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 철학을 잊은 과학에게 과학을 잊은 철학에게
장회익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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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학창시절 물리, 생물, 화학, 지구과학으로 나뉜 과학 과목을 공부했었습니다. 저는 생물과 화학을 선택했었는데 물리와 지구과학은 계산할 것도 많고 복잡해서 싫었습니다. 심지어 나는 절대 못한다고 생각했었죠. 대학에 가서 생화학을 배우면서도 여전히 생물과 화학은 별개의 것이라고 여겼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여러 과학 서적을 읽다 보니 과학을 네 가지로 분류하여 이것은 좋고 이것은 싫다고 선을 딱 그을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점점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생물과 화학을 완전히 갈라놓고 생각하기 어렵듯이 물리나 지구과학(이라고 말하는 우주과학) 또한 그런 게 아닐까 합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 한 우물을 파는 것도 좋지만 그것이 반드시 미덕이라고 할 수 없는 이 시대에서 살아가다 보니 과학을 네 가지로 분류해서 공부했던 건 어디까지나 편의를 위해서였으며 실제로 그렇게 사분화된 사고를 하는 게 좋지 않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에서는 과학을 철학과 합쳐서 생각합니다. 책 소개를 읽을 때만 하더라도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신 차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철학자라고 알고 있는 데카르트 역시 과학자였으며, 과학자로 알고 있던, 철학자라고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그 역시 철학자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5 원소설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가 알고 있던 많은 철학자들은 자신의 철학을 증명하기 위해 수학, 과학을 이용했고, 새로운 이론을 발견해낸 과학자들도 철학 하여 사고하는 과정에서 그것들을 도출해냈습니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는 솔직히 쉬운 책이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장회익 교수는 12세기 곽암 선사의 심우십도와 16세기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에서 착안, 이 책의 흐름을 정했습니다.

처음엔 동양 철학과 사유가 나오는 바람에 그걸 이해하는 데 한참 걸렸습니다. 아니 실은 아직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쉬운 책을 주로 읽어온 제 탓입니다. 장회익의 글이나 문장은 쉬운 말로 쉽게 쓰여있었습니다. 제가 모자라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책을 읽다가 블로그 이웃 중 몇 분이 떠올랐습니다. 그분들이라면 이 책을 쉽게 읽어나가실 텐데...

서양 철학 쪽으로 가니 좀 편해졌습니다. 한자, 한자어 때문이었나 봅니다. 한자 공부를 해야 할까요. 아이고...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읽으면 되는 걸 굳이 적어가며 이해해보겠다고 공식을 따라 쓰고 대입해가며 읽은 저는 뭘까요. 이 책을 읽으시는 분께 처음엔 그냥 쭉 읽어나가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서 다시 읽을 때는 천천히 깊게 철학 하며 읽으라 권합니다.

이 책은 열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매 장에서 철학 이야기, 철학자 이야기, 철학 혹은 과학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마무리는 대개 물리나 수학 이야기를 하는데요. 인문과 과학을 넘나들며 아우르는 책입니다. 과거 뉴턴이나 데카르트도 이런 식의 사유를 했을 것 같습니다. 깊이 생각하고 관찰하고 고민하다가 탄생하는 위대한 발견들. 아인슈타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상대성이론 같은 거, 제가 이해할 수 있을 리는 없지만 이런 과정들에 의해 탄생했다는 걸 보며 역시 범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이야기'형식을 취하고 있고, 또 특정 분야의 사전 지식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으나, 불가피하게 일정 분량의 수학적 표현들마저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오히려 이러한 수학적 표현 그 자체가 중요한 지적 성취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기에, 힘이 든다고 해 수학적 표현을 피해가는 것은 산을 안내하는 자가 산을 피해가는 길만 안내하려는 태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p.8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동서양의 철학자, 학자 그리고 과학자들입니다. 그들의 이론은 이해할 수 없어도 그 이름만은 친숙해 만나면 반가웠습니다.

여현 장현광의 <우주설>에서부터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스피노자, 볼츠만 등을 책에서 만나며 그들의 철학과 함께합니다.

이 책의 서두에서 고등학교에서 배운 내용만으로도 이해 가능하게 서술하였다 했지만, 첫 번째, 물리 수업을 제대로 들었을 것. 두 번째, 그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 필요조건일 듯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책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특히 물리 관련 지망하는 학생에게는 좀 더 넓은 시야를 줄 수 있을 책이었습니다.

맨발에 가슴 풀어헤치고 저잣거리 들어서니

흙투성이 재투성이라도 얼굴엔 함박웃음 가득하다.

신선이 가졌다는 비법이 없어도

마른 나무 위에 곧바로 꽃을 피우는구나.

-p.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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