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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
윤신영 지음 / Mid(엠아이디) / 2014년 10월
평점 :
어린 시절 저녁노을이 깔릴 무렵이면 집 근처의 공원에서 박쥐가 날아다녔습니다. 건물을 짓기 위해 땅을 파놓고 오랫동안 공사를 하지 않았던 그곳에서 박쥐가 살았던 모양입니다. 당시 나름 신시가지였던 제주시 연동의 대로변 건물에서 살았던 저는 건물 사이를 날아다니는 박쥐의 모습에 두려워했습니다. 어쩌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박쥐가 날아들어와 날개를 퍼덕이면 너무 무서워서 바닥에 납작 엎드려 녀석이 나가주기만을 바랐습니다. 차라리 쥐였더라면 인간을 보고 달아나기라도 할 텐데, 박쥐는 여유롭게 형광등에 매달려 엎드려있던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땐 박쥐가 너무 무서웠지만 - 무섭기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이제는 볼 수 없게 된 그 녀석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내 집에 날아들어온 그가 낯설었던 것처럼 그의 집에 쳐들어 온 인간들이 무서웠을 테지요. 제가 만약 박쥐에게 편지를 쓴다면 무어라고 쓸까요? 그때는 무서웠지만 그래도 너희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하고, 내가 인간을 대표하는 건 아니지만 미안하다고, 삶의 터전을 빼앗아서 미안하다고 해야겠죠.
저자 윤선영은 박쥐에게 편지를 씁니다. 산속 동굴에서도 쫓겨나 갈 곳 잃은 박쥐에게 다정한 말투로 이야기합니다. 그 편지를 제가 대신 읽습니다. 박쥐는 본래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리고 박쥐는 꿀벌에게 편지를 보내지요.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는 편지를 보낸 이에게 답장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궁금해하는 상대에게 편지를 씁니다. 여러 종의 동물이 릴레이처럼 편지를 전달하는 것이죠.
이 책은 지구 상의 어떤 종이 멸종에 이르기까지를 유전학을 비롯한 과학뿐만 아니라 인문학적인 지식까지 동원하여 이야기합니다. 생물학 이야기를 인문고전, 미술 등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보통 비유란 이해하기 쉬운 간단한 것을 가지고 어려운 걸 설명하기 마련인데, 더 어려운 것을 가지고 덜 어려운 것을 설명하는 것 같지만 그마저도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니 무척 상냥합니다. 동물도, 저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나 봅니다.
사실 편지는 쭉 릴레이처럼 이어져야 하지만 멸종 위기라 받는 이를 찾을 수 없어 수취인 반송이 된 편지도 있었습니다. 그땐 마음이 아프고 미안했습니다. 과거로 보낸 편지가 반송되었을 때와는 달랐으니까요. 하지만 어떻게든 편지는 쭉 이어졌습니다.
마지막에 네안데르탈인이 현생 인류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자 이 편지를 위해 앞의 내용이 있던 것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은 인류에게 당부합니다.
인간이여, 당신께 부탁합니다. 부디 다른 동물을 밀어내고 홀로 이 행성을 차지하지 말아 주세요. 당신과 동물들이 서로 전혀 관계를 맺지 않아도 되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저에게 무관심했듯이 다른 동물에게 무관심하지 말아주세요. 아니, 무관심을 넘어 절멸을 가속화하지 말아주세요. 동물의 서식지를 없애고 사냥하고 기후변화를 일으키지 말아주세요.
-p.320
인간이 모든 파괴의 원인이라 할 순 없지만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건 분명하기에, 그들의 당부가 마음에 와 박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