 통해 이미 그와 익숙해진 이도 있을 테지만 워낙 때리고 부수고 웃고 즐기는 영화를 좋아하는 저에겐 여전히 먼 곳에 있는 감독입니다.

<최악의 하루> 시놉시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었는지 잊었습니다. 무언가를 소개하려다가 연관되어 읽었던 것 같은데... 아니 소개하려다 말았을지도 모릅니다. 저의 기억이란 이렇게 보잘것없는 것이어서 내가 무엇을 하려고 했었던 것인지 겨우 몇 분 전의 일인데도 .... 어라,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더라...

김종관의 기억은 특별한가 봅니다. 나였다면 벌써 잊어버렸을 그 기억들을 사진과 글과 자신의 내장 메모리에 두었습니다. 그의 기억은 오래 간직할 단 하나의 순간을 품음으로써 더 완벽해집니다. 그 완벽함을 나는 영상으로, 글로 만납니다.

<나는 당신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는 시를 품은 에세이 느낌입니다. 산문인데 음악이 흐릅니다. 예전에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선율인데 기억날 듯 말 듯 안타까운 그 기억의 한 조각이 그의 손을 빌려 형태로 남았습니다. 시야 언저리에서 스쳐 지나가듯 흘려보냈던 것들이 이 책에서는 생명을 얻고 피어납니다. 하지만 이내 목련처럼 제 기억에서 툭 떨어져 휴지처럼 사라져버릴 겁니다.

김종관 감독의 영화를 내가 본 적이 있었던가.... 그의 영화는 끝을 맺지 않는 열린 결말일지도 모른다고 상상했습니다. 가끔 글이 열린 채로 끝나버리거든요. 그런 거 싫은데. 사진 예쁘다. 방금의 싫음은 어느새 지워버리고 예쁜 사진 속에 눈을 담습니다. 아니 눈에 사진을 담는 거였던가요. 아무렴 어떻습니까.

그의 글을 따라 그가 되어 길을 걷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을 걷습니다.

제주도에는 사실 올레길 외에도 수많은 길이 있고, 그 길만큼, 그 길을 지난 사람들만큼 서로 다른 추억과 사연들이 있다. 계절마다 날씨마다 다른 옷을 입고 기다리는 그 길들은 닳은 듯 닳지 않은 길이다. 그 많은 길들 중 하나인 올레길은, 길의 시작과 끝이 있지만 길을 걷는 목적은 그 끝에 있지 않다. 빨리 걸어도 좋고 천천히 걸어도 좋고, 쉬어도 좋고 뒤를 돌아봐도 좋다. 걸음이 멈추는 끝은 마을의 그루 나무이거나, 작은 포구이거나, 해 질 녘의 텅 빈 해수욕장이곤 했다. 끝은 다음으로 이어진다. 그 끝에 선 기분은 마치, 보신각의 종이 울리며 새해가 되는 순간과 닮았다. 잠시 시간이 멈출 것만 같은 그 순간에도 초침은 조금의 멈칫거림도 없이 무심히 움직일 뿐이니.

-p.59

그의 글은... 말하자면 가온 다를 기준으로 자신을 포함한 그 아래에서 조용히 흐르는 음악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베이스 위에서 춤추는 소프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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