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신저 23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염정용 옮김 / 단숨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크루즈 여행을 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크루즈를 동경했다기보다는 섬에서 떠나 다른 곳들을 다녀보고 싶었던 꿈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주-인천 간 배를 몇 번 타고났더니 열세 시간도 지겨운데 크루즈는 안되겠구나 싶었습니다. 한밤중에 갑판에서 검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별의별 생각들을 다 하게 됩니다. 짭조름한 바다 내음과 익숙해진 엔진 소리, 그리고 내게 익숙지 않은 방향으로 흔들리는 배는 저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이미 인생에서 벌어진 여러 가지 일들을 상기시켜줍니다. 잊을 수 있게 해주기는커녕. 심지어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검은 바다가 나를 유혹합니다. 그러니 밤 배는 저에게 위험합니다.

크루즈 여행은 좀 다를까요? 여행 자체가 좋은 걸까요, 그렇지 않으면 최고급 호텔에 투숙한 날처럼 어쩐지 나의 신분이 상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우쭐해지는 걸까요. 크루즈의 밤은 저에게도 안전할까요? 매년 크루즈에서 23명의 승객이 사라진다는 통계는 저를 더욱 망설이게 합니다. 크루즈 여행을 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면서 여우가 신 포도 이야기하듯합니다.

<눈알 수집가>를 읽지 않은 저는 <패신저 23>로 제바스티안 피체크를 처음 만났습니다. '피체크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대단한 스릴러 작가라고 하더군요. <패신저 23>의 소재는 무척 좋았습니다. 갇혀있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스릴러를 무척 좋아하거든요. 영화 <다이하드>나 <플라이트 플랜>같은 영화 말이죠. 
5년 전 크루즈 '술탄호'에서 아내와 아들을 잃은 잠입 전문 수사관 마르틴은 한 통의 전화를 받고 크루즈에 오릅니다. 결코 타고 싶지 않았던 술탄호였지만 아내가 아들을 죽이고 바다에 투신한 사건에 대해 어쩌면 가족들이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 되는 전화에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배에 오르다니 바보가 아닐까 싶지만, 만의 하나라는 것도 있으니 홀린 듯 배를 탈 수밖에 없습니다. 근무지 이탈이니 뭐니 생각할 정신상태도 아니었고요. 그도 그럴 것이 8주전 배에서 실종되어 사망처리까지 된 한 소녀가 5년 전 죽은 자신의 아들이 가지고 있던 인형을 가지고 다시 나타났거든요. 그러니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질 수밖에요.
마르틴은 배에서 다시 나타난 소녀, 아누크와 만나며 그녀의 엄마 나오미를 찾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발생한 승객 실종 사건. 각각의 사건은 하나인 듯 여러 갈래인 듯, 독자를 마구 휘저으며 진행됩니다. 각각의 사건마다 반전의 진실이 존재하고, 그 진실은 잔인했습니다. 모든 사건들이 단 하나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모였다 이내 흩어지는 방식이 좋았습니다. 좀 더 현실적이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정말 있을 수 있을 것 같은 스릴러였거든요. 
그렇군요. 배를 타고 여행하는 도중에 읽으면 좋을 스릴러입니다. 
더욱 실감 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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