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사전 - 설명할 수 없는 마음들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기 위하여
김버금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다

[동사]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다

구골만큼 사랑해. 그것은 어떤 느낌일까. 나를 닮은 아이가 있다는 것. 나를 엄마,라고 부른다는 것. 두 팔을 벌리면 뛰어와 내게 안긴다는 것. 온몸으로 안긴다는 것. 내가 지은 이름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 내가 사라진 세상에서도 그 이름으로 살아갈 거라는 것. 그 아이가 온몸으로 나를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어떤 느낌일까.

-p.86

'사랑하다'라는 동사에 담긴 작가의 생각이 갑자기 가슴을 쳐, 안방구석을 빙글빙글 돌아다니며 사색에 감긴 딸에게, 십수 년 전 그랬던 것처럼 두 번 손뼉을 치고 팔을 활짝 벌렸습니다. 아이는 방긋 웃으며 다가와 꼬옥 껴안았습니다. 다만, 이번엔 나보다 커진 녀석이 나를 안아주었다는 것만이 예전과는 달랐습니다. 자신의 품으로 나를 안았습니다. 그땐 내 아이 역시도 나를 구골만큼 사랑했고, 온몸으로 사랑했지만, 자아가 커진 녀석은 내가 지어준 자신의 이름이 남의 입에서 불리는 걸 싫어합니다. 극혐한답니다. 섭섭했습니다. 이유를 물었습니다. 자신의 이름이 함부로 의미 없이 불리는 게 싫다고 했습니다. 내가 지어준 이름이 싫은 게 아니었구나. 몇 날 며칠을 고민해 지은 이름을 미워하는 줄 알고 서운했습니다. 하지만 녀석은 나름의 방법으로 자신의 이름을 아끼고 있는 거였습니다.

김버금 작가는 <당신의 사전>을 통해 '단어'가 가진 자신의 의미를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글은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며, 잔잔하기도 합니다. 형용사나 동사에 담긴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이야기를 한 단어로 표현했다기보다는 한 단어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기에 그 단어가 나에겐 어떤 의미인지 떠올리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처연하다','미안하다','애틋하다'같은 단어의 사전적 의미와 더불어 인생에 놓인 부분이 피어오릅니다. 47개의 단어와 47편의 이야기는 독자 자신의 마음의 이름을 알려주고, 생각에 잠기게 합니다. 그렇게 한 단어가 여러 개의 의미로 자리에 앉습니다.

제 사전엔 무엇을 적을 수 있을까요.

국어사전을 펴서 눈에 띈 단어를 가지고 이렇게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바람으로 그칠 테지요.

그래서 저는 오늘도 책을 읽고 책과 함께 내 이야기를 합니다.

김버금 작가만큼 잘 쓰지는 못하더라도.

가장 빛나는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제는 그 말을 이렇게 바꾸어 말하고 싶다. 가장 빛나는 날은 우리에게 이미 왔다고, 그리고 각기 다른 빛으로 빛날 날들은 앞으로도 무수히 올 것이라고. 그러니 우리, 빛나지 않는 오늘을 사랑하는 건 어떤가. 살아온 무수한 날들을 더 사랑해보는 건 어떤가. 제 안에 작은 꽃을 틔우는 무화과처럼. 오늘이란 꽃을 품은 우리에게도, 지금 이 순간이 가장 빛나는 날일 테니까.

-p.127 '익숙하다'

너의 내일은 힘내지 않아도 좋은 날이기를. 너의 내일은 힘내지 않아도 충분하기를. 힘든 사람에게 힘내라는 인사말 대신 정반대의 말을 해주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했던 날이 있었다.

내일은 당신이 힘을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충분한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p.174 '충분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